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장 모든 것은 내 뜻대로(2) (86/104)

가히 거부 집안에서 주는 선물답다. 물론 파라곤답게 당연히 공동 명의일 것이다.

“그리고 약소하지만 저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회장님께서 반지를 준비하실 시간이 없으실 것 같아서 말이지요. 취향껏 고르시면 됩니다.”

윌슨이 007가방을 열자 오른쪽에는 한 개의 반지가, 왼쪽 귀퉁이에는 세 개의 반지가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른쪽 반지는 내 것인지 단순한 장식의 다이아 반지였지만 케이 것으로 보이는 반지는 각각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로 장식되어 있었다.

왜 세 개를 준비했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윌슨이 살짝 윙크를 하고는 얼굴이 가렵다는 듯 눈 주변을 슬슬 긁어 댄다. 이유를 알 것 같다.

“으흠, 장식 보석으로 사파이어를 고르려고 했는데 잘됐군요. 케이의 푸른 눈동자엔 사파이어가 어울리죠.”

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을 했다. 결혼식은 평생 단 한 번인데 이 정도 멘트는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어머, 수한 씨가 그런 로맨틱한 말을 하다니! 감동!”

내가 사파이어 반지를 고르자 케이가 두 손을 모으고 감격에 겨워한다. 외려 우리를 앞에 두고 있는 목사가 입을 쩍 벌린 채 다물지 못한다.

“대체 어떤 분들이기에 즉흥 결혼식에 이런 선물이 오가는 거죠?”

“하하, 신랑은 아시아 최고 부자가 되실 분이고, 신부는 미국 금융계의 넘버원이 되실 분이죠. 오늘 목사님은 아주 희귀한 경험을 하시는 겁니다.”

윌슨이 목사에게 나와 케이의 이름이 적힌 종이와 수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사람 좋게 생긴 목사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기분 좋은 듯 너털웃음을 지어 댔다.

“허허, 이리 오십시오. 하루에 두 번 주례를 보다니 영광이군요.”

목사는 우리를 단상 앞에 서게 하고 주례를 했다. 원래는 찬송가부터 부르는 게 클래식한 식순이지만 딱히 노래를 부를 이들이 없다. 목사는 잠시 숨을 고르며 축복을 시작했다.

서로 사랑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아 크게 번성할 것이며, 땅과 바다의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받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거라는 축복이었다. 기독교인이었다면 성경의 창세기를 그대로 읊어 줬을 텐데, 우리가 기독교인이 아닌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성경 구절 몇 개를 더 읽으며 평범한 축복을 했으며 이렇다 할 주례사는 없었다.

윌슨은 멀찌감치 떨어져 K-포토로 동영상을 찍어 대고 있었다. 대체 윌슨의 007가방에는 무슨 물건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그다지 커 보이지도 않는데 필요한 물건은 뭐든 나온다.

“신랑은 신부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결혼 서약 때문이 아니라 진실로 그리 믿는다. 회귀해서 케이를 만났으니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조물주든 내게 행운을 준 게 틀림없다.

“신부는 신랑을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케이도 다소곳이 대답을 했다.

목사는 양손을 뻗어 우리를 서로 마주 보게 하며 결혼 서약을 하라고 했다. 미국 영화에서 익히 봤던 일이기에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외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케이를 보고 있자니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나 유수한은 당신 케이를 아내로 맞습니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당신에게 진실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겁니다.”

“나 버지니아 케이 로메티는 당신 수한을 남편으로 맞아 이날로부터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당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순종할 것을 하느님의 신성한 명에 따라 당신에게 나의 진실을 드립니다.”

케이가 나의 서약을 받아 화답했다.

“신랑이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케이에게 반지를 끼워 줬고 목사의 성혼사는 계속 이어졌다.

“당신들은 교회 앞에서 동의를 선언했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 당신들의 동의를 강하게 하시고 그의 축복으로 채워 주시길 기원합니다. 이 결혼은 하느님이 맺어 주신 것으로 사람이 가르지 못할 것입니다.”

기분 좋게 성혼사를 줄줄 읊어 대던 목사는 즉흥 결혼식답게 이제 서로 키스할 타이밍이라며 우리 둘에게 손짓했다. 유일한 증인이자 하객인 윌슨이 있는 힘껏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내가 양팔을 펼치자 케이는 내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춰 왔고 나 또한 그녀를 꼭 끌어안고 키스를 했다. 시간이 한순간 멈춰 버렸다.

목사님과 윌슨의 박수 소리가 더 커졌지만 그마저도 아스라이 귓가를 스쳐 갈 뿐이었다. 달콤한 케이의 입술에 온몸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은 다시는 느끼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나의 가장 큰 행운은 회귀한 게 아니라 케이를 만난 것이 분명하다.

펑! 펑!

윌슨은 작은 폭죽까지 쏘아 댔다. 정말이지 마법 같은 날에 마법사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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