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장 포효하는 호랑이 (87/104)

제3장 포효하는 호랑이

웅성웅성.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서는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어 달 전부터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던 광고판이 수십 초 후에는 드디어 Zero가 되기 때문이다.

“5, 4, 3, 2, 1, 0!”

누군가 장난스럽게 카운트다운을 했고,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전광판에는 휘리릭 하고 스마트 클라우드와 애플의 로고가 번갈아 반짝거리더니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2001년 5월 1일! 세상에 스마트폰이 출시되다!」

스마트폰이라는 단어가 반짝거리더니 직사각형의 무언가로 화면이 바뀌었다. 휴대폰인지 아이팟인지 헷갈리는 제품이었다. 대체 스마트폰이라는 게 뭐길래 버튼도 없고, 조그셔틀도 없는 직사각형 디스플레이만 덩그러니 있는 걸까 싶었다.

같은 시각, 시카고 컨벤션센터에서는 때아닌 쇼 케이스가 벌어지고 있었다.

    • *

“신사 숙녀 여러분, 그리고 IT 전문가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로고와 스마트 클라우드 로고가 번갈아 나오는 대형 스크린 앞에서 감격스러운 말투로 발표를 시작했다. 잡스는 드디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에 흰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그는 단상의 중앙에서 잠시 멈춰 서더니 단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나와 눈을 맞췄다. 스마트폰의 출시를 알리는 첫 발표 자리를 자신에게 양보한 나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이제야 환란 때 빌렸던 70억 불에 대한 보답을 어느 정도 한 것 같아 나 또한 마음이 가볍다.

“살다 보면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이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꿔 놓습니다. 이 세상의 누가 되었든 그런 혁신적인 제품을 하나라도 만들어 낸다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겠죠. 그런데 애플은 정말 운이 좋게도 그런 혁신적인 제품을 하나도 아닌 몇 개씩이나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짝짝짝짝짝!

청중이 스티브 잡스에게 박수부터 보냈다. 화면에는 그간 애플이 내놓았던 혁신 제품이 스크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4년 매킨토시 컴퓨터, 이 제품은 애플뿐 아니라 컴퓨터 산업 전체를 통째로 바꿔 놓았습니다. 고급 엔지니어의 전유물이었던 컴퓨터를 개인이 사용하게 되었으니까요. 1998년에는 아이팟을 선보였습니다. 이 제품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음악 산업을 통째로 바꿨지요.”

짝짝짝짝짝!

사람들은 아이팟의 개발자로 은근슬쩍 애플이 언급될 때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찌 되었든 스마트 클라우드와 컬래버한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니까 말이다.

“오늘은 이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무려 세 개나 선보이려고 합니다.”

“오오오오!”

“첫 번째로는 터치로 조작할 수 있는 와이드스크린 아이팟입니다.”

“터치!”

“두 번째로는 혁신적인 휴대폰(Revolutionary Mobile Phone)입니다.”

“와우!”

삐이이익!

누군가 휘파람까지 불어 댔다. ‘역시 휴대폰을 발표하는군!’ 하면서 말이다. 요즘 휴대폰은 IT 전문가들에겐 언제나 핫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블랙베리 대항마를 출시하는 거야!’ 하는 소리도 들린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획기적인 인터넷 통신기기(Breakthrough Internet Communicator)입니다.”

짝짝짝짝!

세 번째 제품을 소개할 땐 첫 번째, 두 번째와 달리 환호성이 크지 않았다. ‘또 인터넷 기기야? 와이파이는 이미 있잖아.’ 하는 반응이었다. IT 전문가를 모아 놓은 쇼 케이스다웠다.

“자! 정리해 보죠. 아이팟! 휴대폰! 인터넷 통신기기!”

“아이팟! 휴대폰! 인터넷 통신기기!”

“아이팟! 휴대폰! 인터넷 통신기기!”

잡스는 세 단어를 계속 반복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같은 말을 반복하지 하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잡스가 손을 빙글빙글 돌려 가며 반복하자 그제야 알아채는 사람이 나왔다. 휘파람을 삐이익! 불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이 세 가지 제품을 완벽하게 하나로 녹였죠. 우린 그걸 스마트폰이라고 부릅니다. 진정 미래 지향적이며 스마트한 제품이죠. 애플과 스마트 클라우드는 오늘을 휴대폰을 재발명한 날로 선포합니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 짝짝짝짝!

청중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스티브 잡스의 등 뒤에 있는 메인 스크린에 스마트폰을 다루는 영상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인터넷 브라우저 아이콘을 눌러 파이오니어에 접속해서 스타크래프트 VOD를 다운로드받고, 화면을 옆으로 돌려 가로 화면을 즐기다, 순간 정지를 해서 줌인과 줌아웃을 자유롭게 하며, 화면의 막대 버튼을 잡아끌어 스피커 볼륨을 키웠다가, 어느 순간 스크린에 터치 키보드를 띄워 친구에게 이메일을 써서 날리는 동작을 순식간에 해 댔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나?

“와우! 혁신이야, 혁신! 블랙베리를 뛰어넘는 제품은 없을 거라고 누가 그랬어!”

잡스가 상세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청중의 환호성이 잦아들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케이, 손이 생각보다 예쁜데?”

“생각보다라니요, 수한 씨. 생각만큼이겠죠. 호호호.”

손가락 모델을 해 준 케이가 내 옆에서 한껏 웃어 댔다. 내가 이 제품은 0.5초마다 한 대씩 팔리게 될 거라고 했는데, 그녀도 이제 내 말을 확신하는 듯하다.

“타사가 발명했다는 최신형 휴대폰은 혁신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아깝습니다. 인터넷은 유아용이나 다름없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키보드가 달려 있지요. 모두 쓸데없는 잡동사니에 지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버튼만 계속 늘려 갈 뿐이죠.”

잡스는 본격적인 기술 설명에 앞서 그간 참았던 힐난을 미친 듯이 토해 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그의 말은 100% 진실로 여겨졌다.

    • *

이례적인 5월의 쇼 케이스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불과 일주일.

「역대 최고의 컬래버레이션. 스마트 클라우드의 하드웨어와 애플의 소프트웨어가 휴대폰을 재발명하다」

「인간의 손가락이야말로 혁신적인 UI, 더 이상의 것은 필요 없다」

「스마트폰은 적어도 타사 대비 5년 이상 앞선 기술의 집합체」

미국과 한국은 당연하고, 전 세계 주요 IT 잡지는 모두 스마트폰에 대하여 특집 기사를 실어 댔다. 제품명이 진짜로 스마트폰이다. 나는 퓨처 K 또는 스마트 K라는 모델명을 쓰고 싶어 했고, 잡스는 아이폰이라는 모델명을 쓰고 싶어 했기에 중립적인 스마트폰이라고 정한 거다. 그 결과 스마트폰이란 이름을 선점하게 되었다.

“회장님 말씀대로 정말 올해 2천만 대를 돌파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30만 대가 계약되었습니다. 우습게도 미국 버라이즌이 고객입니다.”

“벌써 블랙베리 연합이 와해되고 있는 건가요?”

“정확히는 블랙베리 S입니다. 출시 6개월을 기념해 스페셜 컬러 에디션을 내놨는데, 버라이즌이 블랙베리를 버리고 스마트폰을 발주했습니다.”

“통신사야 고객이 원하는 단말기를 팔아야죠. 하하하하!”

권 부장은 내게 보고를 하면서 슬쩍슬쩍 삐져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케이는 스마트 스토어에 쏟아지는 러브콜을 감당하지 못해 미국으로 직접 날아갔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판권 계약을 연장해 준 내게 감사 전화를 몇 번이나 해 왔다.

원래 역사보다 훨씬 더 대단한 반응이다. 반도체 치킨게임으로 제품 가격이 일제히 하락하고, 퓨처폰으로 인터넷 기반이 확고해진 데다 퓨처폰 보상 판매를 경험한 고객들이 ‘이번 보상 판매는 놓치면 안 돼!’ 하면서 보상 판매 사이트가 폭주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퓨처폰과 달리 모든 통신사에 납품되기에 보상 판매는 K폰에 한해 10만 원 한도인 걸 감안하면 내 예상마저 뛰어넘는 반응이었다. K폰과 블랙베리가 경쟁하며 스마트폰 시장의 파이 자체가 훌쩍 커져 버린 것이다.

“나운영 부장에게 라인을 풀 캐퍼로 돌리라고 하세요. 수주액이 우리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것 같습니다.”

원래 역사에선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 한 달째에 100만 대가 팔렸고, 1년에 걸쳐 2천만 대를 팔았다.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 만에 100만 대 가까이 팔았다. 주요 통신사들이 열렬하게 반응하고 있는 게 심상찮다. 더 팔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안 그래도 나 부장이 힘들어 죽겠다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블랙베리가 여태껏 500만 대를 팔았다고 대박이라고 하는데, 그건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지요. 우린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하하하하.”

    • *

같은 시각, 신성전자 대회의실.

커다란 회의실에 이희건 회장, 이수학 비서실장, 진제대 상무, 셋만 앉아 있었다. 휴대폰 판매 실적, 스페셜 에디션 판매 예상, 경쟁사 현황, 기술 개발 현황 등등 주요 의제별로 담당자 발표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 회장은 듣다 말고 회의를 중간에 종료시켜 버렸다.

상황이 어찌 이렇게 단박에 악화될 수 있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회장 주관의 회의가 중간에 파투나는 경우는 신성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봐, 진 상무.”

“예, 회장님.”

“아까 국내 영업 쪽에서 발표한 자료 다시 띄워 보게. 보다 만 녹화 화면 다시 틀어 봐.”

“예….”

진 상무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영업팀이 발표를 하다가 파투나 버린 ‘스페셜 에디션 판매 현황 및 예상’이라는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발표 자료 초반부에 동영상이 링크되어 있었다. 전체 화면으로 띄우니 자동으로 플레이가 된다.

-고객 여러분, 스페셜 에디션은 예약 판매입니다. 반품이 안 됩니다.

-왜 반품이 안 돼? 구매한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품질 불량도 아니고, 단순 변심이시지 않습니까? 반품은 불가합니다.

-뭔 개소리야! 쓸 수가 없는데 무슨 단순 변심이야. 박스까지 다 챙겨 왔으니까 반품해 달라고!

-안 됩니다. 개봉하시면 단순 반품은 안 된다고 여기 적혀 있지 않습니까!

-아니, 제대로 된 물건을 팔아야지. 화면 회전도 안 돼! 확대, 축소는커녕 스크롤도 안 돼! 아이콘 입력도 안 돼! 터치 게임도 안 돼! 이따위 물건을 60만 원이나 주고 팔아? 얼마나 쓸모가 없으면 스마트폰 살 때 보상 판매로 받아 주지도 않아!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블랙베리 스페셜 에디션을 팔고 있던 대리점에서 녹화된 동영상이었다. 영업팀은 이미 현 상황은 마케팅의 문제가 아니라며 상황 자체를 가감 없이 보고했었다. 다시 봐도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스마트폰을 살 때 보상 판매도 안 되는 기종이라는 말에 이 회장은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기까지 했다.

“대체 스마트폰이 뭐길래 저런 일이 벌어지는가?”

“여기 샘플이 있습니다.”

이미 회의실에는 경쟁사 현황 발표에 쓰려고 가져다 놓은 스마트폰이 있었다. 이 회장은 애써 스마트폰을 폄하해 보려고 했지만 흠잡을 것이 없었다.

손가락 터치는 기계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어도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버튼 하나 없이 전면에 깔끔하게 배치된 화면은 심플함을 벗어나 완벽하게 고급스러웠다. 스마트폰을 본 뒤에 자신의 블랙베리를 보니 작은 버튼들이 조잡하고 징그럽까지 했다.

이 회장 자신이 이럴진대 소비자들이야 어련하겠는가? 내장 카메라며, 메모리며, 배터리 탈착이며 기타 부가적인 것은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툭.

“진 상무, 우린… 아니, RIM사나 MS에는 이런 기술이 없나?”

“송구합니다. 감압식 터치스크린은 일부 상용화가 되어 있습니다만, 이렇게 경질의 유리판 위에서 작동하는 제품은 없습니다. 신성의 엔지니어들이 정전식 터치스크린 같다고는 합니다만, 작동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작동 원리조차 이해를 못 해?”

“LCD 위에서 작동시키는 게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이해도 못 하는 저급한 엔지니어들이 업계에서 최고 연봉을 받고 있나?”

“…….”

스마트 클라우드의 연봉에 맞췄을 뿐이지 않나? 하고 반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진 상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았다. 진 상무는 이건 기술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며 항변하고 싶었다. 이런 혁명적인 제품은 보통의 노력이나 기술개발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천재적인 공학 지식과 천부적인 디자인 감각 등등, 유수한 회장과 스티브 잡스 같은 이들이 만나야 탄생할 수 있는 특별한 제품이라고 말이다.

“이수학 비서실장, 영업팀이 뭐라고 보고를 해 왔다고?”

“RIM사가 하반기 물량인 500만 대 발주를 취소했다고 합니다.”

“선행 생산한 물량이 얼마나 된다고?”

“200만 대를 이미 만들어 뒀습니다. 두 달 치 물량은 선행 생산하는 것이 관례인지라….”

“손해가 얼마 정도인가?”

“판가로 치면 1조가 넘고, 원가로 치면 대략 6,700억 정도입니다.”

“비싼 쓰레기를 만들었구먼. RIM사나 MS가 고통 분담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통신사에 밀어내는 건 어떤가?”

“통신사들은 이미 발을 빼고 있고, RIM과 MS는 차기 제품을 노려 보자며 현 재고 판매까지만 마케팅을 이어 가겠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출시한 지 채 한 달도 안 된 제품인데 재고가 되어 버렸어? 그것도 6,700억짜리 초대형 재고가 말이야. 허허허허허.”

이 회장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끝없이 이어 갔고, 진 상무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딱히 뭔가 방법이 있어야 고개를 들지.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허허허허, 죄송할 게 뭐 있나? 자넬 믿은 내가 바보지. 허허허허.”

“죄송합니다.”

“허허허허, RIM사에 마케팅 비용까지 대납하는 굴욕적인 납품 계약을 맺고, MS엔 신성전자의 지분 3%까지 줬는데 결국 이 모양이야. 신성에 이런 위기가 있었던가. 하하하하!”

이 회장의 반응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크게 웃고 있는 이 회장을 보고 있자니 스멀스멀 공포가 몰려왔다.

텅!

“자네!”

“예, 회장님.”

진 상무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거 해결해!”

“회장님, 이거 기술적으로….”

“해결해! 해결하라고! 금년 내로 따라잡으란 말이야. 기술을 베끼건 훔쳐 오건 유수한 그놈에게 사 오건! 해결하란 말이야.”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 상무도 정말 굴욕적이었다. 평소 기술적으로 꿀릴 것이 없다고 자부했는데, 스마트폰을 보고서는 호랑이 앞에 꼬리를 내린 강아지가 되었다.

“이수학 자네!”

“예예!”

“최대한 스마트 클라우드의 발목을 잡아. 진 상무에게 시간을 벌어 주란 말이야! 알겠나?”

“예! 예!”

이수학 비서실장은 연신 허리를 굽혔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신성에서 탈출할지 궁리하고 있었다. 이 회장마저 천지 분간을 못 하는 마당에, 달리는 호랑이의 발목을 어찌 잡나?

이 회장은 어찌나 소리를 질렀던지 뒷목을 붙잡고는 한참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수학 비서실장을 노려보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비서실장, 왜 잠자코 있는 건가?”

“예?”

“대안을 내놔야지, 당신 같은 꾀주머니가 말이야.”

비서실장은 비로소 자신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문제에 부딪치면 언제나 대안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해 왔잖은가. 즉흥적이지만 즉흥적이지 않은 듯 말이다. 신성의 미래야 어쨌든 이 상황부터 모면해야 한다. 몇 초에 불과했지만 머리를 있는 대로 굴렸더니 이 회장의 눈을 돌릴 방법이 생각났다.

“그보다 전환사채가 문제입니다.”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스마트그룹의 발목을 잡을 방법을 말해야지.”

“지금 우리가 코너로 몰린 것은 유동 자금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전환사채의 만기가 연말로 다가오니 이에 대한 대책과 스마트그룹의 발목 잡기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활로가 생깁니다.”

이 회장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해피랜드 전환사채는 그룹 승계를 위해 강제로 평가 절하되어 있는 돈이다. 은행이 액면가 그대로 처분하게 되면 정말로 큰일이다.

“으흠, 이자를 더 쳐주는 한이 있어도 만기 연장을 하도록 해.”

“환란 이후로 은행들도 이제 연말에 자산 적합성 검증을 합니다. 만기 연장을 해 주지도 않을뿐더러 연말에 담보 평가를 다시 하기 전에 전환사채는 반드시 회수를 해야 합니다.”

“블랙베리에 올인했던 게 너무 타격이 크군.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계열사라도 매각하자는 건가? 아니면 신성 사옥이라도 팔자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부동산보다는 계열사가 좋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 계열사를 팔아? 여기서 주가를 더 폭락시키고 싶은 건가?”

이 회장의 말투가 오늘따라 과격하다. 비서실장과의 대화가 이처럼 마음에 안 들기는 처음이었다. 계열사를 파는 것은 유동 자금이 말랐다는 것을 나라 전체에 광고하는 꼴이다. 게다가 신성그룹은 최근 몇 년간에 걸쳐 조직을 축소하고 양질의 계열사만 남겨 놓았다. 이런 판국에 계열사를 매각하자니, 이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뜻이 아니라 팔기는 팔지만 팔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계열사가 있습니다.”

“팔지만 팔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환란의 전리품으로 받으신 서우자동차와 이룡자동차는 현재 인수 합병을 마무리하는 단계이지요. 그걸 파시면 됩니다.”

“……!”

이 회장은 눈이 번쩍 뜨였다. 자동차 산업이 신성의 미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신성전자도 흔들거리는 판국이다. 다른 계열사라면 속이 쓰리고 아프겠지만, 자동차야 없던 셈 치면 되는 일 아닌가. 게다가 누구에게 팔아야 할지도 뻔했다. 지금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우후죽순 자라나고 있잖나? 기술과 특허에 잔뜩 목이 말라 있으니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중국에 팔자! 그 말인가?”

“예, 심지어 회계 장부도 맘대로 꾸밀 수 있으니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이수학은 말을 하다 보니 원래 그렇게 작전을 짜고 있었던 양 대책이 술술 나왔다. 스마트그룹의 발목을 잡으며 시간을 버는 것보다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해서 버티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자네, 분식 회계라도 하겠다는 건가?”

“분식 회계이지만 그건 서우자동차와 이룡자동차의 회계 장부입니다. 명목적으로 최종 부도를 내고 인수합병을 하는 것이 관례이니 자산가를 부풀려 팔아 버리고 장부는 폐기 처분하면 됩니다. 못해도 2조는 받을 테니 전환사채 8천억도 회수하고, 치킨게임에서 버틸 자금도 생길 겁니다.”

“허허, 짜고 칠 인수자를 찾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군.”

“그런 측면에서도 중국 기업은 아주 적당한 고객입니다.”

“다 좋은데, 기술 유출과 고용 승계가 걸리는군. 그 두 가지는 내가 인수할 때 안고 가기로 한 건데. 어쩐다… 중국에 팔 명분이 문제야.”

중국 기업이 고용 승계를 할 리 없었다. 특허를 싹쓸이해 가고, 핵심 개발자만 중국으로 데려갔다가 기술을 쏙 빼먹고 해고할 것이며, 쓸 만한 기계는 뜯어 가고 한국 공장은 부동산으로 처분할 것이 뻔했다.

“문제의 해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스마트그룹이 신성의 자금 사정을 악화시켜 어쩔 수 없이 매각한다며 언론 플레이를 하면 되는 겁니다. 유동 자금이 말라서 처분하는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으로 자구책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좋군! 아주 좋아! 비난의 화살이 그놈에게 향하겠군! 하하하!”

짝짝!

이 회장은 그제야 표정을 바꾸며 천천히 박수를 쳤다. 최소한 버텨 낼 자금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진제대 상무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이수학 비서실장은 신성의 이미지를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는 짓을 하자는 것인데, 이 회장이 그걸 칭찬하고 있었다. 코너에 몰려 정상적인 생각을 못 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말씀 중에 송구합니다만, 스마트그룹이 또다시 그런 여론 몰이에 말려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후후후, 그건 진 상무 자네가 유수한 그놈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놈의 최대 약점이 뭔지 아나?”

“약점이라 하시면….”

솔직히 유 회장에게 약점이 있을까 싶었다.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만한 왕회장도 이제 세상에 없잖나.

“그놈은 어리고 어리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 공명심, 아니 허영심이 넘쳐 난다고!”

“아….”

진 상무는 이 회장의 말에 저도 모르게 동의하고 말았다. 허영심은 몰라도 공명심은 분명히 있었다. 천박한 말로 바꾸면 돈을 버려 명예를 얻는 호구 짓을 서슴지 않았다.

“자동차는 그놈이 내게 준 전리품이니 매각 소식에 반응을 안 할 리 없단 말이지. 심지어 세상 사람들은 그놈이 구국의 영웅이란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여기고 있어. 자동차 공장 해외 매각도 그놈이 벌이는 공격 때문이라고 하면 배신감은 한층 커질 거야. 신성마저 피해자란 말이야.”

짝짝짝!

이수학 비서실장은 이 회장의 말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진 상무도 이 분위기에 숟가락을 얹어야 했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그 비난의 화살을 스마트그룹으로 돌린다면, 블랙베리 스페셜 에디션도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으로 스마트 클라우드를 이기는 것보다 훨씬 쉬운 단기 처방이 있었다.

“회장님께서 그런 전략을 허하신다면, 블랙베리 손실 건도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 한번 물꼬가 트이니 아이디어가 번쩍이나 보군. 그래, 말해 보게.”

“블랙베리 300만 대 재고의 대부분을 한국 대리점에 밀어내는 겁니다. 하청 업체 납품 대금은 6개월짜리 어음으로 대신하고 말이지요. 결국 절반 정도는 자금 경색을 견디다 못해 파산할 테고, 비난의 화살은 고스란히 공격자인 스마트 클라우드로 갈 겁니다.”

“오호! 좋군. 스마트폰 출시를 같은 한국 기업에 미리 알려 줬으면 이런 비참한 파산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여론 몰이를 하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유수한 회장의 공명심이 꿈틀댄다면 분명 비난의 화살을 견디지 못하고 반응할 겁니다. 그럼 정말로 비열한 공격을 한 셈이라 인정하는 꼴이지요.”

진 상무는 정말로 비열한 방법이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누군가 이 아이디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런 비열한 아이디어마저 뺏기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될 뿐이었다.

“좋아, 좋아! 블랙베리 재고는 진 상무가! 자동차 매각은 이 실장이 추진토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그제야 이 회장은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둘은 이 회장이 자리를 비우자 털썩하고 자리에 앉아 축 늘어져 버렸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회장이야 이미 이성을 잃었지만 둘은 최소한의 이성은 남아 있었으니까.

“비서실장님, 어쩌자고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진 상무님?”

“미치겠네. 다 미쳤습니다. 저도, 실장님도 회장님도.”

“…….”

스마트그룹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불가능. 기술적으로 따라잡는 것도 불가능. 결국 남은 것은 진흙탕 싸움뿐임을 뻔히 알고 있었다.

    • *

스마트폰은 미친 듯이 질주했다. 모든 IT 매체에서 극찬이 쏟아졌으며 간혹 악평이 있다고 해도 비싼 가격을 트집 잡거나 애플리케이션에 버그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유명 연예인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장면도 심심찮게 방송을 타면서 비싼 가격마저 매력이 되었다.

스마트 클라우드의 이름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하자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더니 주당 40만 원을 뚫어 버렸다.

나는 안다. 이게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부터 세상은 진정한 IT 시대로 완전히 접어들 것이다.

똑똑.

기분 좋은 기사로 가득한 잡지를 읽고 있자니 뜬금없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예, 회장님.”

윌슨? 남은 스케줄은 없을 텐데. 오늘 일찍 퇴근해서 케이와 데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미국 결혼식 이후로 연인 놀이가 살짝 재미있어졌다. 일이 잘 풀리니 더욱더.

“윌슨, 무슨 일이에요?”

“기다리신 정보가 입수되었기에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하하! 드디어!”

나는 윌슨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성이 이대로 웅크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말이다. 당연히 있는 돈을 박박 긁어모아서 내게 반격을 해야지. 그리고 내 펀치에 몇 번이고 맞아서 뒷목 잡고 쓰러져야 내 분이 풀리지. 하마터면 스마트그룹이 산산이 부서질 뻔했는데 공격 한 번에 쓰러지면 외려 싱겁지.

“드디어 블랙베리의 떨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하하, 언제 콩고물이 떨어지나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군요.”

“대리점에 물량을 밀어내고 하청 조립 업체에는 어음을 주거나 제품 인수를 미루고 있습니다.”

“됐네요. 물건의 주인이 없어졌다 이거죠.”

“블랙베리 개당 15만 원 정도로 200만 대는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밀어내기에 당한 이들은 고철값이라도 받기를 원한다. 원가만 30만 원이 넘는 물건을 15만 원에 풀어도 팔릴까 말까다. 신성의 의도는 뻔하다. 대리점과 하청 업체를 파산시켜 여론 몰이를 하려는 속셈이다. 하청 업체가 파산하면 재고 손실액을 그쪽에 얹어 버릴 계획이겠지.

“모두 싹쓸이해서 북한으로 보내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종 출시가는 얼마로 하시겠습니까?”

“27만 원에 팔죠. 개당 2만 원이면 인건비와 껍데기 비용은 충분하니까. 모델명은 K-터미널 2001 정도로 해 주시고요. 개발자 몇 명 보내서 OS 싹 갈아엎으시고.”

“순익은 개당 10만 원쯤 생각하시는군요.”

스마트폰을 찍어 내느라고 핸드 터미널 제품을 찍어 낼 설비가 부족했는데 일거양득이다. 블랙베리의 부품은 기본적으로 핸드 터미널과 매우 비슷하다.

제품을 뜯어서 외형만 새로 교체하면 되는 수준이다. 카메라 모듈을 바코드 인식용으로 바꾸는 것은 최적화까지 완벽히 마쳤다. 한국에서야 제품을 뜯고 재조립하는 하청이 어렵지만, 개성공단이야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으니까.

“전량 중국에 뿌리세요. 200만 대 한정 모델로 판매한다고. 특별히 싸게 주는 거라고 권 부장보고 알리바바에 자세 좀 잡으라 하시고.”

“그리하겠습니다.”

같은 모델을 반복해서 출시할 수 없기에 A/S의 개념이 희박한 중국에 뿌려야 한다. 자그마치 순익 2000억을 공짜로 먹는 일이다. 적당한 때 언론에 노출하면 신성의 이 회장은 게거품을 물게 될 거다.

“으흐, 더 보고할 게 있나요?”

“예. 블랙베리 건도 그렇지만 계열사 매각 정보도 입수되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계열사 매각으로 유동 자금을 마련하려는 것 같습니다.”

“시장에 뭘 내놨습니까? 중공업? 건설? 자동차?”

“자동차를 내놨습니다.”

“인수자는 중국 기업이겠군요.”

“예, 상하이자동차입니다. 말 그대로 상하이방의 장쩌민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곳이죠.”

원래 역사에서 서우자동차는 GM이, 이룡자동차는 상하이자동차가 인수한다. 역사는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닌 듯하다. 신성과 상하이방은 사이가 좋았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구조 조정의 여파는 어찌 피한답니까?”

“역시나 비난의 화살을 회장님께 돌리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하하하,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같은 수를 두 번이나 두다니.”

“그놈들이 바보죠.”

여하튼 윌슨은 기존과 다르게 정보를 늦지 않게 확보해 준다. 단지 며칠만 일찍 알아도 이런 공격은 대응이 가능하다.

“신성의 음모를 언론에도 흘리고, 자동차 노조에도 흘려 주세요. 아, 청와대에도 넌지시 알리세요. 환란의 전리품을 살리라고 줬더니 팔아 댄다고 말입니다.”

“역시 국부 유출 여론은 먼저 터뜨리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죠.”

“하하, 한국사람 다 되셨네.”

“그럼 오늘 신문기자들과 여당 정치인 몇 분을 선별해서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내일 저녁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용인밸리 사장님들을 몇 분 모시기로 하겠습니다. 스케줄 괜찮으신지요?”

“내가 얼굴을 비치긴 해야겠군요. 식사는 수정각에서 하죠. 보안이 좋은 곳이니까.”

“예, 바로 예약하겠습니다.”

    • *

「스마트 클라우드, 휴지통에서 보석을 건지다」

「블랙베리를 핸드 터미널로 재활용. 이 또한 컬래버레이션인가?」

벅! 벅!

“으아아아아악! 빌어먹을!”

기사를 읽던 진 상무는 신문을 발기발기 찢어 버리고 괴성을 질렀다. 임원 사무실 밖에 있던 직원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을 정도다.

기사에는 스마트 클라우드가 블랙베리의 재고로 자금 사정이 악화된 신성의 대리점과 하청 업체를 지원하는 백기사 노릇을 했다고 적혀 있었다. 블랙베리를 뜯어 핸드 터미널의 부품을 조달해 중국에 수출했다는 것이다. 수출액은 자그마치 매출 5천억에 순익이 2천억에 육박한다고 쓰여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박 부장! 박 부장!”

벌컥!

“예, 상무님.”

어찌나 소리를 크게 질렀던지 사무실 밖에 있던 박 부장이 냅다 뛰어 들어왔다.

텅!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스마트 클라우드가 블랙베리를 싹쓸이했다니!”

진 상무는 발기발기 찢어진 신문을 양손으로 짚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그게… 저희도 깜짝 놀랐는데.”

“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요! 블랙베리를 뜯어서 핸드 터미널을 만들다니. 그게 가능한 얘깁니까?”

“개성공단에선 그게 가능한가 봅니다. 저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외형을 완전히 뜯어고친 데다 새로 깔아 버린 OS도 훌륭해서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고….”

“호평이라니! 호평이라니! 블랙베리가 어째서 핸드 터미널이 됩니까!”

블랙베리로 만든 핸드 터미널에 호평이 이어지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카메라로 바코드를 인식할 수 있다고, 에러율이 제로라고 합니다. 물건 사진을 찍어서 보낼 수도 있다고 외려 제대로 업그레이드된 제품이라고….”

“으악! 이런 생각을 왜 못 했어! 왜 못 했냐고! 이런 방법이 있는데 왜 밀어내길 했냐고!”

알고 보니 기술적인 해결책이 있었는데 그걸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원래 점잖던 진 상무가 사무실 탁자를 부술 듯 내리치고 고함을 지르자 박 부장은 고개를 숙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며칠 전엔 대리점으로 물건을 밀어내라고 하더니, 이젠 밀어내기를 했다고 지랄하잖나.

진 상무는 본인 스스로를 질책하는 중이지만 박 부장이야 그 속내를 알리가 없었다. 분노가 치솟아 정신이 혼미해진 진 상무는 연신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는 와중에 언뜻 다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이미 우리 행동을 예상했다는 의미야. 자동차 매각이며 분식 회계 건도 예상하고 있을 게 분명해!’

삐리릭. 삐리릭.

진 상무는 이수학 비서실장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신성전자 비서실입니다.

“나 진제대 상무인데….”

-예, 상무님. 비서실장님과 연결할까요?

“…….”

진 상무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 비서의 말에 잠시 머뭇거렸다. 또 다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무님?

“아, 아니에요. 나중에 다시.”

딸깍.

진 상무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곤 마저 심호흡을 했다. 혼자만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바보가 둘은 되어야 와중에 살아날 구석이 생길 것 아닌가.

    • *

서울 모처 호텔 VIP룸.

이수학 비서실장은 연일 상하이자동차와 협상을 하고 있었다. 장쯔웨이 부사장이라고 나름 상하이자동차에서 차기 사장을 노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덩치가 너무 큽니다. 분할 매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분할을 하려면 여러 손을 거쳐야 하고 계약이 지지부진해지죠. 결국 공장당 인수 비용만 오를 뿐입니다. 서우자동차와 이룡자동차를 한꺼번에 매각하는 것이 둘 다에게 득이 되지요. 서우자동차는 세단, 이룡자동차는 SUV 쪽에 경쟁력이 있으니 상하이자동차가 종합 자동차 메이커로 커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 상하이자동차도 세단만큼은 자체적으로 개발할 능력이 됩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이룡자동차뿐입니다.”

“자동차 회사 두 개를 합쳐 16억 불(한화로 2조)에 사는 겁니다. 이런 기회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지요. 더욱이 한국 기업답게 특허를 잔뜩 등록해 둬서 미국 수출에도 전혀 걸릴 게 없습니다. 특허 포트폴리오 확보는 상하이자동차의 핵심 전략이지 않습니까?”

“으흠, 특허라….”

장쯔웨이는 전결권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예산은 정확히 10억 불. 그걸로 이룡자동차를 인수하려고 왔더니, 서우자동차를 얹어 주겠다는 것이다. 덩치가 더 큰 걸 끼워 주면서도 최종 가격으로 16억 불을 내세우니 이게 웬 횡재인가 싶으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본사에서도 16억 불이면 절대적으로 유리한 계약이라고 판단할 겁니다. 설마 이걸 본사와 협의하실 것은 아니시죠?”

“본사와 협의하지 않다니요?”

“허어, 계약을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이끌어서 적절한 타이밍에 전결권을 최대한 이용했다. 몇십억 불짜리 계약을 부사장님 능력으로 16억 불까지 만들었다. 뭐, 이런 스토리는 가져가셔야 사장님 자리에 턱하니 앉으실 것 아니겠습니까?”

“……!”

장쯔웨이는 이수학 비서실장의 말에 표정 관리를 하기 어려웠다. 저도 모르게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고나 할까? 상하이자동차는 국유 기업이다. 정권 교체기라 마침 사장 자리가 공석인데, 자신의 역량 아래 사세가 확장되는 모양새가 된다면 사장 자리를 노려 볼 수도 있지 않겠나.

“여기 서명만 하신다면 최신 엔진 설계도와 특허 양도서까지 함께 드리겠습니다. 값진 전리품이 될 겁니다. 부사장님 개인의 업적이지요.”

쓰윽.

이수학은 결국 가지고 있는 패를 모두 던졌다. 일주일간의 협상을 거쳐 25억 불로 시작한 딜이 16억 불이 되었으며 기술 자료까지 얹어 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신성이 이러는 이유를 알아야겠군요. 서로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드디어 장쯔웨이도 구미가 당기는지 본심을 내보였다. 전결권을 넘어서는 서명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목을 거는 일이니만큼 신성의 약점을 담보로 이게 함정이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좋습니다. 말씀드리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치킨게임 때문이죠.”

“치킨게임이라고요?”

“자동차와는 상관없는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치킨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경쟁사는 알려 드릴 수 없지만, 조사해 보시면 쉽게 유추 가능할 테고요. 여하튼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아서 말입니다. 치킨게임은 돈으로 하는 전쟁이라서.”

“으흠… 자동차 사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이런 딜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16억 불 중 10억 불을 석 달 이내로 지불해 주시고, 나머지를 연말까지 주시는 조건! 그런 조건을 받아들이셨기에 이렇게 헐값으로 매각하는 겁니다.”

“허면 여기 계약서에 있는 세부 항목도 다른 의도는 없다, 이 말씀이시지요.”

장쯔웨이는 그제야 헐값 매각에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부 항목인 인력 구조 조정과 상표권에 대한 조항을 짚어 가며 함정이 아닌지 재차 확인했다.

“예. 혈서라도 쓰라면 쓰지요. 구조 조정은 계약 이후에 잠시만 시간을 뒀다가 적당히 상황 봐서 해 주십시오. 중국으로 완전히 이전하기 전에 한국 공장에서 연 10만 대 정도만 뽑아 주신다면 언론 플레이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단, 차후 3년간 ‘신성상하이자동차’라는 회사명은 유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수학은 최선을 다해 계약서의 완성도를 높였다. 구조 조정에 대한 직원들의 반발을 최대한 잠재우고, 매각이 공론화되는 시점에 언론 플레이를 할 생각이었다. 회생에 최선을 다했지만 스마트그룹의 치킨게임 때문에 사업 자체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유동자금도 확보하고 스마트그룹의 도덕성에도 치명타를 가하고 일거양득이다.

“양도하실 설계도와 특허를 이 자리에서 봐도 될까요?”

“서명부터 하신다면야 문제 될 것이 없지요.”

“먼저 보기부터 해야….”

“아주 어렵게 빼내 온 자료입니다. 특급 기밀입니다.”

“제 눈으로 본다고 해서 당장 차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기술자가 아니라서 그 말씀의 진위를 판단조차 할 수 없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공개할 수 없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군요.”

이수학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장쯔웨이는 그런 이수학의 고자세에 오히려 신뢰가 갔다.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만 특급 기밀을 알려 준다지 않나. 본사에 가서 자랑을 늘어놓을 전리품이 확실하다면 그 정도 조건은 있어야 하리라.

쓱. 쓱.

결국 장쯔웨이는 서명을 했다. 다 떠나서 회사 가치 자체가 16억 불이 훌쩍 넘는 것이 분명하니, 절대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그럼 이제 봐도 되겠지요?”

“하하, 이제 이것들은 장쯔웨이 님 것입니다.”

장쯔웨이는 냉큼 설계도와 특허 양도증을 살펴보았다. 수십 페이지는 족히 되는 기술 자료였는데,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손길이 빨라졌다. 엔지니어 출신인 장쯔웨이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앙통제장치라고 명명된 특허와 설계도가 눈에 확 들어왔는데, 엔진과 변속기 등을 제어해 연비와 성능을 최적화하는 기술로 디젤 엔진에 적용한 데이터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와락.

“크흠, 좋은 거래였습니다. 역시 한국의 신성은 믿을 만한 기업이군요.”

“앞으로 상하이자동차가 세계 넘버원 자동차 회사가 되길 기원합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장쯔웨이는 서명한 계약서를 한 부 챙기기에 앞서 설계도와 특허 양도증을 007가방에 넣었다. 악수도 그다음에야 생각났을 정도로 대박 기술이 분명했다.

이수학 비서실장에게도 대박 거래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유동 자금 16억 불을 확보했다는 이 기쁜 소식을 이희건 회장에게 한시바삐 전달하고 싶었다. 일주일째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고 매달린 보람이 있었다.

    • *

인천 국제공항.

와글와글.

“회장님, 아직 상하이행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2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이제 공항으로 오는 중일 겁니다. 라운지에서 쉬고 계시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뇨,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자칫 쇼를 놓치면 어떡합니까.”

“이룡자동차 노조원들이 저렇게 티케팅 부스부터 출국장까지 버티고 있는데 놓칠 리가 있겠습니까.”

2001년 3월에 인천국제공항이 개장되었기에 쇼를 보기엔 전망이 훌륭하다. 2층 로비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출국장 입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되는 거다.

“여하튼 장쯔웨이라는 사람이 타깃이 맞습니까?”

“그 사람이 확실합니다. 상하이자동차 부사장이기도 하고, 한국에 입국해서는 일주일 넘게 호텔에만 있었습니다. 그 호텔에 이수학 비서실장의 차가 들어간 것이 확인되었고요. 문제는 그 양반이 회장님 말씀처럼 기술 자료를 가지고 있어야 쇼가 완성되는데 말입니다.”

“하하, 그건 걱정 말아요. 100% 기술 유출을 시도했을 테니까요.”

내가 오늘 즐길 쇼는 이룡 노조원들이 산업스파이를 덮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룡자동차 노조에 투서를 써서 신성이 불법으로 산업스파이와 작당해서 회사를 매각한다는 정보를 흘렸다. 신성에 매수된 검찰을 믿을 수 없으니 직접 당사자가 덮쳐야 한다고 친절하게 타깃의 사진과 출국 일정까지 알려 주면서 말이다.

“회장님 말씀대로 일이 벌어지면 정말 가관이겠습니다.”

“나랑 내기할래요?”

“아뇨, 아뇨. 저는 불리한 도박은 안 합니다.”

모든 작전은 윌슨의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짰다. 원래 역사에서도 이룡자동차는 헐값에 중국에 매각되었고, 기술 유출은 끝없이 일어났다. 게다가 이번엔 판매자가 채권 은행단도 아니고 신성이니 기술의 가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계약서와 함께 기술 자료를 유출했을 가능성이 100%다. 당장 돈이 필요해서 매각을 하는데 가치 있는 전리품을 줘야 계좌에 현금이 척척 입금될 게 아닌가.

웅성웅성.

“$#@*$^*!”

“뭐라는 거야! 닥치고, 그 가방 좀 보자니까!”

“Help! Help! #$&&*!”

“그래, 경찰 불러! 부르라고!”

“이름이 장쯔웨이 맞지? 너 산업스파이 맞잖아!”

오, 시작되었다. 이룡자동차 노조원들이 사진에서 본 얼굴이 나타나자 007가방을 뺏으려고 난리 법석이다.

삑! 삑!

“무슨 일입니까!”

“뭣들 해! 열어! 가방 부숴 버려! 부수라고!”

“Help! Help!”

퍽! 퍽퍽퍽!

공항의 보안요원들이 마구 달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원들은 중국인과 드잡이를 그만두지 않았다. 결국 보안요원들이 달려오기 직전에 007가방을 뺏어 들고는 사정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밟아 부숴 버렸다.

생판 모르는 외국인을 덮쳐서 그의 가방마저 부숴 대니 그 용기에 내 손은 절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회사 매각으로 생계의 위협을 느낀 이룡자동차 노조원들이 나섰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 있다. 여기 있어! 설계도와 특허 자료 모두 있다!”

“야, 이 새끼! 스파이 맞네! 그것도 산업스파이!”

“뭐하는 짓입니까?”

“뭐해요! 수갑 채워야지, 수갑!”

보안요원을 막아섰던 노조원들이 이젠 장쯔웨이를 보안요원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러곤 산업스파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에요. 설명을 해야죠. 외국인을 붙들고 이게 무슨 짓이에요.”

“이봐요. 당신 경찰 아닙니까? 산업스파이를 현장에서 검거했는데 당연히 수갑을 채워야죠.”

“무슨 소리예요? 산업스파이라니!”

“이 설계도와 특허 자료가 뭔지 아십니까? 이건 이룡자동차가 5년째 진행해 온 국책 과제입니다. 디젤 하이브리드 엔진과 변속기를 제어해 연비를 최적화하는 특허예요. 조만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할 예정이란 말입니다. 연구비만 120억이 넘게 들었어요. 아시겠습니까!”

노조에만 찔렀는데 연구소 직원도 체포조에 동참했나 보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 내 귀에까지 들린다. 참 기술 설명을 잘도 한다.

“헉! 120억! 본청에 연락해! 어서 연락해!”

공항 보안요원들이 그제야 무전기를 꺼내 들고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애꿎은 장쯔웨이는 신성 때문에 봉변 한번 거하게 당하게 생겼다.

“하하, 저걸로 끝나면 안 되는데! 007가방 더 살펴봐요!”

나는 멀리 아래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한껏 웃으며 주문을 외워 보았다. 들릴 리가 없었겠지만 내 기도가 닿았는지 노조원 한 명이 종이를 들고 소리쳤다.

“쌍! 이것 봐! 매각 계약서야! 신성이 우리 회사를 팔아먹었어. 투서가 진짜였어!”

“이런 짓을 하면서 상생을 외쳐? 이딴 게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키울 계획이야?”

짝짝짝!

나는 2층 로비에서 멋진 쇼를 감상한 대가로 박수를 쳐 줬다.

“내기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군요.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뭐, 아주 단순한 추측이었을 뿐입니다. 갑시다.”

“이제 정치인과 신문기자들에게 밥값 좀 하라고 하면 되겠군요.”

윌슨이 참 일을 잘한다. 수정각에서 지불한 밥값도 척척 받아 낸다지 않나.

    • *

「이룡자동차 사태, 국가 경쟁력을 해치는 첨단 기술 유출」

「인수합병의 이면에 산업스파이, 이대로 좋은가?」

공항에서 쇼를 본 다음 날 신문지상에서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다뤘으며 TV에서도 메인 뉴스로 나왔다. 신성을 콕 짚어 내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거래가 틀어져 자금 압박을 주는 것에 성공했으니 내 목적은 달성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MBS 심야 뉴스에서 뜬금없이 신성이 언급되었다. 기술 유출 시도의 충격이 컸던지 예상을 깨고 특집 프로가 편성되었다.

-언론에서는 이룡자동차의 첨단 기술 유출에 대한 몸통을 숨기고 있지만, 신성이 저지른 일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신성은 환란 극복 컨소시움에 20억 불을 지원하고 회생 절차를 돕겠다며 건설, 중공업, 자동차 회사를 인수했지요. 그중 일부를 16억 불에 판 겁니다. 손익 계산을 해 본 결과, 고용 승계에 돈이 더 들어갈 것 같으니 재빨리 팔아 버린 겁니다.

-환란 손해 배상 소송을 생각해 보십시오. 인위적인 재계 재편이며, 대현이 기업 사냥을 주도했다며 정영주 명예 회장이며, 정헌몽 회장도 대가를 치렀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성은 전리품을 취할 땐 득달같이 나섰다가, 상황이 조금 어려워지니 회사를 팔아 치우고, 심지어 국가의 자산인 첨단 기술을 유출하려 했습니다.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거죠.

-이룡자동차의 첨단 기술 유출 시도를 포함해 신성그룹에 대한 특검을 실시해야 합니다.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에서 기업 총수의 권한과 책임이 어디까지냐가 관건이겠지요.

정계, 재계, 언론인 등등 온갖 방면의 사람들이 등장해 특별 인터뷰를 했다. 심야 뉴스이긴 하지만 신성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밝히면서 말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21세기가 훅 하고 다가온 느낌이다. 지상파 방송에서 이런 멘트가 흘러나오다니 말이다. 드디어 TV 언론도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걸 보고 있을 신성의 이 회장은 어떤 반응일까? 자칫하면 뒷목 잡고 넘어가겠군. 아직 멀었다. 돈, 명예, 심지어 미래까지 내게 담보로 잡혀 완벽히 항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나는 21세기 인간, 신성의 급소를 알고 있다. 드디어 결정타를 날릴 때가 되었다.

“윌슨, 이제 자금줄을 묶었으니 전환사채 공격 들어갑시다.”

“회장님, 전환사채가 있긴 한 겁니까? 제 그물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내 업무 지시에 윌슨이 의문을 표했다. 그는 예스맨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의견을 표출한다.

“있습니다. 어째서 윌슨까지 나서도 쉬이 드러나지 않는지 이상하지만, 있는 건 확실합니다. 드러나지 않는 이유까지 알아보세요. 그 이유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스마트 클라우드는 스마트폰이라는 21세기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냈다. 이제 다른 이들이 쫓아오기 전에 세계 무대에서 노는 기업이 된 거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안방에서 내 등을 노리고 칼을 가는 이를 두고 어찌 전장에 나가겠나? 주야장천 몰아쳐 끝장을 내야 한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