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팀 입장에서는 NTT라는 대형 고객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제발 우리 물건 좀 사 달라고 하고 있는 판국에, 개발팀장인 내가 툭 튀어나와선 ‘당신한테 휴대폰 팔 생각이 없어졌어. 창고에 입고시킨 거 다시 빼 갈 거야. 뭐? 조금 있으면 퀄 해 준다고? 집어치워. 이제 안 믿어!’라며 고객에게 발길질을 해 댄 것이나 다름없다.
‘역시, 허 과장보단 권 팀장을 상대하는 게 좋겠네.’
전화상으로만 대했던 허 과장의 얼굴을 직접 보니 영 아니다 싶다. 영업 담당자를 살필 때 몸매만 봐도 그 양반이 일 잘하는 영업맨인지 그냥 얼레벌레 샘플만 옮겨 대는 택배 직원인지 알 수 있다.
술자리가 과할 정도로 많은 영업의 특성상 똥배는 어느 정도 나올 수밖에 없지만 고객 비위 맞추랴, 도통 이해가 안 가는 개발팀 자료를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으랴, 불량 나면 온갖 아는 척 다 하며 시간 끌랴,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에 얼굴 살이 쭉쭉 빠진다.
고로 관상만 살펴보면 허 과장은 택배 직원이며, 권 부장은 꽤나 괜찮은 영업맨이다. 사내 평가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권 팀장, 왜 일본까지 와서 이래요? 다음 주면 내가 한국 들어갈 텐데.”
“와 봐야 뭐합니까? 사장님만 뵙고 후다닥 또 나갈 거 아닙니까?”
“NTT 퀄 때문에 그러나 본데… 에휴, 그게 뭐 대수라고. 잘 해결될 겁니다.”
“아니, NTT 건이 대수로운 일이 아니면 뭐가 대숩니까?”
“후후.”
“유 팀장, 웃음이 나와요? 이게 얼마짜리 장사인 줄 알고는 있는 겁니까? 자그마치 700억짜립니다, 700억짜리. 이게 삐끗하면…. 어후!”
“하하.”
“왜 자꾸 웃는 거예요? 비웃는 겁니까?”
화를 참을 수가 없는지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침을 튀겨 댄다.
“아니, 아니요. 따로 생각하는 게 있어서 그럽니다. 이 일도 잘해 보자고 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나는 웃는 얼굴 그대로 권 팀장의 손등을 툭툭 두드려 주며 조곤조곤 얘기를 시작했다.
기분이 너무 좋다. 모든 일이 예상대로 돌아가잖나. 심지어 권 팀장이 일본으로 와 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마저도 이처럼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솔직히 열흘 전만 해도 엄청 불안했었다. 내 행동이 스미토모 화재를 막을 만큼 나비효과를 일으키진 않았겠지 하면서도, 혹시 불이 안 나면 어쩌지 하는 일말의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 역사 그대로 스미토모는 불타 버렸고, 히타치 케미컬에선 특급 인재를 두 명이나 얻었으며, 주식 공매도로 벌써 수백억을 번 데다 이처럼 권 팀장이 달려왔으니 NTT도 노려 볼 수 있게 되었다.
일이 이렇듯 술술 풀려 나가니 권 팀장의 손을 잡고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된다니까!’ 하며 빙글빙글 춤이라도 추고 싶다.
정헌몽 사장이나 케이와 얘기할 때는 억지로 이 감정을 눌러야 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권 팀장을 앞에 두고 있자니 표정 관리가 힘들다. 평생 벌어도 못 번다는 700억쯤은 이제 나에게 꿈이 아니거든. 1년에 10억씩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거다. 대체 뭐부터 해야 내게 제대로 된 선물을 하는 걸까? 차를 살까? 집은 있으니까… 비행기를 사?
몇백억 정도 돈으로도 이리 좋아 죽겠는데, 태어날 때부터 수천 억짜리 회사를 물려받는 금수저들은 얼마나 삶이 편할까? 내가 다시 태어나는 극한의 운을 가진 덕분에 얻을 수 있는 돈인데, 금수저들은 태어나면서 그런 운을 가졌네. 좋겠다. 후후후.
“그래, 유 팀장이야 요즘 좋아 죽겠죠. 히타치 케미컬 퀄을 냈는데 스미토모가 불타 버렸으니. 그런 운이면 죽은 놈도 살리겠습니다. 근데 나는 정말 죽을 맛이라고요. 이대로 가면 영업 실적은 꽝입니다, 꽝!”
“북미 시장에선 잘나가잖아요.”
“휴우, 북미 실적은 북미 실적이고 일본 실적은 일본 실적이죠. 정말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겁니까?”
권재욱 팀장은 맨땅에 헤딩하기로 유명한 대현그룹에서 커 온 영업팀장이다. 결코 만만히 볼 사람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권 팀장의 논리에 한번 밀리면 쭉쭉 밀린다.
“내게 말할 기회도 안 주고 자꾸 몰아붙이면 나도 곱게 안 대합니다.”
“이익!”
“아이고, 팀장님들 왜 그러세요. 자, 자! 커피들 한잔 하시고. 아! 시원한 거 찾으세요? 잠시만요. 제가 후딱!”
일본 영업 담당인 허 과장은 제 담당 구역에서 싸움이 벌어지니 무척 곤혹스러운가 보다. 벌떡 일어나서는 어디 자판기라도 없냐는 듯 로비 안쪽으로 훅 달려간다.
일 잘 못하는 녀석의 특징이다. 영업하는 녀석이 이런 분위기도 못 참고 자리를 떠? 외려 잘됐다.
“휴우.”
“한숨 그만 쉬고, 다 이유가 있으니까 NTT에서 물건 빼요.”
“매출 700억에 입고시킨 물량만 자그마치 14만 댑니다. 개발팀도 여태 협조 잘해 왔잖습니까. 막판에 와서 이 지랄 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권재욱 팀장은 대현의 영업맨답게 한 성깔 하는 인간이다.
“어우, 귀 아파. 별거 아닌데 왜 자꾸 소리를 질러요?”
“700억이 별거 아니라고요? 외국에 좀 있더니 업무 파악이 안 됩니까? 출하한 물건을 빼면 순손실로 잡힌다고요! 매출이 빵이 되는 게 아니고 매출이 마이너스가 된다고요! 700억을 공중에 불태우는 것도 모자라 원가 560억도 허공에 날리는 거란 말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잘도 내뱉어 준다. 권 팀장의 말이 딱 내가 바라는 상황이다.
“순손실이긴 한데, 대현전자에 순손실이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순손실은 대현물산이 가져간다고요.”
“허! 잘도 아시네요? 근데 그런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대현전자든 대현물산이든 그룹 전체로 보면 수백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라고요.”
“(주가가 달라지지.) 에이, 정말…. 내가 왜 돈을 쓰레기통에 버리겠습니까? 권 팀장에게 피해 안 가도록 할 테니 걱정 말아요. 이 짓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말이 길어질수록 권 팀장의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NTT 퀄을 재개하라고 윽박지르러 왔을 텐데,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해 대니 헷갈리는 거다.
이럴 때는 원하는 말을 해 주면 된다. 본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 책임질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는 것. 굳이 내막을 자세히 알려 줄 필요는 없다.
“아직 아침 못 먹었죠? 같이 가요.”
권 팀장의 팔을 잡고 일어섰다.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겁니까?”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겁니다.”
“하하, 밥도 사 주고 납득도 시켜 줘야 해요?”
내가 웃으며 호텔을 나서자 권 팀장도 따라나섰다. 그제야 허 과장이 양손에 음료수 캔을 들고 허겁지겁 자리로 돌아왔지만 권 팀장이 호텔에 있으라며 떼어내 버렸다.
권 팀장은 역시 영업맨답게 감이 좋다. 기밀을 얘기할 때는 언제나 일대일이 좋다. 나중에 말이 새어 나가면 범인 색출이 가능하다는 걸 서로 인식하니까.
- *
딸랑, 딸랑.
“계세요, 하루코 님?”
“아! 어서 오세요, 유 팀장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홍빛 불빛이 새어 나오는 주방에서 미야자키의 아내, 하루코가 후다닥 달려 나온다.
깨끗한 행주로 손을 닦으며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몇 번을 봐도 단정하다. 사람의 운명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횟집 여사장보다는 중견 기업 사모님에게 더 잘 어울려 보이거든.
“바쁘신가 봐요?”
“재료 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대현의 파견자들이 점심을 예약해서 말이죠.”
“역시 누구든 하루코 님 손맛에 중독되면 헤어 나올 수 없죠.”
오 부장이 히타치 케미컬에 파견한 기술자 열 명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이곳이 입맛에 맞을 거라고 알려 줬더니,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잦은 것 같다.
“변변찮은 솜씨인데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음. 시간이 좀 애매하지만 지금 아침 메뉴가 가능할까요? 방금 비행기 타고 오신 분이 있어서요.”
나는 멀뚱히 옆에 서 있는 권 팀장을 가리켰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담배도 피우고 해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상당히 화가 가라앉은 것 같다.
“당연합니다. 당연합니다.”
“저는 회덮밥 주시고요, 이분은 아침에 먹기 좋은 걸로 주세요.”
“저도 그냥 같은 걸로 주세요.”
“はい, かしこまりました!”
나에겐 한국말로 대화하다 권 팀장에겐 짧지만 일본어로 대답하는 하루코다. 매사에 세심한 면이 있는 그녀다. 내가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는 데도 보름 이상 걸렸다. 하루걸러 한 번꼴로 식사하러 왔는데 말이다.
“음식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지글지글.
하루코가 음식을 가져다 놓는다. 권 팀장은 ‘이게 무슨 회덮밥이야? 돌솥비빔밥이나 다름없잖아?’ 하는 표정이다.
“드셔 봐요. 묘하게 한식이랑 일식이 섞여 있어요.”
“으음.”
권 팀장은 와중에 배가 고프긴 했는지 회덮밥인지 돌솥비빔밥인지 헛갈리는 음식을 쓱쓱 비벼 대기 시작했다.
일본 애들이 본다면 기겁할 일이지만, 여기선 흔한 일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해당 음식을 받으면 100% 비벼 댄다.
쓰윽.
일본식 수저로 한입 가득 먹어 보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우물우물 씹어 보더니 더욱 눈이 커진다. 저도 모르게 엄지 척을 하다가, 내가 피식 웃어 대자 멋쩍게 고개를 돌리는 권 팀장이다.
“오독오독 씹히는 생선회가 일품이죠? 뭔지 알려 달라고 해도 안 알려 주더라고.”
“맛있긴 한데요, 지금 중요한 게 이게 아니잖습니까. 이유를 알려 주셔야죠.”
“여기서 식사를 하다 보니까 일본 애들의 문화를 좀 알게 됐어요. 그래서 NTT 일을 파투 놓은 겁니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어요. 말려들면 안 됩니다.”
“뭔 소립니까? 대체 NTT가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요!”
“하루코 님, 차 한 잔 주시겠어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쪼로록.
이곳에서 차라고 해 봐야 이미 우려낸 녹차를 차갑게 식힌 것에 불과하다. 단지 얘기를 이어 가기 위해서 하루코가 필요했을 뿐이다.
“하루코 님, 저 회덮밥에 들어간 생선 어떻게 준비하세요?”
“제 가게의 비밀입니다.”
“시장에서 바로 떼 오시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중간 상인을 거칩니다.”
“전문가겠죠? 상품 가치가 없는 작은 생선에서 지느러미 살을 도려낸 거니까.”
나는 알고 있지. 10년 뒤 가게를 접고 나와의 술자리에서 알려 준 노하우니까. 중간 상인을 거칠 수밖에 없다. 칼솜씨 좋은 장인급이 나서서 손질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방법을 알고 있는 하루코라고 해도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다. 회덮밥 하나에 작은 생선 세 마리는 들어가니까.
“처음에 거래를 틀 때 납품 거절을 하셨겠어요. 뼈도 씹히고, 잔가시도 있고 그랬을 테니까.”
“예… 사실입니다.”
그리 놀라지 마세요. 당신이 내게 이야기해 준 거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대충 서너 번 거절하셨겠어요.”
“아, 그럴 리가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으음?”
“그건 그 사람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만났을 때는 감사히 납품받았습니다. 와타베 씨와는 그 뒤로 꾸준히 함께했고, 결국 이 맛을 만들어 냈습니다.”
“아! 생선 장인이 와타베라는 분이에요? 오오!”
“아….”
“후후, 걱정 마세요. 비밀은 지킬 테니까.”
“저는 바빠서….”
하루코는 더 이상 얘기하면 안 되겠다고 여겼는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별거 아닌 생선 얘기를 하고 있자니 어느덧 권 팀장의 표정이 굳어진다. 화를 내는 표정이 아니다. 이마에 주름살을 만드는 꼴이 의문이 생기는 거다.
“이게 NTT가 꿍꿍이가 있다고 여긴 이유입니다. NTT는 우리 퀄을 여섯 번이나 불량 때렸어요. 그것도 아주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말입니다.”
“일본 애들이 원래 좀 까다롭습니다. 인성이 개 같아도 돈 주는 새끼들은 다 고객입니다. 모르십니까?”
권 팀장이 애써 NTT를 두둔해 본다. 하나 그의 눈에도 어느새 의심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방금 봤잖아요. 일본 애들은 세 번째 선택지가 나오면 영원히 갈라서든가 어렵지만 같이 가든가 결론을 내립니다. 그게 일본의 문화예요. 겉으론 양놈 흉내를 내지만 저런 사소한 관습은 안 바뀝니다.”
“관습 따윈 모르겠고요, 원래 초기 제품은 퀄을 바로 안 내 준다고요.”
“알아요. 그러니까 그게 최대 세 번이죠. 여섯 번까지 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내가 일본 애들 꼼꼼함을 좀 배우라고 팀원들을 설득하기도 했지만, 이젠 아닙니다. 이거 NTT가 의도적으로 우릴 엿 먹이는 겁니다.”
“NTT가 우릴 엿 먹일 이유가 없습니다. NTT는 우리 대현과 달리 제조업체가 아닙니다. 납품받아서 시장에 뿌리고 통신비만 거두면 된다고요.”
“그게 맹점입니다. 잘 생각해 봐요. NTT는 우리 휴대폰 사양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있어요. 대현전자를 하청 업체로 길들이려 하고 있지요. 우리 휴대폰을 욕심내는 겁니다.”
“유 팀장님….”
권 팀장은 애써 의심을 지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권 팀장보다 정보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NTT의 물주가 다산연합에 가담해 대현물산의 지분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박명과 그의 하수인 백 상무야 단순히 돈을 노리고 하는 짓이라고 여긴다 해도, NTT는 다르다. 대현전자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면 수백억이라는 돈을 빌려 주면서까지 바다 건너에서 벌어지는 왕자의 난에 참여할 이유는 없다.
아무리 그림을 짜 맞춰 봐도 NTT에 있는 물주의 목표는 대현전자라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좀 더 정확히는 내 휴대폰의 설계와 제조 기술이 탐이 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 휴대폰은 전문가가 보면 10년은 족히 앞서 있거든.
한데 NTT 물주가 아무리 대현전자의 지분을 가지고 싶어도 공식적인 방법이 없다.
대현전자는 원래 역사대로라면 1996년에야 상장을 한다. 자금을 출자한 오너들이 지분을 판다면 몰라도, 외부 인물이 공식적으로 지분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간접적인 방법을 도모한 거다. 백 상무를 통해 대현물산의 지분을 흔들어 대현전자의 지분을 가져올 작전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당면한 문제는 그 NTT의 물주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놈이 누군지 알아내야 찍어 내지. 그 양반을 찍어 내야 내가 일본 시장에 안심하고 진출할 수 있다.
나는 지금 NTT 초기 납품 물량을 이용해서 그놈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만들려는 것이다. 개발팀장 하길 정말 잘했다.
“아무리 당신이 천재라고 해도 제가 영업 쪽에서 굴러 온 시간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린 깔딱 고개를 넘고 있을 뿐입니다. 이번엔 퀄 패스할 겁니다.”
“아뇨. 더 이상 못 합니다. 길게 보면 차라리 북미로 올인하는 게 나아요. 권 팀장도 내심 그리 생각하잖아요.”
“난 미래 따윈 관심 없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게 영업입니다. 당장 일본 창고에 있는 물량을 어떻게 포기합니까? 자그마치….”
“700억! 그거만 내가 해결해 주면 됩니까?”
“…뭐라고요?”
“이익은 못 봐도 원금은 충분히 회수 가능합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책임도 내가 지도록 하죠. 권 팀장에게 해가 안 가도록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700억 장사가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쉽고 안 쉽고 따윈 관심 없습니다. 이 물량만 해결해 주면 NTT에 끌려다닐 필요 없는 것 맞죠?”
“…….”
“영업 실적이야 북미에 올인하면 문제 될 것 없잖습니까.”
“휴우.”
권 팀장이 한숨을 내쉰다. 조금만 기다리면 긍정의 답변이 나올 것이다. 권 팀장을 힘으로 찍어 눌러도 되겠지만 굳이 일을 키울 필요가 없다.
권 팀장과 협의해서 조용히 물건만 빼내면 NTT 물주는 반드시 이 미끼에 끌려 나온다. 그러면 그 물주가 가진 대현물산의 주식은 내 것이 되는 거다.
결국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권 팀장이다. 이제 또 한 고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