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장 괴수 대 괴수 (95/104)

제1장 괴수 대 괴수

열정 폭발의 6월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8월이었다. 노트 K라 명명한 제품은 당장 출시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완성도 높게 제작이 되었다. 시제품 한 대를 잡스에게 보내 스마트폰처럼 같이 프로모션을 하겠냐고 의사를 타진했더니 지금 그가 내 눈앞에 있다. 도저히 전화 통화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휘이잉~

갑갑한 회의실이 아니라 스마트 클라우드 본사 옥상으로 올라와 둘만의 대화를 가졌다. 회사 옥상에는 나름 분수도 있고 나무도 심어 놔서 얘기를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다.

“수한, 이 제품을 정말 출시할 계획입니까?”

“출시해야죠.”

“기존 디자인 콘셉트를 완전히 위반하는 것입니다. 한 손으로 잡기에 부담스러운 크기인 데다 스타일러스라니요. 손가락 터치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기술입니다.”

“포기라니요. 손가락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기능을 추가한 겁니다. 윈도우폰이 손톱으로 섬세한 작업을 한다고 대대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했잖습니까. 그런 윈도우폰에 맞서 스마트폰 업그레이드 정도로는 소비자들이 감탄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윈도우폰이 제대로 동작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에 대한 대응책을 가지고 있으면 윈도우폰과 일일이 성능 비교를 할 필요 자체가 없어진다. 압도적인 기술 성능을 증명하려면 말만 듣고도 고개가 끄덕여져야 하는 거다.

“애플 스토어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저렴한 가격에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소비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노트 K를 만들었다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 스토어를 만들었다. 각자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잡스가 스타일러스가 있는 노트 K에 놀란 것처럼 나 또한 애플 스토어의 빠른 완성에 놀랐다. 이리될 줄은 알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빨리 닥친 것 같다.

“각자 원하는 생태계가 다른가 봅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하나의 모델로 한정 지을 생각은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닮은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싶습니다.”

“뭐, 그런 생각이야 일견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여기 오픈소스로 만들어진 OS는 정말이지 화가 나는군요. 수한은 내 동맹 아닙니까?”

“잡스, OS 변경은 수차례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스타일러스 최적화와 앱 개발에 대한 라이선스도 결국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스타일러스야 콘셉트의 파괴이며, 애플리케이션 라이선스는 수한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대체 수익의 80%를 제작자에게 주다니요. 통신사와 우리가 수익을 나누면 고작 판매액의 10%에 불과합니다.”

애플은 수익의 30%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그랬고.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에게 우리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의료보험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판매 수수료는 10%면 족합니다.”

“수한, 우린 스마트폰 시장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다니요.”

“잡스, 우리만 이 시장이 열 배 스무 배로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MS, 노키아, 소니, 심지어 죽어 가는 모토롤라까지 탐내는 시장입니다. 외려 과도한 라이선스 비용은 다수의 협력자를 등 돌리게 만드는 행태입니다.”

“시장을 선점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쟁력입니다. 심지어 정전식 터치스크린 기술은 아무나 넘을 수 없어요.”

“잡스, 그건 내가 만들어 봐서 압니다. 맨땅에 헤딩하며 개발하긴 극히 어렵지만 일단 제품이 시중에 나오면 특허를 회피하며 카피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2년만 지나면 경쟁사들도 대응책을 만들 겁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터치스크린 기술은 독점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하드웨어 기술 카피가 이루어지고 특허 소송에 패소한 애플이 항소 때 들고 나온 것은 결국 화면 튕기기와 이미지 버튼을 밀어서 화면 잠금을 해제하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 특허 또한 코닥의 유사 특허를 애플이 매입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이번 생에는 내가 이미 매입해 두었다. 애플과 이렇게 맞서도 내 사업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 거다. 나는 확실히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우두머리가 될 테니까. 단지 안드로이드 OS의 수준이 확실하게 올라오고 각종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이 대규모로 쏟아지기까지 1~2년의 시간을 버텨야 할 뿐이다.

“믿을 수 없습니다. 해당 특허는 스마트 클라우드와 애플의 전문가들이 몇 개월씩 고민해서 작성했습니다. 그리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술은 그렇죠. 하지만 특허 판결을 내는 곳은 각 나라의 특허청입니다. MS가 끼었으니 미 특허청에서도 우리 편을 들어 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원래 역사에선 미 특허청만 애플의 일부 승소 판정을 내렸다. 중국은 당연하고 영국, 프랑스 심지어 미국 말이라면 껌뻑 죽는 일본 특허청조차 애플에 패소 판정을 내렸다.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스마트폰 시장이 미친 듯이 성장했으니까.

“하아… 수한, 우리가 이리 갈라서면 선점한 시장마저 뺏길 수 있습니다. 애플 컴퓨터가 이런 식으로 당했습니다.”

“잡스, 난 동맹을 해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애플의 이미지도 탐이 나고 마케팅 능력은 따라가기 벅찰 정도니까요. 이 안드로이드 OS와 애플 OS는 같이 가야 합니다. 나는 안드로이드 OS로 독자 제품을 내고, 애플 제품도 적극 개발을 지원하겠어요.”

“아뇨, 그런 식의 전략이라면 결국 애플은 스마트 클라우드의 동맹이 아니라 영업책이 될 뿐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애플 OS에 끌려가면 나는 속된 말로 애플 따까리, 좋게 말하면 애플의 하드웨어 납품업체밖에 되지 못한다. 스마트폰은 그 자체가 IT 문화를 선도하는 제품이다. 나는 스마트 클라우드로 성공하길 원한다. 이번 역사에서 애플의 폭스콘(Foxcoon: 원래 역사의 애플의 위탁 생산자)이 될 수는 없다.

“잡스, 우리에겐 각자 강점이 있습니다.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뇨. 이 노트 K를 출시한다면 우린 아예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겁니다.”

잡스가 협박 비슷한 말을 토해 냈다. 안타깝다.

“잡스….”

“안타깝군요. 수한은 생각을 바꿀 것 같지 않군요. 제품이….”

뭐라고 말하려 했을까? 제품이 너무 완벽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잡스는 파라솔 아래 노트 K 시제품을 얹어 두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 *

스티브 잡스가 떠나고 난 뒤 회사에는 업무 협조전이 마구 도착하기 시작했다.

“김 부사장, 어쩐 일로 나를 보자고 했나요?”

“애플이 의외의 요청을 해 와서 상의드리려고 왔습니다.”

기술적인 내용은 아닌가 보다. 일전의 노트 K 개발 건 이후로 김 부사장은 자신의 업무 범위를 훌쩍 키우고 있었으니까.

김 부사장이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게 내밀었다.

“자료야 천천히 읽어 볼 테니 간단히 요약해 줘요.”

“먼저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독자적인 제품을 출시하겠다며 로고, 디자인, 제품 개발, 심지어 AP(Application Processor)까지 달리하겠다고 사업부를 분리해 달라고 합니다.”

“팀이 아니라 사업부를 말입니까?”

“예. 애플에서 직접 엔지니어와 팀 매니저급 인원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보안요원을 보내겠다는 말이겠군요.”

“그리 보입니다.”

“사업부 분리하세요. 고객의 요청인데.”

“고, 고객이라고요. 애플은 자회사나 다름없는데 말입니다.”

“이제 동맹으로 여기지 않나 보죠.”

“…….”

담담하게 말하니 김 부사장이 외려 당황하는 눈치다. 내가 너무 순순히 소문의 진위를 확인시켜 줬나 보다.

“요청 사항이 또 있습니까?”

“11월까지 독자 제품을 출시한다며 TF를 구성해 달라고 합니다. 디자인이 크게 바뀔 것 같진 않지만, 제품 퀄을 모두 애플 기준으로 받아야 하는지라 개발 기간이 빠듯합니다.”

“해 주세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고, 개발 스피드는 스마트 클라우드의 자랑 아닙니까.”

내가 단박에 승인하자 김 부사장은 말문이 막히나 보다. 머뭇거리더니 또다시 이슈를 꺼내 놓았다.

“기존 스마트폰 OS 라이선스를 최장 3년까지만 허락하겠다고 합니다.”

“3년 뒤엔 OS 업그레이드도 못 하겠군요.”

“그보다 기존의 애플리케이션을 노트 K의 안드로이드 OS에 호환되도록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대로라면 노트 K의 애플리케이션은 불과 서른 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대비 제품으로서의 가치가 많이 떨어질 겁니다.”

“파이오니어를 믿어 보죠. 애플 OS뿐 아니라 안드로이드 OS로도 앱을 만들고 있으니까.”

“파이오니어와 협업하겠습니다. 헌데 애플이 공동 특허마저 분리하고 싶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해 주세요. 특허 포트폴리오야 우리가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으니까.”

요청 사항이 한두 개가 아니다. 잡스가 나를 이렇게 압박할 정도로 속이 상했나 보다. 어쩌겠나. 그렇다고 내가 애플의 납품업자 노릇을 할 수는 없잖나. 냉정하게 따지면 오히려 지금 상황이 일반적인 동맹의 업무 형태와 닮았다.

“…회장님, 애플과 너무 멀어지는 게 아닐까요. 노트 K 때문에 그러는 것 같은데 내후년쯤으로 출시를 미루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파이오니어의 안드로이드 OS는 노트 K에만 쓰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11월 쇼케이스에서 IT 업계 전체가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라도 노트 K는 꼭 출시해야 합니다.”

현존 최고의 사양에 차후 최고의 OS를 탑재한 제품의 출시를 왜 미루나. 오히려 이런 나비효과는 시너지가 대단하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한국형 IT 버블이 터져야 하는데, 코스닥이 바닥을 치기는커녕 스마트폰 앱 업체들로 인해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 않나. 고급 엔지니어들이 즐비한 벤처들이 망해서 자영업으로 빠지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상황이다.

“예, 알겠습니다.”

“현 상황에 너무 심력을 쓰지 말아요. 노트 K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1, 2년 정도 빨리 왔다고 생각하면 그뿐이에요.”

“예.”

나는 김 부사장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에게 말을 보탰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11월 쇼케이스를 애플과 분리합시다. 잡스가 먼저 요청하기 전에.”

“예.”

애플은 파트너가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협력을 끊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역사에서도 끝까지 파트너십을 유지한 곳은 조립업체인 폭스콘과 일본 판매 총책인 소프트뱅크 정도였다. 조만간 AP도 따로 만들겠다고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잡스는 삶의 마지막 불꽃을 나와 경쟁하며 보내겠군. 뭐, 달리 보면 이런 상황이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천재는 아니지만 미래를 알고 있지 않나. 잡스라는 금세기 최고의 사업가라면 인생의 끝에 만날 만한 경쟁자답다.

    • *

「2002년 시카고 쇼케이스 개막. 세계 최대 IT 박람회에서 차세대 폰끼리 대격돌」

「스마트폰, 아이폰, 윈도우폰 각자의 생태계를 꿈꾸다」

「손안에 들어온 인터넷 세상, 누가 그 왕좌를 차지할 것인가?」

11월 쇼케이스를 두고 IT 매체들마다 모두 비슷비슷한 헤드라인을 쏟아 냈다. 윈도우폰이야 당연하다고 해도 아이폰이 헤드라인에 떠오른 것은 참으로 놀랍다. 잡스의 마케팅 능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한 씨, 긴장하지 말고요. 발표 잘하세요.”

“나보다 당신이 더 긴장한 것 같은데?”

“에이, 설마요. 내가 이 무대에 선 지가 몇 년짼데요. 수한 씨는 처음이잖아요.”

케이는 연신 내 옷매무시를 점검해 주면서 몇 번이나 긴장하지 말라고 말해 준다. 여러 사람들 앞에 서서 얘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것도 한국말이 아니라 영어로 하면 더욱더. 하지만 솔직히 제일 처음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했던 투자 설명회보다는 낫다.

“드디어 스마트 클라우드의 신제품을 소개할 때입니다. 유수한, 스마트 클라우드 CEO를 박수로 맞이하여 주십시오.”

짝짝짝짝짝.

내가 나서자 청중은 ‘역시 애플과 갈라섰다는 소문이 확실하군!’ 하는 표정들이다. 기자들뿐 아니라 주식 투자자들도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진짜 주인은 누구이며, 어디에 투자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냐 하는 답을 얻어 가려고 할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유수한입니다. 늘 청중석에만 있다가 무대에 섰더니 공기부터 다르군요. 훨씬 따뜻하고 좋네요.”

“하하하하.”

“저는 발표 전에 언제나 신문을 읽곤 합니다. 어떻게 말해야 기자분들이 기사를 호의적으로 써 줄까 고민하면서 말이죠.”

“하하하하.”

나는 첫 번째 화면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스마트 클라우드의 기사를 인용했다. 내 제품에 대해 유명 언론사가 기사를 써 주다니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폰은 그냥 폰이었을 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사진은 아이들이 종이컵에 실을 끼워 전화기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존의 피처폰은 전화기 용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미국인답게 유머러스한 기사다.

“감동적인 문구죠? 제 회사의 주가가 흔들릴 때마다 보는 기사입니다.”

“하하하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이런 감동스러운 기사를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올해 신제품을 기획했습니다.”

“오오오!”

“스마트 클라우드가 스마트폰을 처음 만들었을 때 우리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고 자부했습니다. 손바닥 위에서 인터넷을 구현하고 자유롭게 소비를 했죠.”

커다란 스크린에는 스마트폰에 감동하는 소비자의 다양한 모습이 영화처럼 휙휙 지나갔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는 얘기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스마트 클라우드는 곧바로 이상한 것을 느낍니다. 이게 정말 새로운 문화가 맞을까? 하고 말입니다.”

“……?”

“스마트폰의 유저들은 소비만 하는 걸까? 기기를 소모하고, 콘텐츠를 소비하고, 배터리도 소모하고….”

“하하하하.”

“결론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소비자는 콘텐츠를 소비하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어 친구들과 얘기를 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문구에 줄을 치기도 하고, 때때로 책에 낙서를 하기도 하지요. 인간의 본연은 창작과 소통에 있지 않을까요?”

“……!”

“수백 년간 인간의 윗주머니에 연필이 꽂혀 있었던 이유입니다. 직장 상사에게 한 소리 들으면 물어뜯기도 좋거든요.”

“하하하!”

“그래서 펜을 만들었습니다. 물어뜯어도 망가지지 않고, 연필심을 깎을 필요도 없고, 잉크를 채울 필요도 없는 펜 말이지요. 심지어 종이와 지우개도 필요 없습니다.”

“오오오.”

내가 말하는 와중에 스크린에는 그림을 그리고, 인터넷 화면을 캡처해 밑줄을 긋고, 사진을 찍어 메모를 더하고, 사진을 합성하거나 지우개처럼 쓱쓱 지워 나가는 시연 동영상이 연이어 재생되었다.

“이런 것들은 3인치 조금 넘는 화면에서는 불가능하겠지요? 그래서 우린 화면을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5.3인치 대화면 스마트폰입니다.”

“오오오.”

“다들 모델명은 짐작하시겠지요? 노트 K! 여러분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겁니다.”

짝짝짝짝.

바지 주머니에서 노트 K를 꺼내 한손으로 높이 쳐들자 다들 기립 박수를 쳤다. 카메라가 내 손을 클로즈업했고, 화면이 크면서도 주머니에 들어가는 사이즈라 누가 봐도 탐이 나는 제품이었다.

이 정도 화면에 터치스크린 감도를 최적화시키는 기술력은 스마트 클라우드가 유일하다. 윈도우폰은 흉내를 내고 싶어도 기술적으로 힘들 테고, 애플도 우리 회사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지만 3.5인치 화면을 고집할 테니 대화면 스마트폰 대열에 곧바로 합류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로 이 노트 K는 대박 제품이 확실하다. 반응 또한 뜨겁잖나.

    • *

비슷한 시각.

빌 게이츠 또한 윈도우폰의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신뢰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냉기가 하얗게 피어오르는 드라이아이스 박스에서 윈도우폰을 꺼내는 쇼부터 시작했다.

“윈도우폰은 현존하는 차세대 모바일 기기 중에 가장 신뢰성이 뛰어나고 안정된 OS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플리케이션 풀도 내년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겁니다.”

“오오오오.”

“아이콘을 터치하는 방식은 직관적이지 않지요. 윈도우폰은 직관적인 터치 방식을 선호합니다. 유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의 아이콘이 점점 커지며 우선적으로 배치됩니다. 따로 아이콘 정렬을 하실 필요도 없다는 것이죠.”

삐이이익.

짝짝짝짝짝.

빌 게이츠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연신 박수 소리가 흘러나오자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대략적인 서론을 꺼내 놓고 본론을 설명하기 위해 기술자들로 구성된 전문 발표자를 불러내고는 무대 뒤로 내려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오! 요르마, 보고 있었습니까?”

빌 게이츠는 무대 뒤에 우두커니 서 있던 노키아 CEO 요르마 올릴라의 양어깨를 잡고 반가워했다. 경쟁사의 발표를 보러 간다고 했던 양반이 자신의 발표를 보고 있었으니 조금 의외였다.

“스마트 클라우드의 발표가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하하하, 별거 없었나 보죠?”

“그게 아니라 너무 발표할 거리가 많아서 쇼케이스를 사흘 연속 하겠다고 하더군요. 오늘은 1회 차라고 말입니다.”

“사흘 연속이라고요?”

“스마트 클라우드가 노트를 만들어 냈습니다.”

“노트라니요?”

“모바일 화면이 5.3인치나 됩니다.”

“뭐라고요? 5.3인치? 그게 어떻게…. 터치 센싱을 어떻게 한다는 거죠?”

“어떻게 한 정도가 아닙니다. 손가락 터치는 물론, 스타일러스까지 사용 가능하게 만들었더군요.”

“그게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현존 최고 사양의 부품을 사용해도 4인치 이상의 화면 제어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짓지 않았습니까!”

“가능한가 봅니다, 스마트 클라우드는.”

요르마는 찡그린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빌 게이츠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런다고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한참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와중에 빌 게이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 출시한답니까? 가격은요?”

“12월 20일부터 판매한다고 합니다. 가격은 통신사 약정을 배제한다면 출고가는 8GB 모델이 749달러, 16GB 모델은 949달러로 책정되었다고 합니다. 통신사들이 못해도 300달러는 지원할 겁니다.”

“빌어먹을! 화면은 더 커졌는데 가격은 어째서 작년 대비 100달러나 내린 겁니까.”

“작년 대비 가격을 내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출고가가 우리 것보다 50달러 이상 싸다는 게 문제지요.”

요르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핵심을 짚었다. 그들은 윈도우폰의 가장 큰 장점은 기술이 아니라 가격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다. 가격을 내리기 위해 중국에 공장까지 지으며 원가 절감을 했는데 말이다.

“어째서, 우리가 가격에서도 뒤지죠? 어찌 된 겁니까?”

빌 게이츠는 하드웨어는 요르마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느냐는 투로 물었다. 사실 부품 조달을 한 사람은 요르마였고, 소프트웨어를 담당한 이는 빌 게이츠였으니 영 엉뚱한 질문은 아니었다.

“반도체 부품의 라이선스 비용 때문이겠지요. 스마트 클라우드에 라이선스 비용을 줘야 하니까 말입니다. 차라리 AP와 메모리를 스마트 클라우드에서 조달하는 게 나을 뻔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그게 아니고, 중국 공장에 조립 비용을 너무 크게 책정해 준 것 아닙니까? 어째서 한국 기업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떨어질 수 있습니까.”

“중국 공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조립 단가는 원가 비중에서 불과 9.8%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스마트 클라우드가 출혈 경쟁을 하는 게 아닐까요? 50달러 차이는 너무 큽니다.”

“설마 그럴 리가요.”

“설마가 아닐 수도 있어요. 분명히 출혈 경쟁입니다. 우리도 가격을 내려야 합니다.”

“내릴 것이 뭐가 더 있다고 그러십니까? 부품, OS, 조립 비용 어느 것 하나 다이어트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그들은 안드로이드 OS가 오픈소스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제 말씀부터 들으세요. 일단 지금 출고가로 나가면 스마트 클라우드는 물론 애플과도 경쟁이 안 될 겁니다. MS에서 유동 자금을 지원할 테니 4GB 기준으로 출고가를 699달러로 하지요. 대신 부품의 원가를 원점에서부터 검토해 주세요.”

“원점부터라면?”

“소니가 카메라 모듈을, HTC가 메인 보드를 공급하지 않았습니까. 디스플레이는 LK라고 했던가요? 여하튼 큰 업체일수록 거품이 끼어 있을 겁니다. 최소 10%씩 부품가를 깎아야 합니다.”

“으흠, 타당하신 말씀입니다. 스마트 클라우드와 1대1로 비교하며 부품사를 압박해 보죠.”

“서둘러 주세요. 납품가를 맞추지 못하면 팔면 팔수록 적자 아닙니까.”

빌 게이츠는 제품을 출시하자마자 원가 경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뒤에 벌어질 기술적 문제는 더욱더 몰랐고 말이다. 심지어 애플의 프레젠테이션을 보지 않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 *

애플의 쇼케이스는 저녁 무렵에 열렸다. 마치 스마트 클라우드와 MS의 쇼케이스를 모두 보고 참석하라는 의미처럼 보였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솔직히 조금 갈등했지만 직접 참석해 보기로 했다.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몇 명 있긴 했지만 관객석이 워낙 어두웠기에 그다지 불편하진 않았다.

“오늘 신제품을 공개하기 전에 애플의 역사부터 한번 읊어 볼까 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발표는 언제나 사람의 허를 찌르는 면이 있다. 애플 컴퓨터를 언급하더니 곧장 세계 최초의 노트북 애플 파워북을 언급하고 에그박스, 심지어 앰팩과 아이팟까지 언급했다. 애플의 첨단 IT 기기 역사에 스마트 클라우드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근사했다고도 했다. 칭찬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쯤 오늘의 키워드가 될 만한 문구를 화면에 띄웠다.

「Simple is the Best」

“이런 IT 기기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구를 찾기란 매우 어렵죠. 하지만 소비자의 공통적인 감정은 있습니다. 너무 복잡하다는 거죠. 일하기 위해서,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서 나날이 복잡한 뭔가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겁니다. 인류의 숙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죠. 사실 우리들이 만들어 낸 기기들이거든요.”

“하하하하하!”

“그래서 전략을 좀 바꿔 보면 어떨까 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이지요.”

잡스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쯤 화면에는 아이폰 시연 동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아이폰의 외형은 우리 회사에서 만들었으니 스마트폰과 다를 바 없었지만 동영상이 보여 주는 기기들 간의 호환성에 모두들 감탄사를 토해 냈다. 아이폰에서 채팅을 하다가 노트북으로 옮겨 가서 채팅을 이어받아 문서를 첨부하고, 아이폰이 찍은 사진을 편집하기도 하며, 에그박스에서 플레이한 영상을 아이폰에서 즐기고, 애플 스토어에서 다운로드받은 음악 파일이 아이폰, 아이팟, 에그박스, 노트북에서 동시에 재생되자 관객들이 환호했다.

“아이폰 하나로 여태 사용한 애플의 기기는 모두 하나가 됩니다. 애플이 추구하는 심플 라이프라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관객의 환호성이 잦아들자 각 분야의 전문가를 불러올리며 쇼케이스를 이어 갔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역시 잡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스마트폰의 미래가 클라우드 서비스와 이어진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고 있잖나. 그의 상상력은 차원을 달리한다.

“수한 씨, 애플은 정말 만만치 않네요. OS가 호환된다는 것을 저리 이용하다니요.”

“그렇지? 확실히 잡스가 선구자이긴 해.”

“그건 수한 씨도 마찬가지예요. 잡스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아요.”

“어이구, 자기 남자 편들어 주는 거야? 하하.”

“수한 씨, 농담이 아니라니까요. 앰팩과 스마트폰의 호환성은 수한 씨가 먼저 시작했잖아요.”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잡스는 자신이 확실히 알고 있다고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거야. 이제부터 IT 경쟁은 누가 생태계를 잘 꾸미느냐 하는 싸움이라는 걸 말이지.”

“으흠, 그 싸움은 뭐라고 불러요? 치킨게임은 아닌 것 같은데요.”

“글쎄, 기자들이 알아서 이름 붙여 주겠지.”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케이도 따라 일어났다. 케이가 내 팔짱을 꼈는데 발이 살짝 엉켰다. 가는 방향이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수한 씨, 출구는 저쪽이에요.”

“무대 뒤로 가야지. 잡스를 보고 갈 거야.”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앞으로 온갖 언론들이 우리를 경쟁자로 포장할 테니까.”

“경쟁자인 건 사실이잖아요.”

“여태까진 친구였어.”

“…….”

쪽!

“케이도 같이 가 줬으면 해.”

나는 케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 주고는 무대 뒤로 향했다.

    • *

무대 뒤로 갔지만 우리를 막는 스태프는 없었다. 쇼케이스를 준비하는 애플 직원들 중에 우리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깜짝 놀라며 잡스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똑. 똑.

“들어오세요.”

딸깍.

잡스답게 전용 대기실이 꾸며져 있었고, 노크 한 번으로 훅 하니 들어갈 수 있었다.

“잡스.”

“어어? 수한!”

봐라, 싫어하는 얼굴이 아니잖나. 잡스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자기 위주로 가야 하는 성격일 뿐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라고 할 수 있는 워즈니악과 사내 정치 문제로 서로 관계가 멀어졌어도 줄곧 러브콜을 보냈으며, 말년에는 진심으로 화해를 얻어 내기도 할 정도로 나름 친구를 아끼는 사람이다. 겉으로 그리 보이지 않을 뿐.

“쇼케이스 잘 봤어요. 정말 멋지더군요. 한 방 크게 맞았습니다.”

“하하, OS는 제품의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OS란 그런 겁니다.”

“싸우려고 온 건 아닙니다.”

“스마트 클라우드 사업부 문제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말아요. 내년 말까지는 깔끔하게 정리할 테니까요.”

“그리해야죠. 파이오니어 보안 서킷은 알아서 해결하세요. 사업부 정리하면 라이선스도 끊길 테니, 보안 문제로 애플 이미지 구기지 말고요.”

“하하하. 그 못지않은 걸 개발할 테니 걱정 마시고.”

나와 잡스의 대화에 옆에서 케이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농담처럼 웃으면 말하지만 내용 자체가 날이 서 있었으니까 말이다. 상관없다. 원래 잡스의 대화법이 이런 식이다.

“바쁘죠? 이렇게 찾아온 건 사진이나 한 장 찍어 둘까 해서요.”

“오, 사진이라니요?”

“내일부턴 기자들이 우리 둘 사진을 으르렁대는 꼴로 편집할 테니 웃으면서 찍은 사진 한 장은 가지고 싶어서요.”

“하하, 좋군요.”

잡스를 중앙에 세우고 케이와 내가 양옆으로 서서 어깨동무를 하며 셀카를 찍었다.

“아이, 웃어야죠, 잡스!”

“그럼 웃어 볼까요. 자고로 미인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입니다!”

“그럼 찍습니다.”

찰칵! 찰칵!

내가 가져온 노트 K와 탁자 위에 얹힌 아이폰으로 번갈아 가며 찍었다. 우리 둘은 호쾌하게 웃고 있는데 오히려 잘 웃던 케이가 어설픈 표정을 했기에 몇 번이고 다시 찍었다.

“잡스, 안드로이드와 호환시킬 생각은 없겠지요?”

“Never(절대 없어요)!”

“안드로이드가 세상을 뒤덮을 겁니다.”

“Never(절대 그럴 일 없어요).”

잡스에게 여지를 주고자 말을 했는데 단호한 답이 되돌아왔다. 역시 고집불통이다.

“으흠….”

“AP 때문에 그러나 본데, 애플은 내년에 독자적인 AP도 개발할 겁니다. 나와 멀어진 걸 후회하게 될 겁니다.”

“스마트 클라우드의 AP를 넘어설 회사는 없습니다. 퀄컴도 내 자회사나 마찬가지고요.”

“하하, AMD라면 다르지요. 수한 못지않은 반도체의 천재도 합류했고.”

내 말에 울컥했는지 잡스가 새로운 AP 메이커로 AMD와 협업할 거라고 말했다. 인텔과 사이가 좋지 않은 잡스라면 AMD라는 대안밖에는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반도체 천재라는 말에 살짝 심장이 떨렸다.

“혹시 짐 켈러?”

“음… 어떻게.”

“그런 괴수를 끌어들이다니 반칙인데요?”

“하하하, 탐내지 마세요. 이미 우리 편이 되었으니까요.”

짐 켈러는 내가 아무리 찾아도 끝내 발견하지 못한 인재다. 몇 년 내로 AMD에 합류할 것이라는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기다리고 있었건만, 어떻게 잡스가 그 사람을 미리 알게 된 거지? 짐 켈러는 반도체 공학자 사이에선 괴수 또는 외계인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AMD의 수석 설계자 자리를 차지하자마자 64비트 시대와 멀티코어 프로세서 개발의 핵심이 되는 기반 기술을 만든 사람으로, 컴퓨터 CPU 역사는 짐 켈러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다.

그런 괴수가 AP를 만들어? AP의 다른 말이 모바일 CPU이니까 짐 켈러는 1년 정도면 매우 성공적인 AP를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애플 OS 엔지니어들이 같이 협업을 한다면… 어후, 식은땀이 흐른다.

“수한 씨, 이런 분위기 견디질 못하겠어요. 저는 나가 있을 테니 차로 와 줘요.”

“알았어, 케이.”

내 표정을 살피던 케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긴, 케이에게 익숙한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서로 웃는 표정으로 상대의 옆구리를 툭툭 찌르는 대화는 그녀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케이를 토닥거리며 대기실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여전히 사이가 좋군요. 아이는 아직인가요?”

잡스는 불쑥 개인적인 얘기로 돌아선다. 더 이상 정보 누출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네. 아직이에요. 곧 가져야죠.”

“미리 축하하죠. 출산 때는 회사로 선물도 보낼 테니 잘 써 줘요.”

잡스답지 않게 부드러운 말까지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10년 전의 잡스를 알고 있던 양반이라면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리라. 나는 잡스의 미래를 잠시 헤아려 보았다. 2011년에 세상을 등지니까 앞으로 딱 9년 남았다. 아마 이때쯤 자기 몸의 시그널을 파악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론 2004년인가 췌장암 수술도 받는다.

“잡스답지 않게 선물이라니… 내 아이에겐 잡스가 좋은 아저씨로 기억되겠군요.”

“하하, 낯간지럽군요.”

“몸도 약간 축난 것 같고,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죠?”

“…수한에겐 그리 보이나요?”

잡스는 살짝 놀라는 표정을 했지만 건강에 대해 말을 잇지는 않았다. 이번 생에도 발병을 했군 싶다. 하긴 내 나비효과로 달라질 사안이 아니잖나. 췌장암인데.

“개인적인 얘기를 하기에 말을 보탰을 뿐입니다.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서요.”

“멋진 경쟁을 해 보자고 하면 그뿐이죠. 내가 먼저 말하죠. 멋진 경쟁을 해 봅시다.”

“네, 그러죠. 멋진 경쟁을 해 봅시다.”

“건강 조심하고요. 나를 이기겠다고 밤샘하다가 쓰러지면 곤란하니까.”

“외려 내가 할 말입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잘 가요.”

“그럼….”

나는 잡스와 악수를 하고는 헤어졌다. 언제 이런 자리를 다시 마련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몇 년 내에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잡스를 좋아하긴 참 좋아하나 보다. 굳이 그가 활짝 웃는 사진을 같이 찍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찾아오다니.

“그래, 멋진 경쟁을 해 줘야지. 그리 해 줘야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표회장을 빠져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 케이가 이미 리무진을 주차시켜 놓았다.

딸깍.

“이제 끝난 거예요?”

“응, 미안해. 사진만 찍고 나오려고 했는데 말이 길어졌어.”

“휴우, 저는 불편해서 혼났어요. 둘은 잘도 그런 분위기를 즐기더군요.”

“하하, 즐긴 건 아니야.”

케이는 내가 사진 때문에 방문했다는 걸 믿지 않는 눈치다. 진심인데 말이다.

“근데 짐 켈러가 누구예요? 위협적인 인물이에요?”

“응, 괴수야. 반도체 괴수. 천재를 넘어선 인물이지.”

“그럼 스카우트해야죠. 지금이라도 말이에요.”

“잡스도 돈은 많아. 그리고 그게 그 사람의… 쩝.”

원래 역사대로 흘러갔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나도 당황하긴 했나 보다. 말실수를 할 뻔했다.

“그게 그 사람의 뭐요?”

“그 사람은 CPU 전문가라 스마트 클라우드보단 AMD를 선호할 거야. 나는 그 양반이 대충 어떤 설계를 할지도 알 것 같아.”

“오호, 수한 씨가 어떻게 알아요?”

“난 알아. 당신 남편도 괴수잖아.”

“괴수가 뭐예요, 천재죠. 아주 잘생긴 천재!”

“하하, 케이가 나한테 잘생겼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어. 제 눈에 안경이라고.”

“에에, 사실인데요.”

케이가 털어놓길 처음 나를 봤을 때부터 외모에 반했다고 했다. 훤칠한 키에 사람을 뚫어 볼 것 같은 눈빛에 푹 빠져 버렸다고 말이다. 첫눈에 반한 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금 케이의 눈에 콩깍지가 씐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자, 출발하지.”

“수한 씨, 저녁은 호텔 말고 밖에서 먹어요. 호수 옆에 멋진 식당을 예약했어요.”

내가 리무진 마이크를 열어 운전기사에게 말하려고 하니 케이가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호텔에 앞서 갈 곳이 있었다.

“그럼 일정을 좀 바꿔야겠네. 산호세로 가야겠어.”

“산호세? 캘리포니아요?”

“응. 오늘 밤은 공항 근처에서 묵고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면 안 될까? 저녁은 공항 근처에서 야식으로 대신하고. 어때?”

“오오, 좋아요. 왠지 로맨틱하잖아요.”

“뭣 때문에 가는지 안 물어?”

“무슨 상관이에요. 수한 씨랑 같이 여행 간다는데.”

케이는 활짝 웃으며 리무진 뒷좌석에 풀썩하고 몸을 파묻었다.

삑.

“공항 근처 호텔로 가 주세요. 가는 길에 식당이 있으면 들러 주시고요.”

“옙.”

마이크 스피커에서 짧게 대답이 흘러나왔다. 차가 스르릉 미끄러지더니 곧장 하이웨이에 올라탔다. 시카고 특유의 겨울 냄새가 히터를 타고 차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느낌이다.

“아까 잡스랑 둘이 얘기하면서도 MS 얘기는 전혀 하지 않던데, 경쟁자로 여기지도 않는 거예요?”

“윈도우폰은 케이도 봐서 알잖아. 이도 저도 아니라고. 특색이 없어. 윈도우폰 자체는 노트 K에 비할 바가 아니고 윈도우 시스템끼리 호환시키는 것도 애플처럼은 하지 못할걸.”

“그래도 중국 공장에서 대량 양산을 하잖아요. 물량 밀어내기는 마케팅 중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요.”

“이번엔 달라. 너무 출혈이 클 거야. 결국 중국 공장도 애플한테 내놓게 될걸.”

“허억! 정말요?”

내가 예견한 미래는 정확히 들어맞을 거다. MS의 행보는 내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화면 구성조차 원래 역사에서 말아먹었던 그대로였다.

그에 반해 잡스의 행보는 만만찮다. 짐 켈러의 영입으로 안드로이드 진영이 구축되기도 전에 애플 진영에 내 제품이 압살당할 수도 있다. 지금이야 노트 K가 현존하는 IT 기기 중에 넘사벽이지만 AP를 개조하고 나오는 차세대 아이폰은 분명 노트 K 못지않을 거다. 시간이 불과 1년밖에 안 남았다.

여태 스마트 클라우드, 파이오니어, 그리고 용인밸리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애플의 초기 클라우드 생태계는 소비자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게 될 거다.

잡스가 반도체 업계의 괴수를 영입했다면, 나는 시스템 업계의 괴수를 영입해야 한다. 다행히 나는 또 다른 괴수가 산호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괴수를 잡스가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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