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장 구세주 (59/104)

제6장 구세주

「한부철강 최종 부도 확정. 4조 2천억에 이르는 헌정 사상 최악의 부도 사태.」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속보라며 찍어 낸 신문에는 한부철강이 부도가 났다고 적혀 있었다. 한부철강에 에어 콤프레샤를 납품했던 미성엔지니어링 허일우 사장은 신문 기사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혀 왔다.

“이, 이럴 수가….”

허일우 사장은 겨우 숨을 틔웠지만 이젠 손이 덜덜 떨려 왔다. 아무리 신문 기사를 읽으려고 해도 눈 밖으로 글자가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려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여태 납품한 장비는 자그마치 1억 8천만 원. 납품 대금은 3개월짜리 어음으로 받았다. 은행에서 어음 할인을 거부했기에 만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한부철강 구매부 강 부장에게 물어봤더니 불경기로 한시적인 일이라며 염려 말라고 했는데 말이다.

“내일이면 만기였는데… 보람 은행에서 받기만 하면 되는….”

“사장님, 뭐 하십니까! 지금 가셔야 합니다. 한부철강에 가셔야죠.”

“그, 그래. 가야지. 어서 가야지… 가, 가자고.”

옆에서 박 과장이 그의 팔을 마구 잡아당기고 나서야 허 사장은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일전에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을 입고 갔다가 정문에서 문전 박대당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우당당당.

“내가 먼저요, 내가 먼저!”

“내 어음은 3억짜리요! 3억짜리! 내 돈부터 내놓으라고!”

“금고! 금고부터 찾아야 돼!”

한부철강 정문은 차들이 즐비했다. 바리케이드를 넘어 사무동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엉켜 난리가 아니었다. 회전문에 사람들이 엉켜 넘어지고 유리가 깨져도 서로 들어가려고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와장창!

“이보세요, 강 부장님. 이거 어찌 된 일입니까! 부도까지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 돈! 내 돈 내놓으시오! 내 돈!”

“어제까지 6개월짜리 어음을 발행해 놓고 부도라니 이런 법이 어딨소! 사기 아니오, 사기!”

“어… 어….”

“도망친다. 잡아! 잡아!”

평소 사람 좋기로 소문난 허 사장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무리 경기가 안 좋아도 대기업은 안 망한다는 소리를 애써 믿었다. 최악의 경우라도 한부철강은 워낙 덩치가 커서 은행관리를 거친 뒤 제3자인수가 될 것이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우당탕탕. 털썩.

우연이었을까? 도망치던 한부철강 구매부장이 뭔가에 걸려 허일우 사장 앞으로 쓰러졌다. 순간 허 사장은 저도 모르게 강 부장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곤 품에서 어음을 꺼내 들었다.

“이거 만기가 내일이오, 내일! 강 부장, 돈… 돈 주시오. 이거… 이거 돈 달라고!”

“허 사장, 내가 돈이 어디 있겠소.”

“뭔 소리요. 만기가 내일인데! 내일! 내일! 납품가 1억 8천만 원, 그건 우리 공장 식구들 생명줄이오, 생명줄!”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시오. 나도 일개 직원. 내 월급도 없소이다.”

“저기 있다. 저놈 잡아라!”

퍽! 퍽!

눈이 벌게진 사람들이 몰려와 강 부장을 덮쳤다.

“으아아악! 씨발, 한 푼도 없어! 한 푼도 없다고!”

와장창!

이미 건물 이곳저곳에서 누군가 유리창을 깨고 책상과 걸상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금고도 있었는데 만 원짜리 한 장 없는 게 텅 빈 철제 캐비닛이나 다름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일부는 엉엉 울기까지 하는 난장판이 벌어졌지만 허 사장은 비척비척 뒷걸음질을 쳤다. 어느샌가 제철소 특유의 기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철소에서 기계 소리가 멈추면…. 제철소 납품 업체로 30년 가까이 일해 온 허 사장은 기계가 멈춘 제철소가 어찌 되는지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털썩.

허 사장은 저도 모르게 화단에 주저앉았다. 제철소를 다시 돌리려면 수백억이 들어가야 하고, 그마저도 시간을 놓쳐 버리면 복구 자체도 불가능해진다. 한부철강은 정말 망한 거다. 허 사장은 화단 벽돌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 *

대현전자 사무동.

나는 탁자 위에 신문을 펴 두고 정헌몽 회장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정 회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한부철강의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으셨습니까?”

“몇 번이고 인수 의사를 밝혔네. 올해 10월 1조를 투자하고 나머지 3조는 5년 상환을 약속했었다네. 박준태 의원이 포철을 움직여 보증을 서 주기로 했고 말일세.”

“그 정도면 은행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조건 아닙니까? 부족하다고 하던가요? 미친놈들.”

“아니, 은행은 미치지 않았네. 한부 회장 정수태 그자가 끝까지 경영권을 놓지 않겠다고 버텼네. 은행이 부도를 낼 바엔 돈을 빌려 줄 거라 믿었겠지.”

“현실 감각이 전혀 없는 놈이군요. 그런 놈이 회장이라니.”

“보람은행이 못 참고 15억짜리 어음을 부도냈는데, 그걸 신호로 전국 19개 채권 은행들이 그동안 부도 처리를 보류하고 있던 어음들을 동시에 부도 처리했네.”

부도 처리 방식 중에 가장 과격한 방식이다. 채권단 인수를 바탕으로 일이 벌어지면 이렇게까지 안 커지는데 말이다. 초장부터 유동 자금이 팍팍 깨지게 생겼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유동 자금은 대략 4천억, 그리고 종금사로부터 투자받은 돈이 3조, 이 중 벌써 8천억 정도는 용인밸리 협력 업체들의 종금사 지분을 매입하는 데 썼으며, 2천억은 토목 공사에 이미 투입되었다. 하니, 계산상으론 2조 4천억 정도의 돈이 있으며, 일부 종금사 물주들이 투자를 중도 해지할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10월까지 2조 정도로 어찌 되었든 견뎌 내야 한다.

AOL과 소프트뱅크에 묻어 둔 주식이 계속 오르고 있으니 10월에 처분해 달러를 최대한 많이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대현그룹도 50억 달러짜리 총알이 10월에 풀린다. 지금은 시간이 곧 돈이다.

“휴우, 어쨌든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막긴 해야죠. 철강 쪽에서 건질 회사는 정하셨습니까?”

“두 달간 최선을 다했네. 기술력도 있고 경영 상태도 건실한 중소기업들이 꽤나 되더군. 총 82개 업체는 필히 건져야 하네.”

정헌몽 회장이 탁자 위로 쓱 들이미는 자료에는 중소기업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82개 업체라니 생각보다 많다. 기술력, 사장 성향, 특허, 직원들 평균 근속 연수, 부채 비율 등등 꽤나 많은 데이터들이 모여 있었다. 각 항목에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주면서 양질의 회사를 골라냈는데, 이 데이터가 사실이라면 내가 다시 검토한다고 해도 버릴 만한 회사가 없다.

기자들에게 나눠 줄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백여 장 넘게 복사를 해 뒀다.

“역시 만만찮게 많군요. 정 회장님, 이거 한 번 도와주기 시작하면 발 못 뺍니다. 3년 정도는 끌고 가셔야 하는데 처음부터 82개 업체라… 가능하시겠습니까?”

“우리 그룹도 자네 도움이 없었다면 자칫 망가졌을 거네. 힘들더라도 이 파도만 같이 넘어 볼 생각이네. 자네도 도와줄 거 아닌가.”

“저야 용인밸리라는 양질의 회사를 살리면서 지분도 얻는 형태입니다. 허나 사장님은 저와 달리 한부철강이라는 돈 먹는 하마를 같이 인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최대한 건지는 중소기업 숫자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기하자동차도 터질 거고, 대현그룹 협력 업체도 남아 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대현전자가 캐시카우 역할을 해 줄 거네.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을 거네. 자네 말이 3년만 견뎌 내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되면 반격할 수 있다고 말일세.”

“미래가 어찌 될지는 저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나는 정헌몽 회장을 재차 몰아붙여 보았다. 이거 한 번 시작하면 중도에 멈출 수가 없다. 돈 계산 삐끗하면 같이 쓰러진다.

“설령 도박이라고 해도 하겠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네. 솔직히 성공만 하면 대현은 초일류 그룹이 될 수 있네.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지.”

정헌몽 회장의 표정이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그도 한때 그룹 전체가 망가질 뻔한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닌가. 혹시나 지원 대상에서 살려야 할 기업이 빠질까 싶어 이 작업을 몇 번이고 반복시켰을 거다. 그러니 이렇게 숫자가 늘었지 싶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긴급 수혈은 제가 하죠.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중소기업에 1,200억, 한부철강엔 3,000억이 필요하네. 10월엔 1조 정도만 도와주게.”

“일단 4,200억을 지출하면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기자회견은 준비해 뒀네.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다음으로 미루겠네.”

“아닙니다. 쇠뿔도 단 김에 빼야지 미룰 필요 있겠습니까?”

“앞장서게. 내가 옆에 서겠네.”

벌컥!

정헌몽 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자료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로비로 내려갈수록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그리했는데, 기자들을 꽤나 불러 모았나 보다.

웅성웅성.

펑! 펑! 찰칵! 찰칵! 찰카닥! 파팍! 펑! 펑!

“나오신다! 사진 찍어! 찍어!”

“대현과 스마트 클라우드가 뭉쳤어. 소문이 사실인가 봐!”

“조용! 조용! 다들 조용히 해 봐!”

“당신부터 조용히 해!”

내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고 기자회견 단상에 서자 기자들이 서로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칠 정도였다.

“바쁘신 와중에 긴급 기자회견에 참여해 주신 기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재계에 큰일이 닥친 마당에 가만히 지켜볼 수 없어 이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한부 사태에 개입하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조용히 해! 지금이 질문할 타이밍이냐!”

기자들이 알아서 좌중을 정리해 주니 고맙네.

“저희 스마트 클라우드는 대현과 협력해 한부 사태에 개입키로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경제계 전체의 위기라는 인식하에 긴급 수혈을 하고자 하며, 최종 목적은 양질의 중소기업들이 살아남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여, 긴급 조사를 거쳐 총 82개 업체를 선정해 열흘 이내에 총 1,200억을 지원하고자 하니 시중 은행들은 지금 즉시 해당 중소기업의 부도 처리를 유예하시기 바랍니다.”

우와아아아아!

펑! 펑! 찰칵! 찰칵! 찰카닥!

내가 82개 업체를 언급하자 정헌몽 회장이 직접 자료를 나눠 주는 수고를 해 줬다. 회장으로서 자세 잡기를 좋아하는 재벌 1세대와는 현격하게 다른 모습이다. 나에게 칼자루를 맡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한부철강에도 3,000억을 긴급 수혈을 하고자 하니 한부철강의 임직원분들께서는 즉각 용광로를 회복시키시길 바랍니다.”

우와아아아아!

“스마트 클라우드가 그리 나서는 이유가 뭡니까? 뭔가 대가를 바라시는 것 아닙니까?”

“야, 이 미친놈아. 뭔 그따위 질문을 해! 하여간 고려일보 새끼들!”

나는 최선을 다해 표정 관리를 했다. 하긴 정경유착이라는 고질적인 병폐가 팽배한 1990년대에 나올 법한 질문이긴 하다. 그게 하필 고려일보 기자가 떠들어 대니 기분이 나쁠 뿐이다.

“대가라기보다 정재계와 노동계에 제안 사항이 있습니다. 현 상황은 대외 경제 상황에 따라 악화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정부는 노동법 개정을 원상 복귀하고, 노동자분들은 쟁의를 멈추시고 조속히 현업에 복귀하셔야 하며, 사측은 필사즉생의 자구책을 강구하셔야 합니다. 특히, 한부 사태에 대규모 정계 로비가 있었다는 정황이 포착되는 만큼 정수태 회장을 즉각 구속하여 회장직을 내놓게 하고, 정계에 뿌려진 뇌물을 회수하여 연쇄 부도에 처한 한부그룹 계열사를 지원해야 합니다.”

“뇌물이라니요. 소문을 사실로 만들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께서 저희 경제 기반은 튼튼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은 엄벌에 처한다고 경고한 이력이 있습니다. 지금 그 말씀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다급한 시점에 꼭 이렇게 초를 치고 나서는 놈들이 있다. 이런 놈들이 분열을 일으키고 난국을 해결하는 데 발목을 잡는다.

“대체 어느 신문사 기자이기에 그런 질문을 합니까? 지금 사태가 위중한 게 안 보이십니까? 제가 수천억이라는 돈까지 내놓으며 남의 회사 이래라저래라 하는 상황이 정상으로 보이십니까? 기자면 기자답게 내게 사실을 묻지 말고 스스로 발로 뛰며 취재하세요.”

나는 기레기 같은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 으르렁거렸다. 이따위 쓸데없는 질문을 받고 있을 시간 자체가 없다. 정재계 여론을 움직여 추경 예산을 확보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대통령보고 직접 추경을 확보하라고 할 수는 없잖나.

“나눠 주신 지원 대상 기업 중 한부철강을 제외하고는 한부 계열사 지원책이 없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요?”

기레기가 도발을 멈추지 않는다. 한부를 물에서 건진다고 했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쾅!

“저는 정부도 은행도 아닙니다. 일개 회사 사장인 제가 나선 것은 열심히 일해서 납품한 대가로 부도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부그룹 임직원들 각성하십시오! 경영진의 부실 경영을 모른 체하고 입까지 닥치고 있다가 이런 꼴이 난 겁니다!! 월급을 반납하든 뇌물을 회수하든 회사 비자금을 털든 자구책을 마련하란 말입니다!!!”

나는 화가 나서 단상이 부서져라 내리치며 소리쳤다.

펑! 펑! 찰칵! 찰칵! 찰카닥!

“옳소!”

“고려일보 새끼들! 꺼져라!”

“옳소!”

“경향일보는 유 사장님 말씀을 헤드라인으로 전하겠습니다.”

“연합일보도 속보로 전하겠습니다.”

“뇌물 취재하러 갑시다, 여러분들!”

누군가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기자들이 마구 사진을 찍는다. 기자회견장 분위기 자체가 기사화되는 최초의 일이지 않을까 싶다.

쾅!

“기자 여러분, 즉각 행동해 주십시오. 썩어 버린 정치인들이 뇌물을 토해 내게 만들어 주시고, 빌어먹을 정경 유착을 해 댄 노망난 회장은 끌어내리고, 그놈에게 협력한 한부 임직원들은 책임지고 허리띠 졸라매서 회사 살리라고 하고, 제가 지원한 돈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감시하시고, 살려야 할 기업이 빠졌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와아아아아!

“가자! 취재하러 가자!”

“뇌물 토하게 만들자!”

“정수태 그놈 비리를 까발리자!”

“검찰을 압박해!”

펑! 펑! 찰칵! 찰칵! 찰카닥!

우르르르르.

기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진 한 방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대현전자 로비를 빠져나갔다. 정헌몽 회장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텅 비어 버린 로비에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도박에 참여한 사람치고 표정이 꽤나 진중했다.

    • *

끼릭. 끼릭.

깎을 쇠를 끼워 넣지 않아 헛돌아가는 밀링 머신 앞에서 허일우 사장은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중소기업에 사장실 따위가 어디 있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모퉁이에 책상 하나 놓아둔 곳이 사장 자리다.

허 사장이 책상 서랍을 뒤져 끊었던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사장인 주제에 사내 금연이라는 원칙을 깨는 것 따위 지금에 와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쩌나. 1억 8천을 어쩌나. 이미 집은 담보로 맡겼는데… 처갓집도… 직원들 월급은 또 어쩌고…. 허허, 이거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만.’

담배를 깊게 빨아 봤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 갔기에 그럴 것이다. 부도까진 불과 하루도 남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마련할 구석이 없었다. 돌아가는 밀링 머신에 당장이라도 머리를 처박고 싶었다. 소주라도 한 병 마시고 하면 좀 나으려나… 하면서 말이다.

다다다다.

“사장님! 사장님!”

“…….”

“사장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다 틀렸다, 박 과장. 한부에는 돈 한 푼도 없어. 내 눈으로 보고 왔다.”

“아이고! 사장님, 그게 아니고요. 이거 좀 보십시오. 이거!”

박 과장이 신문 조각을 들고 왔다. 얼마나 급히 달려왔는지 신문이 찢어졌을 정도다. 박 과장이 가리킨 곳을 보니 ‘미성엔지니어링, 3억 5천’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뭐야? 누가 신문에 우리 회사 이름을 적어 놨지?

한데 찢어진 신문을 맞추니 기사 제목이 ‘스마트 클라우드 긴급 지원 대상 기업 목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왠지 그 제목을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게 뭐고, 박 과장?”

“형님, 우리 살았습니다. 살았어요.”

“뭐냐고, 이게!”

“살았다니까요. 형님이 착하게 살았다고 도와준다 안 캅니까!”

박 과장은 허일우 사장을 부둥켜안았다. 자기도 모르게 사장님 대신 예전처럼 형님 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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