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거대한 우산 (99/104)

제4장 거대한 우산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리가 위탁한 AP 디자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달라진 게 아니라 신성이 개선한 겁니다. 요청한 스펙은 모두 만족시켰지 않습니까?”

“데이터를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우리의 설계는 분명 스마트 클라우드의 AP 대비 성능이 5%는 더 나올 수 있는 것인데, 모든 스펙이 하한선에 걸쳐 있지 않습니까? 이 성능이라면 스마트 클라우드의 AP보다 성능이 10%는 떨어집니다. 최소한 동등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애플의 설계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보시지요. 저희가 이 정도 제품을 가져온다고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는지 아십니까?”

신성이 애플과 MS 진영에 AP 초도품을 납품하고 처음 맞는 회의에서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진 사장은 잡스의 항의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 제품도 그나마 스마트 클라우드 바짓가랑이를 잡고 자그마치 신성전자 지분 9%에 라인 하나를 통째로 넘겨주며 겨우 웨이퍼를 사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솔직히 ODM도 아니었다. 그냥 주는 대로 웨이퍼를 받아서 조립 공정만 진행했을 뿐이다. 웨이퍼상의 칩 수율이 평균 90%인 것을 보고 절망한 것은 덤이었다.

여하튼 속 쓰린 정도가 아니라 정말 죽을 것 같은 스트레스를 견디며 이뤄 낸 일이었다. 30억 불 계약을 하고 남는 장사가 되지 못했다. 겨우 클레임을 피하고 12인치 라인에 대해 실패한 경험치를 얻었다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잡스의 멱살을 잡고 그따위 AP 설계를 누가 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우리 AP 설계는 천재적인 CPU 설계자가 한 겁니다. 이런 저열한 AP를 원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우린 11월에 스마트 클라우드보다 월등한 하드웨어를 선보여야 합니다. 6개월이나 지난 마당에 하위 호환되는 기기를 내놓으려고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천재의 작품이라고요? 어이가 없군요. 그 설계는 양산할 수 없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신성이 못하면 아무도, 아니 만들 수 있는 회사는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진 사장은 이 또한 스마트 클라우드가 만든 거라고 말하기가 정말로 싫었다. 나중에 밝혀지는 한이 있어도 설계 가이드를 들이밀고 ODM을 시켰다고 우길 생각이었다. 잡스도 스마트 클라우드를 연상했는지 신음성만 흘리며 답하지 못했다.

“설계가 달라졌으니 가격 흥정은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스펙에 만족했고 불량도 없잖습니까? 고정가에서 더 이상의 조정은 절대 불가합니다.”

진 사장은 이처럼 CEO들이 잔뜩 몰린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미 제품은 메이드가 되었으니 디자인이 달라졌다는 걸 꼬투리 잡아 가격 협상을 하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 현재로선 방어에 성공적이었다. 여태 수긍하지 않는 사람은 잡스 한 명뿐이었다.

“잡스, 와중에 호환성이 매우 뛰어난 제품이긴 하지 않습니까. 윈도우폰에서도 무리 없이 돌아가니 일단 11월 쇼케이스는 이 제품으로 하는 수밖에요. 지금 와서 싱글코어 제품으로 신제품을 꾸밀 순 없잖습니까.”

“하아… 이것 참. 듀얼코어 설계를 먼저 끝내고도 결국 뒤처지는 AP로 아이폰을 꾸며야 한다니. 이런 비즈니스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빌 게이츠는 아이폰과 윈도우폰이 같은 AP로 연합했다는 데 만족하는 것 같았다.

“노키아와 소니 에릭슨 쪽 의견은 어떻습니까? 윈도우폰에 쓸 만한 제품이 맞지요?”

“예, 동의합니다. 노키아 자체 평가 결과 하드웨어적인 에러는 없어 보입니다.”

“소니 에릭슨도 그럭저럭 만족합니다. 듀얼코어는 듀얼코어니까요.”

빌 게이츠는 잡스에게 다른 CEO들의 의견이 이러니 얼른 발주 물량을 받아 내자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잡스도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년 하반기에는 TSMC 쪽에 발주를 내고 신성은 2차 벤더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을 뿐이다.

“뭐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하죠. 그런데 우리끼리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HTC가 빠졌는데.”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HTC는 현 품질에 만족하고 물량만 분배받기를 원한다고 알려 왔으니까.”

“그래요?”

잡스는 솔직히 의외였다. 가격을 깎고 싶은 마음은 HTC가 가장 클 텐데 말이다. 같은 윈도우폰을 만들어도 저가 브랜드에 올인하고 있는 회사잖나.

“자, 그럼 물량 배분부터 하지요. 신성이 11월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물량은 2,000만 개라고 합니다.”

“애플은 최소 700만 개는 있어야 합니다.”

“MS도 애플과 같은 양이 필요한데….”

“노키아는 300만 개는 필요합니다.”

“소니 에릭슨은 300만 대를 초도 출시합니다.”

‘빌어먹을 놈들. 계약 물량보다 더 가져가겠다는 얘기잖아. 어이가 없군.’

방금 전까지 성능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니 초도 물량을 더 챙기는 행태에 진 사장은 속으로 욕을 해 댔다. 결국 스마트 클라우드와의 기술 격차는 저들도 인정하고 있는 꼴이었다. 하긴 신성도 칩을 까 보며 ‘여기 회로 패턴은 왜 이렇게 디자인했지?’ 하고 의아해 하다가도 실험을 해 보면 최적 디자인임을 깨닫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누시면 HTC 쪽에 줄 물량이 없습니다.”

“초도 물량은 이렇게 나누고, 추가 생산되는 물량에서 HTC가 받아 가는 걸로 했으면 합니다. 요구 스펙도 제일 낮으니 물량 확보가 그리 어렵지도 않을 거 아닙니까.”

“그게 좋겠군요.”

“동의합니다.”

“좋네요.”

진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HTC가 여기서 제일 작은 회사라고 해도 같은 연합인데 납품 일정을 뒤로 미루다니. 그래도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클레임은 피했음을 이 전무에게 알리고 금전적 피해를 DRAM에서 복구해 LSI 쪽을 박살 내는 데 올인해야 했다.

“그럼 신성은 그렇게 알고 돌아가겠습니다.”

“다들 11월 쇼케이스에서 봅시다.”

“윈도우폰과 아이폰의 성공을 위하여.”

짝짝짝.

빌 게이츠는 회의 말미에 와인잔을 들고 축배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

“올해 쇼케이스 준비는 순조롭지요?”

“예, 염려 마십시오. 애플이 빠지다 보니 자질구레한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권 부사장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답했다. 애플은 사업부를 분리하고 연말까지 모든 자료를 미국으로 옮겨 갈 예정이다. 보안 문서는 스마트 클라우드와 애플 관계자가 입회한 가운데 모두 폐기 처분했으니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애플과의 비즈니스가 일단락되니 시원섭섭하다. 에그박스는 아직도 생산을 해 주고 있지만, 아이팟과 아이폰의 생산은 중국 회사에 넘긴다니 더 이상 보안을 챙길 것도 없다. 로열티만 받으면 그뿐이다.

“노트 K2 준비는 어찌 되고 있나요?”

“11월까지 천만 대를 미리 생산해 놓을 계획입니다. 10월 현재 재고는 300만 대이며, 신뢰성 가속 시험은 2만 시간을 통과했습니다.”

2만 시간이면 하루에 24시간 사용한다고 해도 2년이 넘게 동작한다는 의미다. 평균 스마트폰 사용 기간이 38개월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안전한 수치다.

“프로모션을 강화해서 소비자의 교체 주기를 2년으로 당기도록 해 보세요. 개발자들 부담도 많이 줄 겁니다. 특히 플래시메모리 사용 한도가 3년이 안 된다고 하니까.”

“그것도 썼다 지웠다를 24시간 반복했을 때 그렇다고 합니다. 프로모션을 하겠지만 품질 문제는 없을 겁니다. 염려 마십시오.”

“양산 품질은 언제나 마진을 가져가야 합니다. 방심하지 마시고 보상 판매를 교체 주기보다 짧게 당기세요.”

“알겠습니다. 트윈 하트는 워낙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굳이 보상 판매까지는 필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내년에 New K2를 내놓으면 그때 스마트폰끼리 보상 판매를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으음, 그런데 트윈 하트라니요? 애칭인가요?”

트윈 하트면 심장이 두 개 있다는 뜻이잖나. 듀얼코어 제품의 애칭으로 괜찮아 보인다. 솔직히 뇌가 두 개 있는 건데 트윈 브레인은 좀 아니다 싶다.

“노트 K는 바탕화면 때문에 트윈 픽스라고 불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연스레 고객들 사이에서 트윈 하트라는 애칭이 생겼습니다. 듀얼코어 때문인가 봅니다.”

“하하, New K폰만 애칭이 없군요. 역시 우린 노트 쪽이 메인인가요?”

“예. 화면 크기에서 압도하는 데다 기능도 더 많고요. New K폰은 스마트폰이라고 통칭해서 불립니다. 따로 고객들이 애칭을 붙여 주진 않더군요. 하하.”

“섭섭하다고 해야 하나. 듀얼코어는 스마트폰에 먼저 적용했는데 말입니다.”

“11월 쇼케이스에서 발표하는 게 그 회사의 메인타이틀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케이, 좋아요. 2+1 개념의 듀얼코어를 오픈하고 그게 얼마나 대단한 개념인지 알려 줍시다. 특허는 출원했으니 말이죠.”

“옙. 워즈니악이 무대에 오르길 고대하고 있더군요.”

“워즈니악도 은근 쇼맨십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워즈니악이 무대에 등장할 때가 되었다.

똑똑.

“수한 씨?”

“으잉? 케이.”

기분 좋게 웃고 있는데 사무실 문으로 케이가 빼꼼히 얼굴을 들이민다. 요즘 케이는 버지니아 트레이딩만 챙기고 내 일보다 집안일에 더 관심이 많다. 집 꾸미고, 이곳저곳에 별장을 꾸미는 데 시간을 더 쓰고 싶어 했다. 요리는 영….

원래대로라면 올해 파라곤의 상임 이사가 되었어야 하는데, 장모님이 상임 이사로 복귀하는 바람에 가능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버지니아 트레이딩의 대주주인 나로서는 솔직히 케이가 버지니아 그룹만 살피는 것이 나아 보인다. 여하튼 어디선가 별장을 하나 또 구했다고 새 베란다에서 커피 마시는 설정 샷을 보내는 게 평소 행동인데… 어째서 여기 왔지?

“호호, 깜짝 놀라네요. 내가 오늘 모시고 온 분이 누군지 알면 더 놀랄 거예요. 권 부사장님도 계시니 더욱 좋네요.”

“안녕하세요.”

케이 특유의 호호거리는 웃음 뒤에 누군가 나타나 인사를 한다. 키가 작고 마른 여성이라 케이의 등 뒤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유수한입니다.”

“권재욱입니다.”

그녀가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HTC의 CEO, 왕쉐홍이라고 합니다.”

HTC? 윈도우폰 진영에 참여한 대만 업체이지 않나. 지금에야 별 볼 일 없는 회사지만, 원래 역사에선 2011년부터 2~3년간 북미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한 곳이다. 미국에서 너무 잘나가서 미 행정부로부터 특허 침해, 덤핑 소송, 소비자 품질 이슈 등등 치명적인 공격을 연달아 받아 공중분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호호, 이쪽으로 앉으세요. 커피 한 잔 하셔야죠?”

“예, 감사합니다.”

케이가 자연스레 자리를 권하고 커피도 한 잔 가지고 왔다. 옆에 나란히 앉은 케이는 입모양만으로 ‘안, 드, 로, 이, 드.’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어허, 아주 기쁜 소식이다. 드디어 우리 진영에 합류하는 모바일 메이커가 등장하셨다.

“바쁘실 텐데 실물을 먼저 보여 드리죠. 저희 회사가 이번 시카고 쇼케이스에서 오픈할 듀얼코어 신제품입니다.”

단도직입적인 왕 사장이다.

착. 착.

왕 사장은 테이블 위에 두 개의 스마트폰을 얹어 놓았다. 메인 화면이 전혀 다르다. 하나는 윈도우폰, 하나는 안드로이드폰이다. 양쪽 손가락으로 화면을 조작하니 반응 속도가 미세하게나마 안드로이드폰 쪽이 빠르다. 당연한 것이지만 왕 사장은 그걸 몇 번이고 반복해 보여 주었다.

“안드로이드 쪽이 빠르군요. 뭐, 당연한 결과이긴 합니다만.”

“예, 당연하죠. AP도 스마트 클라우드 것이니까요.”

“으흠?”

왕 사장이 의외의 말을 한다. 어떻게 알았지? 쇼케이스에서 오픈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분명 신성전자에서 받은 AP 샘플로 꾸민 제품이지만 알맹이는 스마트 클라우드 AP라고 확신합니다. 자사의 엔지니어가 신뢰성 검증을 위해 비교 차원에서 안드로이드를 깔았는데, 신뢰성 패턴만으로도 확연한 성능 차이가 있더군요. 더욱이 스마트 클라우드나 대현전자의 메모리와는 극히 호환성이 좋았습니다. 신성전자의 AP일 리가 없다고 판단한 근거입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까. 신성전자도 저희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걸 이슈 삼는 것은 아닙니다. 따지더라도 신성에 따지거나 MS에 따져야겠죠. 문제는 스마트 클라우드가 듀얼코어 AP를 시장에 푼다는 것이며, 더욱이 안드로이드라는 공짜 OS가 그걸 완벽히 지원하는데 굳이 윈도우폰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앱 개수도 이제 충분하고요. 맞나요?”

“예. 그 또한 솔직히 욕심이 납니다. 윈도우 OS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윈도우 앱에도 개발비 보조를 해야 하니 이중 과세라… 굳이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MS가 제조업을 가져가고 싶은 이유겠죠. OS와 앱을 팔아먹어야 하니까.”

내 말에 한참이나 침묵하던 왕 사장이 드디어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안드로이드 진영에 끼워 주십시오. 듣기로는 파이오니어 보안 라이선스를 제외하고 안드로이드는 공짜라고 들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부품은 스마트 클라우드 것을 쓰셔야 합니다. 물론 독점은 곤란하니 대현전자는 2차 벤더로 삼으셔도 무방합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반도체는 물론이고 정전식 터치스크린도 납품을 받았으면 합니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적 진영인 애플도 쓰고 있잖습니까. 안드로이드 진영에 들어오면 상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확신을 줘야 원하시는 대로 시장이 폭발할 겁니다.”

“글쎄요. 중국계 메이커는 라이선스 개념이 없어서요.”

솔직히 중국계 메이커는 회유와 견제의 대상이다. 웬만한 안전장치 없이는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납품해서는 안 된다. 돈이야 남겠지만 빠른 시간 내 쫓아올 것이 분명하다.

“저희는 다릅니다. 라이선스 개념이 확실하고, 보완책도 있습니다.”

“보완책이라니요?”

“정전식 터치스크린과 AP에 대해 솔벤더(Sole Vendor: 독점 납품) 계약을 하겠습니다. 스마트 클라우드가 솔벤더 위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HTC에서 납품 계약을 깰 일은 없을 겁니다.”

“버지니아 로직스가 해당 사항을 모두 검토했습니다. 수한 씨, 여기.”

케이가 왕 사장이 말한 독점 납품 계약 관련 서류를 내밀었다. 케이가 봤다면 내게 극히 유리한 계약일 것이다. 왕 사장도 대단하긴 하다. 다른 회사가 아니라 내 아내의 회사를 통해 내 믿음을 끌어내고 있다.

“그걸로는 부족하군요. 다른 회사 대비 우리 품질이 월등한데. 납품 독점은 어찌 보면 당연하죠.”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것까지 준비했습니다.”

왕 사장은 품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관세 면제 허용 승인서」

서류의 제목부터가 심상찮았다. 내용을 살펴보니 더욱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HTC의 실질적인 오너가 중국 공산당이라는 뉘앙스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내용 자체가 HTC에서 생산하고 납품받는 제품에 대해서는 중국으로 들어갈 때 수입이 아니라 내수 물량 이동으로 취급해 관세를 면제한다는 승인서였다. 대만도 중국의 일부라는 개념에 따른 것이리라.

‘이게 사실이야?’ 하며 케이에게 눈짓을 하자 케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이라고 한다. 특급 로비스트인 그녀도 놀랍다는 눈빛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2000년대 중반 미 행정부가 HTC를 타깃으로 관세를 올렸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대만 회사가 아니라 중국 회사였네.

“이 의미는 뭐죠?”

“스마트 클라우드에서 중국으로 들어갈 때 저희 회사에 OEM을 주시면 관세가 면제된다는 뜻입니다. 언젠가 저가 모델을 출시하지 않겠습니까? 그 소비 시장은 중국일 테고요.”

“저가 모델의 파트너가 되겠다 이 말씀이신가요?”

“저희 오너께서 확답하신 내용입니다. 해당 서류에 서명만 하신다면 언제든지 발효가 될 것입니다.”

국가 정책이 서류 한 장으로 끝난다니 중국 정치는 알수록 이해 안 되는 것투성이다. 케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지금에야 비싼 가격에도 잘 팔리니 굳이 필요 없지만, 언젠가 쓸 만한 카드임에는 분명하다.

“이건 마음에 드는군요.”

나는 서류를 집어 들고 권 부사장에게 건넸다. 왕 사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희에게 AP와 터치스크린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까?”

“첫 번째 동료인데 그 정도는 해야죠. 안드로이드 진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왕 사장은 나와 악수를 하며 연신 웃어 댔다. 권 부사장은 옆에서 생산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 주판알부터 튕기는 모습이었다.

    • *

2003년 11월 대망의 시카고 쇼케이스가 열렸다. 매년 방문하는 곳이지만 올해는 유독 감회가 새롭다. 시카고 전체가 IT 박람회로 분위기가 들썩거리고 각 진영에서 내놓은 캐치프레이즈도 재미있다.

「애플이 만든 세계로 오세요. 심플하고 강렬합니다.」

「세상을 보는 창, 윈도우가 함께합니다.」

두 진영 모두 각자의 생태계를 강조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OS를 의식하기라도 하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HTC가 돌연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불과 한 달 만에 기존의 윈도우폰을 안드로이드폰으로 갈아 치웠다는 것은 개발자들에겐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만큼 안드로이드 OS의 범용성은 타 진영 개발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스마트 클라우드에서 처음 느끼는 자유」

우리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자유였다.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표현하는 가장 적당한 단어였고, 마케팅에 가장 조예가 깊은 케이가 전문가를 잔뜩 데려와 뽑아낸 문장이었다.

“스마트 클라우드의 2003년 쇼케이스를 시작하겠습니다.”

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

사회자의 소개에 난 무대에 올랐다. 등장은 그리 어렵지 않다. 스포트라이트가 내 걸음을 쫓아오기에 시선은 자연스레 나를 따라오니까. 쇼케이스 무대에 서는 것은 두 번째지만 환호성은 작년에 비할 바가 아니다. IT 업계의 선두 주자이자 기술만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알려지고 있기에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루기 힘든 것에 열광하잖나.

성공한 사람들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나도 반복하는 편이다. 정말이지 운이 좋았기에 이 자리에 선 것이니까. 노력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결과가 늘 노력에 비례하지는 않으니까.

“1년 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바쁘신 투자자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알려 드리죠. 매번 신제품을 가져오기란 쉽지 않지만, 다행히 스마트 클라우드는 올해도 성공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자, 이제 돌아가셔서 안심하고 투자하십시오.”

“하하하하!”

“돌아가시는 분이 없으시니 더 이야기를 해 볼까요? 올해 스마트 클라우드, 버지니아 트레이딩, 파이오니어 등등 개발과 마케팅을 통틀어 대표적인 한마디를 뽑아 보자면 단연 자유입니다.”

화아악!

커다란 화면이 밝아지고 그 한가운데 ‘Freedom’이라는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곤 그 단어가 흔들거리며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일명 ‘프랑스 대혁명’ 그림으로 바뀌었다.

“인류의 가치는 점진적인 변화보다는 혁신에 의해 기존의 가치가 재탄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말하죠. 스마트 클라우드는 휴대폰을 재해석하고 스마트폰을 만들었지만 물리적인 기기의 혁명에 불과하다고 말이지요. 기존에 있던 전화기, 컴퓨터, 카메라를 조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겁니다. 일견 동의합니다.”

“오오.”

내가 인트로에 비판적인 언론의 기사를 언급하며 일견 동의한다고까지 하니 몇몇 청중이 의외라는 탄성을 내뱉었다. 나는 지극히 진심이었다.

“비싼 스마트폰을 사 주신 고객분들에게 단순히 빨라진 듀얼코어 AP를 소개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에 새로운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

삐리릭. 삐리릭.

나는 무대 한편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화면과 연결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오, 수한! 쇼케이스 잘되고 있나요?

“재훈, 환호하는 분들이 안 보이나요?”

“와아아아아아!”

커다란 화면에 불쑥 재훈이가 튀어나오자 청중이 환호성을 질렀다. 영상통화를 보여 주니 듀얼코어 AP가 왜 필요한지 말이 필요 없었다. 나의 나비효과로 인해 이미 인터넷은 ADSL을 넘어 3G 통신인 WCDMA가 상용화되어 있다. 원래 역사에서도 2005년쯤 영상통화가 되는 휴대폰이 등장했으니, 스마트폰에서 구현하는 것은 누가 먼저 시도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당연히 먼저지. 심지어 파이오니어에서 해당 앱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내가 더 놀랐을 뿐이다.

-오, 환호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요.

“발표는 나에게 맡기고 어디 있는 건가요?”

-하하, 커피 한 잔 하고 있죠. 수한도 한 잔 가져다줄까요?

“좋죠. 가져다주는 수고를 하신다니 커피값은 내가 내죠.”

-한번 해 봐요. 여기가 미시건 에비뉴에 있는 스타벅스인데.

재훈이의 말에 나는 지도를 띄우고 해당 스타벅스를 검색한 뒤 꾹 눌렀다. 그러자 스타벅스 앱이 자동으로 연결되어 인터넷 주문을 했다. 몇 번 연습을 했더니 아주 자연스럽다.

“커피 1,000잔을 시켰으니 잘 들고 와요.”

-어, 수한! 장난으로 주문을 하면 어떡합니까?

“가져오면 나 한 잔, 그리고 나머지는 고객분들께 나눠 드려야죠. 식지 않게 가져와요. 고마워요.”

툭.

“하하하하하!”

청중이 마구 웃어 댔다. 여하튼 영상통화, 멀티태스킹, 지도와 관련 앱이 연결되는 OS 등등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보여 준 쇼라고 하겠다. 살짝 장난기가 돌아 커피 1,000잔을 주문하긴 했지만 말이다. 브레이크 타임에 다들 커피 한 잔 하며 서로의 대화에 한 번씩만 더 언급해도 광고비로는 충분하다.

“자, 이제 본론입니다. 듀얼코어 AP와 안드로이드 OS version2! 여러분께 새로운 자유를 선사할 겁니다.”

“와아아아아!”

내가 연이어 워즈니악을 무대 위로 불러 듀얼코어 AP의 활용성과 향후 코어의 개수를 두 배씩 늘려 가겠다는 마일스톤을 논하자 환호성은 더욱 커졌고, 케이가 등장하여 듀얼코어 AP를 오픈마켓에서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뭇 개발자들에게 알리자 중소 모바일 메이커들이 환호했다. 마지막으로 커피를 들고 허겁지겁 무대 위로 오른 재훈이와 농담을 섞어 가며 안드로이드 OS의 범용성과 만 개가 넘는 애플리케이션 풀에 대해서 쇼를 진행했을 땐 기자들이 마구 셔터를 눌러 대 잠시 쇼가 중단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장장 2시간이 넘는 무대를 마치고 나니 사방에서 환호하는 투자자들과 일반 관객들로 난리가 아니었다. 대부분 스마트 클라우드 관련 주에 투자한 이들일 것이다. 무대 앞에는 HTC를 비롯한 자잘한 메이커들의 CEO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누군가와 한창 통화 중이었다. 안드로이드 진영에 가담하는 업체들이 왕창 늘어날 것이 뻔했다.

그 뒤로 타사의 쇼케이스를 둘러보긴 했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애플이든 MS든 기존의 스마트폰 외형을 좀 더 세련되게 만들었고, 신뢰성이 개선되었다. 애플리케이션이 어쩌고, 성능이 어쩌고 하며 쇼를 했지만 영상통화 같은 기능은 생각도 못한 듯했다. 만 개가 넘는 앱을 일거에 오픈한 것만으로도 타 진영은 털썩 주저앉았을 거다.

“어머, 저런 앱 숫자로 생태계를 논하다니. 어이가 없네요.”

“누가 들으면 실례야.”

“실례가 아니라 사실인데요, 뭘. 앱 개수가 애플은 1만 5천 개라도 되지, MS는 9천 개밖에 안 되잖아요.”

나는 한껏 우쭐대고 있는 케이를 데리고 윈도우폰 쇼케이스 장소를 빠져나왔다. 아마 내일부터 타 진영은 쇼케이스 대본을 고쳐야 할 것이다. 지금도 청중들이 마지못해 헛웃음을 내뱉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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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K2, 트윈 하트 모델 역대 최고 매출 달성할 듯. 최단 기간 천만 대 돌파」

「윈도우폰 사면초가. OS 버그로 반품 속출. 일부 고객은 OS 탈주」

「스마트폰 OS 변경, 합법인가? 불법인가?」

각 사의 신형 스마트폰이 판매를 개시하고 나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트윈 하트가 한 달 정도면 천만 대 기록을 세울 거라 예상했지만, 소비자들이 OS를 변경하다니 말이다.

IT 잡지들이 OS 변경, 탈주, 탈옥 등등 갖가지 명칭을 붙이고 있지만 결국 같은 말이었다. 파이오니어 보안 앱을 깔면 유저가 기기의 최상위 권한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기기가 우리 회사 AP를 쓰다 보니 의도치 않게 파이오니어 보안 앱에 타사 보안 프로그램이 뚫려 버린 꼴이었다.

아이폰의 경우에는 애플에 검열받지 않은 앱, 즉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앱이나 안드로이드 앱에서 지원하는 인터페이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 윈도우폰은 보안이 더욱 취약해 파이오니어 보안 앱을 깔면 아예 OS를 안드로이드로 재설치할 수 있었다.

“공식 항의가 올 줄 알았는데, 안 오네. 혹시 파이오니어 쪽으로 항의가 갔어?”

“아니. 우리 쪽에도 아직 별다른 항의는 없어. 아마 안 오지 싶은데. 공식적으로 항의를 하면 자신들의 보안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잖아. 보안 프로그램 간에 호환성이 있을 뿐이라고 되도 않는 말을 언론에 흘리고 있어.”

재훈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친구도 아마 예상 못 한 일인 모양이다. 하긴 파이오니어 보안 앱이 타사의 파이어 월을 아무렇지도 않게 뚫어 버릴 줄은 몰랐겠지.

“케이, 이 문제가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은 얼마나 되지?”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요, 소송 가능성은 없어 보여요. 미국의 저작권 사무국에서 최상위 권한 획득, 비공식 프로그램 설치, 기타 서비스 이용을 목적으로 유저가 직접 기기의 잠금장치 해제를 하는 경우는 합법이라고 밝혔어요.”

“허, 벌써 합법 의견을 내놨다는 거야?”

“어이없지만 중국에 스마트폰 광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에요. 중국 스마트 스토어에 물건을 입고시키면 이틀도 안 되어 품절될 지경이에요. 우리 제품은 물론이고 아이폰도 나름 예상 밖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갑자기 중국에 스마트폰 광풍이 분다고?”

중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스마트폰 업체가 등장하면서 광풍이 불려면 2년은 남았을 텐데. 내가 IT 제조 기반을 상당 부분 늦춘 데다 선두에 선 HTC도 지금 형태로 보면 2년은 지나야 겨우 대기업 반열에 들어설 것 같은데 말이다.

“여태 스마트폰이 중국에서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던 건, 가격도 가격이지만 한자를 타이핑해서 넣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인데요. 중국에서 나온 안드로이드 자판 앱이 그걸 깔끔하게 해결했다고 하네요.”

“아, 저도 그 앱 알아요. 성모만 치면 후보 단어가 떠오르는 앱이죠? 그걸로 하면 정말이지 사자성어도 빠르게 입력할 수 있던데.”

재훈이가 케이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안드로이드 앱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아이폰이고 윈도우폰이고 그걸 쓰기 위해서라도 탈옥을 하고 있는 거죠. 희한하게 탈옥만 시키면 애플 OS에서도 동작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일종의 폰트 데이터베이스이기 때문이죠. 로직이 그리 복잡하지 않으니까요.”

“덩달아 일본 쪽에서도 이런 비슷한 앱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한자를 쓰기엔 이보다 편한 게 없다고. 여하튼 타사에도 나름 도움이 되는 일인가 봐요. A/S를 포기하면서까지 유저들이 자판 앱을 깔고 있거든요.”

보안 관련 이슈인 데다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애플이든 MS든 누군가 미국 저작권 협회까지 움직여 빨리 일을 마무리 지어 버린 꼴이다.

원래 역사에서 벌어졌던 애플 OS 탈옥 사건이 안드로이드 OS로 갈아타는 것으로 바뀐 형태다. 나에게 나쁠 건 전혀 없어 보인다. 버그를 피하겠다고 아예 안드로이드 OS로 갈아 치우든, 자판을 치기 위해 앱을 깔든 결국 안드로이드를 택하는 유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말이니까. 게다가 이 일은 스마트 클라우드의 AP와 파이오니어 보안 앱이라는 기본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잖나.

“윈도우폰은 완제품이 아니라 반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겠군.”

“수한 씨,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아이폰은 앱 정도로 탈옥이 이뤄지지만 윈도우폰은 아예 OS를 갈아 끼운다며. 조립 공장도 중국에 있으니 외관 금형이야 잔뜩 있을 테고 반제품만 확보하면 그냥 안드로이드 OS를 깔겠지. 중국 업체야 애플이든 MS든 눈치도 보지 않을 거고.”

“맞아요. 지금 스마트 스토어에는 AP를 포함해 부품 수요가 급증했어요. 터치스크린 부품은 판매하지 않았더니 LK에 감압식 스크린 수주가 왕창 떨어졌나 봐요. 구 회장님과 통화했는데 아주 기분이 좋으시더라고요.”

“LK야 좋아라 하겠지만, MS는 고민이 되겠군. OS를 팔아야 하는데 반제품만 팔리는 꼴이니 말이야. 외려 내 부품 장사를 도와주는 꼴이잖아.”

“수한 씨,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결정을 내리면 중국에서의 그런 움직임은 막을 수 있어요.”

“막긴 왜 막아.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MS와 하청 계약하고 있는 중국 군소 업체들에 아예 파이오니어 정식 라이선스를 주자고. 부품도 오픈마켓 말고 정식으로 B2B 계약을 하지. 터치스크린 제공은 제외하고 말이야.”

중국 업체는 HTC 정도의 규모가 되기 전까지는 고객으로 대접해 줘도 무방할 것이다. 부품을 팔아먹을 만큼 팔아먹고,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면 동맹을 맺어 부품 장사를 계속하든가 아니면 출혈 경쟁으로 퇴출시키는 방식이 좋겠다.

“B2B라면 권재욱 부사장님이 계약해야죠. 그럼 버지니아 트레이딩은 오픈마켓에서 적당히 물량을 끊어 버리면 되는 거죠?”

케이의 장사꾼 감각은 탁월하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윈도우폰 조립 공장 인수금으로 얼마가 적당할지 계산 좀 해 줘. 아마 내년쯤엔 매물로 나올 것 같은데?”

“호호호호! 저도 딱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내년이면 중국도 우리 시장이 되는 거네요.”

“그렇지. 케이도 그래서 HTC를 내게 데려온 것 아니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빨라서 말이에요.”

“나도 그러네. 여하튼 좋은 일이지, 뭐.”

나와 케이의 말을 듣고 있던 재훈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 중국 자판 앱 회사, 내가 먹어도 될까?”

“먹을 수 있겠냐? 다 먹을 생각 말고 25%만 먹어. 중국 애들 생각보다 텃세가 심해. 자칫 외국에 팔렸다는 인식이 생기면 하루아침에 회사 공중분해 돼.”

“알아, 적당히 먹을게. 시도해도 되지?”

“할 수 있으면 당연히 해야지.”

“흐흐, 드디어 나도 자회사가 하나 챙기겠네. 좁쌀은 내 거다.”

“좁쌀?”

“그 앱을 만든 회사 이름이야. 중국 발음으론 샤오미인데, 한자로는 좁쌀이야. 하하하.”

“샤오미?”

“이름이 좀 웃기지만 괜찮은 회사 같아. 그쪽 사장과 화상 통화를 한 번 했는데, 잡스처럼 옷을 입고 나와서 웃음 참느라 혼났어. 유쾌한 사람이야.”

샤오미는 한자로 쓰면 ‘小米’로 좁쌀이라는 뜻이다. 초창기에 창업자가 동업자들과 좁쌀로 만든 죽을 먹으며 사업을 꾸려 나가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샤오미가 소프트웨어 업체였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x-developer? y-developer? 여하튼 개발자용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유명해졌으니까. 메모리 IO를 효율적으로 쓰는 개발자용 프로그램이라 반도체 업계에서는 특히나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판 프로그램이라고? 등장 시기가 이렇게 빠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벌써 통화까지 했어? 회사 규모는 어느 정도야?”

“별로 크진 않아. 직원이 50명 정도나 될까? 스마트폰 앱 업체가 다 그렇지, 뭐. 잘 키워서 상장시켜야지.”

재훈이 녀석도 이번 생에는 재운이 폭발하는군.

파이오니어, 버지니아 트레이딩, LK, HTC, 거기에 샤오미까지 우리 우산에 들어온다면… 시진핑이 주석에 오르는 그날 중국의 스마트폰 업계의 뒷배는 내가 될 수밖에 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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