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장 피로 물든 전리품 (35/104)

제2장 피로 물든 전리품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로써 우리는 미국의 재건 의식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 냉전의 그림자에서 자란 한 세대가 휘황찬란한 자유로 따스해진 세상에서 새로운 책임을 떠맡고 있습니다. 비할 데 없는 번영에서 자란 우리는 아직은 세계 최강이지만 사업의 실패,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국민의 분열로 인해 취약해진 경제를 이어받았습니다. 미국은 존속하기 위해 변화해야만 하며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라는 미국의 이상은 시대를 초월하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모든 사람과의 평화로운 경쟁을 통해….

역사적인 1992년 미국 대선이 빌 클린턴의 승리로 장식되었다. TV에서는 세계의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의 당선 소감을 방송해 주고 있었다.

회귀한 뒤로 큰일은 언제나 11월에 생기는 느낌이다. 케이를 만난 것도, K폰 수출이 본격화된 것도 11월이었다.

올해 11월에 내게 생긴 큰일은 제발 플래시 메모리 초도 제품 확보로 끝났으면 좋겠다. 제발.

삐리릭.

전화를 받자마자 고함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수한 씨, 수한 씨! 대박! 대박! 대박~!

“케이, 귀청 떨어지겠어!”

-정말 고맙네, 미스터 유! 지금 보고 있나? 그쪽도 생중계하고 있지 않나?

“예, 저도 보고 있습니다. 파라곤, 아니 시카고파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자네 덕분이네. 로스 페로 전략은 정말이지 세기의 도박이었어! 잭팟도 이런 잭팟이 없네.

1992년 미 대선 득표율은 빌 클린턴 43%, 조지 부시 39%, 로스페로 18%였다. 즉, 로스 페로가 부시 진영의 표를 가져가지 않았다면 빌 클린턴의 당선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케이슨이 로스 페로 전략을 수행하겠다며 빌 클린턴 진영에 합류했으니 진정 대박이다.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이지 않은가. 원래 그리될 판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하하! 잭팟이 터졌으니 파이오니어, 앰팩 그리고 서버 사업까지 좀 챙겨 주십시오.”

-당연하지! 당연히 그래야지!

-수한 씨, 시중의 거의 모든 은행장들이 시카고파에 줄을 대기 시작했어요. 이제 돈 걱정 따윈 안 해도 돼요. 뭐든 내게 말만 해요! 다 들어줄게요! 잭팟! 히우우우우!

-우하하하!

-팡! 팡!

옆에서도 연신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나 보다.

하긴 인트라넷 사업권에 먼저 줄을 댔다는 것만으로 로비 자금의 백 배는 뽑고도 남을 거다. 케이라면 인터넷과 인트라넷을 연결하는 통신사업까지 가져왔을 게 분명하다. 덕분에 AT&T와 베이비 벨 들도 대박을 치겠군.

“나중에 한국에서 같이 축배나 들지. 일단 즐겨! 끊을게.”

-푸합, 꿀꺽! 그래요. 그래요. 한국에서 봐요! 대박!

-우하하하!

-팡! 팡!

툭!

하도 시끄러워서 더 이상 통화를 못 하겠다. 국제 전화로 샴페인 들이붓는 소리까지 생중계할 줄은 몰랐다. 여간 즐거운 게 아닌가 보다. 연말까지 최소한 시타델과 동격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은 지킨 것 같다.

삐리리릭.

금세 또 전화벨이 울렸다.

“케이, 나중….”

-유 사장님, 접니다.

“아, 예. 최 상무님.”

-말씀하신 대로 민주당이 승리했군요. 로스 페로가 뜻밖의 킹메이커가 된 것도 정확합니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18% 득표율까지 맞히시다니 말입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제3세력이 20% 이상 득표할 가능성은 거의 없거든요. 최종까지 남는 부동표가 딱 그 정도죠.”

-그렇다면 정 회장님 경우도 다르지 않겠군요.

“예. 말씀대롭니다. 득표율은 18% 내외일 겁니다. 그러니 자칭 킹메이커로 자리 잡고 정당을 YS에게 바쳐야 합니다.”

-그건 수차례 간언했지만 듣지 않으십니다. YS와 감정의 골이 깊어서요. 차라리 DJ는 어떻습니까?

“안 됩니다.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DJ는 대선에 실패하면 정계를 은퇴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밀어주고도 실패하면 방패마저 나가떨어지는 형국입니다. YS가 답입니다.”

나는 YS를 주야장천 언급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를 바꾸고 싶지 않다. 대통령이 바뀌는 일은 나도 나비효과를 감당하기 어렵다.

물론 나중에 꼭 바꿔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때는 내가 어느 정도 힘이 생겼을 때의 일이고, 지금은 아니다. 알고 있는 정책의 파도를 타며 앞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잖은가.

-YS는 안 된다고 하시니, 역시 일전에 말씀하신 차선이 답이겠군요. 대현건설을 지목하신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휴우! 굳이 피를 보겠다는 말씀이군요.”

-아시다시피 이미 판은 벌어졌습니다. 피해가 없을 순 없겠지요. 가신이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주인을 건지는 일입니다. 이런 말씀밖에 못 드려 죄송하군요.

“하긴 이미 피는 봤죠. 예, 대현건설이 답입니다. 그룹의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국가가 보증해야 하는 대형 수주가 대부분이니 원치 않아도 희생양이 될 겁니다. 그것만 회장님 밑으로 두고 다른 사업체는 지금이라도 독립 채산제로 가야 합니다.”

나는 이 전화 통화 이전에 대현건설의 수주를 최대한 대선 이후로 미루라고 조언을 했다. 수주액을 최대한 끌어안고 나자빠져 버리면 건설업의 특성상 대한민국에 즉각적인 충격을 입히며 단박에 이슈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습은 간단하다. 대현건설이 따낸 수주를 국내 건설사들이 나눠 가지면 될 것이고, 자연스레 직원들도 이곳저곳으로 흡수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형 사건이지만 직원들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조선 업계에도 국가 보증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대현중공업도 제물이 되겠군요.

“타격이 없을 순 없겠지요. 허나 지금 대현중공업은 받아 놓은 수주가 있잖습니까. 조선 업계 특성상 5년은 어찌어찌 버틸 수 있을 테니 그것까지 제물로 바쳐서는 안 되겠죠. 분리시킬 때 정준몽 사장에게 어느 정도 유동자금을 몰아줘야죠.”

-자동차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누가 주인이 되건 일단 정권이 레임덕인 지금, 때를 놓치지 말고 경상도가 아닌 천안, 광주 정도에 조립 공장을 세운다고 발표하셔야 합니다. YS가 당선되고 자동차에 돈줄을 막아서 정치 보복을 시도할 때 지역감정 조장이다, 경상도만 챙긴다 등등 민감한 반발이 자연스레 나오도록 말입니다.”

이런 얘기를 수차례나 해 왔다. 최대한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일을 앞으로 잡아당겨 대현을 연착륙시킬 아이디어를 가다듬고 가다듬었다.

최 상무를 직접 만나면 선거 진영에 합류했다는 말이 새어 나갈까 봐 전화로 하고 있을 뿐이다.

-휴우! 도련님들이 그걸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해봐야겠지요?

“하셔야죠. 이게 차선책이니까요. 그리고 아드님들보고 선거 운동에 무리수를 두면 안 된다고 하십시오. 회장님과 거리를 둬야 덜 다칩니다. 그걸 확실히 각인시키십시오.”

-대현전자는….

“대현전자는 내버려 두셔도 됩니다. 유동성이 뛰어난 사업이니 정헌몽 사장님이라면 어찌어찌 꾸려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대현상선도 수출 지향인 대한민국에서 적자 날 일 없는 사업이고요.”

-조언 고맙습니다. 일하다가 또 중간에 전화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선거 운동에서 아드님들 허튼짓 못 하게 잘 다독거리세요. 불법 선거 운동으로 꼬투리 잡히면 이 차선책마저 무용지물이 됩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툭! 삐이익.

나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비효과가 우려되긴 하지만 그럭저럭 맞춰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애써 위안하면서 말이다.

1992년 11월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선거 운동에 대현을 끼워 넣으면 안 된다. 이대로만 멈춰도 됩니다, 정 회장님. 이대로….

    • *

경기도 모처 선거 사무실.

정준몽 사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선거 참모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사장님, 아무래도 회장님께서 생각이 조금 달라지신 것 아닙니까?”

“글쎄, 나도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군. 12월 여론조사 결과가 좀 그렇지만… 부동층을 감안하면 그래도 해 볼 만한 선거가 아닌가.”

“당연하죠. 이미 우리 당은 TK와 충청도, 그리고 강원도까지 먹었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전라도야 YS에겐 난공불락이지만 우리 당은 경제로 공략하면 전라도 표 10%는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럼 서울만 어찌어찌하면 가능성은 충분하지요. 대현 직원들이 서너 표씩만 더 섭외해도 되는 일입니다.”

선거 참모는 열심히 지도에 표시된 지지율을 짚어 가며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선거 운동을 지휘하는 정준몽 사장은 이미 그런 지도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신의 대현중공업이 그룹에서 분리될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룹에서 빠져나온다면 막강한 대현그룹의 자본이 이리저리 쪼개진다는 의미였다.

대선을 성공시켜 그룹의 후계자로 우뚝 설 마음으로 선거에 임하고 있는데, 최 상무를 비롯한 가신들의 행보는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걸 굳이 말리지 않는 아버지의 심중도 알 수가 없고 말이다. 대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기에….

“최 상무 하는 짓이 영 마음에 안 들어. 기존 가신들까지 모아서 YS 당선을 기정사실로 만들고, 대현건설과 중공업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니까. 중공업은 엄연히 내 거라고, 내 거!”

“그 양반이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게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오히려 그런 구닥다리 가신들의 행동을 일거에 무너뜨릴 정보가 있습니다.”

“응?”

“TK 쪽 의원이 물어 온 고급 정보입니다.”

“고급 정보?”

“YS가 코너에 몰려서 부산, 경남, 경북 할 거 없이 기관장들을 모아 회합을 가질 거라는 정보가 있습니다.”

“뭐라고? 기관장들을 모아? 그건 선거법 위반이잖아.”

“그렇죠. 회합 내용을 녹음만 할 수 있으면 YS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정부 기관을 선거에 이용하는 것은 선거법에서 명백히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녹음? 그게 가능한가?”

“문제없습니다. 장소와 시간까지 알고 있으니까 도청… 녹음 장치를 설치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닙니다.”

“하! 이거 대박이군, 대박이야. 하늘이 우리를 도왔어.”

“YS가 제 무덤을 판 거죠. 하하하하!”

“녹취록만 만들어 와. 언론 플레이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문제없습니다. 대신 그 TK 의원은 나중에….”

“가서 전해. 차기 국무총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하하하하하!”

정준몽 사장은 정말이지 눈앞이 환하게 밝아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년의 해돋이는 청와대에서 볼 수 있으리라.

    • *

12월 중순.

나는 한마음신문사에서 특종 보도한 신문 기사를 읽고 있었다. 일명 ‘초원복집’사건이라 불리는 일이다. 정부의 법무장관이 부산, 경남의 기관장들을 모아 놓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라고 종용한 것이다. 한마음신문사는 신문 전면에 녹취록 전문을 실어 놓았다.

-우리가 남이가. 부산에서 70%가 되니 안 되니… 믿을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다. 사실 여기서 똘똘 뭉쳐야 하는데. 중립내각 때문에 마음대로 못 해서 답답해 죽겠다.

-하하하하!

-우리 기무대는 부재자 투표라 중립 안 지켜도 됩니다. 법무장관님하고는 다릅니다.

-지금 충남 같은 데는 말이지 정 씨가 일 등 한다는 소리도 있고, 위기입니다. 이곳저곳 접대를 좀 해 보소. 당신들이야 지역 발전을 위해서이니 하는 것이 좋고, 조금 노골적으로 해도…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 테고, 경찰청장도….

-상공회의소는 다 여당권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건 당연하고,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 달라… 그 말씀이지요.

-하하하하하!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지요. 5년 뒤에 대구분들 우리 손 빌리려면 지금 화끈하게 도와주셔야….

쫙! 쫙! 쾅!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나는 신문을 찢어 버렸다. 혹시나 하며 기사를 끝까지 읽었지만, 한마음신문사에선 국민에게 판단을 맡긴다며 기사에 논평을 하지 않았다.

한마음신문사야 문 닫을 각오를 하고 실은 기사겠지만, 이왕 기사를 실었으면 선거법 위반에다 망국의 지역감정까지 부추긴 정당은 국민이 표로 심판해야 한다는 논평을 했어야 한다.

이대로 가면 고려일보를 비롯한 주류 언론들이 이 ‘초원복집’ 사건을 선거법 위반이 아닌 불법 도청 사건으로 변질시켜 버린다.

나는 이 도청을 누가 지휘했는지 안다. 정준몽 사장. 그 양반이야 이 기사로 YS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고 여기겠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리 정반대로 흐른다.

‘불법 도청이라는 정치 공작에 YS가 당하게 생겼다’라며 부산 및 경남은 물론, 안티 YS가 팽배했던 경북권의 표심조차 대동단결한다. YS의 지지율이 급등하고 무난하게 대통령에 당선된다.

심지어 정권에서도 그런 사태 변화가 의외였는지, 당선 후 대통령 비서실에서 한마음신문사에 폭로 기사 잘 써 줘서 고맙다고 비아냥거리는 격려 전화까지 했다지 않나.

더 큰 문제는 YS가 이 도청 사건을 주도했던 대현에 완전히 빡쳐 버렸다는 데 있다. 언론이 알아서 기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대현 때문에 선거법 위반으로 대선에 출마도 못 하고 후보 사퇴를 할 뻔한 것이다. 안 그래도 감정이 안 좋았던 대현에 강력한 정치 보복을 다짐하게 된 계기라고 할 것이다.

‘이건 정 회장님과 직접 얘기해야 해.’

이 사태가 불법 도청 사건으로 변질되기 전에 대현에서 꼬리를 잘라야 한다. 정영주 회장이 직접 나서서 선거 참모 중 일부가 행한 일이며, 자신은 정정당당히 선거에 임할 것이며 불법 도청에는 반대한다고 제일 먼저 발표해야 한다.

불법 도청보다 선거법 위반이 훨씬 중대한 범죄지만 그런 본질 따위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다.

띡. 띡. 띡.

나는 대현 본사 회장실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대현그룹 본사입니다.

“유수한입니다. 회장님 부탁합니다. 아주 급한 일입니다. 어서요.”

-예, 알겠습니다.

내 목소리가 워낙 다급해서인지 전화가 바로 정 회장의 전화기로 연결되는 것 같았는데…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수한? 자네가 왜 전화를 했지?

정준몽 사장이다. 어째서 이 양반이 전화를 받지? 상관없다. 한시가 급하다.

“회장님 바꿔 주십시오.”

-아버님은 왜 찾나? 지금 기자회견 준비로 바쁘시네.

“무슨 기자회견요? 혹시 초원복집 사건 때문에 그러십니까?”

-하하하! 이제 보니 그것 때문에 전화를 걸었구만. 그래, 아버님께서 최후의 일격을 가하실 거네. 자네가 그리 차기 대통령이라고 말했던 YS도 이젠 끝이라고!

“그런 기자회견 하시면 안 됩니다! 당장 전화 바꿔 주세요. 어서요!”

-허! 기자회견을 막아? 이제 보니 당신, YS 선거 참모라도 되는 거야? 그래서 아버님께 그리 선거 나가면 안 된다고 했던 거야?

“회장님부터 바꿔 주세요. 어서요! 이대로 가면 대현은 정치 보복으로 박살 납니다. 당장 꼬리부터 잘라야 한다고요!”

-닥쳐! 끝난 마당에 별 지랄을 다 하는군. 다 끝났어, 끝났다고! 우리가 이겼어. 네놈 말은 이제 아버님이 귓등으로도 안 들으실 거다. 멍청아!

“누가 멍청이예요! 뭐가 승리예요! 회장님 바꿔요! 바꾸라고!”

-버르장머리없는 놈! 끊어! 대현에 네놈이 돌아올 자리는 없어!

“돌아가긴 뭘 돌아가! 야, 이!”

쾅! 뚜뚜뚜.

“여보세요. 여보세요!”

쾅! 쾅!

“멍청한 새끼! 야, 이 미친놈아!”

전화는 다시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분노가 치밀어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애꿎은 전화기만 박살이 났다.

    • *

“이 비서, 대현그룹 본사로 빨리 갑시다.”

“예.”

나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사장실을 빠져나와 이 비서부터 찾았다. 전화가 안 되면 직접 찾아가면 될 거 아닌가.

차분히 상황 전개를 설명하면 역풍이 들이닥칠 것을 수긍할지도 모른다. 정 회장은 내 말을 무시하지 않는다.

부우웅. 끼이익.

용인밸리의 쭉쭉 뻗은 길을 휭하니 달려 고속도로에 올라섰을 때였다. 라디오에서 듣고 싶지 않았던 멘트가 들려왔다.

-긴급 속보입니다. 일명 초원복집 사건은 통일민주당(정영주 회장 정당)에서 언론에 제보했다는 소식입니다. 또한 제보에 그치지 않고, 통일민주당 인사들이 직접 선거법 위반으로 현 여당을 검찰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자회견장에 나가 있는 오지인 기자를 연결합니다. 오지인 기자! 상황을 전해 주시죠.

-예, 통일민주당 기자회견장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정영주 총재가 직접 검찰 고소장을 낭독하고 있으며, 곧이어 불법 도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어이가 없다. 역시나 대현은 일을 벌이는 것 하나만큼은 정말 빠르다. 예상과 다른 결과나 후폭풍에 대한 고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벌써 공영 방송의 기자가 ‘불법 도청’을 입에 담고 있다. 선거법 위반보다 불법 도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거다.

부우우웅.

벌써 수원 톨게이트가 눈앞이다. 이대로 가면 서울의 기자회견장에 도착할 수야 있겠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떠나 버린 화살을 어찌 잡겠나.

“이 비서, 차 돌려요.”

“예에?”

“차 돌려요. 이천으로 갑시다.”

“이천으로요?”

“정헌몽 사장님에게로. 어서요.”

“예.”

내가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다. 상황이 이리 돌아가니 대현전자라도 건져야 한다.

정말이지 내가 대현의 일에 이리 나서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쩌겠나. 이대로 무너져 내릴 대현그룹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걸.

잠시라도 대현그룹에 몸담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여타 재벌과는 묘하게 다른 대기업. 신규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구성원들 모두가 으샤으샤하며 맨바닥부터 성장해 나가는 기업 문화. 정 회장이 이 위기만 잘 넘겼으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초일류 기업이 되었을 거다.

게다가 지금은 원래 역사와 달리 자동차에 강성 노조가 들어서지 않은 데다 휴대폰 시장에 먼저 진입하지 않았나. 가능성은 충분했다.

부우우웅.

신갈 인터체인지를 빙그르르 돌아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이 비서는 내 표정이 썩어 있어 그랬는지 평소보다 더 빨리 달렸다. 이천의 대현전자 본사에 도착하는 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정헌몽 사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유수한 사장님이라고 전해 주십시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확인하겠습니다.”

이 비서의 말에 정문을 지키는 보안 요원이 바짝 얼어붙었다.

촤르르르륵.

“바로 들어오시랍니다.”

전화를 걸어 보더니 대뜸 정문을 막고 있던 자동 바리케이드가 접힌다.

나는 차가 사무동 앞에 멈춰 서자마자 사장실로 뛰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이리 느려 터졌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띠링.

“유 사장, 어쩐 일인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재킷 입으시고, 박준태 의원을 찾아가야 합니다.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어어… 진정하게. 뭔 일인지 설명부터 해 줘야 하지 않나.”

사장실 앞에 마중까지 나온 정헌몽 사장. 나는 마음이 급해 그의 팔목을 잡고 다시 사장실로 들어가 양복 상의부터 찾았다.

“가면서 설명드리죠. 한시가 급합니다. 기자회견이 끝나기 전에 YS 진영을 만나야 합니다.”

“아버님 기자회견 말인가? 그게 내가 YS를 만나야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이제 YS는 끝이네. 아버님이 승부수를 제대로….”

“이건 승부수가 아니라 자충수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보수층이 대집결합니다. 지금은 YS가 아니라 박준태 의원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정 회장님은 선거 참모들의 자충수에 빠져 원하지 않은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득하십시오. 대현이 YS의 당선을 도운 꼴이 되었으니, 대현이 계열 분리할 시간을 벌어 달라고 하시란 말입니다.”

정헌몽 사장이 직접 대현이 자충수에 빠진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YS 진영에 알려야 한다. 믿든 안 믿든 대현이 YS 진영에 줄을 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래야 최소한의 설득력이 생긴다.

“자충수? 보수층이 대집결한다고? 서, 설마. 이건 선거법 위반이네. YS가 후보 사퇴까지 해야 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범죄란 말일세.”

“그러니까 역풍이 불죠. YS의 위기가 지극히 구체화되어 버렸잖습니까? 보수층이 단결할 수밖에요. 우리나라 선거에서 불법 여부를 누가 따집니까?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내 집값 오르고, 내게 콩고물이 떨어질지를 따지는 게 선거지 않습니까.”

“…….”

“정 사장님, 사태를 냉정하게 보십시오. 지금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박준태 의원 정도입니다. 그에게 이 사태에 끼어들 명분을 주면서 정 사장님은 계열 분리할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최 상무가 말한 차선책이라는 게… 결국, 유 사장이 알려 준 거군.”

“정 사장님, 지금 저와 함께 가셔야 합니다. 언론이 알아서 판을 휘젓고, 여론조사 결과가 한 번만 더 나오면 당선이 확실해지고 이 짓도 못 합니다. YS가 당황하고 있을 때 줄을 서야 합니다.”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대현의 계열 분리는 온전히 대현 내부의 결정이 되어야 하는 거다.

“자네, 이러는 이유가 뭔가? 자네한테… 무슨 이득이 되기에 이러는가?”

“대현은… 아니, 솔직히 저도 왜 이러나 모르겠습니다. 벌써 연은 끊겼다 여겼는데 이대로 지켜만 볼 수가 없어요. 환장하겠습니다!”

“알겠네. 한 가지만 더. 역풍이 불 거라고 얼마나 확신하나?”

“100%입니다. 99%도 아니고 100%.”

“그렇군.”

내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자, 정헌몽 사장이 양복 상의를 걸쳐 입고 넥타이도 꽉 동여맸다. 그러곤 사장실을 훅 하니 벗어난다.

사장실을 나서자 어디선가 비서실 직원들이 우르를 몰려들었다.

“제 차를 타시죠. 훨씬 빠를 겁니다.”

“아니네. 기자들 사진에 자네 얼굴이라도 찍히면 곤란할 수 있어. 이건 대현의 일이야. 나 혼자 가겠네.”

“제가 안 가면 박준태 의원을….”

“명함이나 한 장 주게. 내가 알아서 함세.”

나는 지갑에서 꺼낸 명함을 건넸다.

정헌몽 사장은 명함을 건네는 내 손을 잡고 걱정 말라는 듯 손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부르릉.

나는 사무동을 휙 빠져나가는 정헌몽 사장의 차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가 나에게 담배 하나를 권했다면 쭉쭉 빨아 댔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장님, 다른 데 가실 데가 있으십니까?”

“아뇨. 회사로… 용인으로 돌아갑시다.”

“예.”

    • *

일주일이 훅 하고 지나가 버렸다. 전날부터 이어진 대선 개표 방송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현재 시각 아침 7시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잔여 개표 2%가 남은 상황에서 YS 득표율 42.9%, DJ 37.7%, 정영주 총재 15.3%입니다. YS의 당선 확정입니다. 이에, 차기 대통령 당선자 자택 앞으로 지지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리포터 연결하겠습니다. 선기진 리포터.

-예, 선기진입니다. 아, 지금 대통령 당선자께서 자택 문으로 나오고 계십니다.

-와아아아아!

-YS 만세! 대통령 만세!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수십 년간 이어졌던 저의 민주화 투쟁의 끝이 문민정부의 시작으로, 그리고 국민 대통합의 시대로 이어질 것임을….

‘지역감정을 부추겨서 이긴 주제에 국민 대통합? 정말 코미디구만.’

나는 속으로 씹어댈 뿐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내 옆에 박준태 의원, 최 상무, 그리고 정헌몽 사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 VIP실에 모여 개표 방송의 막바지를 지켜보고 있다. 자리에는 없지만 정 회장은 참담한 심정이겠지.

솔직히 정헌몽 사장이 직접 전화해서 박준태 의원이 내 참석을 원한다고 했기에 이곳에 왔을 뿐이다. 계열 분리하라고 알려 준 죄 아닌 죄가 있어 참석했다.

“허허허! 이리 웃어도 될까 모르겠군. 이번에도 유 사장 말이 딱 맞았군그래. 이 정도면 대현 덕분에 이겼다고 해도 되겠어.”

“대현이 불법 도청을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걸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믿네. 이리될 것을 정헌몽 사장이 내게 직접 알려 줬잖나. 대현이 이 결과를 의도했을 리가 없지. 한데 나는 믿어도 YS는 믿으실까 모르겠군.”

“박 의원님, 대현이 계열 분리할 시간만 벌어 주십시오. YS도 밖에서 보는 눈이 있으니 본보기는 보여 주셔야 할 테고… 모쪼록 대현건설 하나 정도로 끝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건 해 봐야 아는 거고, 그대들이 뭘 줄 수 있나 하는 게 중요하겠지.”

최 상무는 입을 닫아 버렸다. 자연스레 정헌몽 사장 쪽으로 눈길이 간다.

“박 의원님께서 하시는 일에 금전적으로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거야 당연하고… YS를 설득할 뭔가는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대현건설의 해외 수주액이 8억 7천만 불 정도입니다. 여타 건설사에 나눠 주시는 일을 YS 측근들에게 맡기시면 당선사례는 될 듯합니다.”

YS가 챙겨야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들에게 리베이트를 알아서 챙기라고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는 일이다. 박준태 의원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으흠! 정 회장님도 동의하신 일인가?”

“아버님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이참에 일선에서 은퇴하실 겁니다.”

“그러셔야지. 그건 그렇고, 유 사장 얼굴 봐서 내가 이 자리에 나왔는데… 자네는?”

“예, KT 국제 인터넷 사업 쪽에도 한 분 내려보내시죠. 섭섭하지 않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사람 한둘 챙기는 거야 당연하고, 지역 쪽은?”

당길 수 있을 때 최대한 당기려는 건가. 기분이 더러웠지만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경남 쪽에 전자 부품 공단을 만드시지요. 발주를 모두 그쪽으로 몰겠습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 한데….”

박준태 의원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건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당연히 되는 거 아니냐는 표정이다. 저급한 구시대적 생각이지만 반박할 상황은 아니었다.

“원하시는 게 있으면 성심성의껏….”

“이건 내 생각인데 그 케이슨이라는 양반 미 정계의 거물인 것 같던데. 미국 대통령 연설 때 TV에도 얼굴을 비치고.”

“뭐, 그렇다고도….”

눈썰미 한번 대단하다. 빌 클린턴 등 뒤에 있던 케이슨을 알아본 거야?

“그래서 말일세, 미국 대통령이 YS를 국빈으로 초대하는 데 다리 놓아 줄 수 있나? 미국에도 정권 변경이 이뤄졌으니 한국에도 비슷한 성향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을 축하한다는 타이틀로 말일세.”

“제가 어찌….”

“그 일만 성사되면 YS도 훅 하니 넘어올 것 같은데….”

나는 이 자리가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국빈 방문이야말로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서 해야 하는 일이지 일개인인 내가 나설 일이 아니다.

“그 정도 큰일이라면, 유 사장에게 이득이 되어야 나서겠지요.”

“정 사장님, 손익을 따지는 게 아니라 제가 그럴 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

정헌몽 사장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대현전자의 휴대폰 사업부를 넘겨주겠네. 도와주게.”

“……!”

“하하하, 그거 멋진 생각이군. YS도, 나도 유 사장은 챙겨 주고 싶었는데 아주 좋아.”

박준태 의원은 내 손을 잡고 ‘이봐, 내가 휴대폰 사업 뺏어 준 격이야! 알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정헌몽 사장의 얼굴만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휴대폰 사업이 대현전자의 미래라는 거… 모르지 않을 텐데.

“저, 저보고….”

내가 말을 뱉으려 하자 정헌몽 사장이 내 손을 꾹 쥐며 대답을 참아 달라는 뜻을 전한다. 박준태 의원의 웃음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하하하! 좋아, 좋아! 대현건설에 휴대폰 사업까지 정리하면 YS도 본때를 보여 줬다고 여길 테고, 계열 분리까지 완료되면 그룹으로 싸잡아 보복하기도 어렵겠지. 자! 이 모든 거래의 방점은 YS가 국빈 자격으로 미국에 방문하는 것으로 완료될 것이네. 어떤가? 열심히 해 볼 만하지 않은가?”

박준태 의원은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드나 보다. 완전히 나를 제 수하 다루듯 말을 하고 있었지만, 대현전자의 휴대폰 사업부라…. K폰 사업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람들… 개발자와 간접 부서 인원까지 통째로 가져오는 일이다.

“휴우! 제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나는 이만 가 봐야겠어. 당사에 출근해서 YS 환영식도 준비해야 하고 말일세. 여기서 거론한 내용은 합의된 걸로 알겠네.”

박준태 의원은 나가기 전 몇 초간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국빈 방문에 대한 확답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해 보겠습니다.”

“해 보겠다가 아니라 해내야지. 하하하. 대현의 휴대폰을 가지려면 열심히 해야지 않나!”

박준태 의원은 크게 웃으며 VIP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정 사장님, 저보고 불난 집에서 곳간 털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그제야 참았던 말을 건넸다.

“아니네. 불은 이미 났고, 그 곳간은 원래 자네 것이었네. 휴대폰은 자네 없인 안 되는 사업부라는 거 절실히 느끼고 있었어. 이제 대현의 유동 자금은 반도체를 유지하는 데만도 빠듯할 걸세. 결국 이대로 가면 휴대폰 사업은 경쟁력을 잃고 주인이 바뀌겠지. 그럴 바엔 차라리 자네가 되찾아 가는 게 맞네. 대현을 도와주게.”

“유 사장님, 지금 대현은 계열 분리를 하면서 직원들도 정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개발자와 간접 부서를 흡수하신다면 서로 윈윈이 될 겁니다.”

최 상무까지 나선다.

“자네가 가진 대현전자 지분 3%를 근거로 휴대폰 사업을 넘기겠네. 명분은 그거면 충분하고, 인수 대금은….”

“휴우! 유동 자금은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인수 대금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 이미 돈이 말라가고 있나 보다. 하긴 대선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데.

“대현전자와 대현상선을 그룹에서 분리하려면 수천억 정도는 있어야 하네. 그룹 계열사와 상호 출자금을 해결하려면… 도와주게. 은행이 돈을 빌려 줄 리 없을 테니.”

“휴우….”

거듭 한숨만 나온다. 그래, 원래 역사가 그랬지. 돈줄이 막힌 대현이 국내 은행에 돈을 못 빌리고 외국계 은행에서 단기 외채를 빌려다가 계열 분리를 해 댔다.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었지만 그때부터 대현은 너덜너덜해졌다.

수천억의 현금! 대략 3~4천억 될 것이다. 대현전자 휴대폰 사업권과 직원들을 데려오는 대가로 과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아, 국빈 방문이 남아 있군. 케이를 불러야겠다.

“결국 이리되는군요. 일 처리에 한 달 정도는 걸릴 겁니다.”

“도와줘서 고맙네.”

“고맙다는 말씀 그만하십시오. 이 상황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다 저 같은 가신이 회장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이게 다 저 같은 놈이 대현의 녹을 받아먹고 있어 그렇습니다.”

“휴우. 됐습니다, 최 상무님. 다 아버님이 자초하신 일입니다. 말리지 못한 걸로 치면 제 책임이 제일 크지요.”

결국 대현이 피투성이가 되고 휴대폰 사업부가 내 손에 툭 떨어졌다. 기쁘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참담하다고 해야 할지 기분을 설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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