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열려라 참깨
“알리바바의 마윈입니다. 투자 설명회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흠, 우리가 참가한 게 아니고 그쪽을 초대한 겁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간곡한 어투로 이 자리에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말부터 했는데 마윈은 첫마디부터가 도발적이었다. 차이나 유니콤 류웨이 부사장은 마윈의 인사말이 맘에 안 들었는지 정정부터 했다.
“예, 반갑습니다. 발표 부탁드려도 될까요?”
류웨이 부사장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내가 끼어들었다. 딴죽이 길어져서 좋을 게 없다.
“전자 결제의 시장 동향은 앞선 분들이 다 말씀드렸을 테니 저는 본론을 짧게 말씀드겠습니다.”
“그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살짝 웃으며 말을 받았다. 내가 나서자 류웨이 부사장이 소파에 등을 푹 집어넣으며 팔짱을 낀다. 내가 호의를 보이니 딴죽을 걸기가 좀 그랬나 보다. 하긴 마윈은 키도 작고 얼굴도 볼품없어 첫인상이 매우 좋지 않다. 아마 그래서 더 도발적으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친절한 말투가 마윈도 의외였던지 잠깐의 침묵이 지나간다. 내가 고갯짓과 함께 계속 진행하라고 손짓하자 얘기가 이어진다.
“본론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먼저 중국에서의 전자상거래 실상을 리뷰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알리바바만의 차별점만 설명드리겠습니다.”
“외국인을 많이 만난 모양이군요. 꼭 미국인처럼 말씀하시는 걸 보니.”
마윈은 항저우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6년간 일했다. 알리바바 창립 멤버 18명 중에서 몇몇은 마윈에게 강의를 들은 학생일 정도로 인기가 좋았으며, 그만큼 뜸 들이지 않고 핵심부터 말하는 서양식 프레젠테이션에 매우 익숙한 양반이다.
“계속하지요. 일단 중국 정부의 경우, 대외경제무역부의 하부 조직이 인터넷을 통한 전자 결제 시스템을 이미 개발하고 있지요. 지금 앞에 계신 투자자분들께서 국제적인 전자상거래센터를 꿈꾸신다면 정부 관료들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시중쉰을 끼고 이 일을 진행하는 거 아니겠나. 게다가 나는 그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 마윈 당신이 그 전자 결제 시스템 업무를 1997년부터 해 왔고, 그걸 올해 때려치우면서 알리바바를 창립했다는 것은 이미 조사를 마쳤다.
“마치 대외경제무역부에서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그렇습니다.”
“일은 마윈 당신이 하고 모든 성과는 대외경제무역부 간부들이 차지했겠군요. 여하튼 다행이네요. 아직 중국에서 전자상거래센터가 등장하지 않은 걸 보니 시스템이 완벽하진 않나 봅니다. 아니면 마윈 사장님이 갈아엎고 나왔거나.”
“…….”
조사해 본 결과 마윈이 시스템을 갈아엎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나는 그 용기에 진심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어설프게나마 전자상거래 센터가 만들어졌다면 내가 아무리 시중쉰을 꼈다고 해도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있지도 않은 일로 브리핑을 시작하다니 실망이군요. 전자 결제 건은 VOD 건으로 촉발된 겁니다. 통신사에서 일을 추진한 게 이번이 처음이란 말입니다. 투자 설명회도 처음이고.”
류웨이 부사장이 계속 마윈의 말에 딴죽을 건다. 아무래도 앞선 11개의 회사 중에 류웨이와 끈이 연결된 회사가 있나 보다. 꿈 깨시라. 내가 선택할 회사는 알리바바다.
“여하튼 정부 관료와의 관계는 우리가 해결할 문제고 그보다 전략이 궁금하군요. 계속 들어 볼까요?”
나는 마윈을 안심시키며 말을 이끌었다.
찰칵.
“알리바바는 B2B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마윈의 말은 아주 굵고 짧았다. 알리바바 웹페이지를 캡처한 화면을 보여 주며 한마디만 내뱉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그걸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면 투자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윈답다. 그는 웹페이지에 대해 자부심이 높으며, 이걸 위해 알리바바의 창립 멤버들이 하루에 17시간씩 일했다는 것은 전설이니까. 하지만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 투자자들 때문에 원래 역사에서는 38번이나 투자 설명회에서 거절당했다. 결국 내년 중반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 불을 투자받고, 2년 뒤에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을 만나 2천만 불을 투자받기에 이른다. 손정의 회장의 2천만 불은 15년 뒤에 600억 불이 되어 3,000배라는 믿을 수 없는 대박을 거두게 되지.
“그게 전부입니까? VOD라는 손쉬운 B2C 플랫폼을 내버려 두고 B2B를 하겠다니, 어이가 없군요.”
류웨이 부사장이 혀를 차며 손을 휘휘 저어 댔다.
통신사로서는 당연하다. 수수료가 메인 수익 모델이니 상품을 최대한 쪼개어 거래 숫자를 늘릴수록 이득이 커지니까.
일이 아주 술술 풀린다. 류웨이 부사장을 쫓아낼 핑계를 알아서 마련해 주는 꼴이다.
삑.
“이 실장, 여기로 좀 오세요. 통역 좀 부탁합니다.”
나는 동시 통역기의 전원을 꺼 버렸고, 마이크도 뺐다. 동시 통역사는 무전기처럼 연결되어 다른 방에 있다.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이 실장이 나와 류웨이 부사장 사이에 허리를 굽혀 끼어들었다. 두 명 모두에게 귓속말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류웨이 부사장님, 통신사는 B2C가 메인이니 어느 회사에 투자할지는 저와 따로 논의하시지요. 저는 파이오니어도 있어서 B2B도 좀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따로 논의한다고요?”
“뭐, 논의라기보단 제가 편의를 봐 드리는 거죠.”
나는 류웨이가 미는 회사와 VOD 계약을 맺을 것임을 넌지시 알렸다. 이 실장이 귓속말로 통역을 하자 류웨이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허허, 그러셔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VOD뿐 아니라 B2C는 차이나 유니콤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부사장님 의중을 따라야 수수료 배당 합의가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회사가 그중 실적도 좋고….”
류웨이는 아예 점찍은 회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세 번째! 잘 알겠습니다. 내일 차이나 유니콤을 방문하도록 하지요. 여기 채점표를 가져가시지요. 투자금은 차이나 유니콤과 같은 금액을 적으시고요.”
나는 서명만 된 채 백지 채점표를 건네주었다. 알아서 채점하고 투자금도 알아서 적으라는 뜻이니 류웨이의 입이 귀에 걸린다.
“저는 알리바바까지 마저 듣고 가지요. B2B라니 좀 특이해서 말이죠.”
“하하하, 그러십시오.”
내가 악수를 청하자 류웨이 부사장은 내 손을 잡고 마구 흔들더니 휙 사라져 버렸다. 세 번째 벤처 회사 사장과 건배라도 하면서 오늘 밤을 즐기시라고.
- *
문밖에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류웨이가 빠져나가며 투자 설명회를 마친다고 말했음인지 통역사마저 자리를 뜨나 보다.
단상에 멀뚱히 서 있던 마윈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그도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나는 이 실장을 대동하고 단상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편안하게 말씀을 들을 수 있겠군요.”
“…들으실 필요가 있으신가요?”
“그럼요. 자본금을 대려면 설명은 들어야죠.”
내 말에 마윈의 표정에 결의가 어린다.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나 보다.
“전자 상거래는 B2B 중심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B2C는 중국 문화에 맞지 않습니다. 솔직히 B2C의 예외가 있다면 VOD 정도일 뿐, 물건을 파는 경우는 순익률이 형편없을 겁니다.”
당연한 말씀이다. 중국은 전 국민이 장사꾼이나 다름없다. B2C로 제품을 팔면, 보따리 장사꾼들이 싼값에 물건을 떼 가서 팔다가 재고가 남으면 반품하는 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중국에 진출한 대형 마트들이 줄줄이 실패하고, 결국 운영을 중국인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게 된 이유라고 하겠다. 악성 고객에겐 악질 서비스 센터를 맞붙여 주는 수밖에 없으니까. 중국인들은 손해 보는 짓은 절대 안 하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맞붙여야 그나마 상대가 된다.
“반품 규정 때문에 그런가 보죠?”
“아, 아니, 그걸 어떻게?”
“여기 화면 하단에 판매 규정이 보이네요. 단순 반품은 불가능하며, 반품 시 재고 비용에 대해선 상호 협의한다는 조항이 중국어와 영어로도 적혀 있네요. 중국답지 않은 상세 규정이라고나 할까요?”
“네, 잘 보셨습니다. B2C는 물건 값을 싸게 하면 할수록 중간 상인들이 매점매석을 하고 결국 팔리다 만 반품도 쌓이죠. B2B는 그렇지 않습니다. 반품 부담이 거의 없으며, 만약 악성 반품이 들어오면 해당 업체를 조사하고 법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레 양질의 고객과 양질의 납품 업체만 살아남는 구조입니다.”
“VOD는 중간 상인이 재판매를 할 수 없으니 예외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VOD도 매점매석이 가능했다면 기필코 반품이 되었을 겁니다.”
중국인다운 발상이다. 중국 문화를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B2B 모델에서 수수료는 어찌 되나요?”
“전자 결제 수수료는 공히 1%이며, 납품 업체로부턴 입점비를 따로 받습니다.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광고비는 따로 책정되고 말입니다. 심지어 바이어가 물건 납품을 요청하면 입찰까지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하하, 입찰까지. 결제 수수료는 통신사가 먹든 말든 알리바바의 수익 모델은 확실하다는 말씀이군요.”
간단히 말하면 알리바바는 다수의 구매부서와 영업부서를 연결시키는 시스템이라고 하겠다.
“그렇습니다. 결국 광고비와 입점비가 수수료를 압도할 겁니다.”
“천만 불을 투자하죠.”
“헉!”
천만 불이면 알리바바가 요구한 투자금의 100%다. 원래 역사에선 골드만삭스마저 요구 금액의 50%만 투자했었다.
“그리고 전환사채로 5천만 불을 투자하겠습니다.”
전환사채는 나중에 기업이 주식 시장에 상장할 때 발행하는 신주(新株)를 살 수 있는 채권이다. 딜을 통해 깎일 걸 감안해서 최대치로 질러 보는 거다.
마윈은 이어지는 내 말에 어찌나 놀랐던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도 잠시, 표정을 가다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정도의 돈이라면 결국 제가 경영권을 잃게 될 겁니다. 거절합니다.”
“그럼 얼마까지는 되겠습니까?”
“자본금 천만 불, 전환사채는 2천만 불이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자본금 천만 불, 전환사채 3천만 불. 경영권에는 관심 없습니다. 계약서에 명기해 드리죠.”
투자자는 돈을 주려고 하고, 투자받는 사람은 액수를 깎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원래 역사에서도 손정의 회장은 3천만 불 투자를 바랐고, 마윈은 그걸 2천만 불만 받아들였다.
하나 지금은 1999년. 마윈의 현재 상황은 최악이다. 3천만 불이면 대략 지분의 30%. 자본금도 현금으로 되돌려 받지 않고 지분으로 환원하면 지분이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제 사업을 어떻게 그리 확신하시는지요?”
“중국 국민은 모두 장사꾼이죠. 국민들은 B2B 거래를 선물 거래처럼 인식할 겁니다.”
“허헉!”
마윈은 내가 사업의 이면을 언급하자 입에 거품을 물 정도였다. 당연하다. 마윈이 나스닥 상장 때 제 입으로 한 말이니까. 중국은 전형적인 관치 경제다. 수출입 자체가 국가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조차 시중쉰의 도움으로 홍콩을 통해 무역을 하지 않나.
중국의 모든 중소기업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로운 무역을 하고 싶어 한다. 그 탈출구가 알리바바가 되고 말이다.
“알리바바에 스마트 스토어를 입주시키겠습니다. 중국에서는 독자적인 판매망 구축이 쉽지 않더군요. 내가 3천만 불을 투자하는 이유입니다. 안정적인 판매망 구축.”
마윈의 경계심을 풀어 줄 핑계를 만들어야 한다.
“아, 그래서….”
“같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또 2천만 불이라고 우기실 겁니까?”
나는 마윈의 심적 갈등에 쐐기를 박아 넣었다. 전환사채 액수를 줄이면 다른 업체를 찾겠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내가 악수를 청하자 마윈이 내 손을 두 손으로 거머쥔다.
“함께하겠습니다.”
“좋네요.”
“그럼 이왕 같이하는 김에 도움을 요청할….”
“결제 시스템에 파이오니어의 보안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거겠지요?”
“예, 그렇습니다. 파이오니어 보안은 현존 최강이니까요.”
“엔지니어를 파견하죠.”
“감사합니다.”
마윈도 나를 사전에 조사한 것 같다. 내가 파이오니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잖나. 장차 세계 10대 거부가 될 사람과 이리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이제 한배를 탔으니 서로 잘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잘될 겁니다. 확신합니다.”
“좋군요.”
마윈과 헤어지기 전 명함을 교환하며 덕담을 나눴다. 마윈은 4천만 불짜리 명함이라 여겼겠지만, 나는 그걸 주고 수백억 불짜리 명함을 얻었다. 15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뭐 어떤가. 내게 4천만 불은 묻어 둬도 되는 돈이다.
- *
와글와글.
“수한아! 여기, 여기야!”
“하하, 왜 너만 나와 있냐? 케이는 어쩌고?”
나는 중국에서 바로 시카고로 넘어왔다.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재훈이가 손을 흔들며 나를 맞이한다.
“글쎄, 연락이 안 되던데. 네가 시킨 일 때문에 바쁜가 보지. 뭔가 큰 건이 있는 눈치던데?”
“너한테도 큰일일 거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잠시만.”
IT 버블의 파도는 파이오니어도 똑같이 맞는다. 이제 재훈이도 내게 지분을 넘길 때가 됐다. 보유한 지분을 팔아 부자가 되고 나는 폭락한 주식을 긁어모아 파이오니어를 합병하는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다. 거꾸로 할 수는 없잖은가.
그렇다고 둘 다 이런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고 말이다. 회사 경영자인 주제에 지분을 고점에서 팔고 저점에서 매수하면 주주들에게 소송당하기 십상이다. 결국 내가 경영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삐리릭. 삐리릭.
-여보세요.
“권 부장님, 일이 급해서 한국에 못 들르고 바로 미국으로 왔습니다. 이 실장이 중국에서 귀국할 테니 급히 일 처리 좀 해 주세요.”
-아, 중국 사업 말씀하시는 거죠? 특급 보안 업무로 지정해서 처리하려고 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연락받으셨나 보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매일 진행 사항을 메일로 보고해 주세요. 버지니아 사무실에서 내가 확인하고 필요하면 회신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한데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중국에 보낼 파견자를 제가 선정해도 되겠습니까?
“뭐, 그거야 재량권이 있으시잖습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삑.
권 부장은 자기 사람을 파견자로 지정할 사람이 아니다. 경력이 부족하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엔지니어가 눈에 띄었나 보다.
“이야, 비행기 내리자마자 전화부터 하는 걸 보니 정말 바쁜가 보다?”
“너랑도 관련된 일이야. 너도 바빠야지.”
“아, 그 알리….”
“보안!”
사람 많은 곳에서 알리바바 얘기를 꺼내면 안 된다. 권 부장도 중국 사업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는 일이다.
“아하… 오키, 오키. 여하튼 어디부터 갈래? 우리 회사냐, 아니면 애플부터 갈 거냐?”
“응? 버지니아 트레이딩부터 가려고 했는데. 애플?”
“몰랐냐? 스티브 잡스가 네가 오면 꼭 먼저 만나고 싶다고 몇 번이나 내게 전화했어. 케이도 너도 연락이 안 된다고 하더니, 정말 통화가 안 됐나 보네.”
“왜 나를 찾는데?”
“쇼 케이스에 앞서 너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고 하던데.”
“내게 보여 줄 것이 있다고?”
- *
시카고 중심가의 애플 지사.
언젠가부터 11월이면 시카고는 각종 IT 기업의 CEO들로 북적거린다. 스마트 클라우드, 애플, 파이오니어, 버지니아 트레이딩이 연합해 혁신 제품을 소개하는 쇼 케이스가 열리니까. 처음엔 4개 회사의 쇼를 보러 오는 참석자들만 있었지만 이젠 엔비디아, AMD, 퀄컴, Flomerics 등등 중소업체들도 부스를 만들어 신제품을 소개하기에 대형 IT 박람회처럼 되어 버렸다.
여하튼 쇼 케이스가 보름 뒤에 열리는 것을 감안해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사람인 스티브 잡스가 시카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의외다. 시카고에 애플 지사를 둔 것도 의외고 말이다.
띵.
“어서 와요, 수한.”
“잡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전화받고 내려가서 기다릴까 싶었습니다. 제이훈(재훈), 내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애플 지사의 꼭대기 층까지 곧장 올라가니 입구에 스티브 잡스가 마중 나와 있었다.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하고, 재훈이의 이름은 J-Hoon으로 발음하는 것을 들으며 새삼 미국인임을 깨닫는다.
“보여 줄 게 있다고요?”
“그래요. 실험실로 들어가서 봅시다.”
잡스의 사무실 옆에는 실험실(LAB)이라고 부르는 방이 따로 있다. 디자인이 맘에 안 들면 냅다 분해해서 부숴 버리기로 유명한 방이다.
딸깍.
커다란 탁자에 노트북이 여러 대 놓여 있다. 애플의 올해 첨단 제품은 노트북인가 보다. 나를 대신해 소개할 에그박스, 아이팟 신제품이 같이 놓여 있다. 오 이사가 잡스에게 보낸 물건일 것이다.
“파워북(애플의 노트북 모델명)이군요.”
애플은 노트북을 세상에 처음 내놓은 업체다. 1991년부터 파워북이라는 모델명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21세기에 맥북이라고 부르는 날렵한 노트북을 보고 온 나로서는 굳이 놀랄 필요가 없는 제품이다.
“으흠, 역시 이 정도로는 수한을 놀라게 하기엔 불가능하군요. 나름 모델명을 아이북이라 바꿀 정도로 혁신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2000년부터 애플은 아이북(iBook)이라는 노트북 브랜드를 출시한다. 2006년 희대의 명작인 맥북을 탄생시키기 전까지는 최첨단 제품이었다.
“얇고 날렵한 디자인은 스마트 클라우드의 디자인 전략이기도 하잖습니까. 그리고 LCD는 한국에서 납품한 것 같은데 놀랄 리가 없죠.”
“하하, 이거 자칫하면 발표하기도 전에 구닥다리 제품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펼쳐진 노트북의 화면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이거 LK에서 납품한 거잖아요.’라는 말을 대신 했는데도 잡스는 웃기만 했다. 실제로 내게 자랑하고픈 것은 디자인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잡스가 만족할 만한 디자인이라고 하기엔 눈앞의 아이북이 상당히 투박하다. 마치 커다란 플라스틱 조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하하, 미안해요. 신제품을 폄하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 발표하면 이 랩톱(노트북)은 정말 불티나게 팔릴 겁니다.”
“굳이 좋게 말해 줄 필요 없습니다. 여하튼 아이북은 두 가지 모델이 있지요. 왼쪽의 것이 일반 모델이고, 오른쪽 것이 프리미엄 제품이죠.”
“프리미엄 제품이라고요?”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좋은 의미로 놀란 게 아니라 정말이지 프리미엄 제품이라고 소개한 것이 일반 제품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한 포인트에서 놀라는군요. 한데 난 이 프리미엄 제품 출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이유를 묻고 싶어 당신을 만난 겁니다.”
오늘따라 잡스의 말이 이해가 안 된다. 프리미엄 제품이 대체 뭔지, 출시를 왜 포기했는지, 그리고 포기한 본인이 그 이유를 왜 내게 묻나?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아닌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렇겠죠. 잠시만 기다려요. 내가 시연을 해 줄 테니.”
잡스는 서랍에서 부품을 꺼내 조심스레 셋업하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놀람을 떠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잡스가 뭘 셋업하는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한 플라스틱 덩어리. 그리고 그것에 연결되는 랜선과 케이블 모뎀. 21세기 와이파이 인터넷 공유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심지어 라인 출력 포트까지 설치하는 것을 보니 스피커를 연동시켜 시연해 주려는 것 같다.
“수한, 이게 뭔지 알겠습니까?”
“랜선이 연결되었으니 인터넷 관련 부품이겠지요.”
나는 이 공유기의 모델명도 안다. 공기 중으로 포트가 연결된다는 뜻으로 에어포트(Airport)라는 말장난에 가까운 모델명으로 출시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몇몇 연구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긴 하지만, 2000년 말에 상용화가 되는 기술이다. 즉, 원래 역사보다 1년 정도가 빠르다. 나로 인한 나비효과가 지속적으로 기술 개발을 앞당기고 있다.
“맞습니다. 근거리 무선 인터넷 공유기죠. 연구자들은 와이파이라고 부르더군요. 애플은 에어포트라는 모델명으로 출시하려고 했지만.”
“오호, 놀랍군요. 무선 인터넷이라니.”
나는 애써 감정선을 관리하려 노력했다.
“자, 시연을 해 볼까요?”
“오! 기대되네요.”
-Come on! Livin’ la vida loca!
잡스가 컴퓨터에서 뮤직 비디오를 틀자마자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리키 마틴의 노래인가. 잡스가 왜 뮤직비디오를 택했는지 뻔했다. 에어포트에서 주황색 불빛이 반짝거리자, 그에 맞춰 라인 출력 포트도 반짝거렸으며 스피커에서는 연신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오! 스피커 줄이 없는데 노래가 나와. 어, 이거 파일을 다운로드 중인 것 같은데… 어찌 된 거죠? 컴퓨터에 랜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옆에 있던 재훈이가 투명 랜선이라도 있나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시연하기 전까진 무선 인터넷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았나 보다. 하긴, 파이오니어는 인터넷 브라우저 회사이긴 하지만 인터넷 보안 회사에 가깝다.
딸깍.
잡스는 뮤직 비디오를 일시 정지 하고는 나를 뻔히 쳐다보았다.
“왜죠?”
“왜라뇨?”
“왜 나에게 알려 주지 않았죠? 같이 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블루투스를 개발한 스마트 클라우드가 와이파이를 모를 리 없죠. 5GHz라는 통신 채널도 동일하고, 퀄컴의 차기 칩셋에는 이미 와이파이 기능이 탑재되어 있던데… 왜 내게 알리지 않았던 거죠?”
“으흠, 우연이겠지요. 블루투스 칩셋이 와이파이 칩셋과 호환되다니.”
빌어먹을. 내가 부품 하나하나를 모두 살펴볼 수는 없잖나. 내가 김 실장에게 블루투스 개발을 독려할 때 이것저것 너무 많은 기능을 넣도록 했나 보다.
“우와, 그럼 이 제품도 스마트 클라우드가 라이선스를 갖는 거야? 대박인데? 잡스, 애플에서 벌써 제품을 만들었으니까 크로스 라이선스로 가자고 해요!”
옆에서 재훈이가 농담을 빙자해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했다. 우리 둘 다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으니까.
“제이훈, 미안하지만 자리 좀 비켜 줄 수 있나요? 수한과 단둘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잡스, 수한이가 뭘 숨길 친구는 아니에요. 알잖아요. 뭔가 오해가….”
“제이훈.”
“아, 알았어요.”
잡스가 이맛살을 구기자 재훈이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자리를 떴다. 오해 잘 풀어라! 하는 몸짓이었겠지만, 사실 이거 오해가 아니라 잡스의 추측이 맞다.
끼익. 끼익.
나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의자 두 개를 끌어다 놓곤 내가 먼저 앉았다. 애플의 의자는 보기엔 모두 플라스틱 같지만 코팅만 그렇지 무거운 철제 의자들이다. 품질과 외형을 모두 중히 여기는 잡스의 성향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으며, 솔직히 그것보다 자신의 성향을 회사 곳곳에 뿌려 놓을 수 있는 잡스의 영향력이 놀랍다.
잡스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영향력’이다. 그가 지금 내게 실망감을 표하는 것은 내가 뭔가를 숨겼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최강의 기술을 왜 드러내지 않았냐는 것이다.
“다시 묻죠. 왜 나에게 이 기술의 존재를 알려 주지 않았죠?”
“그보다 먼저 어떻게 알았는지 묻고 싶군요.”
“…….”
“잡스, 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그러니 답해 줘요. 어떻게 알았나요?”
나는 무엇보다 나의 나비효과가 어떤 식으로 퍼졌는지 알고 싶었다.
“8월에 아이팟 시제품을 받고 알았지요. 소파에 누워 뮤직비디오와 VOD를 시청하는 개념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당연히 다운로드의 방식이 혁신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여겼으니까.”
“……!”
“실제 제품을 보니 개념과 전략이 완전히 따로 놀았습니다. 컴퓨터와 연결해 파일을 다운로드받을 생각이었다면 소파에 누워서 본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수한은 무선 인터넷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11월 최종 제품에도 무선 인터넷 기능이 없었어요.”
잡스의 추론은 매우 치밀하다. 소비자의 잠재적 욕구를 소비자보다 더 잘 안다. 아이팟의 VOD 기능은 무선 인터넷과 합쳐져야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았다. 잡스가 내 곁에 있으니 나비효과가 극대화되는 느낌이다.
“현재의 인터넷 기반에서는 유선 다운로드가 현실적이라 그랬을 뿐입니다.”
“지금 내가 만든 에어포트가 현실적으로 동작하는 게 안 보입니까?”
“모델명이 에어포트인가요? 이름 잘 지었네요. 하하.”
“수한, 농담할 기분이 아닙니다. 왜 내게 알려 주지 않았나요?”
“한 가지만 더 묻죠. 에어포트의 출시, 아니 아이북 프리미엄의 출시를 왜 포기했나요?”
“우린 같이 가기로 했잖습니까. 나로 인해 당신의 전략이 망가지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려 낼 ‘휴대폰의 꽃’이 뭔지 봐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기로 한 겁니다.”
내 전략이 망가지면 같이 간다는 약속을 잡스가 먼저 깼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으니 그랬다는 말이다. ‘휴대폰의 꽃’이 무선 인터넷보다 수십 배는 강력한 제품임을 잡스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거다. 정말 멀리 보긴 하는군.
“휴우~ 그래요. 무선 인터넷이 지금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1년 뒤에 나오는 게 적당해 보여요.”
“왜 그렇죠?”
“내가 전자 상거래를 시작해 보려고요.”
“하면 되죠. 버지니아 트레이딩이 열심히 로비하는 것 같던데.”
“몇몇 벤처를 제외하고 큰 기업들은 별로 눈독을 들이진 않잖습니까? 그다지 돈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게 내가 원하는 바예요.”
“VOD 사업은 기껏해야 매출 수백억짜리입니다. 우리가 신경 쓸 사업이 아니지요.”
잡스는 태생이 제조업자다. 물건을 팔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그로 인해 돈을 벌기 원한다.
“그렇게 여기라고 무선 인터넷을 잠시 뒤로 미룬 겁니다. 모바일 결제가 쉽지 않고, 소파에 누워 쇼핑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으니까.”
“그렇게 여기라고 의도했다니… 대체 무슨 일을 계획하는 겁니까?”
“AOL 같은 버블 덩어리 회사를 터뜨리고 돈을 올바른 곳에 쓰려고 그럽니다.”
“AOL… America Online….”
“AOL이 타임워너를 인수한다는 소문은 한 번쯤 들으셨을 것 같은데.”
“허! 그게 실패한다는 말입니까?”
잡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나는 AOL을 통해 아시아 최고 부자가 될 거다. 명분은 충분하다.
AOL은 인터넷 통신사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을 위해 인터넷 회선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투자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비싼 콘텐츠를 팔아먹겠다는 심보로 타임워너를 인수하려고 3,500억 달러, 즉 한화로 400조가 넘는 돈을 썼을 뿐이다. 이왕 허공으로 날아갈 돈이라면 내가 가져야지 않겠나.
공매도로 벌어들인 돈 중 일부를 AT&T에 투자해 광통신 인터넷 인프라를 확장시키면 스마트폰이며, 전자 상거래 시장은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인터넷 회선이 광통신으로 업그레이드되고, 무선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전자 결제는 전자 상거래로 확장되면 인터넷 기업들에 확고한 수익 모델이 생깁니다. 투자자만 끌어들이고 인프라 구축과 기술 개발을 등한시한 AOL이 그 열매를 따 가면 어쩝니까? 거대 자본이라 우리에게도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으흠, 결국 전자 상거래가 IT 버블의 해결책이었군.”
잡스의 입에서 IT 버블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잡스 정도의 인물이라면 IT 버블이 터질 것은 뻔히 알고 있다.
“그렇습니다. 무선 인터넷, K폰, 아이팟 등등은 그 수단이라고 할 수 있지요. IT 버블이 터지기 전에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죠. 내년 쇼 케이스에서 오픈해도 충분합니다.”
“버지니아 트레이딩이 그리 바쁘게 움직인 이유가 있었군요.”
당연하다. 버지니아 트레이딩은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원래 역사에서 ‘아마존’이 선점했던 온라인 물류 센터의 역할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전자 상거래가 더 활성화되면 현 역사에서도 아마존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버지니아 트레이딩에 밀려 온라인 서점 정도로 그치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면 이유가 설명되었습니까?”
“뭐, 전략이 그렇다는데 어쩌겠습니까? 파이오니어를 가지고 있으니 견제는 당연하겠죠.”
“와이파이 기술은 내년에 오픈했으면 합니다.”
“그래야겠군요.”
“AOL 공매도 건은 모른 척해 주시고요.”
“주식은 내 관심 밖이니 부탁까진 필요 없죠. 그런데 파라곤도 합세하는 것이 맞나요?”
“당연합니다. 아시안인 제가 혼자서 진행하기엔 무리죠.”
잡스는 내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홀로 AOL을 공격했다간 공매도가 실패할 수 있다. 파라곤을 비롯해 월가 전체가 AOL의 3,500억짜리 인수 합병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정의하고 같이 공매도에 합세해야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
그게 가능하다는 확신은 소프트뱅크를 먼저 터뜨려서 증명해 내야 하고 말이다.
“수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파라곤부터 체크해야 합니다. 매우 보수적인 곳이니까.”
“무슨 뜻입니까? 버지니아 트레이딩의 케이는 파라곤의 후계자입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후계자일 뿐 정식 상임이사는 아닙니다.”
“후계자가 돈 버는 일에 나서는 건 당연합니다. 그게 상임이사가 되는 길이기도 하고.”
“내가 말했죠. 파라곤은 보수적인 곳이라고. 딴 나라에서 공매도는 할지언정 미국 회사를 공격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AOL은 주가 총액이 수천억 달러에 이릅니다. 공매도로 번 돈이 미국 내에서 돌게 된다면 월가의 영웅이 되겠지만, 한국으로 가면 월가에서는 희대의 역적으로 취급받게 될 겁니다.”
“…….”
우려했던 바다.
하지만 주식 시장 휘젓기에서 미국만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전체를 외환위기까지 몰고 간 월가의 투기꾼들은 글로벌 경제활동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하지 않았나.
“내가 조언 하나 해도 될까요?”
“하십시오.”
“파라곤과 동업자 이상이 되십시오. 그래야 안전합니다.”
“동업자 이상이라면….”
“케이 양에게 청혼하세요.”
“윽!”
훅 튀어나오는 잡스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동업자 이상이라는 말에서 눈치를 챘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조언을 하나 더 하자면 로메티 장군보다 버지니아 로메티 여사에게 좀 더 신경을 쓰도록 해요.”
“버지니아 로메티? 케이의 모친인가요?”
“그녀가 칩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닥터 케이슨은 일찌감치 로메티 여사에게 상임이사직을 물려줬을 겁니다. 파라곤의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을 테죠.”
『재벌을 넘어서 귀족으로』 9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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