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8장 동업자 (9/104)

제8장 동업자

와글와글.

“어이, 어윈! 여기에요! 여기!”

나는 두리번거리며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어윈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가로막에 기댄 채 손을 흔들었지만 키 큰 이 비서가 피켓을 높이 들고 있었기에 어윈은 금방 우리를 찾아냈다.

“미스터 유!”

“하하! 먼 길 오느라 피곤하죠? 자, 박카스 한 병 해요. 코리아 특산품입니다.”

끼릭!

나는 박카스 병뚜껑을 따서 건넸다. 아직 한국에선 제대로 된 원두커피 따윈 팔지 않으니 박카스가 제격이다. 확 깨는 맛이 괜찮을 거다.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서 늦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냥 내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느라 늦었다고 해도 됩니다. 자, 바쁘니까 출발하시죠. 계약 조건은 가면서 들읍시다. 맘에 안 들면 길바닥에 던져 버릴 거고요.”

“하하! 오케이. 오케이. 그런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일행이 안 나왔습니다.”

“일행? 초대한 사람은 당신 혼자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안 됩니다.”

“단순 통역자입니다. 엔지니어는 아니니까 보안은 걱정 마십시오.”

“내가 통역하면 그뿐 CEO 회의에 당신을 참석시키는 것은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회의 분위기만 느껴도 충분해요.”

“미스터 유, 당신이 내건 조건으로 계약할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버지니아, 그녀만 회의에 참석시켜 주면 됩니다.”

“버지니아?”

“어, 저기 오네요. 버지니아! 여기!”

또각. 또각.

위아래 검은색 정장에 긴 금발과 빨간 구두로 패션의 악센트를 준 여인이었다. 딱 보기에도 단순한 통역자가 아니다. 법률 서적 좀 뒤적거린 로비스트 냄새가 물씬 풍긴다.

“미스터 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버지니아 케이 로메티라고 해요. 편하게 케이라고 부르세요.”

“케이? 한국말이 유창한데요? 교포? 그리 안 보이는데….”

“아버지께서 주한 미군으로 오랫동안 근무하셨죠. 덕분에 한국말 좀 한답니다.”

“케이가 알파벳 K인가요?”

“어머니가 버지니아 출신, 저는 코리아에서 태어났으니 이름이 그리되었네요.”

귀족처럼 미들네임까지 지었음에도 내력은 상당히 저렴하다. 셀프 디스나 다름없는 농담을 이리 자연스레 하다니, 만만찮은 여자다.

“먼 길 오셨지만 회의 참석은 곤란합니다. 일단 회사까진 가는데, 사무실에 머물러 줘요.”

“보안은 문제없어요. 계약서도 이미 만들어 왔으니까. 그래도 우려된다면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국에 머물죠.”

“…….”

“체류비 걱정은 하지 마세요. 퀄컴사의 법률 고문 자격으로 머무는 거니까.”

케이는 내게 서류 뭉치를 건네며 말도 시원스레 툭툭 던져 댔다.

“팀장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 이제 정말 시간이 없는데요.”

이 비서가 나와 케이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며 무척 불쌍한 표정을 해 댔다. 진짜로 회의 시간까지는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회의 시간을 빠듯하게 정한 사람이 바로 난데, 그 책략으로 당황한 쪽은 어윈이 아니라 내가 되었다.

“미스터 유, 같이 참석하게 해 주십시오. CEO 앞에서 계약서에 바로 서명하겠습니다. 이 설계도는 그 약속의 증거입니다.”

어윈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와 등에 메고 있던 커다란 원통을 내게 건네주었다. 어른 키만 한 원통 안에는 책상 크기의 퀄컴의 칩셋 도면이 돌돌 말려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때는 반도체 도면을 프린트하는 것이 인쇄소를 이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도면 원본을 가져온 것이다. 어윈 이 사람, 진심으로 모든 것을 가져왔다.

“대현에서 원한다면 저와 같은 법률 자문 위원을 참석시키셔도 됩니다. 호호호.”

“됐고요, 일단 갑시다.”

부르릉.

차 안에서 대충 보는 척했지만 보면 볼수록 탐나는 계약서였다. 특히 뇌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게 퀄컴 지분 4.99%를 할당한다는 계약서는 이미 서명까지 마쳐 둔 상태였다. 내가 내건 다른 조건들도 100% 수용했으며, 빈 항목은 투자비와 서명란밖에 없었다.

굳이 추가된 계약 조건이라면 퀄컴 칩셋이 대현전자의 휴대폰에 100% 채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내가 바라던 바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것. 한국 문화에 그보다 잘 어울리는 계약 조건이 어디 있겠어요? 그쵸?”

“한국말 정말 잘하시네.”

내가 해당 항목을 유심히 읽어 보자 옆에 앉은 케이가 싱긋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어윈은 보조석에 앉은 채 정면만 바라볼 뿐이었다. 배를 띄웠으니 순항하기만을 바라는 선장의 모습이다. 항해사는 제대로 구한 것 같다. 시간이 걸릴 만했네.

나는 내 지분 계약서에 서명하고 그중 한 부를 되돌려 주었다. 설령 일이 꼬여도 최후의 보루가 될 계약서다. 회사에 알려지면 안 되는 걸 안다는 듯 케이는 가슴골 사이에 계약서를 숨기는 장난을 해 댔다.

    • *

정 회장이 주관한 회의는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아들 사장들은 각자 최측근 한 명만 발표자로 대동하고 자리했다.

원래 역사에서 익히 봐 왔던 가신들이 아니었다. 이박명 같은 가신들은 정 회장이 직접 처리하고 있다는 증거다. 대현은 분명 원래보다 나아지고 있었다.

“저희 대현자동차에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의외의 참석자분들이 계시니, 부득이 코드명으로 발표하는 걸 양해 바랍니다.”

“무당 녀석이 괜찮다고 했잖누. 미국인이라 한국말 모른다고 말이다.”

“그래도….”

“그렇다고 내가 못 알아묵게 말하면 안 된데이. 글고 혹시나 뻥치는 거믄 느그들 바로 모가지다. 따로 조사 다 한다이. 알겄누?”

“아, 예. 알겠습니다.”

“시작해 보이라.”

위이이잉. 철컥!

발표 자료가 필름에 담겨 영사기를 통해 대형 화면에 비친다. 1989년에 할 수 있는 최고로 화려한 방식이다.

준비된 프로젝트는 퀄컴 투자건을 비롯해 총 네 개. 나 또한 긴장된다. 정 회장의 통찰력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대현에 둥지를 틀지 말지는 그걸 보고 결정하리라.

“저희는 붉은곰의 전투기용 제트 엔진 및 전차용 디젤 엔진 기술을 우선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조사한 기술적 영역을 살펴보면….”

“필요 없다. 빨리 본론부터 말해 봐라!”

철컥! 철컥!

정 회장의 말에 초반 장표의 몇 장이 휙 하고 날아가 버린다.

“예, 현재 대현에서 타깃으로 할 만한 기술은 총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트 엔진의 터빈 블레이드 소재와 열처리 기술을 당사 엔진에 적용하는 것. 둘째, 전차용 직렬 엔진의 주물 기술입니다. 군수용 대형 트럭에 적용된 기술이지만 당사의 알파 엔진에 차용해 볼 만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다소 생뚱맞습니다만, 육중한 전차를 지탱하는 다중 서스펜션 기술입니다. 당사 승용차의 승차감을 개선하는 데 극히 유용하리라 생각됩니다.”

“조사 잘했네. 노파심에서 묻는데 알파 엔진 개발 잘하고 있는 거 맞제?”

“예, 당연합니다.”

거침없는 대답에 정 회장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알파 엔진은 말 그대로 최초의 국산 엔진이기에 대현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역사에서도 초기 개발치고는 훌륭한 엔진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투자할 만하다.

“계속해 봐라.”

“예. 이런 기술들은 붉은곰이 노하우로 보유하고 있기에 해당 기술자를 스카우트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파급 효과를 보면….”

발표 자료는 점차 그래프와 숫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알파 엔진을 1991년까지 개발 완료하고, 해당 기술을 접목시켜 5년 안에 미국 시장에서 7위권에 들어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예상 매출은 기하급수적인 상승 곡선을 그려 놓았다. 얼추 원래 역사와 비슷한 추세다. 발표자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전문가다.

영화관처럼 어두컴컴한 분위기. 케이가 어윈에게 살며시 귓속말을 전하고 있다.

케이는 무표정했지만 어윈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경쟁 프로젝트가 만만찮거든. 계약서를 미리 작성해 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이 녹아난다. 나에게 잘 부탁한다는 듯 쓴웃음을 짓기도 하고.

“저희 대현중공업은 방위 산업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현재 붉은곰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태로, 군수 업체에 접근이 용이한 이때가 기회입니다. 자주포, 신형 전차, 그리고 욕심을 부려 본다면 퇴역한 항공모함을 불하받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합니다. 붉은곰이 잠든다는 가정하에, 5천만 불 정도로 해당 물건들을 현물로 받을 수 있다면 당사의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을 통해….”

대현중공업의 발표는 훨씬 더 근사했다.

실제로 소련 붕괴 당시 대한민국 정권은 차관 상환을 빌미로 자주포 핵심 기술을 넘겨받고, 소련 군부에 납품되던 최신형 전차를 가져왔다. 군인 출신의 대통령이라 방위 산업에 대해서는 나름 혜안이 있었나 보다.

퇴역 항공모함 불하는 주변국이 가만있을 리 없으니 포기. 나머지 두 개는 투자하는 게 옳다.

“으음, 괜찮네. 역시 준몽이가 일은 잘해.”

“예, 아버님.”

정 회장은 정준몽 사장을 칭찬했다. 나 또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을 정도다.

정 회장이 중공업을 세웠던 이유도 기간산업으로 국가에 이바지하겠다는 의도였다. 방위 산업도 그 연장선에 있다. 부친의 뜻을 정확히 읽으니, 정준몽 사장은 상당히 똑똑한 양반이다.

“대현상선은 광산 채굴권에 올인하였습니다. 현재 세계 선물 시장을 살펴보면 비철 금속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리 가격은 향후 몇 년 새 폭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지방에 방치된 구리 광산들을 선점한다면 2년 내에 투자비를 회수하고 그 뒤로는 연 천억 규모의 순익을 꾀할 수 있습니다. 명목상은 유전 탐사를 가장해야겠지만 광산 채굴권 로비는 순조롭게….”

짝! 짝! 짝!

“좋아! 좋아! 헌몽이도 정말 일 잘하고 있구만.”

“감사합니다, 회장님.”

정 회장은 정헌몽 사장에게 박수까지 보내며 칭찬했다. 발표 도중에 내가 감탄사를 연발했기 때문일까?

사실 내가 감탄한 부분은 로비 타깃으로 잡은 인원들에 있었다. 로비 대상엔 차기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물론 원래 역사에서 광산 채굴권으로 초대박을 치는 고려인들이 모두 포진되어 있었다. 마치 내가 정 회장께 갖다 바친 미래 보고서를 보고 일을 진행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이 정도까지 일을 진행시켰다면 이 건수도 투자 확정이다.

“무당 니는 뭐하고 있누? 발표해라.”

“자료 준비를 못 했습니다. 원래 참관자이지 않습니까.”

“말로 하믄 안 충분하누. 해 봐.”

“예, 그럼 외람되지만….”

준비한 자료는 있었지만 발표할 수 없었다. 앞선 자료들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완벽에 완벽을 기한 자료. 어쭙잖은 자료를 내밀었다간 역효과만 낼 뿐이다.

나는 단상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 옆에 있던 화이트보드를 화면 앞으로 끌어냈다.

그 위에 ‘Motorola’라고 적고는 가위표시를 했고, ‘Qualcom’이라고 적고는 동그라미를 쳤다.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3년 내에 휴대폰 시장에서 모토롤라 제칩니다. 5년 내에 세계 시장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며, 매출액은 생각하시는 것보다 클 겁니다.”

듣기에 따라선 당돌함을 넘어 사기 치는 말이다.

“생각보다 크다? 얼마나? 아, 쟤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긴 곤란하겠네. 그라무 그 대가는 뭐라더누?”

“이 계약서에 사인하시는 겁니다. 투자액은….”

“One hundred million”

내가 계약서를 쳐들자 케이가 바로 끼어든다. 사장들의 인상이 팍 구겨진다. 한국말을 알아듣잖아! 하는 표정이다.

“1억 불이라고 하네요.”

“천억? 어이구, 비싸네. 허허허. 니 검토는 했누?”

“예. 계약서는 완벽하고 설계도까지 받았습니다. 기술은 좋지만 비싼 게 흠이네요. 현재로선.”

“현재로선…. 오이야, 알았다. 이리 갖고 오이라.”

“예.”

정 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계약서에 1억 불이라고 적고는 휙휙 서명을 해 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어윈이 당황할 정도였다. 깎을 줄 알았는데 땡전 한 푼 깎지 않았으니까.

어윈은 순간 서명할지 말지 갈등하는 눈길이었지만 내가 ‘미쳤나? 저기 사장들이 달려드는 거 안 보여?’ 하며 비릿하게 웃어 주자 냉큼 달려와 서명했다.

“아버님, 안 됩니다. 검토도 안 된 계약서인데, 뭘 믿고!”

“거기에 1억 불이면…. 저희 프로젝트들은 어쩌시려고요.”

정구몽 사장과 정준몽 사장이 득달같이 달려왔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그 와중에 정헌몽 사장만 턱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사업 아이템으로 보면 대현전자에서 투자하는 것이 될 테니 자신의 프로젝트가 물 건너가도 도긴개긴이다.

문제는 성공을 확신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것!

“우야긴, 우예. 8천만 불 남는다 아이가? 4천만 불씩 딱 쪼개가 하나는 구몽이가 운용하고, 하나는 헌몽이가 운용해라.”

어라? 정 회장의 말에 나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자동차 쪽을 접어 둘 줄 알았다. 원래 역사에서도 자력으로 기술 개발에 성공하잖은가. 정 회장은 그 정도의 촉은 분명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예? 아버님, 말씀 잘못하신 거 아닙니까? 저를 왜 빼십니까? 대현중공업 프로젝트가 제일 알짜배기입니다!”

“아이다. 니 꺼는 보고서 잘 써 가지고 가지오리라. 내 전경련에 골프 치러 가가 정치질 잘하는 김 회장 있제? 그 양반이 중공업도 하니까 슬쩍 찔러 주고 오꾸마.”

“아버님!”

“쓰읍, 내 말 끝났데이. 니 말해 봐라. 내 이제 정치한다캤나 안 한다 캤누? 어이?”

“정치는… 이제 멀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근데 니 일은 참 좋은데 너무~ 정치에 가까버. 내 이제 그런 사업엔 신물이 난데이. 그라니까 깨끗하이 포기할기라. 정치질 잘하는 김 회장보고 애국 한번 하라칼테이.”

“하아…. 아버님, 안 됩니다. 너무 아깝….”

쾅!

“이누마가 뭐라카누! 안 되긴 무이 안 돼! 그 돈이 니 돈이가!”

“아! 죄송합니다, 아버님.”

“회장이라캐라, 마!”

“예, 회장님.”

정 회장이 크게 소리치니 단박에 회의 분위기가 정리된다. 사장들이 꼼짝하지 못했다. 가히 절대 권력자 아니겠나.

“여기서 발표했던 거 싹 다 폐기하고 결재만 올리라. 무당 니 거는 따로 보고서를 도고.”

“예, 회장님.”

정 회장은 아예 회의도 종료시켜 버린다. 자잘한 후속 논의는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결재 한 방이면 12월 2일 자로 돈이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닐 것이다. 회사채라는 이름을 달고 말이다.

“쟈들은 괘안나? 대충 우리말 알아묵는 거 같드이마.”

“예. 남자는 돌려보내도 되고, 여자는 잡아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래? 좋네. 사무실 같이 쓰므 되겄네. 밥도 같이 묵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니 꺼는 잘~ 챙깄누?”

“아, 예. 적당히….”

“잘했누. 그거 인센티브데이. 그 좋더라고! 노조 애들이 꼼짝도 못 한다 아이가.”

“…….”

정 회장의 뱃속에는 정말이지 능구렁이가 몇 마리는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방위산업을 포기한 것도 탁월한 선택인 듯하다. 현 정권과는 더 이상 얽혀서는 안 된다는 촉이 발동한 거다. 그래, 굳이 대현이 나서지 않아도 정부가 앞장서서 자주포와 전차를 현물로 가져오잖나.

회의장에 남겨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중에 어윈은 1억 불, 한화로 천억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챙긴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부들부들 떨어 댔다. 1년에 10억씩 써도 100년이 걸리는 돈이다.

물론 더욱 대박친 이는 어윈이 아니라 대현이지만.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현재로선 나뿐이다.

CDMA 기술은 단순히 음성 전달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어윈조차 모르고 있다. 퀄컴 지분 14.99%, 크로스 라이선스, 로열티 지분 49%. 앞으로 무선 인터넷 사업자는 대현의 허락 없인 다리 못 지나간다.

내가 대현에 둥지를 틀 이유가 명백해졌다. 대현 안에서 대현 못지않은 통신 재벌이 탄생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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