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나쁜 뜻은 없으니 (6)
술집을 벗어나 조금 더 걸어가니 한적한 곳이 나왔다. 달이 밝았으나 날이 흐렸다. 게다가 마법 등불도 꺼진 늦은 시간이었다. 때문에 어두웠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칼리안의 걸음이 멈추었다. 조용히 뒤를 따르던 이들도 멈춰 섰다.
칼리안이 뒤로 돌아서서 한동안 둘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지금껏 모습을 감춰주던 로브 끈을 풀었다. 검은 머리가 흘러내리듯 밖으로 드러났다.
- 펄럭!
칼리안의 로브가 히나라는 소녀의 어깨에 둘러졌다.
아무 말 없이 담담한 손길로 로브 끈을 매어 준 칼리안이 이번에는 키리에를 쳐다봤다. 키리에라고 썩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낡은 셔츠 차림이었으니.
칼리안이 쯧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재킷을 벗어 키리에에게 건넸다.
그 뒤에는 히나의 긴 은발 사이로 드러난 귀를 보며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자른 거야, 잘린 거야."
히나의 귀 끝에는 날카로운 것에 잘린 듯한 흉터가 있었다. 뾰족하게 드러난 것을 감추려는 것처럼.
키리에에게는 없던 것이었다.
둘은 남매였음에도 생김이 달랐다. 키리에가 술에 취해 주절거렸던 말이 떠올랐다. 기억은 없지만 키리에는 아버지를, 누이는 어머니를 닮았다 들었다고.
둘은 하프엘프였다.
칼리안의 말에 히나가 어깨를 흠칫했고 키리에가 히나와 칼리안의 사이를 막아서듯 다가와 섰다. 보호하려는 것이다.
경계심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와주신 것은 감사합니다만."
칼리안이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귓가에 아른거리는 그 날의 키리에가, 꺼져가던 목소리가 다시 떠올라서였다.
- 보은을······ 고작 이것 뿐이지만······.
반갑고, 안타까웠고, 고맙고, 미안했다. 그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더 많은 것들이 눈물이 되어 뚝 떨어졌다.
"후우······."
긴 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킨 칼리안이 눈을 슥슥 닦아낸 뒤 고개를 들었다.
"남매, 하프엘프. 아까 거기 있던 사람한테 들었어."
정확히 들은 것은 아니지만, 알고는 있는 것 같았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적당히 둘러댄 칼리안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경계하지 마. 나쁜 뜻은 없으니."
그 말과 함께 거짓말처럼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에 구름이 흘러가고 달빛이 비췄다. 붉은 눈이 드러났다.
그제야 칼리안을 제대로 본 키리에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옆에 선 히나는 영문도 모른 채 키리에를 따라했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알아뵙지 못하고 감히 의심을 했습니다."
그 말에 히나가 깜짝 놀라 이미 숙인 허리를 더 깊이 숙였다.
"저는 키리에, 제 누이는 히나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은 고아입니다. 그래서 성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키리에는 칼리안에게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될 사람이었다. 칼리안은 그래, 하고 작게 말하며 둘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주었다.
"그래서. 귀는 자른 거야, 아니면 잘린 거야? 잘린 거라면 그 정도는 내가 갚아줄테니까."
지금 칼리안에게 중요한 건 첫인사가 아니었다.
히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제 손으로 귀를 만지작거렸다. 직접 잘랐다는 뜻이리라.
평범한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카이리시스에서는 찾기 어렵지만 지방 도시에서는 여전히 엘프 노예 밀매가 이루어지고 있을 시기였으니까.
"말은 원래 못했어? 아니면 그것도 갚아줄게."
히나가 풋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었다. 왕자님이라기에 하늘처럼 높은 사람으로만 생각했는데 마음을 써주는 것이 느껴졌다.
"날 때부터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왕자님."
"다른 건. 갚아줄 것 없어?"
히나의 옷을 떠올린 칼리안의 질문이었다. 다행히 히나의 고개는 이번에도 좌우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키리에를 가리켜 보였다. 키리에 덕에 아직 별 탈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래."
- 제 누이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가진 것 없는 하프엘프 소녀. 그것도 예쁘게 생긴.
자살의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았었다. 자책하는 키리에의 표정에서 전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나가 자살한 뒤 키리에는 도박장의 사람들을 전부 죽였다. 그 길로 도망쳐 나와 세크리티아로 왔었다.
"다행이다."
그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어제 아스트리샤에서 너를 봤어."
키리에가 놀란 얼굴을 했다. 사람들은 칼리안을 기억할지 몰라도 칼리안이 사람들을 기억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기사들을 보고 있던데."
키리에가 다시 한번 놀랐다. 칼리안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네, 맞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마스터라는 사람이 키리에를 만나고 싶다 하여 잠시 밖에 나오게 된 차였다. 아주 잠깐 동안만 서 있다 다시 돌아갔었는데, 그 사이에 칼리안이 키리에를 알아봤던 것이다.
"혹시 기사가 되고 싶은 건가?"
칼리안은 언젠가의 키리에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었다.
- 키리에. 기사가 되고 싶은가?
검을 배울 수 없는 현실에 날개가 꺾이고 하나 남은 혈육까지 잃은 채 카이리스를 떠나왔던 키리에는 베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었다.
- 검입니다. 저는 검이 될 것입니다.
낯부끄러운 말을 당당하게도 꺼내놓던 눈이 생각났다.
그 눈을 똑같이 가진 열 일곱의 키리에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닙니다, 왕자님. 저는 기사가 아니라 검이 되고 싶습니다."
여전한 대답이었다.
칼리안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너희. 내 이름은 알아?"
"네. 3왕자이신 칼리안 왕자님. 알고 있습니다."
칼리안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전에 되받은 금화 다섯 개를 히나에게 건넸다. 큰 돈을 엉겁결에 받은 히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칼리안이 히나에게 물었다.
"청소 할 줄 알아?"
끄덕끄덕, 히나가 말을 대신해 고갯짓으로 대답했다.
"좋아. 이제 닷새 동안 좋은 데서 자고, 제대로 된 옷도 사 입고, 잘 먹고, 신나게 놀면서 지내. 키리에는 치료도 좀 받도록 해. 혹시 돈이 모자라면 마법사 협회의 앨런 마나실이라는 사람 앞으로 달아 놔. 알아서 셈을 치를 테니."
히나가 다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도박장에서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이 왕자였고 그 왕자가 돈까지 주는 상황을 맞이한 키리에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칼리안은 이들에게 돈이나 쥐여주러 온 것은 아니었다.
칼리안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닷새 뒤에 왕궁으로 와. 와서, 나를 찾아. 다른 왕자랑 헷갈리지 마. 왕자들 중에 술 처먹는 나쁜 놈이 있어서 잘못하면 큰일 나."
술 처먹는 나쁜 놈의 악명이 왕궁 밖에까지 났는지 히나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다가 놀란 얼굴로 칼리안을 쳐다봤다. 왕궁으로 찾아오라는 말을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일단은 왕궁에서 지내. 편하게 있도록 배려해주기는 어려워. 일은 해야 해. 그래도 여기보다는 나을 거야. 아무튼 왕궁으로 오면 좀 강아지처럼 귀엽게 생긴 얀이라는 애가 있을 거야. 걔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있어. 나는······ 그땐 조금 바빠서 곧바로 너희들을 만나지 못할 지 모르니까."
말 못하는 히나가 키리에도 없이 혼자서 살 수 있도록 당장의 도움을 주기가 어려웠다. 앨런의 집으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키리에가 불안해 할 것 같았다. 어쨌든 앨런도 겉보기로는 매우 팔팔한 남자 사람이 아닌가? 그러느니 차라리 시녀로 두는 것이 나았다. 왕궁 생활을 싫어하면 그 때 가서 내보내도 늦지 않을 테니까.
"다 이해 했어?"
끄덕끄덕.
"좋아. 내가 몇째 왕자라고?"
손가락 세 개가 펼쳐졌다.
"혹시 왕궁에서 일하는 게 싫다거나?"
도리도리.
"며칠 뒤에 오라고?"
손가락 다섯 개가 활짝.
"그래, 좋아."
끄덕끄덕.
목이 아프지는 않을까 싶을 만큼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에, 칼리안이 저도 모르게 히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을 뻔 했다. 키는 칼리안보다 더 작았지만 그래도 히나의 나이가 두 살 더 많은 것을 기억해내서 다행이었다.
히나에게 할 말을 마친 칼리안이 몸을 돌렸다.
레이븐의 안장에 있던, 키리에를 위해 마련한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키리에에게 건넸다.
"받아."
키리에가 얼결에 검을 받아들었다. 휘두르기 딱 좋을 정도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 모습을 본 칼리안이 흡족하게 웃었다.
그렇지. 검을 들어야 키리에지.
"당장 기사가 되지는 못해. 내 방패 노릇 먼저 해야 해. 그렇게 해서라도 검을 배우고 싶다면 나를 찾아와."
키리에가 손에 들린 검을, 그리고 칼리안을 쳐다봤다.
"내가 널, 최고의 검으로 만들어 줄 테니."
왕자를 따르는 검.
지금의 키리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자리였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왜······ 저희에게 이렇게 큰 것을 주십니까."
"좋은 검이 필요해서."
칼리안은 그저 짧게 답했다.
키리에가 마음을 먹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무엇을 고민하겠는가.
키리에가 칼리안의 앞에 엎드렸다. 간절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겠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왕자님의 검이 되겠습니다."
"그래. 그 검을 구하러 내가 이렇게 왔지."
칼리안이 웃으며 키리에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보은이니.
* * *
칼리안은 다행히 해가 뜨기 전에 테이난샤 거리에 들어설 수 있었으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레이븐의 등에 드러눕다시피 한 상태로 이 곳까지 온 것이다.
일찍 일어났는지 아직 잠들지 않았는지, 마법사 로브를 걸친 몇몇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커먼 말 위에 사람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본 이들이 움찔 놀라며 황급히 물러났다.
그럴 때마다 레이븐의 발굽 소리가 커졌다.
행차를 하며 시선이 집중되던 일을 생각하는 것 같았기에 그 등에 여전히 엎드린 칼리안이 힘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븐. 우리 지금 그런 멋진 상태 아니야. 부끄러우니까 좋아하지 마."
모든 일을 마치니 긴장이 풀렸고 몸이 또 아팠다.
심장의 문제로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 다 고갈되다시피 한 마력을 박박 긁어다 강제로 오러를 발현했으니 아무리 약을 먹었다지만 한계가 온 것이다. 덕분에 레이븐의 등을 침대로 써야 했다.
그래도 레이븐이 영특해서 천만다행이었다. 왕도까지 알아서 찾아온 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제 때 돌아오지도 못할 뻔했다.
오래지 않아 앨런이 얘기해주었던 마법사 협회에 도착했다. 건물 안으로 비척비척 들어가니, 마법사들이 매우 반갑게 칼리안을 맞이해주었다. 에우리아라는 이름의 마법사 협회장이 직접 나오더니 칼리안을 어떤 방으로 안내했다.
그 곳은 작은 서재 겸 응접실이었는데, 사방의 벽에 세워진 책장에 온갖 마법 서적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장식용 나이프가 눈에 확 띄었다. 하필 칼리안이 지닌 것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나이프였던 탓이다.
"스승님."
앨런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잠을 자지 않고 칼리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앨런이 너무 반가워서, 칼리안은 순간 눈물이 핑 돌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앨런이 칼리안의 초췌한 꼴을 보며 입을 딱 벌렸다.
"싸웠습니까? 옷은 다 어디다 팔아먹고?"
칼리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싸움 안했습니다. 옷은, 그냥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도박장에서도 겁을 좀 주고 허세를 부린 것이지 싸운 것은 아니었으니 이것도 거짓말은 아니다.
도박장의 불쾌한 냄새가 몸에 뱄는지 살짝 코 끝을 찌푸리던 앨런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청량한 공기가 칼리안의 주변을 감싸 안는 듯 하더니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클린 마법임을 깨달은 칼리안이 좋아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 칼리안이 앨런의 맞은편에 풀썩 앉았다. 앨런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접으며 물었다.
"볼 일은 모두 끝나신 겁니까?"
"네, 일단은요. 한 달 뒤에 다시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앨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뒤에도 데려와 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곧 앨런이 들고 있던 책을 그대로 허공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책이 마치 새가 된 것처럼 팔랑 팔랑 움직여 책장에 꽂혔다. 칼리안이 그 모습을 홀린듯이 쳐다보자 앨런이 설명을 해주었다.
"이 건물 전체에 걸려 있는 마법인데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곳에 가져다 두도록 해 줍니다. 마법사들은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신기하네요."
"건물에 마법을 거는 것이 더 귀찮았을 테지만 원래 그런 것이 마법사 다운 것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시지요."
칼리안이 웃었다. 그러다, 유독 눈에 띄었던 물건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마법사 답지 않은 물건도 있네요. 나이프라니."
그 말에 앨런이 칼리안의 시선에 닿은 것을 한참 응시했다. 그의 입에서 묘한 음색이 흘러 나왔다.
"네. 나이프가, 있군요. 있어서는 안 될 것인데."
앨런이 쓴웃음을 지었다. 칼리안은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이 되어 앨런을 마주 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놓여 있었으나 그것은 협회장 에우리아가 목숨보다 아끼는 보물이었다. 시스파니안이 직접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품에 숨긴 무기를 장식품의 형태로 보여주는, 일종의 경고를 위한 마법 물품이기도 했다.
그러니 책상 위에 장식용 나이프가 있다는 것은 칼리안이 지금 나이프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앨런의 눈빛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이런 저런 것이 바뀌게 마련인데 호기심이라는 것은 좀처럼 사라지질 않습니다."
칼리안의 얼굴에 다시 한번 의문이 들었다. 앨런은 그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마나를 운용하며 다른 말을 꺼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 방의 물건은 제 의지대로 움직입니다. 의지를 전달하는 방법만 알면 되는 일이니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어려울 것이 없지요."
이런 말을 꺼낸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아무래도 좀 주무시는 것이 어떻겠느냐 말하려던 칼리안의 입이 다물어졌다.
"사람의 속마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마음대로 움직이고 들춰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터인데."
책장에 놓여 있던 장식용 나이프가 조용히 떠오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만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스승님."
나이프가 칼리안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장식용이라 하기엔 다소 날카로운 칼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본 칼리안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 제가 그것을 이렇게라도 열어볼까 하여."
장난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앨런은 멈추지 않았다.
- 쌔애액!
나이프가 칼리안의 목을 향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날아들었다. 위험을 느낀 칼리안의 손이 본능을 따라 움직였다.
- 카앙!
날과 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찢어질 듯이 울렸다.
그리고 완전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앨런은.
어느새 뽑혀 나와 칼리안의 손에 들려있는 나이프와, 그것에 튕겨 벽으로 날아가 꽂힌 또 하나의 나이프. 그리고 검의 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칼리안의 눈을 쳐다봤다.
칼리안은 아무 말 없이 앨런을 바라보고 있었고 앨런은 그런 칼리안의 눈빛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을 뚫고 앨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명. 해주시지요."
칼리안이 잠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