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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03화
아우키엘은 발에 차인 축구공처럼 수십 미터를 나뒹굴었다.
“후…….”
참았던 숨을 뱉으며 호흡을 가다듬자, 저 끝에서 상체를 일으키는 아우키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놈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입고 있던 갑옷을 벗어 던지며 외쳤다.
“열등한 마물들이여!! 에스파디아를 막아라!!”
거참 에스파디아 아니라니까.
그보다 본격적으로 싸울 생각인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마물들을 불러?
저럴 거면 갑옷은 왜 벗어.
크어어어어어!!!
그러거나 말거나, 근방에 있던 마물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은 거대한 함선을 마주한 것처럼,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다.
장수풍뎅이처럼 생겼는데, 알파5가 살찌고 뿔이 달리면 저런 느낌일까?
기다란 뿔로 코뿔소처럼 달려들기에, 단숨에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콰과과곽-!!!
장수풍뎅이의 뿔이 땅을 파고 들어갔다.
뒤이어 안절부절못하며 끙끙거리는 장수풍뎅이.
뿔이 박힌 건가?
덩치만 크지, 지능은 알파 변종보다 한참 떨어진다.
이에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장수풍뎅이의 머리를 수직으로 찍었다.
쾅-!!!!!!
주먹으로 찍어누르자, 단단한 껍질에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생기며 사방으로 체액이 흩뿌려졌다.
이 정도 방어력이면 5단계 변종보다 단단할 것 같은데?
수치로 나타내면 대략 3만 정도 될까?
죽은 풍데이의 머리를 짓밟고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 사투를 벌이는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들 벅차 보이지만, 지원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국회의사당 방면을 살피자, 안상진과 그의 수하들이 접근하는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마물들은 곤충처럼 생긴 마물부터 짐승처럼 생긴 마물, 인간과 비슷한 외형의 마물까지 가지각색의 크기와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
언노운의 형태를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다양한 종족과 개체군이 존재했다.
관리자의 영역을 벗어난, 차원의 틈에서 탄생한 모든 걸 종족을 언노운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섬뜩-
그 순간, 머리털이 쭈뼛서는 살기를 느꼈다.
이걸 살기라고 불러야 할지, 마력이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건 아우키엘의 것이었다.
시선을 돌리는 찰나.
-조심하거라.
“네?”
-저게 그라나다 아우키엘의 본 모습이다.
아우키엘이 있던 곳을 쳐다보자, 조금 전 근육질의 몸에서 날개가 돋아난 모습을 보였다.
변신하려고 다른 마물들로 시간을 끈 건가?
키에에에에엑-!!
그 순간, 장수풍뎅이의 사체를 밟고 올라서는 지네처럼 생긴 마물.
지네의 입에 사슴벌레처럼 기다란 낫이 좌우로 달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 옆구리를 씹을 것처럼 달려들기에, 다급히 양손으로 붙잡았다.
낫을 뜯어내고 안면에 발길질을 가하는 찰나.
“죽어라.”
목덜미로 날아드는 서늘한 기운에 돌아볼 새도 없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쩌적-!!!!
수직으로 떨어진 도끼는 그대로 장수풍뎅이를 뚫고 지면에 박혔다.
간발의 차로 회피하고, 바닥을 뒹굴며 자세를 잡았다.
고개를 드는 찰나,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아우키엘의 얼굴이 두 눈에 들어왔다.
“헙!”
놀란 나머지 헛숨을 삼키며 뒷걸음질 치자, 이를 파악한 아우키엘이 무기를 휘두르지 않고 한 걸음 전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움직임을 읽혔다.
아우키엘은 입꼬리를 올리며 도끼를 휘둘렀다.
카가가가강-!!!
본능적으로 가드를 올리자, 도끼날과 건틀릿이 맞닿으며 불똥이 튀었다.
이 악물고 버티자, 이번엔 아우키엘의 반대편 손에 있던 도끼가 밑에서부터 사선으로 올라왔다.
회피할 수 없는 각도.
이에 뒤로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안으로 파고들었다.
떠걱-!!!
물러서지 않고 파고든 덕에, 도끼날이 아닌 손잡이 부위에 맞았다.
늑골로 전해지는 저릿한 통증.
일격에 뼈가 부러진 것 같다.
반사적으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지만, 고통스럽다고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이에 아우키엘의 얼굴을 직시하며 그대로 박치기를 가했다.
뻑-!!!
“크학!”
아우키엘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뒤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읊조렸다.
“핀치.”
-단일 대상에게 10회에 한하여 2배의 피해를 입힙니다.
-10회 이후부터 ‘최후통첩’ 효과가 발동됩니다.
건틀릿으로 모여드는 마력.
어깨에서 시작된 푸른빛의 기운은 손등을 지나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아우키엘이 인상을 찌푸리며 저항하려 하지만.
“늦었어.”
----쩡!!!!!!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포탄처럼 주먹을 내질렀다.
손끝에서 시작된 소닉붐과 함께 아우키엘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동시에 갈비뼈로 전해지는 욱신거리는 통증.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언노운 대장급의 신체 능력은 얼추 파악했으니, 이젠 확실하게 처리할 차례.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쉴 새 없이 난타를 가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일어날 엄두도 못 내도록, 지면에 쓰러진 아우키엘의 안면에 융단폭격에 가까운 난타를 가했다.
띠링-!
-최후통첩이 발동됩니다.
-20회에 한하여 3배의 피해를 입힙니다.
메시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폭격을 가했다.
곧 지반이 뚫리고, 아우키엘과 함께 지하철 노선에 떨어졌다.
멈추지 않고 놈의 신체가 완전히 으깨질 때까지 계속해서 난타를 가했다.
츠으으으으-
최후통첩 효과가 끝나자, 손끝에 응축된 마력이 사라지며 그라나다 아우키엘의 얼굴이 두 눈에 들어왔다.
아니, 두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우키엘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남은 건 먼지뿐이었다.
이에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쉬며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이놈, 확실하게 죽은 겁니까?”
-방심하지 말고 심장까지 뚫어. 놈의 근원이 나오기 전까지 공격을 멈춰선 안 돼.
에스파디아의 지시에 따라 카타나를 뽑아 들고 가슴에 난도질을 가했다.
혹시라도 움직일까 봐, 두 다리로 상체를 단단히 고정하고 칼질을 가했다.
뒤이어 갈비뼈 사이로 심장이 보이기에,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있는 힘껏 찔러넣었다.
뚜둑- 푹-!!
심장을 꿰뚫자, 아우키엘의 육체가 순식간에 가루로 변했다.
살점이 잿더미가 되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웅- 웅- 웅-
뒤이어 잿더미 속에서 은은한 빛을 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조심스레 손을 옮기자, 손바닥 크기의 보랏빛 보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스파디아, 이건…….”
-아우키엘의 근원이야.
“이것도 부수면 돼요?”
-부수기엔 아깝지. 흡수하거라. 그럼 동기화도 빨라질 거야.
“흡수? 어떻게 흡수해요.”
-마력의 흐름에 집중하거라. 정신을 손끝으로 모아봐.
에스파디아의 말대로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손끝으로 온정신을 집중했다.
혈류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좋을까?
심장에서 시작된 간질간질하면서도 따스한 무언가가 손끝으로 집중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즈이이잉-
뒤이어 귓가를 간질이는 묘한 소리에 감았던 두 눈을 뜨자, 오른손에 응축된 푸른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빛은 아우키엘의 근원을 감싸더니, 눈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어?”
녹아내린 기운은 그대로 내게 흡수되었다.
[동기화 진행률: 13%…… 24%]
한순간에 11%가 증가했다.
얼떨떨한 마음에 양손을 쳐다보자, 에스파디아의 말이 이어졌다.
-적응이 빠르구나. 성장시킨 보람이 있어.
“이…… 이거 뭐예요? 아우키엘은 죽은 겁니까?”
-완전한 소멸. 무(無)로 돌아갔다.
“그럼 이제 침공도 끝나는 거예요?”
-이제 시작일 뿐이야. 조금 있으면 인비디아도 아우키엘의 마력이 사라진 걸 알아챌 거다.
“…….”
언제쯤 모든 게 끝났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산 넘어 산이었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몇 마리나 더 죽여야 돼요? 이제 인비디아만 잡으면 됩니까?”
-지금 인비디아가 강림하면 전멸이야.
“저도 못 이겨요?”
-당연하지, 아직 내 힘이 완전히 이전되지 않았으니까. 아우키엘이 죽었으니 다른 대장이 올 거야. 그놈들을 처리하면서 동기화를 끝내거라.
“인비디이가 바로 오면 어떡해요.”
-내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까 봐? 지구는 내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비디아가 이곳에 오기 위해선 대기질을 바꿔야 한다.
“대기질이라면…… 본인의 성질과 비슷한 마력이 공기 중에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해가 빠르구나. 아우키엘의 역할도 그것이었다.
“혹시 독 안개가 언노운의 마력을 상쇄시키는 역할이에요?”
눈앞으로 홀로그램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에스파디아가 심히 놀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게 흡수되어서 그런지, 에스파디아의 감정변화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어디서 눈치챈 거지?
“세 번째 에피소드를 굳이 진행하는 이유가 이상하다 했죠. 세 번째가 시작돼야 대기질도 바뀌고 변종도 강해져서 그런 거죠?”
-바로 그거야.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굳이 세 번째 에피소드를 시작한 이유.
에스파디아는 여기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놓인 카타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그렇고 에스파디아. 카타나 부러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단단하네요?”
카타나로 아우키엘의 살점을 토막 내고 뼈까지 뚫었다.
아무리 로그나이트가 단단해도, 부러지지 않은 게 신기했다.
-로그나이트는 언노운을 상대하기 위해 내가 직접 만든 물질이다. 마력을 응축시켜 만들었으니, 쉽게 말하면 마석이나 다름없어.
“마석이요?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정석, 마나석, 이런 거예요?”
-맞아. 무기에 레벨을 만든 건 마석을 강화하는 행위였고, 강화된 마석은 더욱 강한 힘에 저항할 수 있다.
마정석이라면 나도 들어봤다.
사용자의 능력, 사용자의 마력에 따라 그 힘의 격차는 판이하다.
그래서 카타나가 부러지지 않고 자가 복구되는 거였구나?
월등히 강한 적을 만나면 부러질 수도 있지만, 강한 적이 나타나면 그에 맞춰 나도 더 강한 힘으로, 무리해서라도 신체 능력을 끌어올렸다.
그게 전부 에스파디아의 근원을 자극하는 효과였으니, 그에 따라 카타나의 강도도 달라진 것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겨서, 카타나를 칼집에 넣으며 물었다.
“그럼 마석이랑 근원은 뭐가 달라요?”
-마석은 그릇일 뿐이야. 스스로 마력을 생산하지 못해.
“근원은 마력을 생산하고요?”
-그렇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그 밀도와 성능은 차원이 다르다.
전반적인 모든 걸 알았으니, 이제 그만 놀고 움직여야겠다.
“에스파디아.”
-?
“예전엔 많이 미웠지만, 당신도 고생 많았어요.”
지금이 아니면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뭉클한 기분이 드는 것으로 보아, 에스파디아의 감정을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 * *
인비디아는 폐허로 변한 세상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훙-
뒤이어 인비디아의 뒤로 나타나는 수하들.
11명의 수하는 무릎을 꿇고 인비디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인비디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가장 앞에 있던 수하가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사령관이시여. 그라나다 아우키엘의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그걸 내가 모를 것 같으냐?”
“……죄송합니다.”
수하들이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자, 인비디아는 뒷짐을 진 채 말을 이었다.
“너희는…… 내가 왜 아우키엘을 아꼈는지 아느냐.”
“…….”
“너희처럼 눈치 보면서 몸을 사리는 게 아니라, 앞장서서 나섰기 때문이다.”
인비디아의 말에 수하들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우키엘의 무지함에 치를 떨었고, 감정을 앞세우는 아우키엘을 보며 비웃었기 때문이다.
인비디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수하들은 조심스레 인비디아의 표정을 살폈다.
붉으락푸르락해진 인비디아의 얼굴을 보고, 수하들은 황급히 고개 숙였다.
“대답해 보아라. 너희가 아우키엘보다 뛰어난 게 뭐지? 대장이란 명성이 너희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
“사령관이시여. 저희도 할 수 있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
앞줄에 있던 수하가 마른침을 삼키자, 인비디아는 수하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고개를 들어라.”
“…….”
수하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그곳엔 살기가 담긴 눈으로 이채를 번뜩이는 인비디아가 있었다.
수하는 그 위압감에 시선을 외면하고 싶었지만, 전신에 힘을 주고 버텼다.
지금 시선을 돌렸다가는…… 인비디아의 분노가 본인의 목을 칠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떨리는 동공으로 인비디아를 응시하자, 인비디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증명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