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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금광을 숨겨라 (70/104)

제6장 금광을 숨겨라

1998년 11월 30일.

두두두두. 펑!

“와아아아아!”

멋지게 꾸며진 무대에서 연신 폭죽이 터지고 관객들은 환호성으로 답한다.

“수한, 대체 이런 곳엔 왜 온 겁니까?”

스티브 잡스는 어느새 나를 미스터 유가 아니라 수한이라 편하게 부르고 있다. 그는 지금 컬트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진 무대를 보고는 인상을 구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심미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거든.

두두두두. 펑!

“스타크래프트 래더 월드 토너먼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아아아아!”

“16명의 랭커를 소개합니다. 래더 16위 레인보우(Rainbow)!”

“와아아아아!”

휘황찬란한 불꽃쇼와 함께 16명의 선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사회자가 각자의 아이디로 게이머를 소개하니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분위기는 대체 뭡니까?”

아무리 최첨단을 달리는 잡스지만 아직 게이머들의 축제를 이해할 정도는 아닌가 보다. 에그박스를 팔고 있는 양반이 그러면 안 되지.

“잡스, 이건 보통 축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의 게이머가 스타크래프트라는 타이틀 아래 한자리에 모인 거라고요.”

솔직히 내가 초대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따라왔으면서 내 감상을 방해하면 안 되지. 내가 이 대회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블리자드의 첫 번째 세계 대회인 ‘스타크래프트 래더 월드 토너먼트’는 실제 상금까지 걸린 경기로, e-스포츠의 서막을 알린 역사적인 대회란 말이지.

“이걸 보려고 10만 불이나 후원했단 말입니까? 쇼케이스 무대가 이것보다 몇십 배는 화려하고 볼만한데.”

잡스는 이틀 전에 펼쳐진 쇼케이스와 비교하며 계속 투덜댄다. 상관없다. 원래 뭐든 시작은 허접하기 마련이다.

“하하, 후원이 아니라 라이선스 계약을 한 겁니다. 이런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도 되는 저작권을 사는 데 그 정도 가격이면 거저나 마찬가지죠.”

나는 블리자드의 동의하에 PC에 동영상 캡처 프로그램을 깔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현장 녹화까지 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펼쳐질 리그전 영상에 대한 라이선스도 선점했고 말이다. 블리자드 사장도 이게 얼마나 히트를 칠지 아직 감을 못 잡은 게 분명하다. 고작 10만 불에 영구적인 동영상 저작권을 팔다니.

“호네스트(Honest)가 다크 템플러를 뽑았습니다. 레인보우 진영으로 달립니다. 달립니다.”

“와아아아아아!”

“레인보우! 위기입니다. 오버로드가 본진에 없죠. 모두 정찰로 떠나보냈죠!”

“와아아아아!”

서걱! 서걱!

“이대로라면 본진이 속절없이 밀립니다. 오버로드! 오버로드 어딨나요?”

“일꾼들이 한 방에 썰립니다. 오버로드!”

“절묘한 타이밍에 오버로드 나왔습니다. 다크 템플러를 히드라가 둘러싸죠! 이제 역습 가야죠!”

“와아아아아!”

“중간에 숨어 있던 질럿이 다시 본진으로 향하죠! 엘리전입니다. 엘리전!”

“와아아아!”

저그 유저의 오버로드가 본진에서 절묘한 타이밍에 튀어나와 다크 템플러를 처리한다.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히드라와 저글링을 추슬러 적진으로 역습을 간다. 그러자 상대는 본진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에 나선다. 누구의 본진이 먼저 썰리냐 하는 화끈한 승부로 접어들자 관중석에선 숨 가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역시 김도형! 신주영도 만만찮아!”

래더 1위와 16위의 승부부터 이렇게 박빙일 줄은 몰랐다. 인터넷 기사로만 읽었는데 눈앞에서 실제로 보니 감격스럽기 이를 데 없다. 시큰둥하던 잡스도 조금씩 표정이 달라졌다.

실시간 전략 게임은 처음 몇 분만 지켜보면 훌륭한 드라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특히나 관중이 환호하는 이런 분위기에선 더욱더 빠져들지. 이런 동영상을 누가 돈 내고 보겠냐는 말을 돌려서 했던 잡스마저 생각이 달라지나 보다.

“수한, 이 게임이 뭐라고 했지요?”

“스타크래프트!”

“이걸로 VOD 사업을 증명하겠다고 했던가요? MS와 파이오니어를 엮어서.”

“얍! 오오오오! 돌아오면 안 돼! 엘리전! 엘리전 해야지!”

나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 후딱 대답하고는 게임에 빠져들었다. 클라이맥스는 같이 소리 지르며 즐겨야 제맛이다.

“이 사업을 왜 MS와 합니까? 나와 하면 될 것을.”

잡스답게 왜 이런 사업을 자신과 같이 안 하냐고 직설적으로 묻는다. 에그박스와 앰팩이라는 사업을 가졌으면 됐지, PC향 VOD까지 욕심내면 어쩌나.

“동영상을 꼭 PC로 보라는 법이 어딨죠? 내년에도 앰팩으로 그냥 음악만 듣게 할 건가요? 게임 동영상이든 뮤직 비디오든 보게 해 줘야죠.”

“오! 수한!”

사업은 일정 부분 고유 영역을 보장해 줘야 서로에게 이롭다. PC 영역은 MS에 줘야 그쪽도 모바일에 욕심을 안 부리지. 스마트 클라우드, 파이오니어, 애플, MS 그리고 한국의 PC방 사장님까지 다 즐거워질 수 있는 사업이 되는 거다.

“파이오니어와 협의해서 앰팩용 펌웨어와 에그박스용 펌웨어를 만들도록 하죠. 대가는….”

“대가는 알고 있습니다. 파이오니어의 URL을 기본으로 하고, 스마트 클라우드와 제조 계약을 계속 유지하는 것.”

“하하, 말이 잘 통하니 좋네요. PC의 VOD 기술은 MS와 협업해도 되겠지요?”

“네. 인정합니다.”

현재로선 이런 동영상을 즐기려면 다운로드받아서 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저급한 품질이라면 스트리밍도 가능하겠지만 그래서야 상품성이 없다. 결국 사업성에 있어 파이오니어 보안 프로그램이 핵심이다. 그걸 앰팩으로 들고 다니면서 보든, 에그박스로 연결해 큰 TV로 보든, 아니면 편하게 PC로 감상하든 그건 소비자의 취향일 뿐이다.

    • *

MS 본사를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재훈이 사무실에 들러 비디오 파일을 적당히 편집할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토너먼트 챔피언! 호네스트!

-와아아아아!

딸깍.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빌 게이츠에게 스타크래프트 제1회 세계 대회 동영상을 보여줬다. 게임 플레이 화면, 관객들의 환호성, 백그라운드 뮤직, 동영상 중간에 끼워 넣은 가상 광고, 다른 컴퓨터로 파일 복제가 되지 않는 보안 메커니즘까지 모두 시연하면서 말이다.

“으음, 이게 VOD 사업의 미래라고요?”

“그렇습니다. 뮤직비디오를 보여 드리려고 했지만 그건 익히 아실 것 같아서 말이죠.”

빌 게이츠는 잘 판단이 안 서는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과연 이런 동영상에 100억 불짜리 외평채를 추가로 구매할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러운가 보다. 1990년대 시각으로 보면 용인밸리를 연결시켜 X-박스 출시에 따른 기술 협력을 해 준 것은 100억 불짜리가 맞지만, 이건 아니다 싶을 수도 있다.

일견 옳은 판단일 수 있다. 아직 유튜브가 나오지도 않았고, 스마트폰이 출시되어 동영상 촬영과 스트리밍이 대중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X-박스 협업 건을 지원해 준 것에는 100억 불 외평채 구입으로 충분히 대가를 치른 것 같고, 이 정도 사업이라면 기껏해야 10억 불 정도일 것 같습니다. 외평채도 10억 불만 추가로 구매하지요.”

“윈도우 미디어는 지속적으로 사업이 확장될 것이 확실한데 말입니다.”

“MS는 파이오니어의 보안, 파일 압축, 프로토콜 라이선스만 가져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입니다. VOD 콘텐츠 사업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시지요.”

빌 게이츠는 이런 VOD 사업에 광고를 실어 줄 고객이 그다지 없을 거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미래를 보면 나와 재훈이에게 그리 나쁜 조건이 아니다.

남은 90억 불 치 외평채를 누구에게 팔아야 하는지 문제이긴 한데 대한민국 정부도 일 좀 하라고 해야겠다. MS가 대한민국 외평채를 110억 불이나 샀다는 소문이 퍼지면 살 사람이야 많다. 빌 게이츠가 믿을 만큼 안전한 국채인 데다 이자도 미 국채보다 2%나 더 준다.

“PC로 동영상을 보려고 하는 고객들의 수요는 꾸준할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메인 콘텐츠로 본다면 PC는 화질과 음질, 특히 스크린 크기 측면에서 적당한 플랫폼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홈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은 X-박스를 통하는 것이 정답일 겁니다.”

빌 게이츠의 이런 결정은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다. 모든 전문가들이 그렇게 조언했을 것이다. PC는 그냥 눈요깃감이고 돈이 되는 것은 X-박스이니 그쪽에만 투자할 요량이다. 용인밸리를 엮어 에그박스에 근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 VOD에는 관심이 훅 떨어져 버렸나 보다.

1990년대 IT 사업가들은 결국 고급 콘텐츠의 소비는 TV로 연결될 거라고 여기고 있었고, 빌 게이츠도 그중 한 사람일 뿐이다. 완전히 틀렸다고 하긴 곤란하지만, VOD 사업성을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다.

“재훈, MS에서는 기술 라이선스만 사겠다고 하는데.”

“스마트그룹만 동의한다면 이대로 계약하지. 콘텐츠 사업은 파이오니어가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재훈이가 나와 손뼉을 쳐 준다. 빌 게이츠도 고개를 끄덕였기에 단번에 3자 계약을 했다. 나 5억 불, 재훈이 5억 불로 VOD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모두 교환했다. 이로써 파이오니어가 콘텐츠 사업을 할 동영상은 윈도우에서도 무리 없이 동작하게 될 것이다.

역시 원래 역사가 달라지긴 쉽지 않다. 우리와 VOD 사업을 같이했으면 빌 게이츠는 이번 생에선 유튜브의 공동 창업자가 되는 건데 말이다.

    • *

뚜벅뚜벅.

“수한아, 이거 정말 돈이 되냐? 솔직히 나는 지금처럼 음원 위주로 콘텐츠 사업 하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은데.”

MS 본사를 빠져나오며 재훈이가 말을 걸어 왔다.

“넌 스타크래프트 동영상 재미없었어?”

“글쎄, 뭐랄까. 리얼타임 전략 게임이라 신기하긴 하다만 솔직히 누가 게임을 돈 내고 보겠냐.”

“하하, 잘나가는 IT 업계 사장님이 그런 말을 하면 어째? 그거 광고 보면 공짜야. 내년이면 수백만 명이 시청하게 될 거다. 3년 내에 억 단위로 시청할걸. 빌 게이츠는 지금 결정을 후회하게 될 거다.”

마니아층은 아예 광고 없는 동영상을 구매하게 될 거다. 그 숫자도 수십, 수백만 명이 될 거다.

“정말이냐?”

“내 말이 틀린 적 있었냐?”

“틀린 적은…. 정말 그렇게 대박이냐?”

“응. 한국과 미국에서는 특히. 그러니 내년 쇼케이스에선 앰팩에서도 동영상을 플레이할 수 있게 프로그램이나 만들어 줘.”

“뭐? 앰팩으로 동영상을 본다고? 그 쥐알만 한 화면으로?”

“동영상은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보는 게 제맛이야. 모니터를 껴안고 볼 수는 없잖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다.”

“개발해 줘.”

잡스가 한 말 중에 명언이 있다. 소비자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말이다. 실제로 해 보기 전까진 그게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 모른다.

“알았다. 넌 이대로 귀국하냐?”

“응. 볼일 다 봤으니까.”

“구글인가 뭔가 하는 벤처는 안 봐도 되겠어? 투자 설명회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던데.”

내가 직접 미국으로 날아온 이유 중 하나다. 구글은 지금 투자자를 마구 찾아다니고 있거든. 파이오니어가 원래 역사의 야후를 대신하고 있기에 이미 투자 설명회가 잡혀 있다.

“몇 번 얘기해. 그냥 지분 30% 매집하라고. 나 20%, 너 10%.”

“걔네들이 얼마를 제시할 줄 알고?”

“나까지 참석하면 걔네들 딴생각할 수 있어. 얼마를 제시하든 고민하는 척하다가 과감히 지분 인수해. 기술 개발은 독립성을 부여해 주고.”

“그럴 바엔 차라리 100% 인수하지.”

“우린 아시안이야. 그랬다간 똑같은 회사가 또 만들어진다고. 지분을 적당히 인수해야지. 너와 내가 지분을 나누는 것도 그 전략의 일환이야. 너는 와중에 미국 회사라는 인식이 일부 있으니 괜찮고, 나는 전면에 나서면 안 돼.”

우리는 아시아인. 우리가 구글의 지분을 너무 많이 사 버리면 오히려 구글이 미국 회사라는 인식이 사라진다. 러시아에서 여의사가 많아지자 의사라는 직업 자체의 선호도가 떨어진 것처럼. 파이오니어의 사업이 파라곤과 애플을 연계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알았다. 시큰둥한 척 지분만 투자하고 신경 끄는 척할게.”

“딱 그거야. 크게 기대하지 않는 척! 구글 검색 엔진이 파이오니어와 잘 어울리니까 남는 돈으로 투자는 해 볼게. 이런 식이 되어야 해. 알았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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