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149화 (150/527)

제25장. 있어야 할 곳 (8)

향이 강한 것을 싫어했다.

르니에리가 생각나서 문득 싫어졌다. 몇 년 전의 일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래 전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주위의 것들을 모조리 자신의 향으로 덮는 그 지독함이 몸서리쳐져서 향이 지나친 것은 다 싫었다. 그것이 정말 혐오였을지 혹은 그 반대의 감정을 덮어두려는 반발일지 플란츠는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싫어하기만 했다.

그런 이유까지 가늠했든 아니면 그냥 무식하게 하나하나 지켜봤든 아무튼 동생놈이 그 사실을 알았다. 물론 플란츠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오늘 플란츠만큼 조용한 히나가 생소한 것을 물어왔다. 그래서 한참의 고민 끝에 대답을 해줬다.

그래. 딸기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대답했다.

딸기를 좋아한다고 했지 딸기에 미쳐있다고는 안했다.

"혹시. 왕궁에 무슨 딸기 농장이라도 있습니까."

무표정하게 앉아있던 드미레아가 식사 말미에 결국 이런 말을 했다. 마지막 디저트로 기어코 딸기 아이스크림이 나왔을 때였다.

드미레아의 말에, 플란츠의 팔이 아주 잠시 갈 곳 없이 멈췄다 다시 움직였음은 아마 히나만 봤을 것이다. 때문에 히나의 고개가 하염없이 수그러들었다.

만약 이런 뒷이야기를 알았다면 칼리안은 아마도 또 한 번 난리를 쳤을 터였다. 천만다행으로 칼리안은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를 알아채지 못했다.

- 딸기를 좋아하세요, 형님?

족히 며칠은 입에서 딸기 냄새가 날 것 같은 음식들을 야무지게 잘 먹어치우던 중, 툭 하고 던져지듯 떠오른 생소한 기억을 함께 삼켜야 했던 탓이다.

지금의 칼리안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아주 오래 전 언젠가의 기억 말이다.

"······ 딸기 좋잖아."

때문에 칼리안은 드미레아의 말에 조금 늦게 반응했다. 다소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말을 인지하고 고개를 든 칼리안은 그야말로 정신 나간 메뉴임이 분명하다 장단을 맞춰주는 대신 이렇게 말하며 작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히나가 제일 좋아하지, 딸기 아이스크림."

그리고 히나를 향한 말로 화제를 돌리며 히나에게도 아이스크림을 꼭 챙겨주도록 얀에게 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이상 이 기괴한 저녁 메뉴에 대해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한 것이기도 했다. 이 자리의 주인인 칼리안이 불만이 없다는데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얼마 후 칼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

이 사달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아는 만큼 나름대로 열심히 식사를 마친 플란츠가 칼리안을 쳐다봤다. 그것이 대답이었으니 칼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전하께는 에이프린 백작의 기사단을 언제쯤 들이겠다 말씀하셨습니까."

딸기 향 만큼 가까이 하기 힘든 기억이 떠오른 칼리안이었다. 그것에 잠시 머뭇거리느라 식사 중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이제야 말을 꺼내놓은 참이었다.

탄산수의 분홍색 거품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잠깐 쳐다본 플란츠가 대답했다.

"6월 중순 전."

칼리안은 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드미레아를 보며 말했다.

"그때까지 기사들 맡아 줄 준비 좀 해줘, 드미레아. 처음은 아마 200명 가량 될 거야."

"네, 왕자님."

적은 수는 아니었으나 드미레아는 별 문제 없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뭐라고 포장하는 게 좋으려나. 아무리 지그프리드라지만 갑작스레 200의 기사가 늘어나면 주위의 시선이 끌릴 수 밖에 없는데."

"외가의 기사들이 다시 찾아온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그프리드의 저택에는 슬레이만의 아내인 세리에와 세리에의 동생 부부, 그리고 그들 부부의 가솔과 기사들이 함께 머물렀었다. 세리에 혼자 그 넓은 저택을 지키게 두기에는 슬레이만의 걱정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지난 해 말 그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겨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간 상태였다.

따라서 드미레아는 그 기사들이 다시 저택을 찾아와 머무르기로 했다 하는 것이 가장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슬레이만이 이끄는 지그프리드 공작가의 기사 200명이 수도를 찾아왔다 하면 에반 브리센 후작의 가벼운 엉덩이가 또 들썩거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 들어가는 비용은 내가 부담할 테니 알려줘. 내가 그것까지는 셈이 어려워서."

"알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칼리안이 핑크빛 소다수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얀. 미안한데, 자리 좀 물려 줄 수 있을까?"

주방장을 포함한 식당의 시종들은 후식을 내옴과 함께 이미 자리를 벗어난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 칼리안은 플란츠의 시종인 레릭과 호위기사들 그리고 히나와 얀 본인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말을 한 것이었다.

얀은 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 숙여보인 뒤 다른 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칼리안이 고개를 돌려 플란츠를 다시 쳐다봤다.

이제 에반 브리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물론 그것은 플란츠가 몰라야 하는 이야기였으니 이만 자리를 비켜달라는 뜻이 담긴 눈빛이기도 했다.

"그래."

소리 없이 일어선 플란츠가 아직 꺼내지도 않은 칼리안의 말에 대해 대답했다. 의도가 무엇이든 축객령은 축객령이 아닌가. 그러니 '죄송합니다만' 이라는 사과로 시작될 것이 분명한 칼리안의 말이 나오기 전에 막은 것이었다.

"네."

시종과 기사를 먼저 내보낸 뒤 플란츠에게 말을 꺼낸 것으로 왕자의 입장에 대해 나름의 배려를 해준 칼리안이 짧은 답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그것 역시 잘 아는 플란츠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곧 플란츠까지 밖으로 나가고 드미레아와 아르센을 포함해 셋만 남겨진 식당에서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처음은 아르센을 향해서였다.

"헤르츠 경. 나 대신 브리센 변경백 좀 만나고 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알다시피 내가 외출 금지 상태라서."

이렇게 말하는 칼리안은 마치 평범한 사고를 친 뒤 평범한 벌을 받은 평범한 열 다섯 살 소년같은 얼굴이었다.

"네, 왕자님. 무슨 말을 전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보냈다 하지 말고 경이 마음을 바꿀 것처럼. 변경백이 수도에 올 생각이 아직 있는지 물어봐줘요. 혹시 아직도 란델 형님과 연락을 하는 상태인지 확인해주면 더 좋고."

"제가 왕자님을 배반하고 플란츠 왕자님이나 란델 왕자님의 편에 설 것처럼, 그리고 그레이 브리센 변경백과 손을 잡을 것처럼 굴며 의중을 떠보라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르센은 고민 없이 대답했다.

정말 평범한 부탁을 받은 것처럼.

"세이렌 경이 브리센 변경백령 쪽으로도 이동 마법진을 구축할 예정이라 하니, 궁에는 관련 업무로 자리를 비운다 해두면 될 겁니다."

이렇게 아르센을 향한 지시를 마친 칼리안이 드미레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드미레아. 형님들이나 내 편에 서지 않은 이들 중에 새로운 변경백이 될 만한 사람들이 있을지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전하께 추천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완전한 중립을 고수하는 새로운 변경백.

그레이가 수도로 왔을 때 그레이의 빈 자리를 대신 할 수 있을 사람.

르메인의 인사 평가를 믿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르메인이 그것을 알아보려 할 때 르메인의 주변에 있을지 모를 에반의 귀에 내용이 전해질까 우려한 이유가 더 컸다. 그래서 드미레아의 눈을 빌리려는 것이었다.

플란츠가 그리했던 것처럼 탄산수의 기포가 퐁 하고 터져 사라지는 것을 잠시 쳐다보던 드미레아가 대답했다.

"공작께서 아셔도 될 일입니까."

슬레이만에게 조언을 구해도 될지, 드미레아의 선에서 처리해야 할 일인지를 묻는 말이었다. 칼리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

"얀이 나갔잖아."

얀에게조차 비밀로 해야 할 일이니 슬레이만 역시 몰랐으면 한다는 뜻의 대답이었다.

변경백 후보를 물색해보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드미레아는 다른 말 없이 알겠다는 대답만 했다.

이쯤 되니 드미레아와 아르센은 칼리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냈다. 그래서 드미레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다물었다. 칼리안의 자리 싸움에 직접 관여하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아르센이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른 것이 아닙니까. 아직 왕자님의 기반 세력이 그리 많지 않으니 발칸이 자리를 잡은 뒤에 움직이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반 브리센 후작 숙청. 혹은 암살.

둘 중 어느 쪽으로 발을 옮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칼리안이 지금 에반이 사라진 이후의 상황을 대비하려는 것임은 분명했다.

에반을 치워내면 브리센의 지지세력이 이곳 저곳에서 들고 날 터였다. 그런 그들이 여전히 브리센을 옹호할지 혹은 칼리안이나 란델에게로 떨어져 나갈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왕자님께서 내년 2월까지 발칸의 몸집을 불려 놓겠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때 시작하시는 것은 안됩니까?"

"발칸의 마법사단이 자리를 잡더라도 그것은 전력이지 세력이 아니니까요."

무슨 일이 있을 때 아르센의 말처럼 칼리안을 위해 직접적인 싸움에 나서줄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발칸 자체가 귀족 사회의 한 조각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칼리안의 말대로 발칸의 마법사단은 전력이지 세력이 아니니까. 물론 귀족들이 칼리안의 편에 설 이유가 되어 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시기에 맞게 저를 지지하는 세력이 생기도록 제가 때를 맞춰 움직일 겁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헤르츠 부군단장은 우선 브리센 변경백 의중 먼저 정확히 확인해주세요."

칼리안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세력을 어떻게 만들 생각인지, 에반을 어떻게 치워낼 생각인지, 그 후에는 어떻게 정리할 생각인지. 이런 것들은 아직 칼리안의 머릿속에 꼭꼭 숨겨진 채 나오지 않았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행히 칼리안의 속내까지 속속들이 알고자 하는 이는 이 자리에 없었으므로 아르센은 이번에도 쉽게 수긍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칼리안은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석찬을 마쳤다. 억지로 좋은 척 먹어댄 딸기 향이 여전히 입 속을 맴돌았다.

* * *

- 똑바로 봐.

문득.

정말 문득.

- 피하지 말고, 제대로 봐, 나를. 죽어가고, 있다는 걸, 외면하지 마.

기억 속 깊은 곳에 가만히 묻어두었던 것.

그 날의 모습이 떠올라 버렸다.

- 그래. 그렇게 보고, 이제는, 제대로 알아야지. 너도.

얀에게 있어 그것은.

- 왜 그래. 내가 죽으면 넌, 좋은 것 아냐?

핏기 없고 작고 가는 손가락이 만들어 낸 소리없는 비수였다.

* * *

똑바로 피하지 말고 나를 제대로 보라던 말.

그것이 하필이면 칼리안의 얼굴을 보았을 때 생각이 나 버렸다.

드미레아와 이야기하는 동안 잠시 떠올렸던 기억 때문일 터였다. 굳이 꺼내두지 않았던 그 기억이 피할 곳 없이 불어닥친 바람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간 것이다.

식당에서 나온 얀이 문 앞에 멈춰 섰다.

"먼저 가 있어요, 히나."

그리고 바닥을 향해 시선을 둔 채 히나에게 말했다. 히나가 대답하는 것을 확인하려면 그 손을 보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옆에 서 있던 히나가 발을 돌려 멀어지는 것이 언뜻 보였다. 아마 알겠다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후우."

잠시 숨을 내쉰 얀이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 때 식당 문을 한 번 더 여는 소리와 누군가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안에서 나올 사람은 칼리안이 중요한 대화를 하겠다며 남겨둔 이들이 아니던가. 때문에 얀이 고개를 뒤로 돌려 누가 나온 것인지 확인하려는데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

문 앞을 지키는 기사들까지도 물려두었던 탓에 직접 식당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물론 플란츠였다.

아.

저 자식이 왜 하필 지금.

이런 생각이 든 탓에 결코 곱지 않은 대답이 튀어나왔다.

"왜요."

플란츠가 실소했다.

지금 플란츠는 얀을 '지그프리드'라 부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얀이 이런 식의 답을 한 것이다.

"······ 내 아우님의 시종이 주제를 모르는데."

그래서 플란츠는 굳이 '시종'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물론 최근의 얀이 플란츠에게 그리 좋은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얀의 머릿속이 지금 뒤죽박죽인 것 같아 보여서 플란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정리를 해 준 것이었다.

"아."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따져 본 얀이 낭패한 얼굴이 됐다. 3왕자의 시종이 2왕자에게 '왜요'라는 대답을 하다니. 당장 궁에서 쫓겨날 만큼의 큰 실수가 아닌가.

"제가 잠시······."

"됐어."

그리고 플란츠는 이렇게 얀의 말을 잘랐다.

당연하겠지만 미안하다는 말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사과 됐다고. 둘 다 없는 셈 치자고."

순간 얀은 이런 와중에도 레릭을 잠시 동정했다. 칼리안이 저 따위로 말을 했다면 얀은 쫓겨나기 전에 제 발로 궁을 뛰쳐나갔을 거다.

대체 저게 뭔 소리냐고.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이런 말이 얀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얀이었으니까. 때문에 인내심 강한 플란츠는 짜증났다는 표정이 되면서도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나이프."

말이 또 짧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이해를 했다.

칼리안이 언젠가 말한 적이 있었다. 얀에게 나이프 던진 일에 대해 얀에게 사과하도록 말을 해두겠다고. 그러니 지금 플란츠는 그 때의 일과 지금 얀의 실수를 맞바꾸자는 말을 하는 것일 테다.

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제대로 기억도 안 나는 일과 지금의 실수를 같이 묻어주겠다 하니 얀으로서는 오히려 고맙다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 얀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플란츠가 지나가려다 말고 입을 열었다. 얀의 얼굴에 드러난 것이 그것 뿐만은 아니었던 탓이다.

"······ 원래 싫어했는데. 내 아우님은."

오늘따라 플란츠가 참 말이 많다.

그래도 조금 전 실수한 것이 있었으므로 마음이 복잡한 것을 잠시 미뤄둔 얀이 플란츠를 쳐다봤다.

또 못알아들은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플란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좋아해도 저 정도로 차려놓으면 누구든 질색할테고. 원래 싫어했기도 했고."

조금 전 식당에서 칼리안의 표정을 보던 얀이 멈칫한 것을 플란츠는 놓치지 않았다. 칼리안이 웃는 이유가 화가 나서인지 기뻐서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얀이 유일하지 않던가.

그런 얀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해서 어울리지도 않는 실수를 했는지 예상하는 것은 플란츠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얀을 그대로 두면 그 생각이 어디로 향할지를 눈치채는 것 역시 똑똑한 플란츠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뇨. 왕자님은 분명 좋아하셨는데. 오늘 갑자기······."

"원래 싫어했다고."

얀의 말을 자른 플란츠가 이렇게 말했다.

고작 딸기 하나를 두고 칼리안의 시종과 말싸움을 벌이는 것이 귀찮고 짜증났으나 일단은 계속 말을 이었다.

"억지로 좋아하는 척. 그랬던 거라고. 너 궁에 오기 전에."

······ 나한테 말 한 번 걸어보려고.

칼리안은 거짓말을 잘 못했다.

지금의 칼리안만 거짓말을 잘 못했다.

옛 칼리안은 아니었다.

그러니 얀의 눈에는 그것이 억지인지 아닌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변하지 않나. 그러니까 내 아우님 입맛 하나 놓친 걸로 그렇게 유난 떨지 말지."

고작 딸기 하나 가지고 다른 것까지 의심하지 않도록, 혹여 나중에 또 같은 일이 있어도 별 생각 하지 않도록. 플란츠가 이렇게 말했다.

누구보다 많이 바뀐 플란츠가 이런 말을 한다.

덕분에 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해주십니까."

왜 이렇게 참견을 했느냐고.

어울리지 않게.

그 말에 플란츠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모든 진실이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영원히 덮어두어야 할 진실도 있음을 플란츠는 안다.

나중에 언젠가 결국 밝혀질 일이라 해도.

그것이 적어도 지금은 아니어야 함을 안다.

"손에 쥔 것 다 내려놓은 내 동생이 마지막으로 기댈 구석은 있어야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칼리안에게 있어 그것 하나만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역시 플란츠가 안다.

그러니까 얀은 그냥 얀 답게.

그냥 얀은 얀 처럼.

그랬으면 해서 건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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