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으….”
나는 시중쉰의 손을 잡고 물었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손이다. 이 상무가 나 대신 시중쉰의 입에 귀를 가져다 댔다. 쥐어짜 내듯 속삭이는 시중쉰. 대체 죽어 가면서까지 내게 남길 말이 무엇이기에 그러나.
“으으으… $%^@#$^&”
말을 듣던 이 상무는 뭐라고 통역해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다.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흰 돌을 보태 달라고 하십니다.”
중국인다운 유언이다. 얘기를 나눠 왔던 이들만 알 수 있는 중의적인 말로 뜻을 전한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회답을 했다.
“저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것이며, 아드님은 중국 최고의 권력자가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하겠습니다.”
이 상무는 통역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죽어 가는 양반에겐 말투에서 묻어나는 진심만으로 충분하다. 시중쉰은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시중쉰은 모든 기력을 다 썼는지 내 말을 듣고는 조용히 잠들었다. 시진핑은 곡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병석을 지켰으니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듣고 싶은 말도 다 들었으리라. 조용히 흰 면포를 얼굴까지 덮고는 방을 빠져나왔다.
“아우님, 고마우이. 아버님을 편하게 가시게 도와준 이 은혜는 진실로 잊지 않겠네.”
“시 선생님의 유훈을 따르신다면 이번 장례식에 상하이파의 후계자들을 대거 참석시키시고, 그들 앞에서 차기 주석이 누가 되더라도 급격한 권력 이동은 없어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하십시오.”
“상하이파에 줄을 서라는 말인가?”
“아닙니다. 후진타오 파벌에는 뇌물을 주시죠. 제가 천만 불을 지원하겠습니다.”
“결국 양쪽 모두에 줄을 대라는 거군. 아우님이 보기에도 내 지지기반이 시원찮다는 뜻이겠군.”
시진핑은 참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재 뚜렷한 지지 기반이 없다는 것이 형님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일단 정계 진출의 첫 번째 단추는 검은 돌인 척하시는 겁니다. 흰 돌임은 나중에 밝히셔도 무방하죠.”
“허약한 지지기반이 나의 무기라.”
원래 역사에서 시중쉰의 장례식장은 차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뽑는 자리처럼 되어 버린다. 서로 적대시하던 장쩌민 주석의 상하이파와 차기 주석인 후진타오의 공청단이 한자리에 모이는 유일한 자리였으니까.
이때 시진핑이 취한 행동이 어땠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쪽 파벌 모두 시진핑을 자기편으로 인식하고 정치판에 그를 끌어들였다. 중국 최고의 권력 집단인 일곱 명의 상무위원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허수아비로 쓰려고 했는데 외려 최고 권력자가 되어 버린 격이다.
“일단 진출하시고 하나씩 제거하십시오. 걸고넘어질 부정부패야 차고 넘칠 것 아닙니까.”
“나는 깨끗할 수 있겠나?”
“제 돈은 깨끗합니다.”
“내가 대가를 챙겨 줘야 하지 않겠나? 완전히 깨끗하긴 힘들 거네.”
“아닙니다. 대가는 제가 알아서 챙길 테니 형님은 중국 경제 활성화에 원론적인 말씀만 하십시오. 적당한 때에 방향만 살짝 틀어 주시면 됩니다.”
“적당한 때에 방향만 살짝 틀어 달라…. 내게 할 말이 많겠군.”
“일단 큰일부터 치르고 때가 되면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추도식까지 함께해 주겠나?”
“제가 외려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
“고마우이.”
중국의 장례 문화는 생각보다 매우 간소하다. 문화 혁명 이후로 화장이 일반화되었으며 모든 장례 절차가 추도식 하나로 합쳐졌기 때문이다. 추도식이 진행되기 전 손님맞이가 하이라이트다. 중국 공산당 8대 원로의 죽음답게 정치인들이 무수히 참석했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상주인 시진핑은 고위 정치인들이 오면 따로 자리를 안내하며 시중쉰의 유언을 빙자해 내가 제안한 정치적인 대화를 조곤조곤 풀어냈다.
“인사하시게. 원자바오 님일세. 차기 총리가 되실 분이지.”
“안녕하십니까.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 뭐라 인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하, 그대 얘기는 간혹 들었습니다. 중국 통신 산업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말입니다. 시중쉰 선생이 그리 아끼셨다는데.”
원자바오 차기 총리는 유순한 사람으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시진핑은 이 양반이 내게 필요한 사람임을 알고 인사를 시켜 줬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기여했다기보다 중국 지도자분들께서 혜안이 있으신 거지요. 통신 사업이 중국의 미래임을 아셨던 겁니다.”
“최근 스마트폰이라는 걸 개발하셨다고요. 아시아인의 위상을 드높여 줘서 감사합니다.”
“그 또한 과찬이십니다. 정말로 아시아의 위상을 드높이려면 중국에 공장을 세워야지요. 중국은 아시아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나는 듣기 좋은 말을 연신 늘어놓았다. 중국인은 이런 말을 아부라고 느끼지 않는다. 진심으로 자신들이 세계 중심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직 세계 최강 대국이 못된 것은 서구 열강의 침탈 때문일 뿐 조만간 중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이다.
“오, 한국분이 그런 말씀을 하다니 감동입니다.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는데 누가 발목을 잡습니까? 아마도 상하이파가 그러겠지요? 내가 해결해 주리다.”
“말씀만 들어도 뭐라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스마트폰 조립 공장을 중국에 세우고 싶지만, 우려되는 바가 있어서….”
“우려되는 바라니요.”
“제가 시진핑 님과 의형제 사이라 특혜를 받았다는 오해가 있을까 봐 우려됩니다.”
“어허, 그런 우려를 왜 하십니까? 후진타오 님께서 주석이 되면 경제 발전과 정치는 엄격히 분리하실 겁니다. 걱정 말고 투자하십시오.”
원자바오는 정경 분리의 원칙을 들이밀었지만 어이없는 소리다. 중국에서 정경 분리는 수십 년이 지나도 한 치도 개선되지 않는다.
“제 아우는 사업가이지만 아주 깨끗한 사람입니다. 솔직히 특혜를 바랄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그러질 않았지요. 그러니 우리 일가로 받아들인 겁니다.”
옆에서 시진핑도 같이 손뼉을 쳐 준다.
“어허, 그래도 중국에 투자하겠다는 분을 억지로 막아서야 되겠습니까? 뭔가 방법을 찾아야지요.”
원자바오는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이 정권이 꾸며지면 돈은 한정 없이 필요하게 될 터이고 나 같은 대형 물주를 눈앞에 두고 포기할 리가 없다.
“그럼 특혜가 되려야 될 수 없게 하면 어떨까요? 다행히 최근 윈도우폰이라는 것도 등장했으니 마이크로 소프트를 비롯해 일본과 대만 업체도 새로운 공장이 필요할 겁니다. 중국 시장이 아주 크니 저를 비롯해 그들도 끌어들이시는 게 어떤지요? 공장이 여러 개 세워지면 제 공장만 특혜라는 오해가 생길 리도 없고, 일자리도 많아지고, 중국 내수용 제품 가격도 싸질 테니 일석삼조가 아닙니까.”
“오호라!”
“역시 내 아우다운 제안이구려.”
나는 드디어 하고 싶은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원자바오 차기 총리가 하도 자연스레 판을 깔아 주니 말이 술술 나왔다. 그동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중국에 스마트폰 조립 공장이 세워지면 반도체는 어디서 수입하겠나? 당연히 미국보단 가까운 한국이지. 그렇다면 스마트 클라우드의 반도체가 메인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중국에서 반도체를 수입하는 전자상거래 시스템도 내 것이니까.
빌 게이츠도 싼 인건비와 부지마저 공짜인 중국 공장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공장을 세우면 가성비가 뛰어난 내 반도체를 쓸 수밖에 없을 테고.
중국에 다국적 기업의 공장들이 세워지면 중국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고 알리바바 주식도 크게 오를 것이다. 드디어 나의 그림이 완성되어 간다.
나는 그 뒤로 인사하는 정치인들마다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시진핑은 나 같은 물주를 아우로 두고 있다는 것을 계속 광고해 댔고 말이다. 정치적 기반이 없는 사람이 대형 물주를 아우로 두고 있다면 누구나 욕심을 내지 않겠나. 시진핑은 자신을 눈먼 쌈짓돈으로 잘 포장해 가고 있었다. 하늘나라로 간 시중쉰은 자신의 장례식으로 이런 기회가 만들어진 것을 보고 흐뭇하게 웃어 댈 것이다.
‘편히 가세요, 시중쉰 선생님. 잘될 겁니다.’
나는 화장장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명복을 빌었다. 연기는 너울거리며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