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64화 (65/527)

제14장. 오랜만입니다 (1)

너무 이르다.

사람들이 칼리안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르메인의 생각이었다.

칼리안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었다.

칼리안이 카이리시스에 도착하기 하루 전.

당연하겠지만 칼리안의 귀환을 환영해주려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시스파니안을 닮은 왕자가 공동이 빛나는 상서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돌아온다 하니 이번에도 모여든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때문에 거리마다 가득한 이들의 입에서 칼리안의 이름이 내려가질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칼리안이 차기 왕세자가 될지 되지 않을지를 벌써부터 점쳐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르메인이 이르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르메인은 그런 그들의 관심 때문에 칼리안이 실리케와 란델의 집중 타깃이 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 오. 그것을 아는 분이 라트란 성에 기사단 카에라를 보내셨던 거군요.

르메인의 걱정을 들은 앨런이 어김 없이 한 소리를 했었다. 물론 앨런의 지적은 언제나 옳았으므로 르메인은 사과를 씹어먹으며 말을 내뱉던 그 입을 향해 별 소리를 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런 르메인의 걱정은 얼추 들어맞았다.

란델의 생각은 알 수 없었으나 다른 한 명의 심기가 더 많이 비뚤어진 것이다.

"내일이면 다시 만나겠구나."

붉은 입술 틈에서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찌나 대단한 소문을 몰고 다니는지. 반갑기도 하여라."

칼리안이 독차를 물렸던 그 날 이후 친아들과 거의 다섯 달 만에 처음 만나는 오찬 자리였다. 하지만 실리케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은 오직 칼리안에 대한 경계의 말, 그리고 르니에리 향기 뿐이었다.

물론 플란츠는 그 이상의 것을 실리케에게 바란 적도 없었다.

아마도, 없었다.

"내 아우님을 반겨하는 마음에 나를 보자 하셨는지."

플란츠의 낮은 목소리에 다소 마르긴 했으나 여전히 아름다운 실리케가 여전히 아름다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곧 변경백이 올 것이라 하기에 그것을 알려주려 부른 것이란다."

실종 상태인 레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저 새로 오게 될 그레이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플란츠가 성의 없는 고갯짓을 보인 뒤 대답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실리케의 눈에 찬 기운이 어렸다.

앞에 앉아 이 자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보는 실리케의 귓가에 칼리안이 건넨 말이 아른거렸다.

- 플란츠는 나를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칼리안이 독을 마신 날. 항변하는 실리케를 플란츠가 막은 것이 실리케를 살리기 위함이었다던 그 말을 실리케는 전혀 믿지 않았다. 언제나 플란츠는 실리케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지금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레이가 오는 것이 플란츠에게 더할 나위 없는 이득이 될 텐데도 그저 탐탁지 않게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실리케는 조곤조곤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네가 걷게 될 길이란다. 너도 알고 있지 않니? 그러니 무의미한 반항들은 이제 그만하렴."

그 말에 플란츠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라는 말은 좀 짜증나는데."

그렇게 말한 플란츠는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 모습에 걸맞는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 마음대로 정해진 길인지도 모르겠고요."

실리케가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누구의 마음대로인지 너무나 당연해서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까닭이다. 대답이 올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던 플란츠가 말을 이었다.

"마법사들이 알아낸 일들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많던데요. 훨씬."

칼리안이 공개했던 실리케로 인해 죽은 이들에 대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었다.

플란츠는 실리케가 정말로 그들을 전부 해한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이미 사실임을 알았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실리케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왜 아직도 이렇게 어리게만 구는걸까."

다른 대답이 필요할까.

플란츠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날. 그냥 닥치고 있을걸."

이성을 잃은 르메인이 카에라 단장에게 무슨 말을 하든 그냥 두고 보았어야 했다고. 플란츠는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칼리안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안 실리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 뿐,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지금 실리케는 그 날의 르메인을 막아선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플란츠의 말에 다시 한번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실리케가 자신의 것과 똑같이 생긴 플란츠의 연두색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내 아들. 그리 애쓰지 말려무나."

언제나 플란츠가 하던 말이 실리케의 입에서 나왔다.

조용히 있으라는 말에 플란츠도 실리케의 눈을 쳐다봤다.

"······ 누구는 너무 변했는데. 누구는 너무 안변하네."

그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플란츠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독한 르니에리 향기가 다시 느껴졌다.

"계속 애쓰실 것 같아서. 원하시는대로 조용히 있겠습니다."

플란츠는 칼리안이 변한 것을 잊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야 저 향기가 멈출 것 같아서였다.

* * *

- 늦더라도 다음주 전까지는 레딩턴 자작이 카이리시스에 도착할 겁니다. 상단 일을 해본 자는 아니지만 잘 적응할 것 같습니다. 카이리시스로 올 마음을 먹고 나니 열의가 대단하더군요.

- 다행입니다. 폴룬 남작의 과로사는 면하겠으니.

칼리안이 없는 사이 멜피르와 많이 친해진 모양인지, 앨런이 꽤 반겨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곧 칼리안 쪽에서 전할 말이 끝나고 이번에는 앨런이 소식을 전해왔다. 하마터면 르메인이 마차 값을 낼 뻔했다는 말을 듣고 실소하던 칼리안이 물었다.

- 그럼 발칸은 제가 도착한 직후에 창단되는 겁니까?

칼리안의 질문에 앨런이 잠깐 대답하지 않다 물었다.

- 제가 왕자님께 그 말을 했었습니까?

- 아뇨. 제가 사고친 것 때문에 날짜를 앞당겨야겠다고 결정하셨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제가 카이리시스 밖에 있을 때 창단하면 자칫 공격이 있을까 걱정하셨을테니 제가 간 직후로 날짜를 잡고 그 전까지는 비밀로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앨런이 웃는 것이 전해졌다.

- 왕자님 손에서 사이 좋게 놀고 있었군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왕자님께서 돌아오시면 곧바로 창단을 발표하고 그 다음주에 창단식을 가질 예정이지요. 그 전까지는 외부에 알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 마법학원은 테이난샤 거리의 빈 건물을 임시로 쓰고 있다고 하셨는데 마법사단은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발칸이 어디에서 지내도록 할 지에 대해서는 칼리안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때문에 앨런은 칼리안의 놀란 반응을 기대하며 말했다.

- 파벨의 영역을 침범하기로 했지요.

앨런의 말을 들은 칼리안이 레이븐의 고삐를 꽉 쥐었다.

다른 대답 없이 한참동안 생각을 해보던 칼리안이 말을 전했다.

- 실리케가 워낙 화가 많아서 전하께도 위협이 있을텐데요.

- 감안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카에라의 기사들을 너무 얕잡아 보지는 마시지요.

카에라의 기사를 얕보지 말라니.

칼리안이 작은 소리로 웃었다. 앨런에게는 전달되지 않을 웃음이었다.

- 얕보다니요. 정확히 보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입니다. 기사단장조차 검의 길에 들어서지 못했는데, 두 명의 소드마스터로부터 르메인을 어떻게 지킨다는 말입니까.

앨런이야 자신이 곁에 있으니 괜찮으리라 여기고 말았겠으나 칼리안은 안심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상황에서 그레이가 카이리시스로 가게 되면 르메인의 목숨이 정말 위험할 터였다.

테이블 대신 레이븐의 안장을 톡톡 치며 생각을 하던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반지와 연결된 앨런이 아니라 옆에서 나란히 말을 달리던 얀을 향해서였다.

"레딩턴에서 카이리시스로 가는 길은 이 곳 뿐인가?"

그 말에 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굳이 빙 돌아가는 것이 아닌 이상 이 길 뿐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칼리안이 중얼거렸다.

"변경백이 그 분홍색 마차를 타고 수도까지 가진 않겠지. 그럼 잘 하면 만나겠네."

그리고는 잠시동안 생각에 빠져들었다.

방금 결정한 일에 대한 여러 경우의 수를 가늠해보는 시간이었다. 곧 칼리안이 장난 같은 말을 건넸다.

- 스승님. 저 어쩌면 사고 하나 더 칠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들은 앨런이 우려된다는 듯이 말했다.

- 왕자님과 브리센 변경백이 만난 것이나 둘의 경로가 같은 것은 이 곳에서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괜한 오해 살 일은 벌이지 마시지요. 혹시라도 성급히 칼을 휘두를까 걱정됩니다.

- 그레이를 죽일 생각은 저도 없습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전하께서 저 때문에 목숨을 내놓게 할 생각도 없어서요.

- 무슨 일을 벌일 생각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 일을 벌일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브리센 변경백이 카이리시스에 가게 둘 생각이 이제 없어졌다 해야 맞는 말일 것 같네요.

칼리안이 웃으며 대꾸했다.

- 칼을 휘두르지는 않겠습니다. 제 칼은 탈이 나지 않을 때 휘두를 테니 걱정 마세요.

- 알겠습니다. 칼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하시지요.

무슨 사고를 치겠다는 것인지는 몰라도 사고치는 아들을 보며 머리아파 하는 것은 르메인의 몫이었다. 따라서 앨런은 그저 재밌는 구경거리 하나 늘어나는 셈 치며 이렇게 답했다.

* * *

- 다그닥, 다그닥!

여러 마리의 말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일반적인 말이 달리는 속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누군가 본다면 꿈을 꾸는 중인지 의심을 해 볼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런 엄청난 속도의 말 위에서, 아르센과 레이첼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칼리안은 이동 마법진과 관련해서 카이리시스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느정도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르센은 카이리시스 입성일이 가까워지는 것을 거의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 같이 느끼고 있었다. 결국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레이첼과 토론을 이어나가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말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에 있었다.

속도가 이렇게까지 빨라진 것은 칼리안의 요구사항 때문이었다. 앨런과의 대화를 마친 직후 말들이 견딜 수 있을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게 해달라 한 것이다.

"내 말은 맹세의 인 같은 것을 활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거죠!"

"그런데 맹세의 인은 일대 일의 계약이니컥!"

앞의 목소리는 레이첼이었고 뒤는 아르센이었다.

아르센의 말이 이상한 소리와 함께 끊긴 이유에 대해 칼리안은 굳이 궁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대신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촉박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말 위에서 입 열지 말아요. 혀 씹히니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칼리안의 목소리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우아한 레이븐은 빠른 속도로 달려도 여전히 우아했으니.

아무튼 이런 일련의 일들을 거치며 두어 시간을 더 달린 뒤 일행은 드디어 말의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칼리안이 찾던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앞서 달리는 마차에서 그레이의 기운이 뻗어나오는 것을 확인한 칼리안의 입 꼬리가 말아올려졌다.

"찾았다."

벽 틈에 숨은 생쥐를 발견한 고양이의 울음 같은 칼리안의 목소리에 일행들이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얀은 알아서 뒤로 물러났고 레이첼은 히나와 베로니카를 자신의 뒤로 보냈다.

저들과의 일로 자정이 넘어서까지 훈련장을 달리다 간신히 칼리안의 뜻을 깨닫게 된 키리에는 투지를 불태우며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이제는 칼리안에 대한 쓸데없는 배려심 때문에 바보같이 참고만 있지는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르센은 지난번에 부순 것 다음으로 비싸보이는 마차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칼리안은 일행들을 향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말해주는 대신 잠깐 웃었다.

한편, 이제 내일이면 카이리시스의 집에서 편안하게 발 뻗고 잘 생각을 하며 불편한 마차를 간신히 참고 있던 그레이에게 집사가 말했다.

"변경백님. 뒤에 누군가 따라오고 있습니다."

"따라오다니?"

그 말에 곧바로 마차 뒤의 커튼을 젖히고 뒤를 쳐다본 그레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또 저 왕자인가. 대체 어떻게 따라왔지?"

물론 이유는 간단했다.

칼리안의 일행은 레딩턴 성에 들어가 사흘을 쉬었다. 그 후 이동 속도를 올려주는 마법을 사용해 나흘 거리를 이틀 만에 주파했다.

그 사이 그레이는 마차를 구매하여 정비하는 것에 하루를 쓰고 나흘을 달렸다. 못 만날 수도 있었던 그레이를 칼리안이 찾을 수 있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자신을 향해 점점 다가오는 칼리안이 심지어 살짝 웃고 있음을 확인한 그레이가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마법을 좀 배웠다 하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그 안하무인한 성격 뿐 아니라 마법사를 우습게 보는 것도 에반 브리센 후작을 꼭 닮은 그레이였다.

"진정으로 인내하고 있는 것이 나라는 것은 꿈에서도 모르겠지."

그가 대단한 착각에 빠져 이런 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칼리안이 마차를 거의 다 따라잡았다.

그러자 그레이의 집사가 들창을 통해 물었다.

"변경백님. 마차를 세울까요?"

그레이가 날이 잔뜩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차가 서면 왕자의 목을 비틀어버릴 것 같다. 그냥 무시하고 가도록."

"네 네."

아주 거친 표현에 화들짝 놀란 집사가 다시 몸을 돌리며 마부를 채근했다. 그 사이 칼리안이 그레이의 마차 근처로 다가왔다. 그레이는 창문의 커튼을 내린 채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칼리안이 마차 옆으로 가고자 했으므로 레이븐은 마차를 둘러싼 기사들의 말 사이를 우아하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용케 마차의 바로 옆까지 달라붙은 칼리안이 달리던 그대로 입을 열었다.

"변경백. 버릇없는 모습은 여전하군."

마차 안에 있던 그레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일단 실리케를 만나기 전까지는 저 왕자를 살려둬야 한다고 그 생각만 되뇌고 있었다.

그리고 칼리안은 고개를 돌려가며 그레이의 일행을 둘러보다 물었다.

"그런데 변경백. 네 기사가 여섯 뿐이구나. 나머지 기사 넷은 어떻게 했나."

그레이가 칼자루를 꽉 말아쥐었다.

칼리안이 볼을 긁적였다.

"아. 이제 기사가 아니었지. 내가 직접 작위를 박탈해놓고 잊고 있었군."

레딩턴 호수에 사는 물고기들의 식사가 된 네 명의 멍청이들이 생각난 여섯 명의 기사들은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칼리안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네 개들이 사라진 것도 이렇게 궁금한데. 그대는 혹시 궁금해 해본 적 없나."

그렇게 말한 후 잠시 뜸을 들인 칼리안이 아주 느긋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대의 동생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어차피 레넌은 가문에 큰 도움이 된 것도 아니었으니 그레이도 그리 크게 궁금해하지 않던 일이었다. 그리고 브리센 후작이 말하지 않았던가? 돈을 노린 이들의 소행일 것이니 차차 찾으면 된다고.

그것이 레넌이든.

혹은 레넌의 시신이든.

"사실 누가 브리센 후작에게 돈을 아주 많이 줬거든. 레넌 좀 치워달라고. 그랬더니 레넌이 사라졌지."

"그랬습니까. 몰랐습니다."

그레이는 칼리안의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칼리안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궁금한 것이 생기더군."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칼리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후작은 후작 작위 탐내는 첫째 아들도 돈 받고 치워주려나, 하고."

그레이의 마차 속에서 살기가 확 피어올랐다.

살기의 방향을 확인한 칼리안의 눈이 긴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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