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186화 (187/527)

제32장. 나의 검(4)

조용히 안경을 벗어 내려놓은 르메인이 고개를 들었다.

대체로 흐름을 느끼기 어려울 깊은 물과 같이 잠겨들어 있던 그 눈에 오늘따라 꽤 많은 말이 담겨 있었다. 분노처럼 보이다가 짜증같기도 하고,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오다가도 회한이 깃든 그런 눈빛이었다.

풀이하자면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노, 이런 말을 듣고도 반박 할 수 없음에 대한 짜증, 언제까지 이것을 상대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귀찮음, 이런 놈과 친하게 지낸 과거의 시간에 대한 회한 정도가 될 것이다.

- 언제나 봄을 기다리는 이 카이리스에 실로 봄이 올 것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 기쁨을 어찌 말로 하겠습니까만은······.

어울리지도 않는 미사여구가 가득한 편지.

'내새끼랑 정혼했다는 네 셋째 아들 빨리 내려보내라. 나 심심하다.'

라는 내용을 고상하게 바꿔 써 넣은 그 편지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은 채로 매일같이 한 통씩 보내고 있었다. 답장을 받을 때까지 보낼 생각인 것이 분명했다.

일국의 하나 뿐인 공작이 보낸 편지였으니 그것을 차마 태워버리지도, 찢어버리지도, 하다못해 마음껏 구겨버리지도 못하고 다시 고이 접어 시종장 라울에게 건네준 르메인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멀찍이 떨어진 소파에 앉아서는 마법사들끼리 벌어진 싸움 구경하듯 흥미진진하게 쳐다보던 앨런이 입을 열었다.

"남의 자식 이용해먹다 막내 왕자님 보내주게 생겼습니다."

딱 강 건너에 붙은 불이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해보는 정도의 얼굴로 이렇게 말을 한 뒤에는, 타르트 위에 올려진 살구를 집어 먹었다. 설탕을 가득 넣고 뭉근하게 조려낸 살구가 앨런의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아무튼 슬레이만도 정말로 칼리안을 사위 삼아 데려가려는 목적보다는 드미레아의 소중한 이름을 팔아먹었던 르메인의 태도를 꼬집고 있는 것일 터였다. 르메인이 이미 드미레아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겠노라 약속을 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레이만은 슬레이만대로 르메인을 놀려 먹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의미 없이 단순한 장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르메인은 제대로 골치아파 하고 있었다. 아무리 악의 없는 편지들이라지만 왕가와 공작가 사이의 일이 아닌가. 슬레이만이라면 몰라도 르메인만은 이 편지들을 가볍게 무시할 수도, 그렇다 해서 무턱대고 진지하게 대응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왕자님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습니다."

칼리안을 지그프리드로 보내라는 소리다.

조금 전 앨런은 발칸의 마법사를 늘리겠다며 인명부를 들고 찾아와서는, 마법사 늘리는 김에 칼리안의 호위 시종 한 명에게 기사 작위를 내려달라는 말을 했다.

키리에와 히나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휘트린 영지의 평민인 '키리에 베른'으로 위조를 해준 것이 바로 르메인 아니던가. 그것이 떠올라 과연 그 시종을 칼리안의 호위기사로 둘 만큼 믿을 수 있는지 우려하는 말을 했다가, 너보다 걔가 칼리안을 더 잘 챙기니까 걱정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르메인은 좀 우울했다.

그런데 이제는 칼리안을 그냥 지그프리드로 보내란다. 당연히 농담이겠지만 우울했던 르메인은 조금 짜증이 났다.

"마나실 백작에게는 이 일이 그저 재미있는 구경거리인 모양이군."

슬그머니 웃은 앨런이 포크를 다시 집었다. 그리고는 타르트 위에 올려진 살구를 몇 개 쯤 더 먹은 뒤 라임과 민트 향이 가득 배어나오는 차로 입가심을 했다.

"재미가 있으니 이렇게 바쁜 시간을 내어 구경하고 있는 것이지요."

소문 덕을 보겠다며 칼리안과 드미레아의 정혼설을 묵인하고 기정사실로 만든 탓에 슬레이만에게 이렇게 시달리는 르메인을 대체 언제 또 구경해 보겠는가.

타르트 위에 얹어진 살구만 싹싹 골라먹으면서 한 마디도 안 지는 저 입을 대체 누가 막겠나 싶은 마음에, 르메인이 작은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칼리안 왕자께서 지그프리드로 가신다면 저야 환영할 일이 아닙니까. 전하께서 앉아 계시는 종이 의자 넘겨 받는 것보다는 지그프리드 공작저의 뒷마당이 몇 배는 더 편안하고 안전할 터이니."

언제는 칼리안에게 세자위를 주려고 카이리스에 왔다더니 이제는 그냥 다 됐단다. 한 술을 더 떠 이 참에 국혼을 치르란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칼리안에게 세자위를 내린 뒤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그렇게나 걱정하더니 지금은 또 내려보내라는 소리를 하고 있다. 심지어 농인지 아닌지조차 구분이 되질 않는 말투였다.

르메인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본 앨런이 민둥민둥해진 타르트에서 마지막 살구를 집어먹은 뒤 말했다.

"그냥 술이나 몇 병 보내면 잠잠해질 작자 아닙니까. 행여 사과라도 하겠다며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지나 마시지요."

앨런이 이제야 제대로 된 조언을 꺼내들었다.

다른 설명 덧붙이지 말고 그냥 술이나 보내라는 뜻이다. 술에 담긴 의미야 슬레이만이 알아서 해석하도록 르메인은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어찌됐건 둘 사이의 국혼은 평생을 가도 이뤄지기 힘들 일이 아니던가. 칼리안이 세자위 포기하고 지그프리드로 가겠다 할 리도 없지만, 그 드미레아가 왕비 노릇 하겠다고 공작위를 내려놓을 리도 없었으니까.

다만 서로 나서서 그런 사실을 확인하느니 그냥 대충대충 넘겨가며 각자 이득이나 보라는 말이었다. 이미 당사자들도 그렇게 지내기로 협의를 봤으니 말이다.

"차후에 칼리안 왕자님이 별반 손에 든 것 없는 빈털터리라는 것을 알아도 귀족들이 함부로 머리 돌리지 않도록, 지금 관계는 적당히 유지하고 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 드미레아의 아버지란 작자가 슬레이만이라는 물건이라서 이런 일에 휘둘리게 하는지, 하고 이야기하려던 르메인이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절대 하지 않을 저 마법사가 그런 얘기를 듣고 무슨 험한 대꾸를 할지 적당히 예상이 된 탓에, 다른 말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 * *

그것을 계속해서 꿈이라 해도 좋을지.

아니면 과거의 일이라 해야 할지. 혹은 어디엔가 살았을 또 다른 나의 기억이라 해야 할지.

도무지 무엇이라 칭하기조차 어려울 것들을 떠올린 체이스가 조용히 눈을 떴다. 잠들기 전 내려 둔 커튼 사이로 밝은 햇살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동안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서 늦은 아침이 지나서야 간신히 눈을 떴지만 최근에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계속하여 꿈을 꾸느라 잠이 길어졌다. 억지로 깨려 하지 않고 보이는대로 전부 다 기억에 담아두며 계속해서 그렇게 꿈을 꾸었다.

곧 체이스가 다른 소리를 내지 않으려 주의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생각지 못한 것을 꿈꿨네."

칼리안이 부탁했던 것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한 꿈을 꾸고 싶었는데, 꿈이 길었던 탓인지 생각지 않던 새로운 기억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때문에 밖으로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를 낸 체이스의 눈이 멀리 보이는 방문을 향했다.

테일란 카스트린.

지금은 체이스의 스승이자 호위 기사. 그리고 과거에는, 베른의 스승이었으며 데블란의 호위 기사였던 대륙 최강의 소드마스터.

잠에 들어 있을 때에는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 두었으므로, 기사 테일란은 체이스의 방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계속 밖을 지키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체이스는 자신이 일어났음을 테일란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리 죽여 몸을 일으킨 참이었다.

침대 헤드에 기대 앉은 체이스의 보랏빛 눈에 혼란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것을 테일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다시 한 번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일까, 아니면 상상일까."

가끔씩 체이스가 의문을 가지는 것이 있었다.

꿈 속에서 보이는 것이 정말 있었던 사실들 뿐일지, 혹시라도 체이스의 상상이 섞여있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것을 사실이라 믿기에는 너무 가혹하여 그저 상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단순한 상상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좋은 기억이라 사실이기를 바랐던 것도 있었다.

대체로 베른에 대한 내용이 그랬다.

사실이라 믿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했고, 상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행복하고 좋은 기억이 혼재했다. 때문에 어떤 것은 상상이었으면 싶다가도 또 어떤 것은 사실이었으면 싶은 그런 기분이, 베른에 대한 꿈을 꿀 때마다 느껴졌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베른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음에도, 사실이라 믿기에는 가혹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그런 꿈을 꾸었다.

- 베른.

차마 소리로도 내지 못하고 입만 열어 그 이름을 입에 올려보던 체이스가 혼잣말을 이었다.

"······ 감추고 살았던 것이 너만은 아니었구나."

나 역시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음을.

나 역시 지금껏 모르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음을.

오늘에서야 알게 된 숨겨진 이야기 하나를 되새겨보며, 체이스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 후에는 고개를 움직여 손목에 채워진 얇은 은색의 팔찌를 한참동안 쳐다봤다. 커피 향이 나는 것도 같고, 민트 향이 나는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짙은 바다 비린내, 혹은 또 다른 것의 비린내가 나는 듯한 그런 기분도 함께 들었다.

그 기억에 계속 잠겨들다가는 꿈 속의 언젠가처럼 깊디 깊은 바닷속에 함께 잠겨들다 숨을 놓치는 기분이 될 것 같아서, 체이스는 막힌 숨을 터뜨리며 기침을 토해내듯 입을 열었다.

"카스트린 경."

그와 함께 곧바로 문이 열리며 키 큰 테일란이 방으로 들어왔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났음을 눈치채고 있었던지, 상당히 빠른 반응이었다. 침대 발치에 선 채로 잠시 체이스의 안색을 살피던 테일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또 악몽을 꾸셨습니까."

최근 들어 조금 괜찮았던 것 같았는데 다시 꿈을 꾸게 되었는지를 우려하는 빛이 가득했다.

악몽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체이스는 항상 '악몽이 아니었다'고 정정했었다. 하지만 오늘 체이스는 그런 설명을 하지도 않은 채 한참동안 테일란의 두 눈을 응시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몰랐다. 체이스는 계속 그렇게 테일란을 보다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카스트린 경."

이렇게, 다시 한 번 테일란을 불렀다.

"네, 저하."

테일란은 무슨 일인지 묻는 대신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침묵이 찾아왔다.

여전히 침대에 앉은 채로, 혼란스러운 눈을 한 채로, 꿈 같은 사실을 이제 막 깨우친 채로.

"그대는 나의 검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검인가."

하는 질문을 했다.

체이스가 데블란을 '아버지'라 불렀던 적이 있던가.

생소한 호칭에 찰나와 같이 떠올랐던 의문을 잠시 접은 테일란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는 체이스의 것과 달리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대답을 전했다.

"과거에는 전하의 호위였으나 지금은 저하의 검입니다."

데블란에게는 단순한 호위였으나 체이스에게는 다르리라는 말. 그 충성의 대상을 스스로 바꾸었다는 테일란의 솔직한 말에 체이스가 설핏 웃었다.

한번 주인을 바꾼 기사를 믿어도 될지 의심이 되어 웃은 것은 아니었다. 테일란이 언급한 '과거'라는 단어가 체이스에게 조금 다르게 들려온 탓에 웃은 것이었다.

"과거에도 결국은 나의 검이었지."

테일란으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한 체이스가 테일란의 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하루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아."

세크리티아로 가는 길을 하루만 미루자는 말에, 테일란이 다시 걱정하는 낯으로 체이스를 봤다. 그렇게나 심한 악몽이었는지 묻고 싶어하는 기색이 분명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은 체이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경에게, 조금 긴 이야기를 하나 해 줄 생각이라서."

말도 안되는 진실.

거짓보다 믿기 어려운 진실.

지옥보다 더 지옥같은 그런 진실을, 이제 이야기 해주겠노라고. 그러니 이번에도 데블란이 아닌 나의 검으로 살라고. 그렇게 해달라고.

그런 뜻을 담아 꺼낸 이야기였다.

* * *

결국 형제는 닮게 마련이다.

굳이 더 이상은 내 오지 않아도 된다고 일렀건만 배려심 넘치는 주방장이 다시 한 번 피망 섞인 양고기를 내어 놓았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형제는 형제인지라.

"두분 다 똑같으십니다."

다른 요리를 모두 먹었음에도 유일하게 조금도 손대지 않은 그 접시를 보며, 얀이 툴툴거리듯 입을 열었다. 칼리안과 플란츠가 똑같다는 말이 얀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험한 말이었다. 물론 시종으로서 할 만한 말도 아니었으니 곁에 있던 레릭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으나 얀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얼굴을 하며 칼리안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몰라. 냄새도 맡기 싫어."

얀에게 혼난 것이 한 두 번은 아니었던 탓에 가볍게 대꾸하고 넘긴 칼리안이 생글거리며 앞을 쳐다봤다. 그 원흉이 된, 왕궁 어딘가에 돋아난 잔디 한 줄기처럼 꼼짝 않고 앉아서 고양이나 쓰다듬고 있는 연두색 놈이 거기 있었다.

오래지 않아 얀과 레릭이 밖으로 나간 뒤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에이프린 경의 기사들이 어제 왔습니다. 믿을 만한 이들인지는 저를 대신해서 드미레아가 확인 해주기로 했고요. 말씀 드렸듯이 8월이 지나기 전까지는 모두 발칸에 합류하게 될 겁니다. 그 전에 키리에가 기사 서임을 받고, 형님 일을 도왔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특별히 반대할 만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이미 혼자 다 정해놓고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싫다고 할 수가 있나. 때문에 플란츠는 그냥 가볍게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치유사도."

그리고는 이렇게 한 마디를 한 뒤 칼리안을 쳐다봤다.

칼리안이 그런 플란츠를 한참동안 마주 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할 말 끝났다는 저 얼굴을 보며 되려 할 말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말씀을 좀······ 늘려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말이 너무 짧다.

아무리 칼리안이 제 말을 잘 알아듣는다지만 좀 너무하다 싶을 만큼 말이 짧을 때가 많아졌다.

"텐실의 치유사. 히나에게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아무것도 모르잖아."

치유 방법은 다르지만 치유를 한다는 것은 똑같으니, 치료해야 할 사람이 더 늘어나기 전에 텐실의 치유사를 불러다 히나에게 뭔가를 좀 가르쳐 줄 수 있을지 부탁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그런 소리였다. 히나는, 치유력은 있으나 그에 대한 지식까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베로니카는 자신의 아버지인 로닐이 남겨 둔 자료들로 약초 공부를 하고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생각해보니 히나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붕대 감는 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착하디 착하면서 능력까지 대단하여 어디 하나 빠질 곳 없는 우리 히나가 너한테도 히나인건지, 한번만 더 그 귀한 이름 입에 담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으로 잠시 플란츠를 보던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 가시죠."

"싫어."

치유사에게 히나를 부탁하려면 란델을 통해야 하니 하는 말이었다. 말 꺼낸 사람이 올라가서 부탁하라는 칼리안의 이야기에 곧바로 싫다는 말을 한 플란츠가 또 한 번 한 줄기 잔디처럼 움직임을 멈추고 창 밖을 쳐다봤다.

결국 다시 한 번 란델을 찾아가게 된 칼리안이 나지막한 한숨을 쉴 때.

- 칼리안 왕자.

그야말로 햇살같은 반가운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 시간의 축, 생각이 조금 더 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맙고 미안한 이야기를 건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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