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62화 (362/373)

--- 362 ---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08화

전완수와 최현이 이동하는 걸 확인하고,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저도 먼저 움직일게요.”

“재형아.”

이정우가 팔을 잡기에 뒤를 돌아보자, 그는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버거우면 언제든 얘기해.”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난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의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두려움을 삼키며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정우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이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고마워요. 걱정해 줘서.”

“내가 더 고맙지.”

이정우의 대답을 듣고, 가볍게 목례하며 얘기했다.

“형도 몸조심해요.”

쾅-!!!

그 길로 허공을 박차며 동쪽으로 나아갔다.

* * *

뉴욕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게이트.

규모도, 빛깔도, 언노운의 마력 파장마저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곳을 점령한 제2군 대장 베르난데와 제8군 대장 메르바냐크.

메르바냐크는 베르난데를 쳐다보며 물었다.

“베르난데, 자넨 정말…… 얄미울 정도로 머리가 좋아.”

“조금만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야.”

“내가 도와줄 일은?”

“마력을 지닌 모든 생명체를 잡아 와. 에스파디아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전부.”

메르바냐크는 곧장 뉴욕 전체를 휘젓고 다녔다.

좀비, 변종, 감염된 동식물, 플레이어 할 것 없이 모조리 처리하며 마력을 흡수했다.

베르난데가 떠올린 방안은 간단했다.

본인이 직접 싸울 게 아니라, 인비디아를 강림시키면 그만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마력이 강한 곳으로 이동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아우키엘의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니니까.’

아우키엘은 아우키엘이고, 대장들의 핵심 목표는 대기 질의 변화였다.

인비디아가 들어올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

굳이 에스파디아의 마력이 강한 곳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울 게 아니라, 이곳처럼 안전한 곳에서 게이트를 활성화시키면 그만이었다.

그 뒤에 인비디아가 강림하면 상황종료였다.

물론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 먼저 들어간 7명의 대장이 전원 사망할 것.

그래야 인비디아가 강림했을 때 얌체처럼 보이지 않고, 본인이 모든 공을 독차지할 수 있으니까.

둘째, 게이트를 활성화시킬 만큼의 마력을 확보할 것.

베르난데가 뉴욕을 지정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한국처럼 마력이 풍부한 건 아니지만, 게이트를 활성화시킬 정도의 마력은 존재했다.

여기에 인비디아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선 본인의 희생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베르난데는 본인이 소지한 파편에서 마력을 방출하고 있었다.

게이트 활성화에 속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이러면 인비디아가 강림했을 때, 본인의 목숨과 맞바꾸어 그의 강림을 시도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

‘남은 두 놈은…… 아쉽군.’

게이트에 들어설 당시, 베르난데는 좌표지점을 살짝 비틀었다.

한국 다음으로 마력이 풍부한 곳을 지정했고, 이는 미국과 유럽이었다.

4명이 도착했다면 더욱 안전하게 게이트를 열었겠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아니, 오히려 좋아.’

서쪽에 떨어진 두 놈이 시간을 끌어준다면, 여유롭게 게이트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난데는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아군도 가차 없이 버리는 냉혈한이었다.

“베르난데!”

뒤이어 메르바냐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르난데가 쳐다보자, 메르바냐크는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활성화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지?”

“무슨 일이냐.”

“안 느껴져?”

“……?”

현재 베르난데의 마력은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마력 감지에 어려움이 있었다.

베르난데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자, 메르바냐크는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얘기했다.

“사라졌다.”

“뭐가 사라져.”

“앞서 들어간 7명의 대장. 그들의 마력이 사라졌어.”

메르바냐크의 대답에 베르난데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벌써 죽었다고?’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속도.

최소한 게이트가 완성되기 일보 직전에 전원 사망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직 절반도 활성화되지 않은 마당에 7명의 대장이 사망했다.

“놈이 오고 있어.”

이어지는 메르바냐크의 말에 베르난데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설마…… 에스파디아?”

메르바냐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난데는 좌우로 눈을 굴리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메르바냐크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마물들을 죽여.”

“……뭐?”

“마물이 지닌 마력까지 전부 때려 넣으라고!”

“이봐, 그런 사실이 인비디아 님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일단 살고 봐야지.”

“…….”

메르바냐크는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마물들을 죽이며 마력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뽑아낸 마력을 게이트에 주입하고, 본인의 마력도 게이트에 불어넣었다.

삶이냐 죽음이냐.

생사의 초읽기가 시작되었다.

* * *

쾅-!!!!!

SeMa 벙커에 다다른 결인들은 상황을 목도하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수십, 수백의 마물을 홀로 상대하는 거대한 들짐승 한 마리.

안상진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게 뭐야.”

“저희가 얘기한 강한 친구요.”

윤혜리가 대답하자, 안상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저거 설마…… 장군이야? 같이 부화장 정리하던 그 장군이?”

“저런 모습은 저희도 처음 봐요.”

장군이는 파티 소리결의 평균 신체 능력을 기준으로 모든 스탯이 조정된다.

즉, 현재 장군이의 신체 능력은 파편을 지닌 각성자나 다름없었다.

대략 8만의 신체 능력을 지닌 어깨높이 15m에 달하는 거대한 맹수가, 사정없이 마물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마물이 달려들어도, 장군이의 적수가 되지 않았다.

크어어어어어어어!!!

장군이의 포효에 마물들의 사기가 꺾이고, 10m가 넘는 마물도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장군이는 마물, 좀비, 변종, 감염된 동식물 할 것 없이 SeMa 벙커를 노리는 모든 생명체를 처리하고 있었다.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급격하게 증가한 마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폭주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광란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박재형처럼 말이다.

“장군아!!”

윤혜리가 소리쳤지만, 장군이는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서 듣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들리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는 상태.

결인들이 어쩔 줄을 모르는 찰나.

쿵-!! 쿵-!!! 촤아악-!!!

한강을 가로질러 접근하는 거대한 무언가.

박재우는 45도 이상 고개를 들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접근하는 무언가.

겉모습만 봐도 압도당하는 느낌.

진정한 코즈믹 호러가 무엇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중국 웨이하이시에서 탈출할 때 봤던 변종.

높이 120m에 달하는 알파6이, 여기까지 쫓아온 상태였다.

김희연은 상체를 덜덜 떨며 얘기했다.

“어서, 어서 여기서 벗어나야 돼요!”

“SeMa에 있는 생존자들은?”

박재우가 되묻자, 김희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안상진은 뒤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진정시키며 얘기했다.

“잠깐, 다들 기다려. 저것 좀 봐.”

안상진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자, 알파6을 응시하는 장군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장군이의 전신에서 마력이 일렁이더니, 머리 위로 빠르게 글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투견]

[속전속결]

[사냥의 시간]

장군이는 모든 스킬을 발동하더니, 다짜고짜 알파6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였다.

쾅-!!!!!

장군이가 달려나가자, 거친 바람이 발생하며 근처에 있던 마물들이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그 여파는 결인들이 있는 곳까지 당도했다.

모든 플레이어는 상체를 숙이고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순식간에 한강에 도달한 장군이는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알파6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문제는 알파6도 쉬이 밀리지 않았다.

에스파디아가 변종의 진화에 제한을 두지 않은 이유.

마물들을 상대하기 위한 군대.

변종의 진화는 인류에게나, 언노운에게나, 모두에게 공평한 재앙이었다.

지금은 장군이든 변종이든, 그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마물들은 알파6과 장군이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사라졌다.

모두가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데,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린 안상진이 소리쳤다.

“전부 정신 차리고 따라와.”

“네, 네?”

“SeMa 벙커 확인할 기회는 지금뿐이야.”

지금이 아니면 생존자들을 꺼낼 기회는 없을 것이다.

안상진은 서둘러 SeMa 벙커 입구로 향했다.

입구는 무너졌지만, 계단 하부에도 로그나이트로 만든 철판이 있었다.

쾅! 쾅! 쾅!

“안에 계십니까!”

철판을 두드리며 외치자, 내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이어 철판이 열리며 정명석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안면이 있기에, 서로 경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명석은…… 안상진을 보고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안상진 씨……!”

정명석은 안상진의 양손을 덥석 잡으며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반면 마물들을 저지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상봉을 지켜볼 여유는 없었다.

“빨리 나와요!!”

박재우의 외침에 안상진은 정명석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사람들 데리고 나와요. 이동해야 합니다.”

“예? 대피소 두고 어디로 간다는 거예요.”

“그럼 여기 있을래요?”

“아, 아니요!! 가겠습니다!”

정명석은 벙커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생존자들은 정명석을 따라 우르르 나오는 모습을 보였다.

폐허로 변한 도심의 모습을 보고, 생존자들은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상진과 플레이어들은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마물을 쳐냈다.

안상진은 머릿속으로 수하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얘기했다.

“정명석 씨가 생존자들 인솔해서 목동종합운동장으로 가요.”

“예? 다른 분들은 같이 안 가요?”

“다 같이 가면 마물은 누가 잡아요. 희연아, 네가 독 안개 제거기 돌리면서 따라가.”

“아, 넵!”

정명석과 김희연은 생존자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윤혜리는 한강 방면을 살피더니, 장군이와 알파6의 싸움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장군이는 어떡하죠?”

“장군이 신경 쓸 때야? 저거 안 보여?”

안상진은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들을 가리켰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마물들.

그중에는 2m 크기의 모기, 파리처럼 생긴 마물도 있고 거대한 고래처럼 생긴 놈들도 있었다.

몸길이 50m는 족히 될 것 같은 고래의 크기에, 안상진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이어 마력을 감지한 모기 떼가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고래처럼 생긴 마물들도 결인들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박재우는 카타나를 말아쥐며 얘기했다.

“저것도 알파6만큼 강하면 어떡하죠?”

“어떡하긴, 다 죽는 거지.”

안상진의 양손이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애써 내색하지 않지만, 안상진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안상진이 두 눈을 번뜩이자, 마물들 사이에서 인간의 형체가 튀어나왔다.

마물을 저지하고 있던 돌연변이 수하들.

대공습이 끝나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이것저것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플레이어 지키면서 마물들 처리해.”

크르르르…… 크어어어어!!!

안상진의 명령에 그의 수하들은 포효를 내지르며 뛰쳐나갔다.

황덕록은 부러진 방패를 인벤토리에 넣고 카타나를 말아쥐며 얘기했다.

“안상진 씨, 고래 하나 담당할 수 있으세요?”

“부탁하지 않아도 그럴 거야. 오른쪽에 있는 건 내가 맡을 테니 왼쪽에 있는 걸 너희가 맡아서…….”

콰아아아앙-!!!!

그 순간, 동쪽에서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돌리자, 소닉붐을 일으키며 접근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투기 2기 편대가 날아오는 것처럼, 쏜살같이 접근한 미확인 비행물체는 고래처럼 생긴 마물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갔다.

콰광-!!!

우레와 같은 폭음이 천지를 울리고, 고래처럼 생긴 마물들은 그대로 사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마물을 꿰뚫은 미확인 비행물체들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결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쾅-!!!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상에 착지하는 미확인 물체들.

아니, 그들은 물체가 아니었다.

“다들 괜찮아?”

“슈퍼히어로 랜딩! 슈퍼히어로 랜딩!”

사뭇 진지한 최현과, 혼자 멋지게 포즈를 취하는 전완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