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6장 거부의 화법 (50/104)

제6장 거부의 화법

“사장님, 대체 누굴 두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아, 내가 이름을 말 안 했나요? 소프트뱅크라는 일본 회사랑 접촉해 봐야겠습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그는 지금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독점 판매권을 따내 일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을 것이다. 확인해 봐야겠지만 원래 역사대로라면 소프트뱅크는 1994년 7월쯤에 일본 주식 시장에 상장했고, 단박에 2천억 엔을 끌어모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해당 시점에 디카 개발과 연이은 입대 문제로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됐다.

“소프트뱅크… 아! 그 대박 쳤다는 일본 회사 말씀이시군요.”

“오 이사님도 알고 계셨군요.”

“알고 있다기보단 재일 교포가 그 회사 사장이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회사가 에그박스나 반도체 딜링을 할 수 있을까요?”

손정의 회장을 재일 교포 사장이라고 칭하니 나에겐 다소 생소하게 들린다. 하긴 지금은 그룹이 아니니 오 이사 입장에선 사장이라는 호칭이 당연하긴 하겠다.

“꼭 소프트웨어만 유통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일단 연락을 해 보죠.”

소프트뱅크의 사업 모델은 나름 독특하다. 본업은 게임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유통업이지만 내가 볼 땐 IT 관련 투자 기업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반도체 분야, 전자 상거래, 파이낸스, 기술 관련 분야 등 각종 기업을 잡아먹다가 결국 일본의 통신 회사까지 죄다 접수했으니까. 애플과 엔비디아를 들이밀면, 에그박스와 그래픽카드는 물론 내 반도체 부품까지 딜링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원래 역사에서 내가 투자한 ARM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사람도 손정의 회장이다. 결국 어느 순간 나와 만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군.

이 비서가 옆에서 ‘소프트뱅크 접촉, 액션 아이템 2번.’ 하고 중얼거린다. 이제 보니 내게 회의록을 실시간으로 확인받는 행동이었나 보다.

“그럼 사장님 명의로 소프트뱅크와 면담을 추진하겠습니다. 최소한 임원진이 참석토록 조치하겠습니다.”

“소프트뱅크 사장에게 직접 방문해 달라고 하십시오. 응해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1994년 말부터 6개월간 매우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컴덱스’를 손에 넣었고, 각종 일본 게임사 및 야후의 지분을 매입했으며, 1996년 1월에 야후재팬을 공동 출자하면서 소프트뱅크 주식에 날개를 달았다. 그로부터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1999년 말 20조 엔에 달했으며 손정의 회장의 재산은 76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다. 물론 그 이듬해 주가는 100분의 1로 떡락하지만 말이다.

맥락상 살펴보면 지금 역사에서는 픽사, 파이오니어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 스티브 잡스가 에그박스라는 멀티미디어 기기를 선점했고, 파이오니어가 야후를 대신하고 있잖나. 이 시점에서 아직 접촉을 해 오지 않은 것뿐 투자처를 찾는 행보 끝에 결국 나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을 거다.

“케이도 참석토록 일정 조율해 주시고요.”

“예.”

면회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5년 전 퀄컴의 어윈을 한국으로 불렀을 때가 떠오른다. 아마 그때도 12월이지 않았나 싶다.

    • *

12월 24일 토요일

군인 주제에 크리스마스이브가 주말이라는 핑계로 외박을 할 수 있었다. 재수가 좋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눈발도 날리는 것이 오랜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해도 될 것 같다.

크리스마스 휴가와 연말 휴가를 연이어 쓰는 미군들의 특성상 카투사 인원들이 부대 정비를 해야 하는 상황. 나 또한 도서관 전체를 정비하느라 시간을 꽤나 보냈기에, 오후에 들어서서야 부대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다.

부우웅. 스르륵. 철컥.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눈길이라 좀 늦었습니다.”

“아뇨. 나도 금방 나왔어요.”

“타시죠.”

이리 차를 태워 주는 사람이 있으니 더욱 좋다.

“오 이사는요?”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몬타베로 바로 오겠답니다. 케이 님은 시간 맞춰서 온다고 했고요.”

중간에 이 비서가 와서 현황을 알려 줬었다. 내 예상대로 소프트뱅크와 연락을 취하니 손정의 회장이 직접 한국으로 날아온다고 했다. 비밀리에 움직이기를 좋아해서인지, 크리스마스에 관심 없는 일본 문화 때문인지 크리스마스이브에 약속을 잡아도 그러려니 했다는 것이다.

    • *

몬타베.

오랜만에 와 본다. 가게 주변은 한층 깨끗해졌다. 용인밸리가 정돈되는 와중에 이곳 또한 주변 도로와 가로수가 깔끔해졌다. 

딸랑딸랑.

“어서 오십시오.”

“잘 지내셨죠?”

“오랜만에 오셔서 더욱 반갑네요. 안쪽으로 드세요.”

하루코는 이제 억양마저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방에 들어가니 케이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요, 수한 씨.”

“일찍 왔네.”

“면회 못 가서 미안해요.”

“미안하긴. 조심하는 게 당연하지.”

케이는 말이 훅훅 튀어나올 뿐 행동은 신중한 편이다. 내게 줄을 대 준 것이 혹시라도 말이 새어 나갈까 봐 면회를 자제하고 있었다. 이런 여자가 큰돈을 써야 할 때는 오히려 과감히 행동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성향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쪼로록.

“몸부터 녹여요.”

식전 차로 따끈한 우롱차를 마시니 속이 풀려 나간다. 조용한 음악에 곁들여 마시니 더욱 좋다.

“본의 아니게 올해 크리스마스는 한국에서 보내게 됐네. 미안해.”

“미안하긴요. 근데 소프트뱅크가 그리 대단한 회사예요? 애플과 엔비디아에는 일본 딜러로 검토해 본다고 동의를 얻긴 했는데 스마트 스토어를 직영하면 안 돼요? 소프트웨어 회사가 제품 유통을 한다는 게 좀 이상해요.”

스티브 잡스 대신 애플을 언급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그가 애플을 장악한 것 같다. 자연스레 차세대 에그박스는 픽사 대신 애플의 이름을 달고 출시되겠군. 스티브 잡스가 차세대 에그박스 개발을 요청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갈라파고스엔 원주민을 써야지. 그리고 소프트뱅크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야. 유통 업체이고, 투자 회사이기도 해.”

“에에? 그럼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대요?”

“뭐, 남의 회사 이름 가지고 왈가왈부할 건 없잖아. 잡스가 소프트뱅크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 안 했어? 손정의 회… 사장을 만나 봤을 거 아냐.”

“잡스가 손 사장을 만났다고요? 그런 말 없었는데요.”

“아냐? 그럼 재훈이랑은 혹시 연락해 봤어? 안 만나 봤대?”

“재훈 씨가 여기 왜 끼죠? 간간이 연락은 하지만 소프트뱅크 얘기는 없었어요.”

“으흠.”

어라? 그럴 리가. 손정의 회장은 사업 초창기에 빌게이츠를 만나 기필코 일본 내 윈도우 판권을 따낸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렇다 쳐도 재훈이와는 무조건 접촉했을 줄 알았는데. 손정의 회장은 대체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딸랑딸랑.

“어서 오십시오.”

“하루코 님, 사장님 와 계세요?”

“예,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때마침 그들이 도착했다.

드르륵.

“어서 오십시오. 먼 걸음 하셨습니다. 안쪽으로.”

“고맙습니다.”

나는 방문을 열어 오 이사와 손정의 회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손 회장은 한국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대충 알아듣는다고 했는데, 고맙다는 말을 제때 쓰는 걸로 보아 사실인가 보다.

“하루코 님, 늘 차려 주시는 걸로 해 주시고, 통역도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세요.”

그러고 보니 하루코 말고도 주방과 계산대에 직원들이 보인다. 나름 장사가 잘되나 보네.

쪼르륵.

나는 손정의 회장을 자리에 앉히고는 찻잔을 채워 줬다. 그의 손이 좀 녹은 것을 확인하고 명함도 교환했다. 자리엔 나, 오 이사, 케이, 손 회장 이렇게 딱 넷이 둘러앉은 꼴이었다. 자리한 사람을 영어로 소개했고, 연이어 날씨 얘기를 늘어놓았으며, 늦었지만 소프트뱅크의 상장을 축하한다는 인사말까지 전하니 어느덧 상차림이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하루코가 문을 닫고 다소곳이 자리했다.

“이 집 음식은 한식과 일식이 절묘하게 어울려 있습니다. 손 사장님을 모시기에는 적당한 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보는 눈도 피하고 말입니다.”

“정말로 그렇군요. 이리 자리하게 되어서 나도 기쁩니다.”

하루코가 통역을 잘했나 보다. 손정의 회장이 자리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한다.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안동소주라고 한국 전통주인데 나름 풍미가 있습니다.”

“제가 먼저 드리지요.”

“손님부터 대접해 드려야죠. 받으십시오.”

잔이 모두 채워지자 자연스레 각자의 술잔이 식탁 중앙으로 향한다.

쨍.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내년에도 하시는 일 모두 잘되십시오.”

“잘되십시오.”

“대박 나세요.”

“잘되십시오.”

어쩌다 보니 내가 건배 제의를 한 꼴이 되어 버렸다. 나는 반쯤 꺾어 마신 손정의 사장의 잔을 재차 채워 주었다.

재일 교포든 일본인이든 일본 문화권의 사람에겐 잔을 꺾었어도 가득 채워 주는 것이 예의다. 간접적인 화법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특성상, 술잔을 한꺼번에 깨끗이 비우고 잔 위에 젓가락을 올려 두거나 잔을 뒤집어 놓으면 ‘오늘은 이만하자’라는 의미로 쓰기 때문이다. 독한 술을 시켰을 경우에는 주량을 배려해 맥주를 같이 시키기도 한다.

하루코는 그런 의미를 아는지 술잔을 투명한 유리잔으로 내놓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프로다.

“연말에 바쁘실 텐데, 직접 한국까지 방문해 주시고 참으로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지요. 스마트 클라우드는 IT 업계의 떠오르는 혁신 기업 아닙니까?”

“저는 솔직히 미국의 애플이나… 특히, 파이오니어는 미리 접촉하셨으리라 여겼습니다.”

나는 나에 대한 얘기보다 궁금한 점을 먼저 물었다. 비즈니스에서 본론을 먼저 꺼낼 필요는 없잖은가.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투자는 언제나 핵심을 공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마트 클라우드가 우선이죠.”

“그럼 제가 초대하지 않았다면, 손 사장님이 저를 찾으셨겠군요.”

“글쎄요. 찾을까 말까 고민했겠지요.”

쨍!

“호호호, 투자 회사 CEO치고는 말씀이 아주 흥미롭네요. 스마트 클라우드가 핵심이지만 찾고 싶진 않았다뇨.”

케이가 손정의 회장과 잔을 부딪치며 말을 이어 간다. 나 대신 질문을 해 주니 고맙다.

“찾지 않겠다기보다 고민을 했다는 것이죠.”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으흠, 이런 자리에서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스마트 클라우드의 미래가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탁!

탁!

나를 포함해 오 이사마저 잔을 내려놓았다. 굉장히 의외인 대답이다. 케이는 입가에 미소 짓고 있지만 ‘뭔, 개소리야’ 하는 눈빛마저 띤다.

“제 회사의 미래가 어둡다고요?”

“예, 그리 보입니다. 사업 전망은 매우 밝은데, 오너의 미래가 어둡다고 해야 할까요?”

좀처럼 표정 관리를 하기가 어려웠다. 원래 이런 공격적인 대화를 하는 양반이었던가?

“하루코 님, 통역을 제대로 하신 건가요? 유 사장님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씀하신 게 맞습니까?”

“예, 통역은 정확합니다.”

오 이사마저 어이가 없었는지 하루코에게 물었는데, 그녀는 단호하게 정확한 통역이라고 답했다. 재차 손정의 회장에게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는 좀 더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제 미래가 어두우면 오늘 자리를 하실 이유가 없으셨을 텐데요.”

“음… 그래서 고민을 했지요. 한데 왠지 동질감이 느껴지더군요.”

“동질감이라….”

“저도 맨바닥에서 시작을 했기에 그리 말씀드립니다. 유수한 사장님의 행보에는 열등감, 결핍… 아니, 그보단 갈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겠군요. 여하튼 그런 감정이 느껴집니다.”

손정의 회장의 말에 가슴 한곳이 찌릿하고,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20대인 나를 보며 저런 단어를 읊다니, 마치 내 속에 잠자고 있는 전생의 내가 까발려진 느낌이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당연할 수 있겠네요. 한데 그게 어째서 미래가 어둡다는 걸로 연결되는지요? 고견을 듣고 싶군요.”

비즈니스 대화에서 이런 말을 하기란 쉽지 않은데, 도저히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왜 나를 자극하지? 얻으려고?

“사업의 형태가 매우 폐쇄적이더군요. 아주 높은 목표를 두고 달려가는 모습이긴 한데, 의도적으로 투자를 받지 않으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기업은 돈을 먹고 자라나는 나무와 같습니다. 투자를 받으면 제일 좋고, 그게 안 된다면 은행 빚이라도 내서 계속 돈을 부어야 합니다. 제조업을 통한 순익에만 기대서는 안 되죠.”

투자 회사 사장다운 말이라고나 할까? 약간은 거부감이 든다.

“스마트 클라우드의 성장은 재무 건전성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은행 빚을 내서 무리하게 확장하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설마 부동산 투자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하, 부동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모두 그 때문인걸요.”

“부동산 외에는 저도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은행 빚만 없을 뿐, 주식 상장을 했고 유수 기업의 지분도 꽤나 매입했습니다. 건실한 형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지요.”

“그 범위가 매우 협소합니다. 혹시, 유 사장님은 벌써부터 착한 기업가 이미지를 구축하고 계신가요?”

이 양반… 말이 점점 내 속을 긁는다. ‘벌써부터’라니, 묘하게 거슬린다.

“어째, 우리는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겠군요. 분명 일본에 스마트 스토어를 설립하는 협의를 위해 모셨는데 말입니다.”

“스마트 클라우드와의 협업이 그런 협소한 사업권에 그친다면 제가 매우 실망할 것 같습니다. 지금 얘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유 사장님의 꿈이 뭔지 알고 싶군요.”

쪼르륵.

“내 회사의 비전을 묻는 겁니까? 이리 선을 넘으시면 당장 실망시켜 드리지요.”

쨍.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어째서 유 사장님은 스마트 클라우드를 제조업체로만 규정하시는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유통, 투자, 금융까지 포함한 대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입니다만. 저라면 한참 전부터 궤도를 수정했을 겁니다.”

내가 잔을 채워 주자 곧바로 잔을 부딪치며 말을 늘어놓는 손 회장이다. 나는 부딪친 잔을 그대로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이라는 말이 가슴에 푹 하고 박힌다.

“문어발식 확장은 정당한 경쟁이 아닙니다. 일일이 챙길 수도 없고요.”

“저도 안 챙깁니다. 공격적으로 투자해서 돈을 벌 뿐입니다. 자연스레 문어발식 확장이 될 뿐입니다.”

“문어발식 확장은 결국 기업을 제조업에서 주식과 금융으로 넘어가게 만듭니다. 그런 기업들의 말로는 뻔하죠. 수많은 일례가 있습니다.”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됩니다.”

“사람뿐 아니라 기업에도 명예라는 것이 있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형태보단 기술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안전하고 명예롭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면 됩니다. 그러면 역경을 극복한 의인이자, 기술로 승부를 본 천재이자, 미래를 내다본 현인까지 될 수 있습니다. 명예는 자연스레 딸려 오죠.”

“하하하하.”

내가 무슨 소리를 하든 돈을 더 벌라는 말로 귀결시킬 태세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양반이 왜 내 초대에 응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 *

“수한 씨, 왜 웃어요? 도발하고 있는데.”

케이가 옆에서 살짝 귓속말을 했지만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야.’라는 눈짓만 해 줬을 뿐이다.

“본론을 어렵게 말씀하시는군요. 소프트뱅크에서 원하는 지분이 얼마입니까?”

“……!”

“엇! 수한 씨, 그게 이런 의도였어요?”

내 말에 분위기가 일거에 확 바뀌었다. 오 이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술잔을 기울인다. 분명 오 이사는 소프트뱅크에 유통 협업을 제의했을 텐데, 손정의 회장은 일본 유통 회사는 물론 내 회사에 대해 지분 투자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하하하. 제가 말씀을 너무 어렵게 했군요.”

손정의 회장은 단박에 내 말에 동의하며 기분 좋게 술잔을 입에 가져간다. 간접화법 한번 기가 막히다. 손정의 회장이 어째서 그렇게 수많은 물주들에게 투자를 받아 공격적으로 M&A를 해 나갔는지 이해가 된다.

근데 손 회장의 비유와 달리 나는 진짜로 기술로 승부를 볼 것이며 미래까지 내다보는데 어쩌지? 심지어 자신이 직접 나서서 내가 소프트뱅크라는 희대의 파도를 타넘을 도덕적 핑계까지 마련해 주니 너무 좋다. 그래, 나도 대기업으로 나아가긴 해야지. IMF도 얼마 안 남았으니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이왕 인연이 닿았으니 소프트뱅크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자. 어차피 허공에 증발시켜 버릴 돈이라면 내가 가져 주지.

“말씀해 보십시오. 원하는 지분과 구체적인 투자 금액을.”

“일단 최종적으로 스마트 스토어와 파이오니어 재팬을 상장하겠습니다.”

손 회장은 능숙한 투자자답게 첫 번째 지분 투자 건을 작은 거 두 개로 압축시킨다. 내 반응에 따라 스마트 클라우드 본사에 대한 지분 얘기를 꺼낼 것이다. 적극 동참해 줘야지.

“상장을 하신다고요? 지분 분할부터 의논하실 줄 알았더니.”

“지분 구조는 매우 단순합니다. 각각 2억 달러씩 내서 공동 출자를 했으면 합니다. 제 지분에 1%를 더 얹어 지분 51%로 운영권까지 맡겨 주신다면 장담컨대 투자액의 열 배는 벌어들일 수 있으실 겁니다.”

열 배는 무슨, 파이오니어 재팬을 야후재팬이라고 여긴다면 1999년 말에는 100배 가까이 오를 거다. 사업이 번창하면 증자를 통해 지배 구조를 강화하려고 할 것이다. 역시 돈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업가답다.

물론 나는 1997년쯤 지분을 정리하면서 빠져나갈 거다. 제조업이 취약한 소프트뱅크와 리스크까지 같이 안고 갈 이유는 없다.

소프트뱅크는 2000년대 중반으로 가면 빚이 180조에 이를 정도로 재무 구조가 요상한 기업이다. 지금처럼 공격적인 지분 투자 위주로 사업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의 양적 완화로 버티는 기업인 만큼 적당한 선에서 유통망을 활용하는 수준에서 협업을 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파이오니어는 상장한다고 해도 스마트 스토어는 상장해서는 안 된다. 오프라인 지점을 낼 때 어쩔 수 없이 부동산을 끼워야 하는데 그러면 1997년에 발을 뺄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99년부터 10년 정도는 만성적인 적자를 떠안게 될 테니, 소프트뱅크의 유통망에 얹어 놔야 한다. 괜히 손 회장이 손을 털어 낼 빌미를 주면 부채도 떠안고 애써 뚫은 유통망마저 잃게 된다.

결국 주식으로 털고 나올 수 있는 파이오니어 재팬은 공동 출자, 스마트 스토어는 유통 라이선스를 주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면 돈도 벌고 유통망도 지킬 수 있으며, 소프트뱅크와 협력 체제를 끝까지 가져갈 수 있다.

“으흠, 파이오니어의 경우는 제가 대주주고, 미국의 CEO도 동업자이니 상장하는 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제가 2억 달러를 출자하지요. 지분 51%를 가져가십시오.”

손 회장이 반색하며 말한다.

“오! 그처럼 화끈한 결정을 내리시다니요. 한데 스마트 스토어는 어찌 빼십니까?”

“스마트 스토어는 버지니아 트레이딩의 관할이지요. 케이 사장님에게 직접 묻는 것이 좋겠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케이 사장님?”

케이라면 내가 질문한 이유를 알 거다. 그것도 존댓말로 말이다.

“멋진 제안이긴 한데 버지니아 트레이딩이 그럴 능력이 되었다면 벌써 직영점을 만들었겠지요. 공동 출자는 곤란하고, 외려 소프트뱅크의 주식을 2억 불가량 구매하겠습니다. 2억 불어치 지분을 파셔도 되고요. 전환사채도 괜찮습니다.”

“결국 투자는 하겠지만 유통을 책임지라는 말씀이시군요.”

손정의 회장이 고개를 꺄웃한다. 물주를 대량으로 끌어들여 ‘대마불사(大馬不死)’ 전략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그로서는 다소 아쉬운 계약이다.

“예, 그렇죠. 저도 파이오니어의 주주 중 한 명으로서 의견을 낸다면 이 계약 건을 파이오니어 재팬의 공동출자 건과 일괄 계약을 했으면 합니다.”

“그러고 보니 케이 사장님도 파이오니어 주주시군요. 파이오니어 재팬 건에 대해 독단적으로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스마트 스토어와 일괄 계약한다면 저 또한 적극 찬성입니다.”

케이답게 즉각적으로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손뼉을 척척 맞춘다. 이유는 나중에 따로 묻겠지.

“2억 불에 소프트뱅크 지분 1%를 넘겨 드리지요. 대신 현 주가에서 100% 프리미엄을 붙였으면 합니다. 어떠십니까?”

“100% 프리미엄이라니….”

케이는 인상을 찌푸리다 탁자 아래에 있는 내 손짓을 느끼고 자연스레 말을 바꿨다.

“뭐, 조금 과하다 싶긴 하지만 못 받을 조건은 아니군요. 그 정도 리스크는 감당해야죠. 계약하겠습니다.”

2배수 프리미엄 정도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 향후 5년간 100배가 뛰는 주식인데.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스마트 클라우드 지분이군요. 저는 그 계약에 대해 이 두 가지 계약과 일괄 계약을 했으면 합니다.”

손 회장은 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며, 연이어 스마트 클라우드의 지분에 대해 말을 이어 갔다. 내 지분을 주지 않으면 계약을 파투 내겠다고 은근슬쩍 떠본다. 아주 좋은 전략이다. 마음 같아서는 손뼉을 짝짝 쳐 주고 싶다.

“직접 투자는 어려우실 테고… 지분 교환을 원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손정의 회장의 의도는 뻔하다. 제조업을 가지고 싶은 거다. 아무리 간이 커도 공격적인 M&A만 해 나가면 소프트뱅크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내가 접촉을 해 오니 얼마나 기뻤을까?

“서로에게 백기사가 되어 준다고 보면 지분 교환은 10%가 넘어야겠군요.”

“10%면… 적당하겠지요.”

내가 백기사를 언급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10%를 지르자 손 회장도 살짝 놀라는 눈치다. 내가 너무 순순히 나와서 그럴 것이다.

서로 윈윈할 가능성은 남겨 둬야 한다. 소프트뱅크는 나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당장 지분을 교환하면 안 되지. 내 지배력이 외부 세력에 공격받을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지금 두 회사 모두 한창 커 가는 와중이니 서로 10%는 교환해야 하는데, 주식 교환의 차익 계산이 어렵군요. 프리미엄도 고려해야 하고요.”

“현재 주가로 계산하는 것은 어렵겠지요.”

손 회장도 계산이 쉽지 않을 거다. 두 회사 모두 주가가 하루가 달리 올라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또한 자본 시장이 훨씬 큰 일본 주식 시장에 상장된 소프트뱅크의 주가가 당연히 훨씬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그러니 지분 교환을 하겠다는 확신만 있으면, 실제 교환은 뒤로 미루면 미룰수록 좋다. 어쨌든 지분 교환의 목적은 리스크 분산에 있으니까 말이다.

“마침 제가 정부의 중소기업청에 맡겨 둔 지분 10%가 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고 장기 국책 과제도 끝나면 곧바로 넘겨 드릴 수 있어요.”

“일종의 장기 전환사채의 개념이군요. 시점은 언제가 될까요?”

전환사채는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1:1 지분 교환도 주식을 교환하고 차익을 지불하는 형태이니 그 기간을 미래로 한정한다면 전환사채의 계약이 될 수 있다. 내가 몇 년 뒤에 주식을 교환하자는 뉘앙스를 풍기니 대단히 좋아한다. 그가 원하는 시나리오일 것이다.

“1998년도에 정권 교체가 있고, 정권 초기에 바로 주식을 빼기는 뭐하니 2년 뒤인 2000년 말이 좋겠습니다. 21세기의 첫해에 스마트 클라우드와 소프트뱅크가 축배를 나누는 거죠.”

짝! 짝! 짝!

“그동안 열심히 회사를 키워야겠군요. 차익이라는 선물을 받으려면 말이죠. 하하하.”

“그러셔야죠. 저 또한 열심히 하겠습니다.”

손정의 회장이 손뼉까지 치며 좋아한다. 원하는 것을 거의 모두 얻은 격이다.

지분 교환은 장기 계약으로, 그리고 파이오니어 재팬이라는 인터넷 자회사를 얻었으며, 버지니아 트레이딩을 공급 업체로 둔 유통권마저 얻었으니까 말이다.

미래를 안다면 그리 웃을 수만은 없을 거다. 이제 몇 년간은 주가가 하늘을 날겠지만, 이 계약을 빌미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에게 지분의 상당수를 갖다 바치게 될 거다.

그 시작은 매우 기술적인 문제였다. 일명 Y2K 문제라고, 컴퓨터 날짜 표기 방식이 달라져 2000년에 들어서면 전 세계 시스템에 에러가 속출할 거라며 IT 업계에서 설레발이 대단했다.

한데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서 실제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컴퓨터 시스템 전반을 갈아엎는 대규모 신규 투자를 기대했던 시장은 즉각적으로 IT 업체의 주식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MS가 출시한 윈도우 2000에 인텔 CPU 지원이 뒤따르지 못하는 기술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OS 시장도 일시적으로 훅 하고 줄어들어 버렸다.

우연에 근거한 일이 아니기에 이번 생에서도 반복될 것이며, 따라서 막상 지분 교환 시점에서는 손정의 회장은 주가 폭락으로 내 지분을 가져갈 돈을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때까지 손 회장의 행보를 지켜보고 함께 가든지 손절하든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쪼르륵.

“건배하시죠.”

쨍.

“건배!”

“양사의 번영을 위해서!”

“유통 잘 챙겨 주십시오.”

“법적인 문제는 제게 맡기세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며 건배를 했고 손 회장은 술잔을 깔끔하게 비웠다. 술은 이제 됐다는 의미이자 계약이 만족스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메인 요리를 들여도 되겠군요.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하루코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다. 가게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참치회를 포함해 메인 요리를 깔았고, 우리는 영어를 기반으로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비즈니스 대화가 아니니 영어로 충분했다.

눈이 소복이 쌓였으며, 늦은 밤 이 비서와 오 이사가 손정의 회장을 호텔까지 데려다주는 걸로 긴 회식이 끝이 났다.

“수한 씨, 이거 남는 장사 맞아요? 느낌상 손뼉을 치긴 했는데….”

“하하, 지분을 1%밖에 안 받았다고 후회하게 될걸. 2억 불이 수십억 불이 되는 기적을 맛보게 될 테니까.”

“어머나! 대박, 대박! 정말 그렇게 돼요?”

케이는 내가 말하면 의심을 할 줄 모른다. 마치 벌써부터 수십 배 장사를 한 것처럼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라 한다.

“아주 높은 확률로. 허니, 은밀하게 소프트뱅크 주식을 매집해 줘. 2000년에 내가 소프트뱅크의 대주주가 될지 아니면 돈만 챙기고 나올지 결정할 테니까.”

“수한 씨, 드디어 주식 시장에 뛰어들 마음이 생긴 거예요?”

“소프트뱅크에 한해서만. 우리가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회사잖아.”

“일단 시작한다니 좋네요.”

“주식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업무 얘기 길게 하기엔 엄청 춥네. 차는 두고 택시 타고 가자고.”

“그냥 제가 운전할까요? 딱 두 잔 마셨는데.”

“음주 운전은 절대 안 돼. 회식 골목 끝으로 가면 택시 많아. 가자고.”

나는 케이의 팔을 잡고 큰길로 나섰다. 눈길이 미끄러우니 팔을 잡아 줬을 뿐이다.

“집까지 바래다주는 거예요?”

“술 취한 여자를 혼자 보낼 순 없잖아. 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군인이라고.”

“호호호. 용산 카투사는 그런 말 하면 욕 들어요.”

“하긴 그러네. 그래도 군인은 군인이잖아.”

“그래요. 믿어는 볼게요. 어, 어~ 잘 좀 잡아요. 미끄럽잖아요.”

“이런 날 하이힐을 신고 왔어?”

여하튼 미끄러운 길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걸어 나왔다. 몬타베가 있는 한적한 곳을 벗어났다 싶으니 용인밸리의 회식 골목이 눈에 보인다. 크리스마스이브답게 떠들썩한 분위기에 사방에서 캐럴도 들리고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이미 용인밸리는 신도시나 다름없을 정도로 사원 아파트와 기숙사가 넘쳐 나기에 주말이면 회식 골목엔 가족끼리 외식하거나 젊은 남녀 직원들이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이브답게 오늘따라 유독 분위기가 좋고,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다들 즐거워 보인다. 1994년 연말다운 분위기다.

“이야, 회식 거리가 이리 멋졌었나요?”

“그러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인데?”

나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서 케이처럼 하늘을 쳐다보며 빙글빙글 돌아 보았다. 네온사인 사이로 차분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자니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디지털카메라가 있으면 찰칵찰칵 마구 찍어 대고 싶을 정도다.

“수한 씨, 우리 2차 가요!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술을 또 마시자고?”

“술은 무슨! 내가 신문물을 알려 줄게요. 정해요. 2차 갈 거예요, 말 거예요?”

“신문물?”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을 만들었다고요. 직접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가요.”

케이는 내 팔을 잡고 또각또각 잘도 걸어갔다. 택시 타고 가자는 말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나 보다. 떠들썩한 인파 사이를 뚫고 나가니 상가 건물에 ‘에그박스 완비!’라는 글씨가 적힌 광고판이 유독 많이 보인다.

‘비디오방?’

용인밸리답게 에그박스로 비디오방을 대신하고 있었다.

“저기 스타비디오방이 제일 좋아요. 팝콘이 아주 맛있더라고요. 영화 종류도 제일 많고.”

“케이도 와 봤어?”

“당연하죠. 한국의 비디오방 문화를 스마트 스토어에도 접목해 볼까 하면서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어요. 정말 재미나고 멋진 곳이에요.”

4층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 보니 정말이지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알고 있던 1990년대 비디오방이 좀 더 깔끔해졌다고나 할까? 영화를 정하고 군것질거리를 사서 방으로 들어가면 그뿐이었다.

각 방마다 에그박스가 커다란 TV와 스피커에 연결되어 있었다. 점원이 들어와서 전원을 켜고 메모리 스틱을 꽂으면 끝.

케이가 고른 영화는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 나름 다시 봐도 재미난 영화였다. 더욱이 21세기 블루레이 못지않은 화질에, 4채널 오디오의 감동이라니. 팝콘에 콜라까지 끼워서 인당 8천 원이라는, 1994년치고는 꽤나 비싼 대여료가 들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정말이지 에그박스의 능력을 머리로 알고 있는 거랑 비디오방에서 쓰이는 것을 실제로 본 거랑은 느낌이 다르다.

“호호, 이 영화는 미국 문화를 좀 알면 더 재미난데.”

“말해 봐. 들으면서 볼게.”

짭. 짭!

재잘재잘.

팝콘과 콜라를 마시니 묘하게 술이 깬다. 옆에서 재잘거리는 케이의 목소리와 함께 영화가 흘러간다. 아무렇지도 않게 스포일링을 하고 있었지만 뭐 어떤가? 나도 이 영화를 세 번은 넘게 본 것 같은데.

끄덕끄덕.

“호호, 이건 몰랐죠? 저기 나온 장면은 옛날 히피 문화를 얘기한 건데요….”

“오!”

간혹 ‘오~’ 하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과하게 끄덕여 주면 케이는 혼자서도 잘 논다. 여하튼 신기하다. 내가 만든 물건을 보고 내가 감탄하고 있잖나.

정말 잘 만들었네. 에그박스 정말 잘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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