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터널의 끝
11월 21일. 서울 모처 호텔.
딸깍.
TV를 켜자마자 뉴스부터 나온다.
-국민 여러분, 저는 지금 주식 전광판 앞에 나와 있습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300선을 위협받던 종합주가 지수가 1,000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스마트 클라우드를 비롯한 상위 50여 개 종목은 12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 앗! 지금 주가 지수가 1,000을 달성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주가 1,000을 회복합니다.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땡. 땡. 땡. 땡.
-천!
-주가 천!
펑! 펑!
갑자기 누군가 종을 울리고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999라는 전광판 숫자가 1,000으로 변하자 전광판 앞에 내걸린 종이박이 터지며 색종이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천!
-주가 천!
딸깍.
-저는 지금 외환은행에 나와 있습니다. 전 국민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이례적으로 금으로 달러 계좌를 만들어 주고 있으며, 현재까지 계좌 총액은 5억 불에 달하고 있습니다. 시민 한 분을 모시고 인터뷰를 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십니까.
-방금 돌 반지를 맡기시는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금을 가져오셨는지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환란을 극복하기를 바라잖아요. 스마트 사장님이 같이 부자가 되는 일이라고도 하셨고요. 우리 아들 돌 반지가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내놔야죠. 대한민국 힘내라!
-인터뷰 감사합니다.
딸깍.
-대현조선은 신용장 개설이 정상화되어 15만 톤급 유조선 5척을 수주받았으며, 47억 불 매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성전자는 중국 상하이 지역 인터넷 서버 사업에 15억 불 상당의 납품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이것을 시작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것입니다.
-LK전자는 CCTV 수출 계약에 성공하였으며 수출액은 북미와 유럽을 합쳐 총 12억 불에 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환란 극복 드라마가 무한히 재방송되고 있었다. 외환위기를 벗어날 가능성이 커지자 굵직굵직한 수출 계약이 이뤄지고 있었다. 지금 환율에 계약을 하면 대박임을 외국 바이어들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모든 방송은 24시간 이런 뉴스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마치 환투기꾼들에게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픽!
“그만 볼까요? 이미 몇 번은 보셨을 테니 통역은 안 해 드려도 되죠? 호호.”
케이가 TV를 끄면서 웃어 댔다. 나 또한 좌중을 돌아보며 피식 웃어 주었다. 내 눈앞에는 환투기 세력의 멤버 4인방이 앉아 있으며, 유일한 내 편인 케이가 옆에 자리했다.
“이쯤 하시죠. 국가 신용 등급은 원상회복시켜 드리겠습니다.”
“가이트너!”
소로스가 미 재무부 차관보에게 크게 소리쳤다. 자신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협상 카드를 바로 오픈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 하다니요. 뭘 이쯤 합니까?”
“살려 주시오, 미스터 유.”
“그레이켄!”
소로스는 또다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론스타 회장이 내게 굽실거리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소로스, 그만하게. 이미 이 게임은 졌어…. 미스터 유, 항복하겠네.”
“캉드쉬.”
IMF 총재까지 항복을 선언하고 나서자 소로스는 전의를 상실한 모습이었다. 하긴 공매도를 한 주식들이 12일 연속 상한가를 쳤다. 상위 50개 종목만으로 900%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으니, 아무리 소로스라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항복은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적당한 배상을 하셔야 되는 겁니다.”
“당연하네. 그래서 당신이 파라곤의 후계자를 증인으로 데려온 거 아닌가? 배상하겠으니 협상 조건을 알려 주게.”
캉드쉬 총재는 거물답게 상황 파악이 빨랐다. 소로스마저 잠자코 있는 걸로 봐서 이미 4인방은 사전 조율을 끝냈다고 봐야 할 것이다.
“300억 불. 그 밑으론 안 됩니다.”
“미친! 이것 봐! 내가 끝까지 가자고 했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잖아.”
“되가져갈 돈도 300억 불이라는 뜻입니다. 둘 중 누가 가져가도 대한민국은 상관없습니다. 론스타 펀드든, 소로스 펀드든.”
나는 안다. 그레이켄과 소로스가 공히 300억 불을 투자했다는 것을 말이다.
“……!”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말마따나 먼저 손을 들면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론스타는….”
“론스타와 소로스 펀드는 언제나 같이 가네. 그건 절대 불변이야. 안 그런가, 가이트너?”
소로스는 그레이켄이 내 손을 먼저 잡을까 봐 급하게 말을 끊었다. 얼떨결에 중재인으로 지목된 가이트너 차관보는 입맛을 다시듯 쩝쩝댈 뿐이었고, 캉드쉬가 보다 못해 나섰다.
“소로스, 그만하게. 미스터 유가 우리 자본력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으으….”
“미스터 유, 론스타와 소로스 펀드 공평하게 150억 불씩 손해 보고 이 상황을 마무리 지었으면 하네.”
“아니지요. 공평하려면 론스타, 소로스 펀드, IMF 공히 100억 불씩 손해 봐야죠. 미 재무부는 그걸 보증해야 하고.”
“……!”
“오!”
“IMF가 왜… 어떻게?”
“동남아에도 구제금융 지출하잖습니까? 100억 불 정도야 적당히 돌려 막기 하시면 되죠.”
300억 불은 이래서 황금 비율이다. 누구 하나 손 빼기가 아주 애매해지거든.
“미 재무부가 보증하라고 하시면, 미스터 유와 합의하면 대한민국 정부와도 합의했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말문이 막힌 캉드쉬 총재 대신 가이트너 차관보가 나선다. 말투로 보아하니 이미 미 재무부와는 사전 협의를 했음이다. 당연히 당장 발을 빼라는 소리를 들었겠지. 뻔하다.
“정부와 사전 협의된 바는 없지만 제가 정부를 설득하죠. 300억 불이면 성공 가능성은 99% 이상이지 않습니까.”
“파라곤의 후계자로서 이 말을 보증합니다.”
케이도 웃음기를 싹 거두고 말을 보탰다. 역시 협상에서 언제 나서야 하는지 잘 아는 여자다. 데려온 보람이 있다.
소로스와 그레이켄은 표정이 묘해졌다. 이 사태를 각각 100억 불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최악은 아니었다. 동남아에서도 먹은 게 꽤나 되는 데다 물주들을 어찌어찌 설득할 수 있으리라. 둘 다 IMF 총재에게 100억 불을 안 내놓으면 이 사태를 모두 까발릴 거라는 무언의 협박을 해 대는 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댄다. 자칫하면 내부 고발로 IMF 총재직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다. 오케이, 세 명이 모두 그물에 얽혔다.
“휴우, 그럼 한국 시장에서 빠져나갈 방법부터 알려 주시겠습니까?”
유일하게 가이트너가 말문을 열었다.
“당신들의 자금은 상당 부분 서우그룹 주식으로 회피해 있지요? 계열사를 파산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럼 해당 공매도 손실은 제로가 됩니다. 물론 몇 개 회사는 살려야죠.”
서우그룹이 유일하게 컨소시움의 우산 밑에서 벗어나 있다. 대기업 중에선 유일하게 원래 주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잔존하는 공매도 차입 주식을 지금 당장 상환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손을 털 수 있습니다.”
역시 재무부 차관보답게 계산을 잘한다. 11월 말까지 약정된 공매도 상환을 지금 털어내 버리고 싶은 거다.
“상환 의무를 서우증권으로 몰아 드리지요. 계열 분리를 하면서 그 자료 자체를 소각해 드리겠습니다.”
“가능하십니까?”
“현재 대한민국 재계는 모두 뭉쳐 있습니다. 서우를 제외하곤 말이죠.”
“파라곤의 후계자로서 리스크는 없다고 보증하죠.”
케이마저 한 소리 거들자 가이트너가 그제야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며 일행과 눈을 맞췄다. 이리하면 정말 300억 달러는 회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이리라.
“계약하시죠. 제가 힘을 보태면 겨우겨우 이번 사안을 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약서는 여기 있어요. 200억 불은 이미 외환은행에서 현금으로, 나머지 100억 불은 담보로 맡긴 장기 외채 상환권으로 대체하겠습니다.”
“모든 걸 알고 계셨군요.”
가이트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곤 이면 계약서에 가장 먼저 서명을 했다. 그레이켄이 다음, 소로스가 그다음, 마지막으로 캉드쉬마저 서명을 끝냈다.
나와 케이도 서명을 했으며 각기 한 부씩 나눠 가졌다. 이 계약서를 근거로 대한민국 재경부와 미 재무부가 이면 계약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내 몸이 살짝 떨린다.
“그럼 미국 돌아가시는 길 편안하게 가시길 바랍니다.”
“호호호, 이건 제 성의예요. 일등석으로 끊었답니다.”
케이가 비행기 표를 건네며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바로 출국시켜 딴짓을 못 하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멍한 표정의 4인방을 두고 우리 둘은 호텔을 빠져나왔다.
- *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기다리느라 지겨웠죠, 이 실장?”
“하하….”
이 비서는 내가 실장이라고 부를 때마다 입이 귀에 걸린다.
“수한 씨, 나 미국에 갔다 올게요.”
“처리 잘 부탁해. 잡음 안 나게.”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도 미리 감사하대요. 당신의 조언이 정확했다는 걸 증명해 줘서.”
“중립 지켜 주셔서, 아니 나에게 조금이나마 치우쳐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 줘.”
“호호, 그렇게 전할게요.”
케이는 나를 가볍게 포옹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철컥.
“가시죠.”
“그래요.”
나는 차에 올라타서 뒷좌석에 등을 잔뜩 밀어 넣었다. 그러곤 곧장 전화부터 걸었다.
삐리릭.
-여보세요. 수한이가?
“예, 왕회장님. 놈들 쫓아 보냈습니다.”
-아이고, 수고 많았다. 이제 정말 끝났나 보네.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제 서우만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오이야. 알겠다. 한데 워낙 덩치가 커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일단 주식만 태워 버리면 되는 기제?
“예. 서우자동차, 서우증권, 서우조선. 이렇게 세 개는 살리기로 했으니 계열 분리하시면 되고요.”
-경영권부터 정지시키마. 그러면 자연스레 그리될 기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마는….
“그럼 들어가십시오.”
왕회장이 나서면 일 처리는 잘될 거다.
-지금 발표하러 가나?
“예.”
-허허, 나도 오랜만에 한잔하면서 감상하마. 멋지게 해라.
“들어가십시오.”
-허허허.
왕회장이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이 실장은 알아서 대현전자 컨소시움 사무실로 차를 몰아갔다.
삐리릭.
나는 곧장 YS에게 직통 전화를 했다. 본인이 먼저 번호를 줬으니 결례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
“예, 유수한입니다.”
-어찌 되었나?
“잘됐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놈들은 이미 손 털고 나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 정말 수고 많았네. 자네는 정녕 나라를 구한 것이네.
“곧장 발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미리 드린 정보로 담화문을 꾸미시면….”
-할 말이야 뻔한 거고, 나라를 구한 이가 직접 발표해야 하는데….
“대통령께서 하셔야 국가의 공식 발표가 됩니다. 그래야 국민들도 안심하고, 환율도 제자리를 찾습니다. 구국의 결단을 내려 주신 분은 대통령이십니다.”
-그래! 그리하겠네. 당장 발표를 해야지!
YS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 흥분하기까지 했다. 대선을 앞두고 나에게 발표를 허락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DJ가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변이다. 현 정권이 외환위기를 촉발시켰다는 과오는 벗기 힘들며, 나를 포함해 실상을 아는 재계에서는 DJ를 밀 테고.
- *
찌이잉.
난 컨소시움 사무실로 향하는 와중에 차 안에서 라디오를 틀었다. 어느 채널을 틀든지 상관없었다.
-찰칵! 찰칵! 찰칵! 펑! 펑!
-YNT입니다. 지금 경제 각료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대 발표가 있을 법한 모습입니다.
-KBC 속보입니다. 오늘 청와대에서 어떤 중대 발표가 있을 거라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현재 시각 9시 30분, 이 시각에 대통령께서 직접 담화문을 발표한다니 신빙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MBS 속보입니다. 지금 대통령께서 단상에 올랐습니다.
-웅성웅성.
오늘 종합 주가 지수가 1,000을 달성했음에도 재경부의 발표가 없었다는 측면에서 뭔가를 예상했는지 기자들이 엄청 몰린 게 확실했다. 라디오를 통해서도 현장의 열기가 느껴졌다.
-찰칵! 찰칵! 찰칵! 펑! 펑!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와아아아아아아!
YS가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환호성과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터져 나왔다. YS의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대한민국은 국제 환투기 세력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공식 선언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YS가 발표를 하는 와중에 나도 컨소시움 사무실 로비에 들어섰다. 청와대로 몰려갔을 거라 짐작했던 기자들이 이곳에도 잔뜩 몰려 있었다.
“와! 저기 온다!”
“유 사장이다!”
“지금 발표 들으셨습니까? 컨소시움은 앞으로 어쩌실 겁니까?”
나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마이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오늘 컨소시움의 정례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 정례 브리핑입니다.”
“와아아아아아!”
내가 마지막 브리핑이라고 하자 환호성이 터졌다. 청와대 공식 발표를 재차 확인한 것이다. 기자들은 내가 브리핑 단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비켜 주었다. TV 카메라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좇았다.
“총 300억 불 규모의 달러 자산을 확보했으며, 이 돈은 파산한 대기업 계열사, 부도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재건하는 데 올바르게 쓰일 것이며, 재계는 국민 여러분께 부끄럽지 않게 재편될 것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유 사장님! 소감 한마디! 소감 한마디 해 주십시오!”
“소감!”
“어떻게 승리하신 겁니까?”
기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쳤다. 기자들도 이제 어설픈 질문을 해 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승리의 원인은 아주 자명합니다. 환투기 세력의 뒤에는 고작 물주 몇 명이 있었을 뿐이지만, 우리 컨소시움의 뒤에는 국민 여러분이 든든히 버텨 주었기 때문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 승리는 어려운 상황을 버텨 준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며, 컨소시움은 위기 때마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의 저력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오오오오오!”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뭇 기업인을 대표해 인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
찰칵! 찰칵! 찰칵! 펑! 펑!
환호성, 박수, 카메라 세례. 온갖 것이 축복처럼 쏟아졌다.
“와아아아아아!”
“사장님!”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컨소시움 실무자들이 로비로 쏟아져 나왔다. 나를 붙잡고 모두들 울고불고 난리다.
“끝났습니다. 다들 어디 가서 맥주 한잔 하고 퇴근합시다.”
“와아아아아!”
“끝이다!”
“우리가 승리했다!”
“퇴근이다! 집에 간다!”
펑! 펑! 펑!
언제 준비했을까? 누군가 샴페인과 양주를 마구 터뜨렸다. 나를 헹가래치며 술을 막 부어 댔다. 정말로 날아갈 듯 기쁘다. 흠뻑 젖은 채 내려온 나를 누군가 잡고 흔든다.
“가긴 어디를 가? 오늘 마실 술은 이곳에도 충분하네.”
“하하. 언제 준비하셨어요, 정 회장님?”
“방금, 내 사무실 양주 다 털었네. 그리고 맥주 트럭도 도착할 걸세.”
“하하! 대현답네요.”
부르릉, 와르르르르.
정말이지 트럭들이 도착하더니 순식간에 맥주와 소주 궤짝이 로비에 수두룩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다들 마십시다. 축배를 들어야죠!”
“만세! 만세”
“만세!”
“컨소시움 만세!”
“대한민국 만세!”
“유수한 만세!”
나, 정헌몽 회장, 직원들, 기자들, 심지어 트럭 기사들까지 얽혀 맥주로 온몸을 적시며 강강술래를 하듯 돌았다. TV 카메라가 찍고 있어도 그 누구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 순간을 즐겼다. 국민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술집마다 술이 동이 났다.
다이내믹 코리아.
계기만 마련된다면 감히 환투기 놈들이 상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길고 긴 IMF 사태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