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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18화
공격대원들은 하나둘 게임 포기를 누르고 함선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박재우와 황덕록, 윤혜리, 김희연은 나와 마지막 포옹을 나눈 뒤, 게임 포기를 누르고 함선에 탑승했다.
헥헥, 월! 월!
장군이가 다가와 내 품에 안기기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장군이도 고생 많았어. 도와줘서 고마워.”
[친구 돌아왔다! 어? 친구 냄새가 특이해. 그래도 좋아! 다시 만나서 반가워!]
장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지막으로 품에 안고, 윤혜리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장군이의 머리 위로 게임 포기 메시지가 떠오르자, 윤혜리가 대신해서 수락을 눌러주었다.
장군이 덕에 많이 웃을 수 있었고, 지옥 같은 나날에 활력이 돌았다.
누가 뭐라 하든 장군이는 영원히 소리결의 친구이자, 마스코트로 남을 것이다.
전완수와 최현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내 곁으로 다가오며 얘기했다.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전완수의 물음에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에스파디아도 있고.”
“아니 너 없으면 우리가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고.”
“……잘 먹고 잘살기만 해봐.”
“푸하핫!”
전완수는 마지막까지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차라리 좋다.
마음 무겁게 떠나보내는 것보다, 웃으며 보내주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이다.
반면에 최현은 내 팔뚝을 토닥이며 얘기했다.
“수고해라.”
가볍게 토닥이며 함선으로 이동하기에, 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다.
“현아!”
“……?”
“고맙다!”
최현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전완수를 옆에서 잡아주고, 소리결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해준 최현.
위급한 순간에 일행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본인의 희생과 노고를 당연하게 여겼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현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헛기침과 함께 얘기했다.
“너도 고생 많았어.”
“어깨 펴고 다녀!”
“…….”
최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지면을 바라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싱겁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내 옆에 있는 설여원을 슬쩍 쳐다보더니, 전완수를 향해 외쳤다.
“전완수 빨리 와! 괜히 시간 뺏지 말고!”
최현이 눈치를 주자, 전완수도 뒤늦게 상황 파악을 마치고 후다닥 함선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함선에 오르며 게임 포기를 누르자, 그들의 심장에서 파편이 떠올랐다.
예상대로 플레이어가 게임을 포기하면 마력을 잃게 되고, 체내에 있던 파편이 밖으로 나왔다.
갈 곳 잃은 파편은 허공을 배회하더니, 곧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내게 흡수되었다.
전완수와 최현이 안전하게 탑승하는 걸 확인하고, 이정우와 정진영에게 얘기했다.
“정우형, 진영이 형, 안전지대에서도 잘 부탁드려요.”
“우리 걱정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
이정우는 한층 진정된 목소리로 얘기했다.
하지만 표정만 봐도 그의 심리를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죄책감과 미안함,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말 안 듣는 후배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고집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야. 그리고 챙겨준 게 뭐 있다고…….”
“저 동아리 처음 가입했을 때, 형이랑 진영이 형이 제일 먼저 말 걸어준 거 알아요?”
“……그랬나?”
이정우가 정진영을 쳐다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회피했다.
무수히 많은 신입생 중 하나.
그런 나를 가장 먼저 챙겨준 선배들이었다.
두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내겐 그날의 기억이 선명했다.
이에 이정우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진짜 고마웠어요. 형.”
“……마지막처럼 얘기하냐. 어차피 다시 만날 건데.”
이정우는 헛기침과 함께 멋쩍은 마음을 달랬다.
정진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떤 거요?”
“생존자들 말이야.”
“지구가 예전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안전지대에서 지낼 거예요.”
“안전지대면…… 아틀란티스?”
“네, 몇 년 있어야 할 겁니다.”
정진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다시 지상으로 나왔을 때…… 지구가 예전 모습일까?”
“글쎄요. 어쩌면 수풀이 우거진 모습일 수도 있죠.”
“좀비보단 그게 보기 좋겠지?”
마지막까지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유도하는 정진영.
이정우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정진영이 그의 등을 토닥이며 얘기했다.
“자, 그럼. 선배들은 눈치껏 피해줘야지?”
“아, 그래.”
정진영과 이정우는 내 옆에 있는 설여원을 슬쩍 쳐다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함선으로 향했다.
곧 정진영의 심장에서 파편이 빠져나오고, 내게 흡수되었다.
하지만 이정우는 게임 포기 메시지 대신 다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띠링-!
-소리결의 파티장 이정우는 인벤토리에 있는 씨앗부터 함선의 저장고로 옮겨야 합니다.
이정우의 눈앞으로 떠오른 메시지였다.
이정우는 홀로그램이 시키는 대로 저장고로 이동했다.
멀어지는 일행을 바라보고 있는데.
꼬옥-
옆에서 내 손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설여원은 내 손을 잡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고,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다.
“여원아.”
설여원을 부르자, 그녀는 섭섭함이 묻어 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설여원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탁.
“아.”
설여원은 양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더니, 금세 뚱한 표정을 지으며 내 팔뚝을 때렸다.
여전히 매운 손.
“이래야 설여원이지.”
“…….”
설여원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이런 상황에도 솔직하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가 민망해서,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안전지대 가서 애들 괴롭히지 말고, 잘 지내야 돼.”
“괴롭히긴 누가 괴롭힌다고…….”
“어서 가. 부모님 기다리신다.”
갑판 위로 설여원의 부모님이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여원은 눈길을 한번 주더니, 다시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야?”
“너무 늦지 않게 올게.”
“그럼…….”
설여원은 말끝을 흐리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품에 안겼다.
얼떨떨한 마음에 양손은 갈피를 잃고, 시선은 설여원의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함선에 타고 있던 모든 생존자가 이곳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저들은…… 이게 작별 인사라는 걸 모르겠지.
이에 헛기침과 함께 설여원의 등을 토닥였다.
설여원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 슬근슬근 머리를 비비며 얘기했다.
“기다릴 테니까…… 살아 돌아와.”
“알았어.”
“5년이지? 독 안개가 사라지는 기간.”
“게임 설정은 그렇지.”
“5년 정도는…… 기다려 볼게.”
설여원의 말을 듣고 심장에서 아찔한 진자운동이 느껴졌다.
이에 설여원을 좀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5년간 열심히 달릴게. 늦지 않도록.”
“조금 늦는 건 괜찮으니 무리하지 말고.”
“경솔한 행동 금지?”
“그래, 경솔한 행동 금지.”
띠링-!
-남은 시간: 1분.
더는 여유 부릴 시간이 없기에, 설여원의 손을 잡고 함선 앞으로 향했다.
뒤이어 이정우의 파편이 함선 밖으로 나오며 내게 흡수되었다.
씨앗 저장을 마치고 게임 포기를 누른 모양이다.
설여원도 함선에 들어서자,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설여원은 내 얼굴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게임 포기를 눌렀다.
설여원의 파편까지 흡수하자, 체내의 마력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곧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배의 완성이다.’
힘을 주지 않아도, 가만히 서 있어도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
에스파디아가 얘기한 마르지 않는 샘물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마력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숨만 쉬어도 마력이 재생되는 것 같았다.
부웅-! 부우웅-!
뒤이어 뱃고동 소리와 함께 함선의 입구가 닫히기 시작했다.
설여원은 입술을 달싹이며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마음속에 꾹꾹 눌러두었던 말을 뱉었다.
“박재형!”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안 오기만 해봐! 너 동아리방 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꼭 와야 돼!”
“…….”
“나 혼자 늙어 죽는 꼴 보기 싫으면 꼭 와! 꼭 살아야 돼!”
투정 아닌 투정을 들으며,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설여원 성격에 저런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이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게!”
뒤이어 함선의 문이 닫히고, 눈앞으로 이러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공습이 종료됩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 ‘대공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 ‘라스트아크’를 시작합니다.
띠링-!
-다섯 번째 에피소드 ‘라스트아크’의 클리어 조건이 수정되었습니다.
-안전지대 도착 시점이 아닌 함선탑승 시점으로 변경됩니다.
-감염된 동식물의 공격으로부터 함선을 사수하는 설정이 삭제됩니다.
띠링-!
-지구상에 남은 플레이어가 없습니다.
-모든 플레이어가 게임을 포기하고 함선에 탑승했습니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 ‘라스트아크’가 종료됩니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닫자, 서서히 바다로 나아가는 함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내가 탑승하지 않은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추후 결인들이 설명해 줄 것이다.
6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야기와 함께.
대학교 동아리방에서 시작된 소리결의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멀어지는 함선을 바라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시원섭섭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방금 헤어졌는데…… 벌써 그리웠다.
‘네 계획대로 모두가 살아남았다. 이제 그만 인비디아를 처리하거라.’
귓가로 들리는 에스파디아의 목소리.
인비디아도 인비디아지만, 다른 의문이 남았다.
멀어지는 함선을 바라보며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함선 출발할 때 로즈가 시동 걸어야 출발하는 거 아니었어요?”
‘로즈?’
“다들 게임 포기했으니 로즈가 없는 상태인데, 함선이 알아서 출발해서요. 제가 따로 조종해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본래 네 번째 에피소드를 끝으로 모든 플레이어의 마력을 회수하고, 마지막 에피소드는 함선의 무기를 이용해서 인간의 힘으로 살아남는 에피소드였다.’
“감염된 갈매기랑 싸웠어야 한다고요?”
‘함선이 왜 함선이겠어. 괜히 함선이 아니야.’
에피소드를 수정한 덕에 다수의 희생을 피할 수 있었다.
잠깐, 그럼 두 번째 에피소드를 끝내고 출발한 함선은 안전하려나?
이러한 생각을 하자, 에스파디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땐 독 안개가 없었으니 감염된 동식물도 없었지.’
“제 생각도 읽을 수 있어요?”
‘아까부터 읽고 있었다. 몰랐느냐?’
“당연히 몰랐죠.”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네가 설여원이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비밀로 해주마.’
이건 사생활 침해 아니야?
생각도 마음대로 못 하겠네.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이자, 에스파디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희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대공습을 버텨낸 것 자체가 기적이었어. 내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본래 대공습을 직접 겪는 게 아니라, 중국 톈진이 무너졌을 때 그곳을 확인하며 대공습의 피해를 파악했어야 한다. 그것이 정식 루트였지.’
“그럴 거면 두 번째 에피소드에 아크에 도착하라는 내용이 없었어야죠.”
‘무너진 아크도 아크야.’
“…….”
‘게임의 틀을 깨부순 건 너희들이다. 그 때문에 부산 아크에 함선이 도착한 거고, 이를 조종하기 위한 조건이 붙은 거지.’
틀린 말은 아니라서 반박할 수 없었다.
하긴, 라스트아크에서도 무너진 아크를 확인하며 스토리가 진행되었으니, 그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시스템이 참…… 똑똑하긴 똑똑하네.
상황에 따라 그에 맞도록 설정한다더니, 루트를 벗어나도 기존의 루트로 돌아오도록 우리를 유도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에스파디아의 질문이 이어졌다.
‘후회하느냐?’
후회라…….
이에 멀어지는 함선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후회보다는 후련하네요.”
‘…….’
“후회할 게 뭐 있겠어요. 다들 안전하면 된 거죠.”
‘이제 혼자서 나아가야 한다. 네겐 동료도 없고, 적의 위협은 여전히 건재해. 그래도 괜찮겠느냐?’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와서 미안한 거예요?”
‘…….’
“그리고 제가 왜 혼자예요? 당신이 옆에서 계속 도와줄 텐데.”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띠링-!
뒤이어 라스트아크 특유의 기계음과 함께 마지막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