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의 왕자로 사는 법-0화 (1/527)

제0장. 프롤로그

정신차리자, 멈추지 말자.

화살의 비가 다시 쏟아진다.

칼을 휘둘러 몇몇은 막았고 몇몇은 맞았다. 앞으로 달려나가 칼을 내질렀다. 두 명을 꿰뚫은 칼을 돌려잡아 또 하나를 벤다.

쓰러지면 안 된다.

오늘이 세크리티아의 마지막이어선, 안 된다.

누군가 앞으로 달려왔다. 습관처럼 칼을 휘두른다.

놈이 실드로 막았다. 그리고 묻는다.

"기억하마. 이름이 무엇이냐?"

"잊었다."

나는 그저 오롯이 왕을 섬기는 칼이다.

하나 남은 팔을 다시 움직였다.

놈의 손짓에 나의 칼이 부서진다.

"아······ 그래, 네가 체이스의 아우로구나. 만나보고 싶었다."

대답 대신 손잡이만 남은 칼을 휘둘렀다. 놈은 피하지 않았다.

놈이 얼음의 창을 보냈다.

나는, 막지 못했다.

- 콰직!

생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숨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어진다.

"나는 카이리스 마법사단 발칸의 군단장. 아르센 헤르츠다. 세크리티아의 왕제, 베른. 기억하겠다. 그대는 충분히 싸웠다."

눈을 들어 먼 곳을 좇았다.

나의 형님, 전하께서 계신 곳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흐려진 눈은 그 무엇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쉬어라."

빛이,

사그라든다.

* * *

그것이 내가 가진 마지막 기억이었다.

다시 눈을 뜬 것은 그 날로부터 10년 전.

하필이면 내 조국 세크리티아를 멸망시킨 카이리스에서, 하필이면 3왕자인 칼리안의 몸을 가진 채였다.

칼리안.

용의 후손이라는 핏줄이 아까웠던 나약한 왕자.

놈은 겁이 많았고 배경 세력도 없었으며 스스로를 지킬 능력조차 없어 일생을 숨죽여 살다 15세가 되기도 전에 암살당했다.

그것이 나에게 닥쳐 올 미래였다.

그러니 이제 어찌 할 셈이냐고, 거울 속의 칼리안이 묻는다.

나는 답했다.

"당연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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