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155화 (156/527)

제26장. 어렵지 않은 일 (5)

그냥 사라졌어야지.

차라리 그랬어야지.

사라져서 두 번 다시 눈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 이렇게 갑자기.

대체 왜!

* * *

마치 베른처럼.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을 수 없는 시간과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었다.

조각나 온전하지도 않은 모습을 한 채로.

그래. 마치 베른처럼.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나았다.

모르는 것이 백배 천배는 나았다.

시간의 축이 왜 움직였는지, 누가 무엇을 위해 움직였는지를 알고자 했다. 그것을 좇았다. 결코 시간의 축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않았다.

- 단 한 번,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구나.

체이스의 말이었다.

오래 된, 아주 오래 된 책에서 찾아낸 딱 한 줄. 그것이 시간의 축에 대한 유일한 정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것을 당연한 사실로만 여겼다. 그 한 번을 썼으니 사라진 것이라고, 그렇게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보고 말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단어를 끌어모아서 입 밖에 낸다 해도 지금 칼리안의 심정을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허공에 홀로 둥둥 떠 있는 금색의 고리를 보던 칼리안의 입이 작게 열렸다.

"하······."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확실한 말을 담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숨을 내쉬는 것을 보니 그래도 다행히 생을 포기할 만큼 끔찍하지는 않은 모양이라, 한숨의 끝에 헛웃음이 함께 나왔다.

이 곳에 들어서기 전, 앨런이 평소 잘 하지도 않는 농담까지 해가며 칼리안의 기분을 풀어주려 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들어와서 저것을 보는 순간 칼리안이 어찌 될지 그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놀라지 말아라, 동요하지 말아라, 차마 그런 언질조차 주지 못해서 농담이나 한 마디 건넸을 터였다.

"재밌네요. 제 형님께서 밥만 좀 제대로 처드셨어도 저딴 것을 이렇게 갑자기 볼 일은 없었을텐데."

헛웃음이라도 나온 김에 칼리안도 농담을 했다.

칼리안의 뒷통수만 보고 있을 앨런을 향해,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축의 파편이 다시 발견된 것과는 일말의 연관도 없이 무고한 이를 입에 담았다.

"다행입니다. 그나마 일부 뿐이라서, 일부가 여기에 있어서."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일부분이라서 다행이라고.

"하지 말아야 할 기대를 안 해도 되고, 같은 일이 반복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일부 뿐이니 하지 말아야 할 기대를 하지 않아도 되어 얼마나 다행이냐고.

"일부가 여기에 있으니 나머지가 어디 있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라서."

그 역시 얼마나 다행이냐고.

결국 칼리안 스스로를 위해 다행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이렇게. 베른의 생이 아예 지워져 잊힌 것을 알게 된 그 날처럼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 그리 삼키지 마시지요. 왕자님 속이 다 짓무를 터이니."

실리케의 독차를 꾸역꾸역 삼키다 속이 다 녹았던 칼리안이다. 다른 이들 앞에서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그걸 다 삼켰다. 멀쩡한 목소리로 다행이라 말하고 있다지만 이번이라고 다르겠는가.

안그래도 해진 속에 또 독이 들어갔는데.

칼리안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앨런은 당장 그 옆으로 가 칼리안의 얼굴이 어떤지 확인하고픈 마음을 애써 내리눌렀다.

칼리안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보냈다.

앨런은 아무 말 없이 칼리안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혹여 무너질까, 그것이 걱정되어.

"괜찮습니다. 심장이 튼튼해서."

한참이 지나 비로소 칼리안으로부터 대답이 들려왔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죽을만큼 끔찍한 기분은 아니었음을 알았으니 됐다고 여겼다. 이것을 보았다 하여 어찌 할 방도가 없음을 이해해냈다.

"이것이 있다 해서 이제와 달라질 것이 있겠습니까. 만에 하나 시간의 축을 온전히 손에 넣어 시간을 다시 움직일 수 있다 해도 이미 이렇게나 어긋난 것을 또 어떻게 뒤바꾸겠습니까."

베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또 잊혀지면 어찌하려고.

칼리안이 아닌 다른 사람이 또 이름을 잃으면 어찌하려고.

그러니 그저 눈을 감을 밖에.

"······ 어떻게 처리하실 요량이십니까."

칼리안의 괜찮다는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앨런은 이렇게만 물었다. 차라리 다른 쪽으로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이 낫겠지 싶어서였다.

"저 하나로 족합니다. 더는 안돼요."

칼리안이 이렇게 대답인 듯 아닌 듯한 말을 하며 금빛 고리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일단은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본 뒤 파괴하려는 생각이었다. 시간의 축이 신물이든 아니든, 두 번 다시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저것에 그 어떤 힘이 담겨있든 얼마나 대단한 능력이 있든 상관없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끔찍한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 탁!

그러나 그 발은 채 세 걸음을 떼지 못하고 멈춰섰다.

고리의 바로 앞에서 발이 멈춘 까닭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언가에 막혀 더 다가가지 못했다 해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이 시간의 축과 칼리안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무언가가 축의 파편을 보호하고 있었다.

- 우웅······.

그것을 안 칼리안은 고민 없이 검을 꺼내들었다.

검붉은 오러가 가득 담긴 검이 짙은 공명음을 내자, 칼리안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앨런이 칼리안에게 둘러주었던 자신의 보호막을 거둬들였다.

그와 함께 칼리안이 검을 휘둘렀다.

- 카앙!

날카로운 소리가 시스파니안의 공간을 메웠다.

참담한 빛을 뚝뚝 떨궈내는 듯한 칼리안의 검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허공에서 멈췄다. 다시 검을 휘둘러 보았으나 모든 공격이 벽에 막혔다.

칼리안이 하는 냥을 잠시 두고 보던 앨런이 조용히 말했다.

"검은 그만 거두시지요. 저도 들어가보지 못하였으니."

칼리안이 입 속을 짓씹었다.

괜히 보안장치가 없던 것이 아니었다. 접근을 못하는데, 이것을 누가 건드리겠나.

결국 칼리안은 검을 이루던 마나와 오러를 흩어버렸다. 칼리안을 닮은 검붉은 빛무리가 이리저리 비산하다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시스파니안······."

앨런도 어찌하지 못하는 힘으로 만들어진 장벽. 굳이 이 곳에 그런 장치를 해둘 만한 이는 하나 뿐이다. 이 공간의 주인임이 분명한 지그문트 칸 시스파니안 말이다.

"시스파니안이 한 일이겠네요."

아니라면 세렌티겠지.

다만 칼리안은 세렌티에 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이렇게만 말했다. 신의 개입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입에 담을 만큼 생각이 짧지는 않았으니까.

"스승님. 세크리티아에서 시간의 축을 보셨었죠."

"네. 한 번 보았습니다."

체이스가 시간의 축에 대해 알아보려 했을 때, 세크리티아로 앨런을 불렀다. 그때 앨런도 이것을 보았다.

"그럼 그 때는 세크리티아에 멀쩡히 잘 있었다가 제가 눈을 떴을 때 사라졌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에 일부가 들어왔다는 말이겠네요."

칼리안은 고개를 그대로 둔 채 시선을 내렸다. 빠른 생각과 말이 동시에 이어졌다.

"직접적이든 아니든 시스파니안이 연관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축의 파편은 시스파니안이 직접 숨긴 것 같으니까요. 저를 만나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지그프리드령에 있는 시스파니안의 빈 둥지는 알려진 곳이다. 이 곳은 아무도 모르는 곳이다. 그녀가 만약 무언가를 숨기고자 했다면, 그런데 '자신의 이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 숨겨야 하는 사정이라도 있었다 가정하면, 이 장소가 가장 안전하다 여겼을 수 있다.

"그러다 궁이 부서지는 바람에 드러났고요."

아르센의 동상을 세우는 것까지는 허락을 해줘야 하나.

문득 든 이런 생각에 속 없는 웃음을 흘린 칼리안이 주머니에서 조약돌을 꺼냈다. 앨런이 '인위적인 신물'일 수 있다 말한 바로 그 검은 돌이었다.

축의 파편과 돌의 공통점, 바로 칼리안도 읽지 못하는 문자였다.

베른이었을 때 시간의 축에 새겨진 문자까지는 눈여겨 본 적 없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벽 안으로 들어가 가까이 살펴 볼 수가 없으니 이 곳에서라도 글자를 비교해보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확인을 하였습니다."

칼리안이 생각하는 것을 눈치챈 앨런이 말했다.

앨런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때문에 에우리아가 베껴간 글자를 가지고 이미 비교를 해 본 뒤였다. 그래서 이 곳에 오는 길에 돌에 대한 이야기도 꺼낸 것이었다.

"같은 글자는 없었습니다. 다만 비슷한 형식의 문자인 것은 확인을 하였습니다."

"같은 문자의 다른 글자라는 소리겠네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칼리안이 다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칼리안의 말을 기다리던 앨런이 주변을 둘러봤다. 양신전쟁을 승리로 이끈 8명의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는 벽이었다.

그들 중 '세크리티아 대왕'의 얼굴만은 채워져 있지 않았다. 이름 없는 그녀의 얼굴은 오로지 윤곽 뿐. 눈 코 입 어떤 것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것을 떠올린 앨런이 쓰게 웃었다. 베른과 같은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그녀 역시 얼굴과 이름이 잊힌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곧 칼리안의 목소리가 앨런을 상념으로부터 꺼내놓았다.

"아무튼 이제는 조금 더 서둘러서 움직여야겠네요. 발견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발견해버렸으니. 직접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시스파니안을 만나보실 요량이십니까."

칼리안이 이 일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 만한 이를 떠올린 앨런이 이렇게 물었고, 칼리안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이 자리에서 축의 파편을 없앨 수는 없는 것 같고······ 아무래도 만나보아야 하겠습니다. '과거'에서 쓰임새를 다하고 '현재'에서 사라진 시간의 축이 왜 일부분만 남아서 이 곳에 있는지. 나머지는 제대로 사라진 것이 맞는지. 그 이유를 알 만한 이들 중 칼리안이 만나볼 수 있는 이는 오로지 시스파니안 뿐이니까요."

또 대답하지 못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만나는 봐야했다. 생명과 죽음을 상징하는 주신 세렌티를 직접 만나겠다며 세뉴강을 건너가 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곧바로 가실 겁니까."

"아뇨. 이번 일 마무리 한 뒤에요. 아무리 이동 마법진이 있다지만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더 급합니다. 자리 비운 사이에 손 많이 가는 두 놈이 뭔 일을 또 저지를지 믿을 수가 없어서."

'손 많이 가는 두 놈'이 누굴 이야기하는지 알아들은 앨런이 슬쩍 웃었다.

어차피 시스파니안도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찾아오라 했지 않나. 축의 파편이 이 곳에서 발견된 것과 칼리안이 해야 할 준비는 서로 완전히 다른 문제였으니까.

"일단 란델 형님부터 다시 만나봐야겠네요."

시간의 축에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글자가 새겨진 검은 조약돌. 그리고 조약돌이 반응했던, 모종의 조직에서 사용하던 힘. 그들과 란델의 연관성.

손 많이 가는 두 놈 중 한 놈을 만날 결심을 굳히며, 칼리안이 이렇게 말했다.

* * *

"대답, 해주세요. 란델 형님. 제가 형님을 적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형님 역시 끌어안고 가야 하는지. 그것을 직접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 말했다.

"맹세의 인에 숨겨진 것이 얼마나 있는지는 지금 당장 알려주지 않아도 되니까 일단 그것 하나만 알려주세요."

이렇게도 말했다.

"너는 브리센과 전하를 계속 함께 두고 있구나."

칼리안을 잠시 바라보던 란델의 입이 조용히 열렸다.

브리센과 르메인을 같은 선상에 놓고 있음을 안 것이다. 르메인은 물론이거니와, 만약 란델이 브리센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그것을 막겠다는 의도가 다분하지 않은가.

칼리안은 숨길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과 변경백을 브리센과 같은 위치에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가문 전체를 적으로 두려던 생각을 접었습니다. 후작과 변경백, 레넌 브리센 자작까지. 그 셋만 지워내고 가문은 살려둘까 합니다. 쓸 곳이 있어서요."

"그것이 네 자만인지 자신인지 궁금하구나. 브리센이라는 세력은 유지하면서 머리를 모조리 없애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렇게 연명시킨 브리센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성 낮은 일인지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

"믿는 구석이 있어서요. 아마 괜찮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칼리안이 찻잔의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 믿는 구석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기면, 그때 가서 쳐내면 되니 어려울 것 있겠습니까."

브리센의 세력이 필요하지만 귀하지는 않다. 플란츠의 손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놈들이 생기면, 없애면 된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가지치기.

이미 너무 많이 해 본 일이 아니던가.

"네가 믿고 있는 그 아이를 의심하지는 않는구나."

믿는 구석이 플란츠임을 이미 알고 하는 말이었고, 칼리안이 잠깐 웃는 소리를 냈다.

란델의 말이 맞다.

애증해 마지않는 삶은 완두콩. 의심한 적 없었다.

베른은 제 사람을 잘 만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울타리에 들어온 놈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뒤통수, 당연히 맞아봤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사람은 의심하지 않았다.

"나를 더 믿으니까."

멍청하게 사람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배신 따위로 추락할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감일 수도 있고 자만심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지금의 칼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플란츠와 손을 잡기로 했을 그 때부터, 증오할지언정 의심은 안 했었다.

"그래. 알겠다."

"이제는 대답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란델이 이렇게 대답했고, 칼리안이 란델을 다시 응시했다.

잠시 칼리안을 보던 란델이 입을 열었다.

"다른 것이다. 전하나 브리센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말씀 못해주십니까."

"그래."

"계약 때문에?"

"그래."

일단 이 정도면 족하다.

일단은.

결정을 내린 칼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르메인 생명이 단축되지 않도록 지키는 김에 시간의 축을 파괴하기 전까지 남들 손에 또 넘어가지 않도록 지키고. 풀 먹는 놈 심장 지키는 김에 첫째 형님 것도 좀 지키고.

다 지키면 되겠네, 뭐.

하는 김에 겸사겸사 하면 될 일이니 어려울 것도 없겠네.

"알겠습니다."

식어버린 홍차에서는 더 이상 베르가못의 향이 올라오지 않았다.

올라오지 않는 것인지, 그 향은 여전한데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이제는 쓴 향만 나고 쓴 맛이 났다.

"란델 형님께는 늘 등을 보이게 되는군요."

지금 란델과 마주보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친목은 아니었다. 만약 마주본다면 검을 겨눌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이번에는 등을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라는 사소한 차이가 있지만, 결국 칼리안이 란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저 등 뿐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최선이다.

"더 이상 제 그늘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칼리안의 붉은 눈이 란델의 심연을 응시했다.

"죽습니다."

숨막히게 죄여오는 그 짙푸른 바다 빛 눈을 향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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