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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14화
심장에 있던 마력이 머리로 이동하자, 스킬북을 습득한 게임 캐릭터처럼 마나의 순환 구조와 사용법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에스파디아와 내 무의식은 공유할 수 있기에, 에스파디아가 무의식의 공간에서 창조한 개념은 내게로 곧장 전달되었다.
마력을 응축시키고, 퍼뜨리고, 변환시키는 방법이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됐다, 확인하거라.
띠링-!
기계음과 함께 눈앞으로 나타나는 홀로그램.
[뒤틀린 황천]
[관리자의 족쇄]
동시에 에스파디아의 말이 떠올랐다.
-당장 필요한 스킬부터 만들었으니, 적절하게 사용해 보아라.
신의 권능인 만큼 스킬에 레벨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명 정도는 적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급하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만들어 주면 뭐가 뭔지 어떻게 알아?
그러거나 말거나, 에스파디아는 뿌듯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부족한 마력부터 확보해야 하니, 뒤틀린 황천부터 사용해.
콰과과과과과과과광-!!!!!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격.
인비디아는 미꾸라지처럼 회피하는 내 모습을 직시하며 외쳤다.
“벌써 지친 게냐 에스파디아! 조금 전의 패기는 어디 갔지?!”
승기가 넘어왔다고 생각했는지, 다시금 입을 털기 시작했다.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는지 볼까?!”
인비디아의 날개에 응축되어 있던 마력이 한 곳에 집중되더니, 거대한 ‘구’의 형태로 변했다.
마른 하늘에 떠오른 달처럼, 그 크기와 중량에 압도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훙-
곧 머리 위로 날아드는 거대한 마력 덩어리.
이에 손바닥을 펼치며 읊조렸다.
“뒤틀린 황천.”
그러자 심장에서 아찔한 진동과 함께 마력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모여든 마력은 가로로 기다란 선을 이루더니, 곧 아귀의 입처럼 쩍 벌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세상을 밝히는 갑주와 달리, 손끝으로 모인 마력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처럼 보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뒤이어 일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
무너진 건물 잔해나 쓰레기들은 블랙홀에 닿자마자 사라지고, 인비디아의 공격은 서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인비디아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인비디아의 공격을 모조리 빨아들이자,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던 근원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인비디아의 마력을 흡수한 거야?
에스파디아 이 녀석, 상황에 맞춰 적절한 스킬을 만들어주었다.
호응하라고 했더니 제대로 하는데?
-일시적일 뿐이다.
“네?”
눈앞으로 떠오르는 에스파디아의 메시지.
-흡수한 마력으로는 근원을 보존할 수 없어.
“그래도 시간은 벌었다는 거죠?”
-미세하지만, 벌긴 벌었지.
인비디아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황급히 게이트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쫓아가기 위해 날개를 펼치자, 에스파디아가 반대했다.
-따라가지 말고 족쇄를 사용하거라.
이에 인비디아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읊조렸다.
“관지라의 족쇄.”
촤라라라라락-!!!!
갑주에서 새하얀 빛이 번뜩이더니, 허벅지와 어깨 부위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사슬들이 방출되었다.
쏜살같이 인비디아에게 날아가는 마력 사슬.
촤라라락-!!
마력으로 이루어진 사슬은 인비디아의 발목을 휘감더니, 이곳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에스파디아 이 녀석.
게임으로 치면 전사에 가깝다더니, 완전히 야만 전사나 다름없었다.
적의 품으로 파고들거나, 완전히 묶어놓고 패는 유형.
끌려오는 인비디아를 보고 흑도 명월을 말아쥐자, 시기 좋게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띠링-!
-철괴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축적된 피해를 계산합니다.
-다음번 공격에 8배의 피해가 추가됩니다.
츠으으으-!!
흑도 명월에서 연달아 섬광이 점멸하며 거대한 마력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에 검파를 말아쥐며 하체를 접었다.
쾅-!!!!
지면을 박차며 인비디아에게 달려들었다.
끌려오는 인비디아와 달려드는 나.
그대로 인비디아의 허리를 항해 명월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명월에서 방출된 마력은 인비디아의 허리를 뚫고 뉴욕 하늘에 열린 게이트까지 뻗어 나갔다.
인비디아의 상체가 땅에 떨어지고, 사슬에 묶인 하체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쿠르릉- 쿠릉- 쿠르르…….
반으로 쪼개진 게이트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력을 불어넣어 게이트를 닫은 게 아니라, 마력으로 게이트를 깨부수었다.
동시에 심장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지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몰려왔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붙잡자, 명왕의 갑주가 사라지고 명월의 빛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자, 눈앞으로 에스파디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금 마력을 차단하지 않았다면 근원이 깨졌을 거야. 너를 살리기 위해 마력 공급을 차단했다.
8배나 힘을 끌어올렸으니, 당연히 마력 소모가 상당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최소한 착지한 뒤에 차단해야 할 것 아냐?
80m 상공에서 그대로 추락하고 말았다.
쾅!!!!!
등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전신을 뒤덮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눈을 뜨자, 에스파디아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인비디아를 처리할 기회였다. 그걸 놓치다니.
“허리를 끊었으니 재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적당히 상대하면서 대공습이 끝나기를 기다리면…….”
-넌 인비디아를 우습게 봤어.
“예?”
드드드드드드드드드-
뒤이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반이 울리더니, 저 멀리 인비디아의 상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비디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전신이 검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흑도 명월을 말아쥐며 마력을 담으려고 했지만, 명월에 빛이 생성되지 않았다.
“왜 이래, 이거 왜 이래요?”
-방금 일격으로 근원의 밑바닥에 있던 마력까지 사용했다. 재생에 시간이 필요한 건 너야.
뒤이어 잘려나간 인비디아의 하체가 재생되고, 전신으로 검붉은 기운이 맴도는 인간의 형체가 완성되었다.
언노운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형상.
곧 인비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구나 이런 기분.”
“…….”
“살갗이 찢어지고 고통에 이성이 마비되는 이 통증, 언제나 새로워.”
“변태야 뭐야.”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하자, 마력으로 이루어진 인비디아는 내게 삿대질하며 얘기했다.
“너도 느껴 봐.”
“내가 너처럼 변…….”
퓽-
인비디아의 손끝으로 마력이 집중되더니,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
콰아아아아아아앙-!!!!!
동시에 배후에서 들려오는 굉음.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란 눈으로 돌아보자,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심장이 아리기 시작했다.
눈살을 찌푸리며 가슴을 쳐다보자, 지름 10㎝의 구멍이 가슴을 관통한 상태였다.
“어?”
지금…… 내 심장을 관통하고 바다까지 반으로 가른 거야?
숨이 안 쉬어진다.
너무 놀라서 사고회로가 멈추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지가 덜덜 떨리고, 두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휘둥그레진 상태.
전신에서 힘이 빠진다.
귀에서 가느다란 실이 끊어진 것처럼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이명이 들리고, 시야가 아찔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무릎 꿇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인비디아를 쳐다봤다.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인비디아.
마력으로 이루어진 신체에 다시금 피부가 재생되자, 놈은 대검을 소환하며 얘기했다.
“애석하구나 에스파디아. 이런 멍청한 육체에 갇히다니.”
“…….”
“내 약점을 알려주지 않은 게냐? 그 순간에 허리를 노리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판단이야.”
일부러 허리를 노린 건데, 그게 패착이 된 건가?
인비디아에게 이 정도 마력이 남아있는 줄 몰랐다.
분명 100m 상공에서 폭격을 가할 때만 해도 거의 죽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인비디아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작별은 나도 내키지 않지만…… 더는 여유부릴 수 없구나.”
“…….”
“좋은 승부였다 에스파디아. 덕분에 깨달았어. 난 성장할 수 있고, 관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비디아는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손에 쥔 대검을 치켜들었다.
훙-!
목덜미로 날아드는 대검.
살 떨리는 공포감에 반사적으로 목에 힘이 들어갔다.
막아야 하는데, 피해야 하는데,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에스파디아의 말대로 해야 했나?
일행의 목숨을 거두어들이고, 목숨값으로 인비디아를 처단했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런 승리를 과연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명이든 백 명이든, 모두가 소중한 인생인 것을.
누군가의 희생과 죽음으로 점철된 승리는 바라지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을 지켜봤으니까.
그러니 단 한 명도 잃지 않고, 모두를 지켜내는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설령 그 대가가 네 목숨이더라도?’
그 순간, 귓가로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시지가 아닌, 환청이 들리는 것처럼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도끼눈을 뜨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마지막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구나.’
신념?
문득, 머릿속으로 예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에스파디아는…… 내게 신념을 굽히지 말고 나아가라고 했다.
그 길을 응원하겠다고.
콰아아아아아아앙-!!!!
인비디아의 대검이 목덜미에 닿기 일보직전,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마력이 폭발했다.
거친 칼바람이 발생하고, 일대의 모든 것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띠링-!
귓가로 들리는 라스트아크 특유의 기계음.
-성물이 발동합니다.
[사과 구슬]
-아이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구슬.
-귀하의 노고로 아이의 부모님이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구슬을 선물한 아이의 마지막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추후 적합한 상황에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 * *
파편을 지닌 일행이 장군이를 힘으로 제압하고, 윤혜리와 김희연이 광분한 장군이를 달랬다.
으르렁거리던 장군이는 윤혜리의 손길을 느끼고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붉게 충혈되어 있던 안구가 서서히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작아지는 몸집.
헥헥, 헥, 월!
“장군아!”
장군이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자, 윤혜리는 울상을 지으며 장군이를 품에 안았다.
연신 머리를 쓰다듬자, 장군이는 꼬리를 흔들며 머리 위로 말풍선을 띄웠다.
[친구 왔어! 친구 괜찮아? 안 다쳤어?]
그 주인에 그 강아지라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결인들부터 걱정하는 장군이.
장군이는 윤혜리의 볼을 핥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더니, 배를 까뒤집고 좌우로 구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살폈다.
다들 열심히 싸운 덕에, 여의도의 모든 마물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남은 좀비들은 안상진과 돌연변이가 담당했다.
모든 상황을 확인하고, 이정우는 홀로그램을 살피며 얘기했다.
“다들 모여봐. 혹시 홀로그램 확인한 사람 있어?”
“홀로그램이요?”
설여원이 되묻자, 이정우는 홀로그램을 열고 에피소드 클리어 목표를 보여주었다.
“아까 홀로그램창에 불 들어왔는데, 마물 상대하느라 확인 못했거든.”
“어? 뭐야 이거.”
전완수는 본인의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일행을 쳐다봤다.
다들 각자의 홀로그램을 살피더니, 전완수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을 보였다.
-대공습 남은 시간: 30분.
-함선 도착 예정 시간: 10분.
분명 10시간 넘게 남았던 시간이, 순식간에 10분으로 바뀌었다.
그 밑으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시스템 관리자가 에피소드를 변경했습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 및 다섯 번째 에피소드의 목표가 변경되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확인하고 설여원은 모두를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이, 이거 재형이 아니에요? 지금은 관리자가 재형이잖아요.”
“맞아, 에피소드 수정하는 방법을 찾은 모양이야.”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죠! 목동에 있는 사람들 빨리 데려와야죠!”
결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동으로 향했다.
하지만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사람.
최현은 동쪽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최현의 표정을 이정우가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현아 왜.”
최현은 입술을 달싹이며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이제 그만 사실대로 얘기하는 좋을지, 끝까지 모르쇠로 나가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이정우가 최현의 곁으로 다가가자, 최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아니요, 별일 아니에요. 동쪽의 마력도 약해진 것 같은데, 재형이가 우위에 있나 봐요.”
“당연하지. 누가 재형이를 말려.”
최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외면하자, 이정우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알아. 나도.”
“네?”
“파편을 소지한 이상, 우리의 끝이 좋지 않다는 거.”
“아…….”
“깊게 생각하지 마.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우린 앞만 보고 가는 거야.”
끝이 다가왔다는 건 파편을 소지한 결인들의 죽음을 뜻한다.
죽음마저 겸허히 받아들인 이정우의 모습에, 최현은 진실을 얘기할 수 없었다.
박재형이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한다는 진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