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살고 있습니다 (6)
슬레이만은 대륙의 두 번째 소드마스터였다.
그것은 곧 살아있는 이들 중 검의 길에 오른지 두 번째로 오래 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소드마스터로 지내온 기간이 강함과 완전히 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깨달음 이후 보낸 시간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간단히 말한다면 슬레이만은 강자였다.
슬레이만의 검은 그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묵직하되 둔하지 않았다.
- 쉬이익!
슬레이만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났다. 검 끝을 따라 일렁이는 오러의 푸른 빛이 잔상을 남기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칼리안의 검은 매섭도록 빨랐다. 하지만 결코 요란하지 않았다.
슬레이만이 찢어낸 공기를 칼리안의 검이 다시 베어냈다. 성난 천둥 같은 소리를 내는 슬레이만의 검 사이를 소나기처럼 누빈다.
- 촤악!
슬레이만의 검이 칼리안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재빨리 몸을 돌려 피한 칼리안이 순간적으로 노출된 슬레이만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뻗었다. 슬레이만이 칼리안의 검을 휘감듯 쳐내자 칼리안은 곧바로 슬레이만의 심장을 노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살수를 퍼붓는다.
둘 모두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칼리안이 부탁한 것은 얌전한 대련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레이 브리센. 그리고 에반 브리센.
그들과 칼리안이 검을 맞댈 일은 반드시 생길 터였다. 그러니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칼리안 스스로가 가진 힘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다.
- 카아앙! 캉! 카앙!
따라서 슬레이만은 지금 칼리안이 한계를 꺼내도록 돕는 중이었다.
푸른 빛의 오러가 칼리안의 어깨를 노리고 달려들었으나 칼리안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날카롭게 벼려진 마력의 검이 슬레이만의 뒤에서 날아왔다. 어느새 슬레이만의 뒤로 돌아간 칼리안의 검이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빠르다!
칼리안은 슬레이만조차 간혹 움직임을 놓칠 만큼 빨랐다. 근력이 부족한 만큼 검에 실린 힘도 부족했으나 대신 검을 움직이는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슬레이만이 검을 회수하며 마력으로 만들어진 검을 올려쳤다.
- 카앙!
베어내고 막고 내리치고 흘려보내는 공방이 쉼 없이 이어졌다. 날붙이와 날붙이보다 날카로운 마력의 덩어리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수련실을 가득 메웠다.
슬레이만의 검을 한번 더 흘려보낸 칼리안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캉! 카강! 카아앙!
순식간에 이어지는 네 번의 베기가 슬레이만의 급소를 노렸다. 슬레이만의 검에 힘이 들어가며 칼리안의 검을 모두 쳐냈다.
상당히 예리한 공격이었으나 슬레이만이 그리 어렵지 않게 방어한 탓에, 칼리안의 입이 긴 호선을 그렸다. 한층 강해진 살기가 슬레이만을 향하자 슬레이만에게서도 같은 기운이 뻗어나와 칼리안의 손발을 옥죄려 했다.
- 타앗!
칼리안의 발이 마치 허공을 밟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 이후에는 어김없이 칼리안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에 슬레이만이 재빨리 검을 뻗어 칼리안의 움직임을 막으려 했다. 그러자 칼리안은 검의 날을 부드럽게 쓸어올리는 듯한 동작으로 그것을 흘려보냈다.
슬레이만은 방향이 틀어진 검을 힘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혼자서만 관성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검을 뻗거나 회수하는 것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슬레이만이 회수한 검을 그대로 칼리안의 상체를 향해 휘둘렀다. 칼리안이 다시 한번 검을 빗겨대며 공격을 흘려냈다.
슬레이만이 씩 웃었다.
"이렇게 늘어져서야 지니신 힘의 한계를 어찌 알겠습니까."
곧 슬레이만이 손에 든 검에 힘을 집중했다.
- 우웅!
슬레이만의 검이 한번 떨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푸른 빛이 한층 짙어졌다. 검에 담긴 오러의 양이 늘어난 것이다.
그것을 느낀 칼리안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 쿠웅!
슬레이만이 수련실 바닥을 거세게 박차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칼리안의 몸을 두동강 낼 기세로 내리찍었다. 칼리안이 재빨리 검을 횡으로 들어올려 공격을 막았다. 온 몸에 흐르는 피를 전부 얼려버릴 것 같은 한기가 슬레이만의 검을 타고 안개처럼 흘러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칼리안의 검이 마치 불이 깜빡이듯 점멸하다 사라졌다.
"······!"
자신의 것보다 몇 배는 묵직한 슬레이만의 오러를 제대로 견디지 못한 것이다.
내리치려는 슬레이만의 검과 그것을 막으려는 칼리안의 검이 서로 맞닿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칼리안의 검이 사라지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지지대를 잃은 슬레이만의 검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자 슬레이만이 깜짝 놀란 소리를 내며 검을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칼리안이 움직임이 한 발 빨랐다.
칼리안은 검을 이루던 마력이 흩어짐을 느끼자마자 곧바로 몸을 틀었다. 그리하여 슬레이만의 검 끝은 칼리안의 얼굴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에 그쳤다.
칼리안의 뺨에 길고 가는 혈선이 하나 생겼다.
하지만 칼리안은 상처에 신경쓰거나 검이 사라지는 커다란 문제를 알게 되었음에 대해 당장 고민하는 대신 곧바로 다시 만들어낸 검을 움켜쥐었다.
- 쉬이익!
슬레이만의 검격 범위에서 벗어난 칼리안의 모습이 사라졌다. 슬레이만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틀어 뒤로 돌며 검을 뻗었다.
수가 읽히자 칼리안은 뻗어나온 슬레이만의 검을 툭 치듯 밟고 다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허공에 잠시 떠오른 몸이 떨어지는 힘까지 더해 마력의 검을 내리꽂았다. 정확히 슬레이만의 정수리를 향해서였다.
슬레이만은 빠르게 검을 틀어 그것을 막은 뒤 곧바로 뻗어냈다. 날붙이가 사납게 뒤엉키는 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 카앙!
검과 검이 맞붙은 채 슬레이만과 칼리안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칼리안이 씩 웃었다.
조금 전 슬레이만의 검이 낸 것과 비슷한 칼날이 떨리는 소리가 칼리안의 검에서도 흘러나왔다.
- 우웅!
유리 조각 같던 마력의 응집체가 파란 빛을 머금었다. 오러로 만들어진 마력의 검에 다시 한번 오러를 입힌 것이다.
칼리안의 투기는 그 어느때보다 강렬했다.
아껴둔 패는 나도 있다고.
칼리안의 검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부우웅!
슬레이만은 기다리지 않고 다시 한번 검을 내질렀다. 칼리안의 발이 더 빠르게 움직이더니 푸른 빛이 넘실거리는 마력의 검이 슬레이만의 어깨를 향해 떨어져내렸다. 슬레이만이 검을 틀어 그것을 가볍게 튕겨냈다. 공격이 막힌 칼리안이 검을 돌려잡고 올려치자 슬레이만이 빗겨냈다.
- 타앗!
칼리안이 슬레이만의 시야에서 또 사라졌다.
그 잔상을 좇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안 슬레이만은 감각을 열었다. 그리고 칼리안의 걸음이 향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곳을 향해 검을 뻗어냈다. 하지만 슬레이만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이미 한 번 수를 읽혔는데 같은 공격을 다시 가할 칼리안이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 뒤에야 속았음을 깨달은 슬레이만이 재빨리 몸을 돌렸다. 어느새 반대편에 선 채로 슬레이만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칼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슬레이만이 깜짝 놀라 공격을 막았다.
- 카아앙!
칼리안의 검이 슬레이만의 목 바로 옆에서 간신히 멈췄다.
슬레이만의 목에 긴 상처가 생겨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우웅!
슬레이만의 검이 다시 한번 울음소리를 냈다.
검에 스민 오러가 깊은 바다와 같은 색으로 변했다.
더 위협적인 소리와 기운을 고스란히 느낀 칼리안의 눈이 치켜 떠졌다. 믿기지 않게도 슬레이만이 가진 오러의 기운이 한번 더 짙어진 것이다.
그와 함께 슬레이만이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칼리안을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위험하다.
흘려낼 수 있는 검이 아니다.
칼리안이 곤두세우고 있던 모든 감각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칼리안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남겨둔 오러를 전부 끌어모아 검으로 옮겼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가오는 슬레이만의 검을 있는 힘껏 올려쳤다.
- 콰앙!
지금까지 들렸던 그 어떤 소리보다 큰 굉음이 터져나왔다.
- 쩌저적!
슬레이만의 묵직한 검에 금이 갔다.
동시에 칼리안의 검이 빛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한계에 달한 것이다.
* * *
슬레이만의 검에 긴 금이 생겨 있었다.
그것을 쳐다보고 있는 슬레이만의 마음에도 긴 생채기가 났다.
검 때문은 아니었다. 애검이 망가진 것도 물론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일로 상심할 만큼 슬레이만의 마음 씀씀이가 좁지는 않았다.
딸 자식 키워봐야 소용 없다는 이상한 말은 어디선가 한 번 들어봤다.
그래.
조금 더 양보해서 아들 자식 키워봐야 소용 없다는 말도 언젠가 한 번쯤 들어 봤다 치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애비 목에서는 아직도 피가 철철 나는데!
"흉이라도 지면 어쩌시려고 얼굴에 상처를 내셨어요! 다른데는 괜찮으세요? 어디 부러지거나 한 곳은 없으세요?"
수련실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뛰쳐 들어와서는 곧바로 칼리안에게 달려간 얀이, 만지면 부스러질까 건드리면 깨질까 애지중지하며 칼리안을 걱정하는 꼴을 본 것이다. 스스로가 마음이 꽤 넓은 남자라고 생각해왔던 슬레이만은 알아서 낫고 있는 칼리안의 실금같은 상처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얀을 향해 툴툴거리는 소리를 냈다.
"저 내새끼가 어째 영 내새끼가 아닌 것 같다."
그런 슬레이만의 옆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났다. 히나였다.
히나의 손이 빛나고 있었다. 슬레이만의 목에 난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수련실에서 울려퍼진 굉음에 깜짝 놀라 달려온 것은 둘 뿐만이 아니었다. 내성에서 키리에와 함께 있던 기사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덕분에 슬레이만은 억울한 것이 하나 더 늘었다.
방금 전의 대결은 분명히 슬레이만이 이겼다.
지닌 오러를 다 쓴 것도 아니었으니 꽤 여유롭게 이겼다.
그런데 칼리안의 부서진 검은 형체가 안남았다.
슬레이만의 검에는 쩍 하니 금이 갔다.
칼리안의 얼굴에 난 상처는 애초에 크지도 않았거니와 축복의 힘 덕분에 조금씩 아물고 있었다. 슬레이만의 목에는 반 뼘 길이의 자상이 있었다.
"공작님······ 설마 지셨······?"
그러니 유란이 매우 주저하며 이렇게 물어 올 수 밖에.
슬레이만은 말을 잃었고 칼리안은 또 한 번 웃음보가 터졌다.
* * *
아침에는 공동에서 빛이 나고 오후에는 슬레이만의 수련실에서 폭음이 났다. 그저 칼리안이 왔을 뿐인데 항상 조용하던 코끼리들의 땅이 들썩들썩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는 성대한 석찬이 진행됐다.
칼리안과 슬레이만은 물론이고 칼리안의 일행들부터 앨런의 가족인 레이첼과 베로니카, 그리고 칼리안을 호위했던 스무 명의 기사들까지 모두 함께 모여 떠들썩하게 즐기는 자리였다.
그리하여 칼리안은 그렇게 기대하던 슬레이만의 바이올린을 드디어 들을 수 있었다. 검을 다루는 손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한 연주였다. 때문에 칼리안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잠시 뒤, 바이올린을 손에서 내려놓은 슬레이만이 칼리안의 옆으로 와 앉았다.
"잘 들었습니다. 검을 잘 다루는 것은 알았지만 바이올린이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지그프리드 아닙니까. 검을 못 다뤄도 바이올린은 꼭 다룹니다."
이렇게 말한 슬레이만이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히나에게 치료를 받은 슬레이만의 상처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상당히 아물어 있었다. 칼리안이 목의 상처를 살피는 것을 본 슬레이만이 걱정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이 정도는 간지럽지도 않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칼리안이 웃으며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다.
덕분에 한계치 이상의 힘을 마주하면 검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게다가 어느 정도의 힘에 마력의 검이 사라지는지도 알았으니 그보다 큰 수확이 또 없었다. 만약 실제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조금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검이 사라지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오러와 마법을 부리는 것을 수련할 차례였다.
"도움이 되었다니 그 역시 다행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슬레이만은 얼굴이 아주 조금 붉어져 있었다. 오러를 다루니 취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취기를 굳이 몰아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칼리안이 슬레이만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슬레이만도 칼리안에게 와인을 마실지 물었으나 칼리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사들이 적당히 술에 취하니 주변이 꽤나 시끌시끌해졌다. 헤일 라트란이 술에 취한 척 시끄럽게 굴 때에는 그렇게 듣기가 싫더니 지금은 퍽 신이 났다.
그렇게 얌전히 앉아 주변을 좀 구경하고 있는데 슬레이만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빠른 검술은 그리 특이할 것이 없으니 괜찮습니다만."
칼리안이 고개를 돌려 슬레이만을 쳐다봤다.
슬레이만이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검을 횡으로 벨 때나 연타 이후 허리에 먼저 힘을 싣는 것은 세크리티아 기사들의 특징입니다, 왕자님."
그 이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슬레이만은 칼리안의 검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아들놈 덕에 왕자님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습니다. 검술 수업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도 당연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세크리티아의 검술을 지닌 채로, 불과 몇 개월 만에 검의 길에 오른데다 그 사이 쌓여있는 오러가 생각 외로 많습니다. 검의 길에 오른 직후 오러를 다루는 방법을 익히기에도 부족한 시간일텐데, 오러를 다루고 쌓는 법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조금 이상한 일이기는 합니다."
칼리안은 표정의 변화 없이 슬레이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슬레이만이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쳐 보이며 다시 말했다.
"아무튼. 카이리스에서는 다리에 중심을 둡니다. 검술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허리를 쓰든 다리를 쓰든 그저 개인의 습관이라 할 수 있겠으나 눈에 띄는 다른 점들과 함께 엮어 생각하면 의심의 싹을 키우게 될 겁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브리센 변경백이라면 알아볼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칼리안이 세크리티아 기사들의 검을 쓰는 것만으로는 이상할 것이 없겠지만 칼리안이 급격히 변화한 모습을 보인 것 같은 다른 상황들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칼리안의 정체를 의심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칼리안은 그에 대해 대답하는 대신 슬레이만을 쳐다봤다. 그 눈빛의 뜻을 읽은 슬레이만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지그프리드입니다. 대장 코끼리가 3왕자 껍데기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채봐야 어디 쓸 데도 없습니다. 나중에 한번 더 겨뤄주기나 하십시오."
그 말에 칼리안이 짧게 답했다.
"고맙습니다."
슬레이만이 칼리안의 잔에 와인을 따랐다.
마시지 않겠다 했던 칼리안에게 술을 강권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주변의 눈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었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좀 궁금한데, 혹시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칼리안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쩌다보니 그리 되어 그냥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 대답에 허허 웃은 슬레이만이 얀을 쳐다보다가 다시 칼리안을 봤다.
"혹시 저 놈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제가 더 묻고 싶은 문제네요. 눈치를 채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알고는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웃던 슬레이만이 자신의 아들이 어떤 인물인지를 잠시 떠올렸다. 그리고 웃음을 지우며 조용히 덧붙였다.
"······ 설마 정말로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에이, 설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