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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06화
뒤이어 신체 제어권이 돌아오고, 가루로 변한 나녹스의 몸에서 마석이 떠올랐다.
[동기화 진행률: 50%]
마석을 흡수하자, 이전과 달리 씁쓸한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에스파디아의 심정인 걸 알 수 있었다.
에스파디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멋쩍은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에스파디아 괜찮아요?”
-…….
한때 자신을 존경하던 이가 죽어서도 저주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으니, 마음이 어수선할 것이다.
이에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영원한 안식은 뭡니까? 언노운이 죽으면 완전한 무(無)로 돌아가는 거 아니에요?”
-맞아.
“그럼 안식에서 기다리겠다는 건 무슨 소리예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화제를 돌리려고 했는데, 아픈 곳을 한 번 더 찌른 격이 되었다.
세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할 무렵, 에스파디아의 기억을 확인했기에 그의 과오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구에서 때로는 악신이, 때로는 선신이 되어 유흥과 쾌락, 권력에 취해 허송세월을 보냈다.
이를 알기에, 선뜻 위로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한숨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멸의 삶은 축복이 아니야. 저주지.
“그 저주를 저한테 위임했으니, 시원하게 욕해도 되죠?”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체념한 듯한 대답.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싫어요.”
-……뭐?
“지금의 찝찝한 기분 잊지 말아요. 그게 죄책감이라는 거니까.”
-…….
“당신이 싼 똥은 내가 치워줄 테니까, 죄책감 덜고 싶으면 전력으로 지원해요. 남은 사람이라도 살리고 싶으면 내가 죽으면 안 되잖아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이자, 질책이었다.
에스파디아의 대답은 한동안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어허, 대답 안 해요?”
-네가 신을 가지고 노는구나.
“원래 화장실 들어가기 전이랑 다녀온 후는 다른 거예요.”
-…….
“나한테 흡수된 이상 전세 역전이니, 무조건 호응해요. 상황에 따라 아까처럼 조언도 하고.”
에스파디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기특하면서도 어처구니없고, 대견하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지금은…… 이거면 족하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승부가 나지 않은 건가?
콰아아앙-!!!!!
뒤이어 고막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나처럼 공격력을 증가시키는 스킬이 없다 보니, 대장급과 일행의 승부는 쉽게 결판나지 않았다.
이에 카타나를 말아쥐며 일행의 위치를 살폈다.
가장 가까운 설여원부터.
“저놈 이름이 뭐라고 했…….”
-5군 대장 단테르. 좋고 싫은 게 확고하고, 약간의 나르시시즘이 있다.
호응하라고 했더니 질문을 끝내기도 전에 술술 얘기해 준다.
에스파디아,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다.
“조심해야 할 건 없어요?”
-채찍에 독성 물질이 있으니 조심하거라. 3분 이상 붙잡히면 보호대도 녹아내릴 거야.
이에 하체를 접고, 카타나를 말아쥐며 얘기했다.
“채찍만 못 들게 만들면 된다는 거네요.”
-잠깐, 아직 더…….
쾅-!!!!
총구를 떠난 탄알처럼 튀어 나가자, 설여원과 접전을 펼치던 단테르가 곁눈질로 이곳을 쳐다봤다.
카타나에 마력을 실어 휘두르자, 단테르는 재빨리 얼굴을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촤악-!!!!
허공에 흩뿌려지는 핏물.
그 속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는 기다란 무언가.
처음부터 내가 노린 건 머리가 아니었다.
정확히 양팔을 잘라냈다.
“크윽!”
단테르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네놈…… 설마…….”
단테르는 뒤늦게 나녹스와 이피루스가 있던 장소를 살폈다.
그들의 마력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단테르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전신에 힘을 주었다.
촤학!
그러자 피가 뚝뚝 떨어지던 절단면에서 기다란 팔이 자라나고, 다시금 채찍이 소환되는 모습을 보였다.
“계속 저 상태야. 재생이 더럽게 빨라.”
옆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여원의 목선이 푸르죽죽해진 상태였다.
또한 손목과 무릎에도 비슷한 자국이 있었다.
채찍으로 인해 독성이 퍼진 모양.
“가서 정우 형이랑 진영이 형 도와.”
아무나 먼저 처리하고 치료부터 받으라는 뜻이었다.
설여원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단테르를 주시하며 얘기했다.
“조심해. 저 채찍…… 예상 밖의 궤도에서 날아와. 그리고 꼬리를 노려야 돼.”
“꼬리?”
설여원의 말을 듣고 단테르를 쳐다보자, 2m 길이의 꼬리가 3개나 있었다.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확하게 파악했구나. 꼬리가 단테르의 본 모습이다. 꼬리가 곧 심장이야.
에스파디아의 메시지를 보고 설여원에게 각성제를 건네며 얘기했다.
“통증은 멈출 거야.”
설여원은 각성제부터 삼키고 서둘러 이정우의 곁으로 이동했다.
단테르는 기다란 채찍을 좌우로 움직이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어력은 뛰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뛰어난 재생력과 긴 사거리가 까다롭게 작용한다.
이에 중력장 소총을 견착하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퉁-!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투명한 유리구슬.
“하찮을 정도로 느리구나!”
단테르는 채찍을 휘둘러 구체를 쳐냈다.
콰아아아아아앙-!!!
채찍이 구체에 닿자, 기다란 빛기둥이 쏟아지며 채찍을 짓눌렀다.
단테르는 뒤늦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있는 힘껏 채찍을 잡아당겼다.
즈즉- 즈즈즉-
역시 대장급이라서 그런지, 5레벨 중력장 속에서 채찍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러게. 정말 하찮을 정도로 느리네.”
단테르가 채찍에 정신이 팔린 사이, 난 단테르의 뒤를 잡았다.
중력장은 어디까지나 채찍을 붙잡는 역할.
예상할 수 없는 각도로 날아든다고 하니, 그 움직임부터 봉쇄한 것이다.
또한 지름 30m의 빛기둥이 단테르의 시야를 차단했다.
굉음으로 인해 청각도 반응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배후를 잡고, 일격에 꼬리를 잘라버렸다.
“마, 말도 안……!”
단테르의 피부가 갈라지고, 금세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설여원과 싸우며 방심한 것 같은데, 정보만 확실하다면 이런 놈 하나쯤은 손쉬운 상대였다.
[동기화 진행률: 61%]
대장들의 마정석 덕에 동기화 진행률을 빠르게 높일 수 있었다.
띠링-!
[동기화 진행률: 66%]
뒤따라 올라오는 동기화 진행률.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최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잿더미로 변한 시체 위에 앉아 있는 모습.
“에스파디아, 결인들도 마석을 흡수할 수 있어요?”
-당연하지, 어시스트 개념은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그래서 다들 동기화가 빨랐구나.
아우키엘의 마석을 내가 흡수한 덕에, 일행의 동기화도 빨라진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10%가 아니라 5%씩 들어온 것 같은데?
이에 홀로그램을 쳐다보자, 에스파디아의 변명 아닌 변명이 떠올랐다.
-물론…… 코인처럼 50% 수수료는 존재해. 20% 받던 어시스트 포인트보다는 양반이잖아?
“그런 건 빨리 말하라고요. 굳이 이런 상황에도 수수료 따져야겠어요?”
-아무리 같은 곳에서 파생된 마력이라도 파편은 파편이니까. 네가 직접 흡수하는 것과 파편을 통해 들어오는 양은 다를 수밖에.
틀린 말은 아니라서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시시콜콜 따질 때가 아니다.
황급히 최현의 곁으로 달려가자, 그는 인기척을 느끼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왔냐.”
“괜찮아?”
최현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보호대의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그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최현은 카타나를 지팡이 삼아 일어나더니, 몇 차례 심호흡과 함께 얘기했다.
“몇 마리나 남은 거야.”
“서울에 남은 대장은 셋.”
“서쪽이랑 동쪽에서 마력이 점점 커지고 있어. 대장급이 더 있는 것 같다.”
“알아, 거리도 상당한 것 같은데, 지금은 여기 있는 놈들에 집중하자고.”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수백 킬로는 떨어진 거리였다.
대략 유럽과 미국쯤이 아닐까 싶다.
상황 파악을 마치고, 서둘러 최현에게 얘기했다.
“일단 정우 형이랑 진영이 형이 담당한 대장부터 처리하고, 형들한테 치료부터 받아.”
“넌 치료 못 해?”
“나?”
“에스파디아의 근원이 작동한다며. 시스템도 개입할 수 있는데 치료 능력이 없어?”
이에 홀로그램을 켜자, 동시에 에스파디아의 대답이 떠올랐다.
-아직은 안 돼. 최소한 동기화를 끝내야 가능하다.
“동기화 끝내야 가능하대.”
최현에게 얘기하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하…… 아파 뒤지겠는데.”
“욕하는 것 보니 멀쩡하네. 여기 있어. 내가 처리하고 형들 데려올 테니까.”
급한 대로 최현에게 각성제를 건네준 뒤, 정진영의 마력을 감지했다.
두 눈을 감고 집중하자, 정진영의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은 여의도를 벗어난 상태였다.
63빌딩을 지나 동쪽에서 느껴지는 마력.
여의도에서 싸움을 이어가면 대피소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기에, 일찍이 거리를 벌린 모양이다.
쾅-!!!!!
지체할 필요 없이 이동했다.
* * *
“나가야 돼!!”
박재우가 소리치자, 대피소에 있던 결인들은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황덕록은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너, 너 미쳤어? 1만 명 데리고 어딜 간다고 그래?”
“이건 대피소가 아니고 먹이 창고잖아 인마!”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마물들.
다른 플레이어들은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결인들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더 버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
쾅!!!!
그 순간, 복도 쪽의 천장이 무너지며 델타 변종과 흡사하게 생긴 마물이 떨어졌다.
덩치는 4m에 달하고, 기다란 팔을 지니고 있었다.
손가락이 있어야 하는 곳에 손가락은 보이지 않고, 대신 집게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얼굴이 있어야 하는 곳에는 거대한 입이 존재했고,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수십 개나 박혀 있었다.
걸쭉한 타액을 흘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마물.
결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마물에게 달려들었다.
위험한 놈이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느낀 것이다.
본인이 나서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는 걸 알기에,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파지지지직-!!!
황덕록이 방패에 전류를 흘리며 달려들자, 마물은 세차게 몸을 틀어 꼬리를 휘둘렀다.
이를 윤혜리가 도끼로 쳐내고, 두 사람의 머리로 날아드는 기다란 집게는 박재우와 김희연이 담당했다.
쾅-!!!!
결인들이 마물에게 집중하자, 좌측과 우측 입구에 빈틈이 생겼다.
일반 플레이어들의 힘으로는 버틸 수 없는 수준.
“꺄악!!”
“엄마아…… 어마아……!”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로 점철된 대피소.
생존자들의 머릿속에 죽음이란 두 글자가 선명히 떠올랐다.
뒤이어 마물의 치아에 방패가 쪼개지고, 황덕록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꼬리를 저지하지 못한 윤혜리도 바닥을 나뒹굴었다.
“오빠!!”
김희연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황덕록을 돌아보는 찰나.
훙-!
마물의 집게가 김희연의 관자놀이로 날아들었다.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김희연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쩍 벌어진 집게가 금방이라도 콧잔등에 닿을 것 같았다.
김희연은 지나치게 놀란 나머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촤악-!!
지면을 적시는 핏물.
떨어져 나간 신체 부위.
“크윽!”
떨어져 나간 건 김희연의 머리가 아니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황덕록이 달려와 본인의 왼팔을 주고 김희연을 지켜냈다.
황덕록은 급히 각성제를 복용하고 통증을 가라앉힌 뒤, 남은 오른손으로 카타나를 말아쥐었다.
“이 개새끼가……!”
황덕록은 충혈된 눈으로 마물을 직시하며 달려들었다.
마물의 신체 능력은 최소한 7000 이상.
좁은 장소에서 싸우는 이점을 살리더라도, 근력 3000의 결인들이 이겨내는 건 버거웠다.
공격대원들도, 결인들도, 모두가 한계에 다다랐다.
한계에 봉착한 이들의 머릿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승산이 없어.’
황덕록의 오른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찰나.
“힘내!!!”
그러자 뒤에서 들리는 한 아이의 외침.
황덕록이 뒤를 돌아보자, 안상진의 아들 안정수가 조막만 한 손을 불끈 쥐고 애타게 소리치고 있었다.
마치 악당과 싸우는 영웅을 응원하는 것처럼, 공포심을 이겨내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자 대피소에 갇혀 있는 아이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포기한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만화 영화 속 주인공을 응원하는 것처럼 울먹이며 소리쳤다.
이에 황덕록은 두 눈을 부릅뜨며 카타나를 말아쥐었다.
저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뻐걱-!!
“커헉!”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
인생은 실전이다.
정수리로 날아드는 집게를 방어했지만, 마물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지면에 짓눌렸다.
그 충격으로 인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이는 침침한 하늘.
마물이 뚫고 들어온 천장 너머로, 게이트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침침한 하늘에서 이곳으로 떨어지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황덕록은 이를 발견하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다급히 옆으로 몸을 굴렸다.
쾅-!!!!!
그대로 마물의 정수리를 짓밟으며, 사정없이 살점을 찢어발기는 무언가.
그는 보랏빛 안광을 번뜩이며 황덕록을 쳐다봤다.
결인들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짓자, 그는 분기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내 아들 어디 있어.”
안상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