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장 검은 돌, 흰 돌 (54/104)

제2장 검은 돌, 흰 돌

1995년 6월, 중국 심천.

매앰, 매앰, 매앰~

이 비서는 벌써부터 매미 소리가 들리는 곳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점심 식사를 이리한 지가 벌써 6개월은 된 듯하다.

“뭐하는가? 이 실장, 자네가 둘 차례야.”

“아, 예.”

딱!

이 비서는 바둑판을 한참 바라보다 결국 검은 돌을 흰 돌 사이에 끼워 넣었다.

“허허.”

딱!

맞은편에 앉은 시중쉰이 기분 좋게 웃더니 흰 돌을 이 비서의 검은 돌에 날 일(日) 자로 띄워서 두었다. 그러면서 바둑판 옆 소반에 얹혀 있는 차를 한 잔 마신다. 그 돌로 이 판은 이겼다는 듯 말이다.

“헉! 아이고, 이거 또 제 수가 들켰군요.”

“그러게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이 있잖나. 어디 한번 끝까지 둬 보게.”

“이거 의미가 있나 모르겠습니다.”

딱. 딱. 딱.

몇 수 두지 않아 이 비서의 검은 돌은 우수수 방벽이 무너지며 한쪽 변에 지었던 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중앙 쪽에서 물밀듯 들어오는 흰 돌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촤르륵.

“시 선생님, 제가 졌습니다.”

이 비서는 항복의 의사로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바둑돌 통에 소리 나게 집어넣으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허허허, 오늘도 나를 봐준 건가? 처음 공격은 유난히 날카로웠는데 말일세.”

“다섯 점이나 먼저 깔아 두고도 못 이겼는데 어찌 봐준다고 말씀하십니까? 오늘도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허, 감사는 무슨. 매일같이 늙은 퇴물과 같이 시간 보내 주는 자네에게 외려 내가 감사하지.”

“어찌 그런 말씀을. 선생님의 고견을 듣는 것은 저 또한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덕분에 장사꾼답지 않게 정중한 중국어도 배우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더듬거리지도 않는군. 누가 보면 중국 토박이라고 하겠어. 참으로 대단하이.”

“하하, 과찬이십니다. 언제나 천천히 말씀해 주시고 또 고쳐 주시니 이리된 거지요.”

이 비서가 바둑돌을 치우자 시중쉰은 마른 헝겊으로 조심스럽게 바둑판을 닦았다. 이 비서는 그의 손길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바둑판을 옮기고 옆에 있는 소반을 중앙에 두었다. 바둑판 두께가 20센티가 넘을 정도로 무거웠기에 옮기는 것은 언제나 이 비서의 몫이었다.

한국에서 공수한 바둑판. 바둑판 뒤에는 조현훈 9단의 서명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중국의 뇌물 문화를 공부한 이 비서는 시중쉰의 취미가 바둑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자그마치 천만 원을 들여 최고급 바둑판을 선물한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 조현훈 9단은 하향세지만 중국인들에겐 아직까지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사였으니까. 1989년 대만의 재벌 잉창치가 주최한 세계 최고 규모의 대회인 응씨 배 결승에서 조현훈 9단이 중국의 별 녜웨이핑 9단을 꺾은 일은 중국 바둑인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었다.

매앰, 매앰, 매앰~

쫄쫄쫄.

“자네가 나를 찾아온 지 불과 반년인데, 마치 십년지기 같아.”

이 비서의 찻잔을 채워 준 시중쉰이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담소를 시작했다. 한데 오늘따라 말이 진중했다. 언제나 어렵지 않은 단어 위주로 대화를 하던 그가 아니었다.

“이곳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 바깥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가지. 할 일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기도 하고.”

“…….”

“자네의 주인도 바둑을 잘 두나?”

“제가 모시는 분은 바둑을 크게 두십니다. 제가 아는 한 시 선생님의 풍과 격에 잘 어울리실 거라 생각합니다.”

“허허, 유수한 선생이라고 했던가. 어째 기회가 되겠나?”

쪼르륵.

“나이는 젊으나 미래를 논하신다면 단언컨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언제가 좋겠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요. 홍콩 반환이 이제 2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심천의 개방은 오롯이 시 선생님 가문의 몫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달 내로 준비해 줄 수 있겠나. 나 또한 준비를 해 봄세.”

“예.”

중국인답게 빠르게 준비하는 것이 한 달이다. 99년을 기다려 영국 정부로부터 홍콩을 넘겨받는 중국다운 일 처리였다.

자리를 뜨는 시중쉰. 이 비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서 바둑판을 쓱 하고 손으로 문질러 주었다. 돈값을 톡톡히 한 바둑판에 뽀뽀를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 *

1995년 7월.

찌이잉.

“이야! 수한 씨, 군인이 얼굴이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멋진 포르쉐가 내 앞에 서고 유리창이 스르륵 내려간다. 안쪽의 운전석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차를 또 바꿨군.

철컥!

“하하, 마중 나와 줘서 고마워. 어서 가지. 보는 눈이 많아.”

“야압!”

부르릉!

이 비서가 끌고 왔던 밴틀리가 아는 사람만 아는 차라면 포르쉐는 솔직히 너무 눈에 띈다. 포르쉐답게 쓩쓩 하며 단박에 튕겨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속도로에 휭 하고 접어들었다. 한데 이상하게 용인 톨게이트로 빠지지 않고 계속 간다.

“으잉? 회사로 가는 거 아니었어?”

“수한 씨, 사람들이 주말에도 못 쉰 지가 벌써 10개월째예요. 특히 오 이사며, 김 팀장은 앰팩폰 때문에 영양제를 맞으며 일하더라고요. 내가 우겨서 좀 쉬라고 했어요. 다들 너무 달리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내가 시킨 숙제들이 너무 많긴 하군. 케이가 와중에 중심을 잡아 줘서 다행이다.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뭐, 조금 여력이 되는 사람은 일을 해야죠. 이 비서가 일주일 전에 연락을 했더라고요. 정치 거물이 수한 씨를 보고 싶다고 했다나. 수한 씨에게 보고도 못하고 일 처리가 이리되었네요.”

“정치 거물? 이 비서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건가?”

“미안해요. 권 부장도 유럽 출장 중이라. 내가 연락 받았는데 수한 씨에게 보고를 못 했어요. 이 비서와 시중쉰이 같이 들어온대요. 우리가 먼저 가 있어야 해요.”

“호오?”

아무리 시중쉰이 은퇴한 사람이라곤 하지만 엄연히 중국 공산당 거물인데 이리 조용히 들어온다고? 내가 군에 머무른 뒤로 스마트 클라우드의 정치력이 한층 커진 느낌이다. 내 동료들이 자발적으로 일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증거다. 좋은 시그널이다.

만종분기점.

어라? 중앙고속도로? 그러고 보니 작년 12월에 중앙고속도로가 뚫렸지.

“수한 씨, 안전벨트 했죠? 호호, 내가 드디어 한국에서 포르쉐를 몰 만한 곳을 찾았지요.”

“케이, 뭐 하려고?”

“자! 폭발적인 가속이 뭔지를 보여 줄게요!”

부우우웅.

“케이!”

“여오오홋!”

부아아아아아앙!

“아아, 속도 좀 줄여.”

“정말 근사하지 않아요? 이 넓은 고속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다고요!”

케이는 만종분기점에서 신림 톨게이트까지 단 몇 분 만에 주파해 버렸다. 약속 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려야 한다는 핑계로 말이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지방 도로를 타고 올라가니 정말이지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우와! 여기가 어디지?”

“정말 멋있지 않아요? 서마니강이라는 곳인데 경치가 끝내줘요.”

위이이잉.

포르쉐의 뚜껑이 벗겨진다. 컨버터블이었군. 시원한 바람이 케이의 말마따나 끝내준다. 절벽과 강이 어울려 흘러가는 모습이 예술이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영화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이곳에 약속 장소가 있어?”

“호호, 내가 별장 하나 지었어요. 시카고 스타일로.”

케이는 정말이지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바람에 긴 금발을 휘날리며 어디선가 파란색 선글라스까지 꺼내서 끼니 마치 여름휴가라도 온 것 같다. 문득 군복을 입고 있는 내가 멋쩍게 느껴진다.

끼이이익, 스르르릉.

깨끗하게 포장된 주차장 너머로는 널따란 잔디밭이 깔려 있고, 커다란 사자상이 지키고 있는 대문 안쪽에는 높다란 목조 건물이 강가를 바라보며 세워져 있다. ‘대체 이런 건물을 누가 관리하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살펴보니 100여 미터 밖에 관리인이 머물 것 같은 1층짜리 건물이 있다.

“다행히 아직 안 온 것 같네요. 올라가죠, 수한 씨.”

“이 비서가 여길 알아?”

“최대한 자세히 알려 줬어요. 문제없이 올 거예요.”

딸랑딸랑.

“허… 여기 카페야?”

“호호, 그런 셈이죠. 카페이자 내 전용 사무실이자 별장이죠.”

열어 둔 대문에 걸쳐 놓은 발을 젖히고 들어가니 또다시 정원이 나온다. 석조 다리 아래로 연못이 있고, 정자까지 있는 것이 매우 동양적인 분위기다. 어디선가 풍경 소리마저 들리는데 어째서 이게 시카고풍이라는 건가.

안으로 들어가자 더욱 동양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향긋한 나무 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곳곳에 멋진 서예 작품과 도자기를 장식해 뒀다. 마치 21세기 럭셔리 카페를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이미 케이가 준비를 시켜 뒀는지 직원들이 다가와 나에게 양복을 내민다.

“유 사장님, 오늘은 날씨가 더우니 하늘색, 아이보리 위주로 준비했습니다. 이쪽으로.”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봐 왔다는 듯 내 피부톤까지 감안해 코디를 해 놨다. 탈의실로 가니 간단하게 세안도 할 수 있는 곳이었고, 온갖 화장품이 즐비했다. 케이가 자신의 사무실이라고 언급할 만하군.

“호호호, 금세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변신했군요.”

옷매무새를 다듬고 짧은 머리에 왁스칠을 좀 했더니 내가 봐도 한결 사람다워진 모습이다.

쏴아아.

케이를 따라 발코니처럼 삐져나온 곳으로 나가자 정면 절벽에 작은 폭포까지 보인다. 양쪽으로 멋들어진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는 꼴이 어찌 보면 발코니를 공중에 떠 있는 정자처럼 꾸몄다고도 할 수 있겠다.

“멋진 곳인데?”

“한국은 참 멋진 곳이 많은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 같아요.”

“별장 세울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야. 앞으론 달라질 거야.”

“호호, 말조심해야겠네요.”

“이 비서는 언제 오지?”

“곧 올 때가 되었는데… 아참! 바둑판! 손지영 씨! 여기 바둑판, 바둑판!”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자 직원 두 명이서 낑낑대며 강가 풍경이 보이는 발코니에 바둑판을 옮겼고, 방석까지 갖다 놓는다. 케이가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 환하게 웃었다.

탁! 탁!

“수한 씨, 여기 앉아 봐요. 나 이거 정말 해 보고 싶었어요. 사극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에?”

케이는 연신 방석을 손으로 두드리며 바둑판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어서요. 바둑 둘 줄 알죠? 이 비서 말로는 잘 둘 거라던데.”

“바둑?”

바둑이야 두지. 인터넷으로 바둑 게임을 하면 승보다 패가 많아서 그렇지. 대체 나를 뭐로 보고 바둑을 잘 둔다고 여기는 거지?

딸랑딸랑.

멀리서 풍경 소리가 들린다.

“사장님 먼저 와 계신가요?”

“예,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비서 목소리가 들리기에 입구로 나가 손님을 맞이했다. 어라, 시중쉰 옆에 젊은 사내가 보인다. 너무 젊긴 하지만 시진핑이 분명했다.

“이분은 시중쉰 선생님이시고, 이분은 샤먼시 부시장이자 시 선생 아드님 시진핑 씨입니다. 인사 나누시지요, 사장님.”

이야! 이 비서가 대박을 건져 왔다.

“어서 오십시오. 유수한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소이다. 시중쉰이오.”

“저는 시진핑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 비서의 인맥 창출 능력도 놀랍지만, 중국어 통역까지 하니 더욱 놀라웠다. 이 비서는 언어능력에 비상한 면이 있다. 눈치가 빨라서 그런가. 아니, 센스가 있다고 해야 하나.

“안녕하세요. 저는 버지니아 트레이딩의 케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부축해 드리지요.”

나는 자연스레 시중쉰을 부축해 발코니로 나아갔다.

“오!”

그들의 눈에도 여기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니, 시중쉰은 내가 자리를 권하기도 전에 바둑판 앞에 앉았다. 그러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팔을 내밀어 어서 앞에 앉으라는 뜻을 전했다.

내가 당황하기도 전에 옆에는 각각 케이와 시진핑이 자리했다. 바둑은 2 대 2로 두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카페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이 비서가 조심스레 바둑판 옆쪽에 앉았다.

    • *

“시 선생님, 먼 걸음 하셨습니다. 제가 찾아봬야 하는데.”

“허허, 내가 아무리 기다리는 걸 좋아해도 후년까지 참을 수는 없더군. 잠시 휴가를 나온다기에 바둑을 두고 싶었네.”

“제가 상대가 되겠습니까? 기껏해야 재미로 몇 번 둬 봤을 뿐입니다.”

“바둑은 여러 가지를 말해 주지. 굳이 승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네.”

말이 길었다고 생각해서일까? 시중쉰의 눈짓에 시진핑이 바둑돌을 바둑판 위에 척 하고 얹는다. 케이가 눈치 빠르게 검은 돌을 가져온다.

“차부터 한 잔 하셔야지요, 시 선생님.”

“아니오, 처자. 목은 마르지 않소. 나는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오.”

케이의 말에 시중쉰이 점잖게 대답했다. 케이가 눈짓을 하자 직원들이 각자 옆자리에 다기 세트만 가져다 놓고 자리를 떴다. 이 비서가 알려 줬는지 시중쉰 옆의 소반에는 특이하게 재떨이까지 가져다 놓는다.

“선생님, 어찌 두면 되겠습니까?”

“다섯 점을 먼저 두시게. 그 또한 보고 싶었네.”

“예, 그러겠습니다”

딱. 딱. 딱.

우연일까? 하필이면 5점을 먼저 두라고 한다.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나는 검은 돌을 집어 거침없이 포석을 했다. 한쪽 모퉁이에 3점을 몰아 넣고, 중앙에 2점을 놓았다. 바둑에서 보면 변칙도 이런 변칙이 없을 거다.

“으흠, 특이한 포석이군.”

딱.

시중쉰이 대각선 방향의 화점에 착수를 했다.

“돌 하나를 더 놓으시죠. 그래야 적당한 게임이 됩니다.”

“으흠?”

내 말에 시중쉰은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바둑을 바둑이 아닌 것으로 바꿔 버렸다.

내 메시지를 알까? 이 포석의 의미를 안다면 시진핑을 주석으로 만든 사람은 시중쉰이다. 이 의미를 모른다면, 시진핑이 국가 주석이 된 것은 우연이 겹친 일이다. 이것부터 알아야 내가 얘기를 풀어 나갈 수 있다. 우연이라면 내가 만든 나비효과까지 고려해야 하니 계산이 복잡해진다. 나는 애써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유 선생, 이게 무슨 뜻인가?”

“저는 바둑은 모르지만 시장 확보는 어찌해야 하는지 잘 압니다. 이 포석이 어떻게 보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만….”

“먼저 묻고 싶군. 검은 돌 세 개, 검은 돌 두 개… 어째서 떨어져 있는가?”

“적은 연합했지만 연합하지 않았습니다. 그 간격이 이만큼입니다. 치고 들어갈 공간은 충분하지요.”

나는 모퉁이와 중앙에 놓인 검은 돌 사이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역시! 내가 사람은 제대로 찾았군. 이 바둑판이 정치판이군! 기가 막힌 구도야.”

“……!”

이 양반, 다행히 판을 짜고 있었다. 얘기하기 아주 쉽겠다.

일곱 개의 돌은 중국 최고 지도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의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각자 우리나라 국무총리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국가적인 의사 결정에 동등한 표를 행사한다. 의사 결정은 무승부가 있을 수 없기에 상무위원 숫자는 일곱 명이나 아홉 명으로 홀수다. 나는 지금 그 숫자부터 아홉 명이 아니라 일곱 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의사 결정이 표결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중 조정을 통해 통과시킬 자신이 없는 의안은 알아서 포기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나마 만장일치의 형태를 갖추기에 언제나 물밑 접촉을 통해 의견 조율을 하고, 겉으로는 적아를 구별하기 힘들다. 정치 보복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중국만의 정치 문화이며, 시중쉰은 그런 문화를 적극 이용하면 시진핑을 국가 주석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중국의 등소평이 자신의 후계자로 장쩌민을 지목했을 때, 그다음 주석은 후진타오가 되는 조건으로 승인했으니까. 즉, 등소평은 후진타오 정권까지는 설계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정권 교체는 10년 이상 걸린다고 봐야 한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미 내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허니 그다음을 바라셔야겠지요.”

“허, 내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겠구먼.”

“아버님은 100세까지 건강하실 겁니다.”

옆에서 시진핑이 말을 보탠다. 효심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원래 역사에선 시중쉰의 장례식장에서 모든 정치적 물밑 작업이 급물살을 탄다. 정계의 거목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거든. 아비가 적당한 때 하늘로 간 것조차 그에겐 행운이었다. 지금 나를 만난 것도 행운이 될 것이다.

“내 명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두 개의 흰 돌 중 하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유 선생, 말해 줄 수 있겠나?”

시중쉰은 자신 앞에 있는 흰 돌의 하나를 톡톡 두드리며 내게 물었다.

내가 미래의 기억에 비추어 그 흰 돌의 이름을 알려 주는 대가로 스마트 클라우드는 시중쉰과 시진핑의 보답에 힘입어 심천과 샤먼을 통해 중국 시장에 제대로 진출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그린 그림이다.

“그 돌이 누구인지 확신할 순 없지요. 정치 변수를 제가 제어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태자당이자 상하이방의 일원을 흰 돌 하나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상하이는 장쩌민 주석의 본거지. 한데 태자당이라니?”

태자당은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중국 인민들에게 전설이 있습니다. 대장정, 국공내전, 항일전쟁 등등 그 전설의 후계자 또한 있지 않습니까. 결국 정치인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 오….”

태자당은 신화화된 중국 공산당의 초창기 핵심 멤버의 후손들이다. 시중쉰도 그 세대라 할 수 있으니, 시진핑도 명목상으론 태자당의 일원이다.

시중쉰은 내 말을 듣고 단박에 몇몇 인물이 떠오르는지 손가락을 까닥까닥했다.

치익.

“어르신, 담배 찾으십니까?”

눈치 빠른 이 비서. 통역을 하면서 품에서 바로 담배를 꺼내 불까지 붙여 준다. 시중쉰이 흡연자였군. 오래 못 산 이유가 있다. 여하튼 중국 문화에서 질 좋은 담배를 권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대접이다.

“후우.”

시중쉰은 담배 연기를 한껏 내뿜으며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러운 무언가가 머릿속에 채워지나 보다.

“알겠네. 태자당이 두 명. 그럼 검은 돌 세 개는….”

“상하이방.”

“중앙에 있는 검은 돌 두 개는….”

“공청단. 차기 국가 주석이 될 후진타오가 이 돌 중 하나지요.”

공청단은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을 줄여서 말하는 것이다.

“공청단을 어찌 중앙에 두었나?”

“후진타오가 차기 주석이 될 거라는 의미에서 중앙에 두었고, 넓기만 하고 별로 실익이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겠군요.”

“하하하하! 허면, 결국 내 아들은 공청단의 약점을 노리면 되겠군!”

“이 자리엔 로비의 대가가 있습니다. 케이 양이지요. 의견을 물어봐도 될까요?”

“오호, 내가 깜빡했군. 미국 정계에서 잔뼈가 굵었다지요? 한 수 가르쳐 주시오.”

케이는 로비스트답게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에도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고 외려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바둑돌을 가리키자 케이는 주저하지 않고 상하이방을 표시하는 세 개의 돌 중 하나를 움직여 백돌 곁으로 이동시켰다. 합치는 게 아니라 딱 중간에 돌을 배치했다.

“공청단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상하이방과 연합하셔야죠. 약한 세력은 일단 덩치부터 키우고 보셔야 합니다. 흰 돌, 검은 돌 구별하시면 안 되죠. 모두 내 돌처럼 아껴야죠. 호호호.”

“으음, 태자당도 되고 상하이방도 되는 이가 필요하다. 그가 핵심 연결 고리라는 말이구려.”

“유수한 사장이 후진타오가 차기 주석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이 돌에 힘을 몰아주면 자연스레 차차기 주석 자리는 흰 돌에 떨어집니다. 검은 돌은 검은 돌을 싫어하잖아요.”

역시 케이. 나와 시중쉰의 대화만으로 세력 다툼을 단박에 파악했다.

케이는 천칭 이론을 설명한 것이다. 세력 다툼을 하는 이들은 결국 팽팽히 맞서다 보면 제3세력을 수장으로 만들고 그 뒤를 조종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후진타오가 주석 자리를 내놓을 차례가 되면 상하이방은 공청단을 적극 견제할 것이고, 공청단도 마찬가지니 결국 양쪽 파벌 모두 중립적인 태자당에서 세력이 가장 하찮은 이를 주석으로 밀게 된다. 그게 원래 역사에서 시진핑이었다. 바지 사장을 앉힌 격인데, 결국 그룹 회장이 되어 버린 셈이다.

“오호, 묘안이로다.”

“아버님, 묘안이긴 하나 결국 발탁된 흰 돌은 검은 돌에 압사당합니다. 허명만 얻을 뿐, 세력 구도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번엔 시진핑이 끼어든다. 냉정한 판단력이다. 나는 케이가 옮긴 바둑돌을 톡톡 두드렸다.

“이 바둑돌이 아주 시꺼먼 놈이면 좋겠습니다.”

“음?”

“야망도 크고 속까지 검어 결국 제풀에 타락해 버릴 인물이면 좋겠군요.”

“보시라이!”

좌중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소리를 치는 시진핑. 드디어 내가 원하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시진핑 그마저도 무심코 그 이름을 말해 버릴 만큼 뭔가를 깨친 것 같았다. 하긴, 한국인인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니 중국인은 어련할까. 보시라이 그 양반은 정치인으로 인기도 많았지만 첩이 100명이나 될 만큼 속이 시꺼먼 사람이다.

보시라이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의 십 대 시절 중국에선 문화대혁명이 터졌고, 그의 아비 보이보가 반동으로 몰려 ‘반동혈통’으로 출셋길이 막힐 위기에 처하자 홍위병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두들겨 패서 늑골을 세 개나 부러뜨렸다. 정말 죽일 듯이 아비를 짓밟아 버린 것이다. 그의 아비 보이보는 이른바 중국 공산당 8대 원로 중 한 사람이었는데, 아들로서 변론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보이보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그의 정치적인 자질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보이보는 병석에서 일어난 뒤로는 첩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보시라이를 ‘손이 독하고 마음이 독해 아비마저 죽이려 할 정도라면, 우리 당의 미래 후계자로서 좋은 재목이다. 나중에 분명히 잘될 것이다. 허니 잘 지켜봐 달라.’라며 공산당 지도부에 뒷구멍으로 줄을 대어 주었다.

심지어 공부도 잘해서 북경대에서 학사와 석사까지 받았으며, 지금은 다롄시장을 맡아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인민들에게 인기 폭발인 사내다.

이처럼 정치인에 참 잘 어울리는 성정이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탐욕적이라는 말도 되지 않겠나. 21세기 들어서 천문학적 뇌물 수수에 수많은 스캔들, 부당한 정적 처치 등등 온갖 부패 혐의로 무기징역을 당하고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원칙적으론 사형을 당했어야 하는데, 집안의 후광에 힘입어 목숨을 건졌다고 할 것이다.

“보시라이가 시꺼먼 돌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 돌을 이용해 상하이방과 연합하시고, 원하는 때에 흰 돌로 바꿔 끼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딱!

나는 검은 돌을 흰 돌로 바꿨다.

“내가 이 흰 돌 중 가장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 대 4군요. 외려 적들이 연합하게 만들 가능성이 커요.”

시진핑이 대화를 이어 갔다. 그가 나와 대화를 하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시중쉰의 표정이 한껏 달아올랐다. 후욱 하고 담배만 피워 댈 뿐 대화에 참여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딱! 딱!

“정치국 상무의원이 꼭 일곱 명이 되라는 법이 어디 있나요? 아홉 명이 되면 안 됩니까?”

“헉!”

“정권을 잡으시면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좋은 핑계가 있잖습니까. 혹시 아홉 명이 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나요?”

“으흠! 안 될 거야. 해 볼 만하겠군요.”

나는 건너편 바둑통에서 흰 돌 두 개를 꺼내 비어 있는 화점에 놓았다. 상하이, 북경, 심천만 개발할 거 아니잖나. 변방 출신이라고 해서 정계에 진출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외려 중앙에서 떨어져 있으면 신나게 해 먹을 거는 더욱 많다. 21세기에 들어서 시진핑이 하는 일이다.

시진핑이 할 말을 잃었는지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본다. 큰 그림이 그려지나 보다.

“어쨌든 그건 먼 훗날의 일이고 단기적으론 어떻죠?”

“글쎄요. 저라면 장쩌민 주석이 퇴임한 후를 노릴 것 같습니다. 퇴임한 이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면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돕는다면 중앙 진출이 가능할 것 같고… 그리고 일단 중앙 진출에 성공하면 후진타오와 협력해 상하이방 차기 대권주자를 날려 버리면 어떨까요?”

“상하이방이 아니라 이젠 후진타오와 협력한다고요?”

“후진타오와 직접 연합하시면 안 되겠지요. 저라면 2인자와 연합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상하이방도 시진핑 님을 대놓고 의심하진 못하지 않겠습니까.”

대화를 마치기 위해선 언제나 간략히 요약을 해 줘야 한다. 나는 검은 돌과 흰 돌을 움직이며 전체적인 그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려 주었다. 시진핑의 눈은 내 손끝을 놓치지 않고 따라다녔다. 어렴풋이 그려지던 그림이 확실해졌을 거다.

“아버님, 어찌 생각하십니까?”

“유 선생을 만난 것은 우리 가문에 홍복이로다. 가히 그의 전략은 세고취화(勢孤取和)에 동수상응(動須相應)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이다. 이제 결과는 진핑, 너에게 달렸구나.”

시중쉰은 바둑 전략에 관한 사자성어를 읊으며 내게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세고취화는 ‘강한 세력에 함부로 싸움을 걸지 말라’이며, 동수상응은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내 전략을 행하라’라는 뜻이다. 중국어가 불편한 언어이긴 해도 사자성어만큼은 참 괜찮단 말이야. 곱씹어 볼 만한 말이 참으로 많다.

“유 선생, 아버님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내 보답을 꼭 해야겠습니다. 아직 힘이 없으니 길게 봐 주십시오.”

시진핑의 말이 아주 정중하다. 여태 불렀던 유 선생이라는 호칭에 유독 힘을 준다. 나 또한 정중하게 묵례를 했다.

“저는 장사꾼입니다. 결국 돈밖에 모르지요. 홍콩, 심천, 샤먼에 수출을 분산시켜 상하이 항구에 근접한 물동량을 마련하겠습니다. 시 가문에서 적당히 배분하시면 상하이방을 자극하지 않고서도 충분한 자금을 마련하실 것 같습니다.”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구체적인 방법은 어떻습니까?”

“대현상선을 빌려 외형적으론 스마트 클라우드를 숨기겠습니다. 그리고 수출품은 대부분 반도체. 저희 쪽에서 뮤직 플레이어, 랜 카드, 핸드 터미널 등등 제품 설계도를 넘겨 드리지요. 맘껏 만드셔서 중국 시장과 세계 시장을 정복하시지요.”

설계도는 저급한 사양으로 전달해 주면 된다. 말로는 세계 시장을 정복해 보라고 했지만 품질 때문에 내 회사 제품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무한한 시장이라고 할 만큼 큰 중국 시장을 뚫고 싶을 뿐이다.

“으흠! 설계도까지? 일본 애들도 그런 접근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단순한 호의일 리는 없을 텐데, 무슨 전략이죠?”

시진핑은 명석한 사람이다. 곧이곧대로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시중쉰은 그런 시진핑을 더욱 따뜻한 눈길로 쳐다본다. 속으로 아들 교육 잘 시켰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을 것이다.

“저희 스마트 클라우드의 대전략에 부합할 뿐입니다.”

“대전략?”

“첨단 제품으로 시장을 타격해 선점하고, 고가 제품으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다음, 중저가 제품으로 시장에서 기존 제품을 몰아냅니다. 그것이 스마트 클라우드의 대전략입니다. 여간해선 바뀌지 않을 겁니다.”

“그 전략이 어째서 이 일과 부합한다는 거지요?”

“저는 단순히 정치 자금을 대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시진핑 시장님의 앞길을 막는 꼴이니까요. 중저가 제품은 중국 산업 굴기의 핵심 전략! 한배를 타고 싶을 뿐입니다.”

“……!”

“저는 돈을 벌고, 시장님은 샤먼시를 발판으로 심천, 홍콩까지 장악하십시오. 홍콩에 IT 회사를 세우는 것은 제 동료가 도우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제야 시진핑이 입가에 미소를 띤다.

‘수한 씨, 나도 끼는 거야?’

케이도 옆에서 좋아 죽는다.

    • *

“살펴 가십시오.”

“덕분에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회사를 구경시켜 드려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니네. 조용히 왔다 조용히 가야지.”

시중쉰은 시진핑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오른다. 이 비서가 알아서 잘할 거다. 접대도 하고 관광도 시켜 주고 회사에 들러 라인도 보여 주고 말이다. 군인인 내가 나서는 것은 너무 눈에 띄는 일이다.

“살펴 가세요.”

부우웅.

케이가 아주 환하게 웃으면서 배웅했다. 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다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나에게 휙 돌아섰다.

“수한 씨, 저들을 믿어도 되는 거예요? 너무 많은 걸 알려 주는 것 같던데.”

“괜찮아.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상 배신하기는 힘들어.”

“설마 진짜로 믿는 것은 아니죠? 정치인의 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요.”

“당연하지. 그러니 케이도 직접 거래는 절대 금물이야. 홍콩에 회사를 세우고 한 다리 건너서 거래해.”

“호호, 당연하죠. 날 뭘로 보는 거예요?”

“방심하지 말라는 의미야. 중국인들은 타고난 상인이라고.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쑥 빨려 들어간다니까.”

“알았어요. 알았다니까요.”

케이는 나에게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댔다. 벌써부터 중국 시장에서 떼돈을 버는 것이 상상되는지 연신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정헌몽 사장님에게 대현상선을 좀 끼워야겠다고 협의해 줘.”

“오케이.”

“아! 그리고 정 사장님 만나면 문예일보 인수 건도 꼭 챙겨 줘.”

“문예일보? 그걸 인수하기로 했어요?”

“내가 언질 안 했나? 내가 직접 운영할 거는 아니고, 그쪽 조직을 그대로 두고 지분만 50% 정도 인수해서 재무 구조만 떠받쳐 주려고 해.”

“수한 씨답지 않게 어째서 신문사를 욕심내는 거예요?”

“일반 신문사가 아니라 정말로 문화 예술에 전문화된 언론사로 키웠으면 해. 관련 잡지도 만들고.”

“이야, 예술 지원을 하려는 거군요.”

“응. 비슷해.”

내 말에 케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나름대로 내 의도를 정리한다. 굳이 10년 뒤에 미디어 사업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생각이 복잡해지네요.”

“복잡할 거 뭐 있어. 인수 부탁해.”

“안 되겠다. 산책부터 해야겠다.”

“하하하.”

뜬금없이 화제를 돌리는 케이. 그녀다운 유쾌한 화법이다.

그녀가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가 시원한 음료수 잔을 들고 왔다. 그리고 멋들어진 오솔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가로등마저 멋지게 설치해 뒀기에 난 깜짝 놀랐다. 역시 케이는 돈을 쓸 줄 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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