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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01화
시야에서 사라진 에스파디아.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뒤이어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지금껏 잘해줬다.
“에, 에스파디아?”
-하마터면 완전히 소멸할 뻔했어. 기한보다 일찍 세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해 줘서 고맙구나.
지금…… 에스파디아가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그것도 시스템 메시지로?
얼떨떨한 정신에 멍하니 홀로그램을 쳐다보자, 에스파디아가 먼저 말을 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아니…… 안 놀라게 생겼어요?”
-일전에 얘기하지 않았느냐? 내가 만든 시스템이자, 내가 곧 시스템이라고.
“예?”
-그 근원을 네게 주었으니, 네 안에 내가 담긴 거야. 이제 시스템은 네 것이다.
“당신이 얘기한 그릇이…… 이런 의미였어요?”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네게 근원을 넘긴 이상, 네게 의견은 제시할 수 있지만 행동에 관여할 수는 없어.
“…….”
-네가 나한테 먹힌 게 아니라, 내가 너한테 흡수된 거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좀…… 기분이 그렇잖아.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직 완벽하지 않아. 근원이 이제 막 작동하기 시작했으니, 네가 적응해야 한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적응이라니.”
-내 힘을 완전히 사용하려면 익숙해져야 한다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내가 마법을 쓸 것도 아닌데 뭐 어떻게, 뭐로부터 익숙해지라는 거야.
이를 파악한 에스파디아가 말을 이었다.
-마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위한 신체 개조. 현재 동기화 진행률은 2%다.
굉장히 느리게 올라가는 동기화 진행률.
이에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100%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파편을 제외한 내 힘의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지.
“당신의 힘이라면…… 물리적인 힘을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다른 능력이 더 있어요?”
-물리적인 힘은 물론이고, 게이트도 열 수 있어.
“그럼 혹시 마법도 쓸 수 있어요? 파이어볼, 아이스에로우 이런 거.”
-…….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한숨을 내쉬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건 무리인가?”
-관리자는 각자의 능력이 달라. 내가 마력의 근원은 강화야.
그래서 에덤 화이트만 유독 다르게 설정한 건가?
이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뭐, 게임도 그렇죠. 직업군 다양하잖아요. 전사, 마법사, 궁수, 이런 식으로. 당신은 전사 쪽이라는 거죠?”
-굳이 따진다면…… 그렇지.
“전용 무기나 전용 갑옷, 이런 거 없어요?”
-100% 동기화 되면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이 모습을 지켜보던 결인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설여원은 홀로그램에 적힌 글자를 읽으며 내게 물었다.
“이게…… 네가 말한 에스파디아야?”
“어, 원래 이런 모습은 아닌데, 에스파디아는 맞아.”
어떤 모습을 상상했는지 몰라도, 다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완수는 이를 솔직하게 얘기했다.
“난 또 엄청 멋있는 신의 모습이라도 하고 올 줄 알았는데, 이게 신이라고?”
-전완수, 내 파편의 일부를 받은 플레이어. 맞지?
뒤이어 전완수의 앞으로 문장이 떠오르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전완수가 공손해진 모습을 보이자, 파편을 받은 일행의 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너희도 파편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선 마력에 적응해야 한다.
다들 얼빠진 표정을 짓자, 일행의 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파편의 동기화 진행률: 14%
-게이트가 완성되면 언노운의 공습이 시작될 거야. 준비하거라.
나보다 빨리 올라가는 일행의 동기화 진행률.
파편의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동기화도 빨리 되는 건가?
상황을 인지하고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가 가서 레버 당길게.”
“게이트 열리면 바로 당길 수 있도록 준비해 줘.”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 * *
모든 생존자가 대피소로 들어간 걸 확인하고, 공격대원들에게 대피소 안에서 생존자들을 지키라고 했다.
초월자의 물약을 마시지 않은 윤혜리와 김희연, 박재우, 황덕록도 함께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다 문득, 혹시 이런 것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빠르게 홀로그램을 열고 상점을 살피자, 모든 직업군의 아이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관리자의 권한.
거기서 강화제 알약과 체력 회복제, 각성제 구매를 누르자 코인 소모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이를 발견한 이정우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네가 그걸 살 수 있어?”
“시스템의 큰 틀은 바꿀 수 없어도, 사소한 건 전부 할 수 있어요.”
모든 알약을 무한정 구매할 수 있었다.
알약을 구매하여 결인들에게 배분하고, 대피소로 이동한 공격대원들에게도 넉넉하게 주었다.
심지어 로그나이트와 덤프도 구매할 수 있기에, 대피소로 들어간 박재우와 황덕록에게 장비를 제작하여 공격대원들에게 배분하라고 했다.
치지직- 치직-
-재형아, 그쪽에서도 하늘 보여?
무전기로 들려오는 안상진의 목소리.
대답하기에 앞서 홀로그램을 열고 좀비 플레이어 목록을 살폈다.
상위권에 분포된 대장 좀비의 이름과 국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성 좀비 플레이어 목록]
-안상진. 대한민국. 협동 가능성: 긍정적.
-스티브 켈리. 미국. 협동 가능성: 긍정적.
-마이클 에드워드. 미국. 협동 가능성: 보통.
-리시 트러스. 영국. 협동 가능성: 긍정적.
-카를로스 둥가. 브라질. 협동 가능성: 보통.
-하루토 후미오. 일본. 협동 가능성: 긍정적.
-위저홍. 중국. 협동 가능성: 보통.
……
…….
프랑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호주, 인도 등.
각 나라마다 10성 대장 좀비 한 명씩은 꼭 있었다.
총 42명의 10성 좀비 플레이어가 지구상에 존재했다.
그중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파티 홍런의 파티장이었던 위저홍.
대공습을 이겨내지 못하고 대장 좀비가 되었지만, 지금은 10성 대장 좀비가 되어 있었다.
그보다 협동 가능성이 뭐지?
이러한 의문을 품자, 눈앞으로 에스파디아의 대답이 떠올랐다.
-플레이어와 함께 언노운을 저지할 의향이 있는 좀비 플레이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10성이 된 좀비 플레이어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꿈으로 보여줬지. 그에 따른 선택은 좀비 플레이어들의 몫이야.
“목록 하단에 협동 가능성 부정적이라고 적힌 대장 좀비도 있는데, 이 대장 좀비들은 제가 지금 죽일 수 있어요? 시스템상 삭제라거나.”
-타인의 선택이 너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겠다는 게냐?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남았는데요? 좀비 죽이고 강해지라고 한 것도 당신이잖아요.”
-…….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아니, 반박할 수 없겠지.
부정적인 성향을 지닌 대장 좀비들을 삭제하려고 하자, 눈앞의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에스파디아가 강제로 창을 닫은 것이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방해하지 말아요.”
-부정적이라고 해서 그들이 언노운과 싸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
-그들이 비록 인간의 편에 서진 않았지만, 언노운과의 전투에서 좋은 무기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
“그럼 언노운 처리한 뒤에 삭제해도 돼요?”
-이러라고 네게 근원을 부여한 게 아니다. 타인의 목숨을 그리 마음대로…….
“어쩌겠어요? 이미 나한테 왔는데. 지금부턴 제 마음대로 합니다.”
-…….
장애물은 치워야 하고, 쓰레기는 버려야 한다.
뭐든 깔끔하게 처리해야 나중에 후환이 남지 않는다.
에스파디아의 한숨이 귓가에 들리는 기분이었다.
뒤이어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좋아. 그들의 삭제 권한은 내게 있다. 하지만 갱생 가능성도 네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갱생이요?”
-상점 목록에서 봤을 텐데?
상점?
다시금 상점을 확인하는 찰나, 내가 놓친 아이템이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치료제]
-치료제는 1시간 이내에 투여해야 하며, 한 번이라도 진화한 좀비 플레이어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강화된 치료제]
-강화된 치료제는 1시간 이내에 투여해야 하며, 좀비 플레이어의 협동 가능성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긍정적 좀비 플레이어는 100% 확률로 기존 플레이어로 돌아옵니다.
*보통의 좀비 플레이어는 50% 확률로 기존 플레이어로 돌아옵니다.
*부정적 좀비 플레이어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 수성구에서 곽찬혁을 치료한 치료제가 있지 않은가?
그 또한 시스템에서 부여한 아이템이고, 내게 모든 권한이 생겼으니 좀비 플레이어와 관련된 정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치료제는 일반 치료제와 강화된 체료제가 존재했다.
강화된 치료제의 설명을 보고 에스파디아에게 물었다.
“저기 에스파디아, 부정적 대장 좀비는 효과가 없는 게 당연하지만 보통 단계의 대장 좀비를 확률로 두는 건 이상하지 않아요?”
-문제 있나?
“보통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굳이 확률싸움에 끼워 넣는 건 좀…….”
-네 생각보다 시스템의 판단과 유동성이 훨씬 뛰어나다는 걸 잊지 마. 지금 적힌 내용은 어디까지나 ‘현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예?”
-상황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그에 필요한 조건을 부여하는 게 내가 만든 시스템이라고.
내가 아는 시스템은 전혀 아니던데.
최악의 최악을 제시하고, 간신히 살아남으면 더한 고통을 주던데…….
이러한 생각을 하자, 에스파디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스템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과거와 현재, 미래 가능성을 계산해서 결과를 도출한다.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거죠?”
-모든 싸움이 끝난 뒤에 보통은 존재하지 않아. 긍정적과 부정적, 두 가지로 확실하게 나뉠 거야.
뭐, 그렇다면 믿고 기다려야지 어쩌겠는가.
반박하는 대신, 10성 좀비 플레이어 목록에 있는 안상진의 이름을 눌렀다.
대장 좀비를 아군으로 등록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안상진, 아군으로 등록.”
-좀비 플레이어 안상진의 협동 가능성을 확인합니다.
-좀비 플레이어 안상진은 긍정적 효과를 지닌 좀비 플레이어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아군(인간)으로 등록 가능합니다.
-안상진을 아군으로 등록할 시 서로 간의 디버프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좀비 플레이어의 수하에게 물릴 시, 감염의 위협은 존재합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네.”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등록을 마치고 무전기를 들었다.
“안상진 씨, 여기서도 게이트 보여요. 그보다 수하들은 준비됐어요?”
-반경 5㎞ 이내에 전부 모였어.
안상진의 대답을 듣고, 이번엔 레버를 당기러 간 최현을 불렀다.
“현아, 레버 앞에 도착했어?”
치지직- 치직-
-어, 대기 중.
“내가 얘기하면 바로 당겨야 돼. 계속 무전기 들고 있어.”
-오케이.
안상진에게 지금 당장 치료제를 주는 건 부담스러웠다.
그의 수하들을 이용해야 한다.
안상진에겐 미안하지만, 그의 수하들이 길거리 좀비로 전락하면 언노운의 공습을 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이트의 직경이 서서히 1㎞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이에 공격대 목록을 켜고, 각 공격대 대표 파티를 확인했다.
대표 파티의 파티장들.
그들의 이름을 누르자, 메시지 입력 공란이 떠올랐다.
역시, 좀비 플레이어의 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것처럼 일반 플레이어들에게도 관여할 수 있었다.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그들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했다.
-지금껏 인류를 위해 싸워온 모든 파티장, 파티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인류를 위하는 플레이어도 있을 것이고, 탐욕과 광기에 젖은 플레이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분 뒤에, 우리의 운명은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될 겁니다.
-더는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단, 외계의 공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외계의 존재 언노운, 그들로부터 끝까지 살아남고, 마지막까지 싸워주시기 바랍니다.
-약속드립니다. 우리의 승리가 곧 인류의 생존이고, 여러분의 노고가 곧 여러분의 가족, 지인, 친분이 있는 모든 이의 미래로 나타날 겁니다.
-꼭 살아남아서, 평화의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되어주세요.
-ps. 아크에 계신 분들은 게이트가 열리는 동시에 레버를 당겨주세요. 좀비들을 이용해서 언노운을 저지하세요.
각 파티의 파티장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다음은 대장 좀비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모든 좀비 플레이어에게 알립니다.
-몇몇 분들은 이미 에스파디아의 꿈을 통해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아시리라 믿습니다.
-외계의 침공이 임박했습니다.
-비록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여러분이지만, 이번 싸움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인류를 위해 힘써주시는 모든 분에게 치료제를 제공하겠습니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치료제에 확률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얘기해야 모두가 치료제를 얻기 위해 열심히 싸울 테니까.
이미 부정적으로 못 박힌 플레이어 중에 몇 명이나 긍정적으로 전환되겠는가?
시스템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하여 결과를 도출한다고 했으니, 그동안의 행태를 쉬이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이번 싸움의 끝에, 대장 좀비들은 본인의 과오에 따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즈이이이잉-
뒤이어 기이한 소리가 천공을 뒤덮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완성되자, 강한 마력 파장과 함께 중심부에서 온갖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뱃고동 소리를 닮은 기이한 울음소리.
이에 무전기를 들고 얘기했다.
“레버 당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