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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54화 (354/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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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00화

빅뱅과 함께 하나의 시간선에서 창조된 세 명의 관리자는 각자의 선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의 영이 깃든 각자의 모성(母星)이 탄생하고, 각자의 차원이 생성되었다.

그들은 정성을 다해 모성을 관리했다.

억겁의 시간이 흘러 바다와 육지가 생성되고, 그곳에서 생명이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생명체의 진화는 계속되었고, 마침내 지성을 지닌 인간이 나타났다.

초기 인류는 자연의 일부처럼 살아갔지만, 그들의 지적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여러 형태의 삶의 방식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석기를, 또 누군가를 철기를.

우위에 선 종족은 나약한 종족을 약탈하고 잇속을 챙기기 시작했다.

지능이 있기에 선이 있고, 지능이 있기에 악이 있었다.

죽음이 있기에 용서가 있고, 죽음이 있기에 복수가 있었다.

에스파디아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그 과정 속에, 인간이란 생명체에 의구심을 품었다.

서로를 파괴하지만 파괴의 끝에 화해와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인류.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해, 에스파디아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관리자의 일을 뒷전으로 미룬 채 인간의 모습으로, 인류의 삶에 스며든 것이다.

흩어져 있던 마력을 압축시켜서 인간의 육체를 생성했다.

하나의 육체에 압축된 힘은 에스파디아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육체를 지니게 되자 그에게도 욕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에스파디아는 본인의 힘에 심취한 나머지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때로는 선신이, 때로는 악신이 되어 영겁의 세월을 유흥으로 채웠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드래곤처럼 말이다.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며 때로는 칼을 들고, 때로는 자비를 베풀었다.

피로 얼룩진 세상이었지만 인류는 점점 번창하기 시작했고,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뿜은 에너지, 즉 마력은 모조리 에스파디아의 양분이 되었다.

에스파디아뿐만 아니라 다른 관리자들도 그들의 모성에서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그들이 관리자의 역할에 소홀해질수록 세상을 떠난 영들은 우주를 배회하기 시작했고, 일그러진 틈 사이에서 언노운이 탄생했다.

그들은 선도, 악도 아닌 존재였다.

잘 관리된 화단이 아니라, 들풀이 무성한 들판에서 자라난 잡초와도 같은 존재.

언노운은 삶의 가치를, 본인이 태어난 이유를 찾아야 했다.

기나긴 고뇌 끝에, 그들이 찾은 해답은 하나였다.

모든 생명체의 파멸.

생명체로 인해 관리자들이 나태에 빠졌으니, 생명체를 말살하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노운에게 있어 생명체는 숙주였고, 관리자는 기생충이나 마찬가지였다.

생명체가 사라지면 곧 관리자도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니, 언노운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행성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모성을 제외한 생명력이 낮은 행성부터, 그들은 차근차근 점령하기 시작했다.

언노운의 침공은 은연중에 계속되었고, 뒤늦게 사태파악에 들어간 관리자들은 전력을 다해 언노운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죽음에서 탄생한 언노운이란 존재를 관리자가 저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생명이 있어야 관리자가 힘을 얻듯이, 생명의 소멸은 언노운에게 양분이 되었다.

영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언노운은 관리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진화한 것이다.

심지어 그토록 기나긴 싸움을 이어가면서도, 관리자들은 언노운의 모성조차 찾지 못했다.

소리 없는 전쟁.

끝나지 않는 혈전.

언노운의 공세에 관리자들은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단 세 명이서 언노운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관리자들의 마력은 서서히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힘을 상징하던 육체마저 잃었다.

쇠약해진 관리자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대로 소멸하거나.

훗날을 기약하거나.

관리자들의 선택은 후자였다.

그들은 언노운이 찾을 수 없도록 남은 마력을 이용해서 각자의 모성을 꼭꼭 숨겼다.

하지만 이 또한 한계가 존재했다.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언노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좌표를 찾아냈다.

관리자들은 이미 많은 힘을 소모한 탓에, 더는 싸움도 이어갈 수 없었다.

이제 그만 결단을 내려야 했다.

세 명의 관리자는 각자 다른 결정을 내렸다.

에스파디아가 선택한 방법은 언노운의 좌표가 되는 지구의 생명체를 줄이는 것.

또한 죽음에서 탄생한 언노운처럼, 죽지 못해 살아가는 생명체를 병기로 만드는 것.

그것이 좀비와 변종, 감염된 동식물이었다.

하지만 에스파디아는 애착이 쌓인 인류를 완전히 멸종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인류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을 제시했고, 그것이 라스트아크였다.

영상이 끝나자 결인들을 에워싸고 있던 어둠이 사라지고, 다시금 유리 너머로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정우는 멍한 표정으로 결인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방금…… 그건…….”

“에스파디아의 기억이죠.”

띠링-!

뒤이어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네 번째 에피소드: ‘대공습’을 시작합니다.

-클리어 목표: 아크의 레버를 당기고 몰려오는 적들로부터 함선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십시오.

-더는 포만감 알약 자판기의 남은 시간이 초기화되지 않습니다.

-포만감 알약 자판기의 남은 시간이 끝나기 전에 레버를 당겨야 합니다.

포만감 알약 자판기의 남은 시간이 끝나기 전에 당기라고?

어차피 미룰 생각도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으니까.

띠링-!

뒤이어 또 다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모두에게 떠오른 홀로그램이 아니라, 이번엔 내게만 떠오른 홀로그램이었다.

-귀하는 에스파디아의 근원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관리자의 권한이 부여되며,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홀로그램의 우측 상단으로 톱니바퀴 모양의 아이콘이 생성되었다.

고민한 필요 없이 아이콘을 누르자, 시스템 설정창이 나타났다.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자, 일행이 다가와 너도 나도 홀로그램을 쳐다봤다.

“뭐야, 재형이가 신이야?”

전완수는 홀로그램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내 홀로그램에 손을 갖다 대자.

즈즈즉-

마치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고 아크에 진입할 때처럼, 전완수의 손가락 끝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아무리 코인 공유가 가능한 파티라도, 일행은 내 홀로그램을 조작할 수 없었다.

요트에 있을 때는 전완수의 손가락이 내 홀로그램을 터치할 수 있었는데, 세 번째 에피소드가 종료되며 상황이 바뀌었다.

전완수는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곧 손가락을 튕기며 물었다.

“야,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으면 지금 에피소드도 강제로 끝낼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런가?

해보면 알겠지.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에피소드 목록을 살폈다.

총 다섯 개의 에피소드가 표시되고, 각 에피소드의 진행률이 적혀 있었다.

그 밑으로 보이는 종료 버튼.

마른침을 삼키며 종료 버튼을 누르자.

-권한이 없습니다.

-주요 에피소드 및 상세 설정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장이 떠올랐다.

최현은 눈앞의 문장을 보고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아무래도 그거 아니야?”

“어떤 거.”

“마지막으로 에스파디아 만났을 때 에스파디아가 그랬잖아. 큰 틀은 바꿀 수 없다고.”

“그럼 종료 버튼은 굳이 왜 만들어둔 거야?”

“그건…… 나도 모르지.”

에스파디아 본인도 큰 틀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종료 버튼을 만들었다는 건…… 초기 콘셉트는 중도 포기가 가능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스터에그를 지닌 내가 초기에 사망했다면, 종료 기능을 활성화했을지도 모른다.

본인의 근원을 되찾아야 하니 말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른 설정도 확인했다.

일단 플레이어 정보부터.

띠링-!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하려는 찰나,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귀하의 한계 돌파가 최고 수치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귀하의 이스터에그(근원)에 축적된 마력을 계산합니다.

*한계 돌파: Clear.

*스킬 목록1: Clear.

*스킬 목록2: Clear.

-모든 조건이 충족된 상태입니다.

-마력의 근원이 정상작동합니다.

-마력을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도록 귀하의 신체를 개조합니다.

빠르게 올라가는 문장.

뒤이어 심장에서 시작된 묘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 알 수 없는 빛이 흡수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둑.

심박이 현저히 느려지고, 시야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공기 중으로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묘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있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피부에 닿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촉감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에 양팔을 살피자, 푸른빛의 무언가가 내 전신으로 스며드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거 뭐야, 이게 뭐야?”

당혹감에 놀란 눈으로 일행을 쳐다봤다.

하지만 박재우와 황덕록, 윤혜리, 김희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안 보이나?

파란색 티끌 먼지 같은 게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반면에 초월자의 물약을 마시고 각성한 나머지 일행은 내게 일어난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들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최현은 내 어깨를 툭툭 털더니, 경이롭다는 듯이 얘기했다.

“야, 이거 너한테 흡수되고 있는데? 혹시 이게 마력인가?”

마력?

아, 이게 그거야?

반면에 윤혜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마력이요?”

문득, 일전에 에스파디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력은 어디에나 있지만 인간은 인지할 수 없다는 말.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건 나와 각성한 일행뿐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플레이어 정보가 있던 곳에 다른 글자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에스파디아의 후계자]

눈앞의 글자를 보고 반사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아니지, 아니야. 이렇게 마냥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홀로그램에 적힌 후계자라는 글자를 눌렀다.

-이스터에그(근원)의 효과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네.”

-특수 스킬이 패시브로 전환되며, 일부 액티브 스킬의 성능이 변동됩니다.

-패시브로 전환되는 특수 스킬: 연격, 난동, 생존본능, 반격.

하마터면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특수 스킬이 전부 패시브로 바뀐다고?

조금 전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홀로그램은…… 이걸 두고 하는 말이었어?

모든 조건을 Clear까지 높여둔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근원의 힘인가?

아니지, 아니야.

아직 놀라긴 이르다.

액티브 스킬도 확인해야지.

떨리는 동공으로 나머지 부분도 읽어내려갔다.

-변동된 액티브 스킬: 급가속, 감지, 하울링.

-액티브 스킬의 세부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Yes or No.

얼떨떨한 정신으로 문장 밑에 적힌 수락을 눌렀다.

-세부 정보를 확인합니다.

-급가속의 3단 뛰기 기능이 무제한으로 변경됩니다.

*일격 효과는 5분 주기가 사라지고 항시 유지로 변경됩니다.

-감지의 범위가 행성 전체에 적용됩니다.

*설정에 따라 귀하가 원하는 개체만 따로 분류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울링의 경우 귀하의 반경 1.5㎞ 이내의 모든 적에게 항시 두려움을 각인합니다.

-좀비화 사용 시 자동으로 발동되며 유지됩니다.

*하울링에 포함된 집념 효과는 특정 대상 지목으로 변경됩니다.

*지목된 적이 사망하거나 지목 대상을 바꾸기 전까지 집념이 유지됩니다.

모든 변화를 확인하고,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불과 몇 시간 전에 모든 스킬의 강화를 마치고 기뻐했는데, 반나절도 되지 않아 더욱 강화됐다.

아니, 강화 수준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됐다.

스킬의 공격력 변화는 없지만, 성능은 신의 영역이었다.

치지직- 치직-

그 순간, 무전기에서 신호가 들어왔다.

-이정우 씨!! 박재형 씨!! 아무도 안 들려요?!

무전기로 들려오는 한월의 목소리.

다급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황급히 무전기부터 손에 쥐는 찰나, 전신을 더듬는 오한에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느껴진다.

강한 마력의 흐름이 공기 중에 퍼지고 있었다.

내가 지닌 마력과 결이 다른, 불쾌하고 이질적인 기운이었다.

황급히 로비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허공을 바라보자, 거대한 게이트가 서서히 열리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슈욱-!

뒤이어 게이트에서 떨어지는 무언가.

흐릿한 빛이 이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뒤이어 내 앞에 안정적으로 안착하더니, 상체를 일으키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다, 당신은…….”

전신을 집어삼킬 것 같던 눈부신 어린아이로 변한 존재.

“에스파디아?”

그는 대답 대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손을 맞잡는 순간, 흐릿한 빛이 내게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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