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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71화 (37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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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17화

최현이 박재형의 기억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결인들에게 얘기하자, 일행은 하나같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설여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재형이는 대공습이 끝날 때까지 일부러 인비디아를 죽이지 않았다는 거야?”

“맞아, 우리가 가루가 되지 않고 지금껏 살아 있는 건…… 재형이가 인비디아를 죽이지 않고 버텨준 덕이야.”

그러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버텨준 건 둘째 치고, 재형이는 게임을 클리어한 뒤에도 계속 관리자로 남아야 돼? 에스파디아는 뭐야, 에스파디아는 놀아?”

“너도 봤잖아. 에스파디아는 재형이한테 흡수됐어. 재형이는 이미 인간이 아니야.”

최현이 덤덤하게 얘기하자, 이번엔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너는…… 그걸 알면서도 여태 숨겼어?”

“…….”

“왜 대답이 없어? 최소한 나한텐 얘기했어야지!”

이정우가 언성을 높이자, 정진영이 진정시키며 얘기했다.

“야, 이런 반응 보일 게 뻔한데 어떻게 얘기해.”

“진정하게 생겼어? 재형이는 계속 남아서 언노운이랑 싸워야 한다는 말이잖아!”

“야.”

정진영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눈치를 주자, 이정우는 뒤늦게 결인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세차게 혀를 차더니, 저 멀리 함선에 오른 박재형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한탄스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재형이 그렇게 가면…… 내가 무슨 낯으로 재형이 부모님을 봐.”

결인들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멈춰 버린 결인들의 시간과 달리, 한강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최현은 죄인처럼 고개 숙인 채 착잡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죄송해요. 어떻게든 얘기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재형이도 얘기하지 말라고…….”

“재형이가 전부 짊어지면 우리가 사니까 함묵한 거 아니야? 넌 그렇게 살고 싶냐?”

이정우가 이성을 놓자, 정진영이 그의 멱살을 잡으며 얘기했다.

“왜 현이한테 지랄이야. 정신 차려 인마.”

“넌 이 상황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냐? 죄책감도 없어?”

“너 파티장이야 인마. 너답지 않게 왜 이래.”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가 박재형 낭떠러지로 밀어붙인 거라고. 그게 선배가 돼서 할 짓이냐? 그게 파티장이야?”

“아 그러니까!!”

정진영은 이정우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이더니,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누구 탓할 게 아니라, 재형이랑 직접 얘기해야 할 것 아냐.”

“…….”

즈즉- 슈화아아악-!

뒤이어 여의도 상공으로 푸른빛의 포탈이 생성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하자, 그곳에서 흑백의 갑주를 입은 존재가 나타났다.

공중에서 여의도 전경을 살피는 존재.

함선에 있던 생존자들도, 언성을 높이던 결인들도, 모두가 하늘에서 나타난 존재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곧 흑백의 갑주가 사라지고, 기다란 흑도를 쥔 존재가 결인들의 곁으로 내려왔다.

결인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바, 박재형……?”

* * *

뉴욕에 퍼진 마물들을 모조리 섬멸하고 한국으로 이동하는 포탈을 열었다.

허공에서 여의도 일대를 살피자, 예상대로 함선이 도착한 상태였고 생존자들의 탑승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직 탑승하지 않은 사람은 소리결을 포함한 공격대원들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결인들.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얘기했다.

“바, 박재형……?”

이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전부 끝났어요. 이제 정말…… 클리어만 남았습니다.”

“…….”

환호성이라도 내지를 줄 알았는데, 일행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언제까지 속일 거야.”

순간, 이정우의 입에서 들려온 말에 움찔거리고 말았다.

설마 얘기했나?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얘기했구나.

머리를 긁적이며 쓴웃음을 짓자, 이번엔 설여원이 다가오며 물었다.

“야 박재형. 네가 직접 설명해. 같이 못 간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됐어.”

“어영부영 넘어가지 말고 자세히 설명하라고!”

설여원은 반쯤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설여원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얘기했다.

“왜 그랬어…… 왜에! 왜 이리 이기적이야! 우리 입장은 생각 안 해? 너 혼자 다 짊어지고 가면 우리가 행복할 것 같아?!”

“안 그러면 파편 흡수한 사람들 다 죽을 운명이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지켜봐.”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하자, 설여원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파르르 떨리는 설여원의 두 주먹에 무수히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의 문제도 아니었다.

서운함과 섭섭함, 미안함과 죄책감, 안도와 후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이정우도 눈시울을 붉히며 한 차례 코를 훌쩍이더니, 애써 침착함을 되찾으며 물었다.

“왜 상의도 없이 너 혼자 정해.”

“죄송해요. 하지만 얘기할 수 없었어요.”

“최소한 상의는 할 수 있었잖아.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고 또…….”

“형.”

덤덤하게 이정우를 부르자,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어요.”

“…….”

“제가 사실대로 얘기하면…… 다들 걱정할 게 뻔하잖아요. 저한테 계속 죄책감 가질 거고.”

“이렇게 하면 죄책감이 없을 것 같아?”

“사실대로 얘기했다면…… 이번 싸움에서 온전히 실력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

“남은 시간 우울하게 있는 것보다 파이팅 넘치게 가야 소리결이잖아요.”

“야…….”

“다들 너무 착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그래서 더 얘기할 수 없었어요.”

애써 환하게 웃으며 얘기하자, 이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외면했다.

이정우의 어깨가 잔잔하게 떨리고, 곧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뒤에 있던 정진영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이정우를 토닥이며 내게 물었다.

“인비디아는 어떻게 한 거야?”

“인벤토리에 봉인했어요.”

“생명체도 인벤토리에 들어가? 구격이 맞아?”

“마력 덩어리라서 쉽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밖으로 나오려고 발악하고 있어요.”

정진영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물었다.

“우리가…… 빨리 함선 타고 이동하는 게 도와주는 거지?”

“네.”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전완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씨X…… 끝까지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똥고집 새끼.”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하잖아.”

“이런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내가 선택한 일인데, 울 수는 없잖아?”

“어휴, 미친 새끼 진짜…….”

미안한 마음을 욕으로 대신하는 전완수.

전완수도 코끝이 시큼한지, 한 차례 인상을 찌푸리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내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 가서 수연이 챙겨야지.”

전완수의 여동생 전수연.

전완수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짓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당연하지.”

“늦지 않게 와. 동방에서 기다릴 테니까.”

“나 돌아올 때까지 기타 관리는 네가 해야 된다.”

전완수는 싱겁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최현은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에 최현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미안하다 현아. 너한테 부담 줘서.”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거야.”

“잘한 거야.”

“잘했으면…… 기분이 이렇게 더럽진 않겠지.”

최현의 두 주먹이 파르르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최현의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

“나쁜 생각 하지 말고 안전지대에 있을 지혜만 생각해. 너도 동생 챙겨야지.”

“…….”

최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최현에게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무겁겠지만, 정신력이 강한 친구니 언젠가 스스로 이겨낼 것이다.

또한 결인들도 있으니, 무너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재형아.”

“재형 오빠…….”

뒤이어 박재우와 황덕록, 윤혜리와 김희연이 다가왔다.

문득, 박재우와 황덕록을 처음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종합강의동에서 발견된 두 사람.

처음엔 머리에 나사 빠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누구보다 순수하고 올곧은 친구들이었다.

필요한 물품을 확보하고, 수리하고, 제작하며 묵묵히 소리결을 지켜준 박재우와 황덕록.

두 사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재우야, 덕록아, 그동안 수고 많았어. 정말…… 고생했다.”

“네가 더 고생 많았지.”

두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윤혜리와 김희연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서운한 마음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고생 많았어 혜리야.”

“오빠…….”

“희연이도 힘내줘서 고마워.”

김희연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희연을 처음 만났을 때는…… 좀비로 오인하고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재를 몰라봤으니, 내겐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모양이다.

윤혜리는 본인도 울상이면서, 그런 김희연을 달랬다.

마음이 여리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윤혜리.

모두가 김희연을 반대할 때도 윤혜리가 끝까지 지켜준 덕에 지금의 소리결이 완성될 수 있었다.

괜스레 그날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마음 한편이 시큼해졌다.

“혜리야.”

“네…….”

“네가 장군이 꼭 붙잡고 있어. 또 함선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고개를 끄덕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윤혜리.

그런 윤혜리와 김희연을 박재우와 황덕록이 토닥여 주었다.

설여원은 다른 말 대신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설여원과의 인연도 참…….

기숙사를 탈출해서 자연대까지 도망쳤을 때, 설여원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난 이곳에 없을 것이다.

라면 국물로 배를 채우며 라스트아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지도를 통해 교내의 상황을 파악하던 순간이 머릿속을 스쳤다.

고작 6개월 전의 기억인데,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아련하고 흐릿했다.

학교 본관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리려던 내게 엎어치기를 가하던 모습.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라며 두 눈에 힘을 주던 모습.

처음 좀비를 죽이고 덜덜 떨던 모습.

설여원과의 추억이 희뿌연 수증기처럼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울고 있는 설여원을 조용히 품에 안으며 얘기했다.

“고마워.”

“…….”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줘서.”

설여원이 내게 나타나 준 덕에, 이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띠링-!

-남은 시간: 5분.

눈앞으로 떠오르는 대공습의 남은 시간.

함선 출발 5분 전이 되자, 모두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오르며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에 결인들과 공격대원들을 가볍게 훑으며 얘기했다.

“어서 가죠.”

모두와 함께 함선 앞으로 이동했다.

함선 앞에서 한월과 정명석, 한아람, 진선균, 최이경, 안드레스, 시몬 등, 공격대에 속한 모든 플레이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함선에 탑승한 생존자들은 갑판으로 나오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에 모두가 기뻐하고 있었다.

저들은…… 내가 함께할 수 없다는 걸 모르겠지.

차라리 안전지대에 도착할 때까지 모르는 게 좋을 것 같다.

갑판 위에 나타난 오혜선과 한민욱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박재형 멋있다!!”

한민욱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실웃음이 터졌다.

민망한 마음에 시선을 돌리는 찰나, 머릿속으로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선에 있는 생존자들 사이에 부모님도 있을 것이다.

갑판 위에는 없는 것 같은데…….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한다.

얼굴을 보면 마음 약해질까 봐, 두 눈 질끈 감으며 생각했다.

‘꼭…… 다시 올게요.’

소리 내어 얘기하지 못하고, 불효에 대한 사죄를 속으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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