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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99화
강줄기를 따라 이동하자, 뒤이어 갈래길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왼쪽으로 가면 임진강, 오른쪽으로 가면 한강.
당연히 우리가 타고 있는 요트는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물을 거슬러 한참을 올라가자 일산대교와 형제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다 왔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그리운 기분이 들 줄은 몰랐다.
이래서 다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하는 걸까?
아무리 다른 나라가 좋다고 한들, 고국의 안락함과 비교할 수 없었다.
드넓은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으로 설여원이 다가오며 얘기했다.
“아무래도 걸어가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왜?”
“강 수위가 너무 낮아졌어.”
서서히 안개 너머로 나타나는 백마도와 김포대교.
본래 김포대교 쪽이 수위가 낮은 편이긴 하지만, 하선까지 해야 할까?
흙바닥이 보이지 않는 한 요트 바닥이 긁히진 않을…….
이렇게 생각하는 찰나, 곳곳에 형성된 모래 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포대교 앞으로 기다란 둑이 있고, 그 너머에 물이 고여 이쪽까지 흐르지 않고 있었다.
예전엔 콸콸 흐르던 물줄기가, 지금은 살짝 열린 수도꼭지처럼 힘없이 흐르는 정도였다.
조금만 더 가면 여의도가 나오는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무전기를 들었다.
“재우야, 너희 앞에 봤어?”
치지직- 치직-
-어, 안 그래도 방금 시몬한테 들었어. 배로 못 간다고.
“우측에 배 붙일 만한 장소 있어?”
대답을 기다리자, 오래 지나지 않아 무전기에서 김명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측에 한국농어촌공사 건물 있는데, 그쪽에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사람들 하선시키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무전기를 마치고 옆에 있는 설여원에게 물었다.
“여원아, 네가 사람들 인솔해서 산책로까지 올라와 줄래?”
“먼저 가서 확인하려고?”
“어.”
난간을 밟고 올라서자, 설여원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몸조심해. 우리도 이쪽은 정리한 적 없으니 뭐가 있을지 몰라.”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읊조렸다.
“다이브, 광폭화.”
츠으으으-
뒤이어 난간을 박차며 육지로 향했다.
* * *
띠링-!
-멀어졌던 파티원이 20㎞ 범위 내로 들어왔습니다.
-임시 저장된 코인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공유하시겠습니까?
이정우는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
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무전기를 들었다.
“재형아, 내 말 들려? 다들 도착한 거야?”
치지직- 치직-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문제가 뭔지 몰라도, 송수신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부산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광안대교에 도착하자, 20㎞ 범위에 공격대원이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곽찬혁의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이정우는 박재형을 찾는 대신, 무전기로 안상진을 불렀다.
“안상진 씨, 혹시 활주로에 착륙한 비행기 있습니까?”
치지직- 치직-
-아니, 하늘은 깨끗해.
그렇다면 항공기로 온 게 아니라 배를 타고 왔다는 말이 된다.
이정우는 들뜬 표정으로 안상진에게 얘기했다.
“재형이가 도착한 것 같아요.”
-벌써? 아니, 어디로?
“아무래도 배를 타고 온 것 같은데, 여기서 20㎞면 어디쯤인지 아세요?”
이정우는 서울 지리를 명확하게 모르기에, 안상진의 도움이 필요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오래 지나지 않아 안상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하진 않은데, 여의도에서 20㎞ 거리면…… 대략 일산대교 근처일 거야.
“그쪽으로 배 들어오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재형이 도착한 거 확실한 거야?
“홀로그램이 떴어요. 20㎞ 이내에 파티원이 들어와서 코인 공유받을 수 있다고.”
-알았어. 내가 강가 따라서 가볼게.
무전을 마치고 이정우는 코인 공유를 눌렀다.
띠리리리리리리-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코인 메시지.
옆에 있던 김희연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윤혜리도 코인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얘기했다.
“10만, 20만, 30만, 40만? 이거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윤혜리가 멍한 눈으로 쳐다보자,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씨앗만 가져온다더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 *
농어촌공사 앞으로 감염된 식물과 좀비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빠르게 놈들을 정리하고 여의도 방면을 살폈다.
생존자들이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선 산책로가 있어야 하는데, 이 근처는 산책로가 없었다.
인천에서 하남까지 산책로가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서쪽은 아닌 모양이다.
길거리의 좀비들을 처리하며 계속해서 나아가자, 뒤이어 천호대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호대교 맞은편으로 보이는 산책로.
서쪽 산책로의 시작점이 저긴가?
이를 확인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읊조렸다.
“감지.”
-스킬 감지를 활성화합니다.
주변으로 보이는 몇몇 푸른점들.
푸른색으로 보이는 좀비들만 빠르게 정리했다.
좀비가 인간의 체취를 맡을 수 있는 거리는 대략 200m가 넘기에, 최소한 산책로 반경 300m는 정리해야 안전하다.
150명이 넘는 사람이 일제히 움직이면 더욱 진득한 체취가 퍼질 테니 말이다.
좀비들을 정리하며 천호대교 너머까지 정리하는 찰나.
시야의 끝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인기척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라색으로 보이는 존재가 건물을 타고 넘으며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에 경계태세를 갖추고 무전기를 들었다.
“안상진 씨?”
치지직- 치직-
-재형이? 재형이니?!
이곳으로 접근하던 보랏빛 존재가 걸음을 멈추고, 동시에 안상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는 마음에 불러봤는데, 정말 안상진이었다.
뒤이어 안상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다들 안전하게 돌아온 거야?
“네, 그리고 같이 온 사람들이 있어요.”
-누구.
“노르웨이 생존자들이요.”
노르웨이 생존자들을 데려왔다고 하자, 한동안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안상진의 곁으로 접근하는 보랏빛 물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을 호위하기 위해 수하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산책로 반경 300m 거리에 일렬로 줄지어 서는 수하들.
그 누구도 산책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방지하고 있었다.
-고생했다.
무전기로 들려오는 안상진의 목소리에, 그제야 서울에 도착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 * *
노르웨이 생존자들이 놀랄 수도 있기에, 안상진과 그의 수하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여원은 깔끔하게 정리된 산책로를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안상진 씨 근처에 있는 거지?”
“맞아.”
“왠지, 지나치게 안전하더라.”
남모를 호위를 받으며 여의도 아크 외벽에 도달하자, 노르웨이 생존자들은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는 노르웨이 파티 오로라도 마찬가지였다.
뒤이어 1번 게이트를 열리고, 그 너머로 공격대에 속한 모든 플레이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전기를 통해 노르웨이 생존자들을 데려간다고 얘기해 둔 상태였다.
이에 아크에 있던 공격대원들은 마중을 나온 모양이다.
한월은 내 뒤에 있는 생존자들을 가볍게 훑더니, 곧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Welcome.”
그제야 노르웨이 플레이어들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윤혜리와 김희연은 결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뒤이어 박재우와 황덕록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는 그 모습을 보고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어휴, 솔로는 발 닦고 잠이나 자야지.”
월! 월!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장군이가 달려와 전완수에게 몸통박치기를 가했다.
전완수는 한 차례 휘청거리더니, 금세 화색을 띠며 얘기했다.
“하하! 그래, 장군이밖에 없다.”
인사는 이쯤하고, 한월에게 노르웨이 생존자들이 지낼 숙소를 배정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한월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지금…… 생존자들은 숙소에서 안 지내요.”
“네? 그럼 어디서 지내요.”
“대피소요.”
“벌써 들어갔어요?”
“게이트 때문에요.”
게이트?
서울 하늘에 게이트가 열렸다고?
이에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역시, 네가 꿈에서 본 장면은 꿈이 아니야. 현실이지.”
하지만…… 지금은 하늘에 아무것도 없는데?
한월에게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하자, 이정우가 다가오며 얘기했다.
“오자마자 정신 없겠지만, 할 얘기가 산더미야.”
“노르웨이 생존자들 대피소로 안내하고 회의실로 모이죠.”
뒤를 돌아보며 얘기하자, 한월이 손사래 치며 얘기했다.
“생존자들 안내는 제가 할 테니 여러분 먼저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소통은 영어로 하면 될까요?”
한월의 물음에 저 뒤에 있는 김명석을 불렀다.
김명석은 헛기침과 함께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한월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얘기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명석입니다.”
“어? 한국분이세요?”
“예, 스발바르 제도 다산기지에 있었죠.”
“다산기지요?”
한월도 다산기지를 아는지, 세상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한월과 김명석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통역은 김명석 씨가 해주실 거예요.”
“아, 네.”
한월은 김명석을 통해 노르웨이 생존자들과 소통하며 대피소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이 이동하는 걸 확인하고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홀로그램을 열고 바삐 손가락을 움직였다.
띠링-!
-노르웨이 파티 오로라가 소리결 공격대에 정식 합류했습니다.
파티 오로라부터 공격대에 합류시키더니, 이정우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였다.
이정우를 따라 콘래드호텔 로비로 이동했다.
* * *
이정우에 모든 이야기를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에스파디아가 아우키엘과 싸우고 있다는 거지?”
“네, 서울에 열린 게이트도 그래서 사라진 것 같아요.”
“그럼 언제 다시 열려도 이상하지 않은 거네?”
“그렇죠. 에스파디아가 미래의 일까지 아는 건 아니니까요. 아우키엘이 에스파디아의 예상보다 강하다면…… 마력도 일찍 바닥을 보일 겁니다.”
“씨앗은 가져왔어?”
“네, 60% 거뜬히 넘어요.”
“그런데 왜 에피소드 완료가 안 떠?”
이정우의 물음에 옆에 있던 정진영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경우로 보면 파티장이 모든 권한을 가지는 것 같은데, 씨앗도 파티장이 소지해야 에피소드 클리어되는 거 아니겠어?”
이에 씨앗을 소지한 결인들은 인벤토리를 열고 이정우를 쳐다봤다.
이정우도 인벤토리를 열자, 그들의 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파티 소리결의 씨앗 확보율: 72%.
-파티원의 인벤토리에 있는 씨앗을 파티장에게 전달하시겠습니까?
-씨앗을 받기 위해선 파티장에게 1만 코인이 있어야 합니다.
정진영의 예상대로였다.
현 상황에 1만 코인은 코인도 아니기에, 다들 망설임 없이 수락을 눌렀다.
띠링!
-파티장 이정우는 1만 코인을 소모합니다.
-파티장 이정우의 인벤토리에 60% 이상의 씨앗이 확보되었습니다.
-파티 소리결이 아크에 도착했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 ‘생명의 씨앗’의 클리어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띠링!
-세 번재 에피소드 ‘생명의 씨앗’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뒤이어 눈부신 빛이 결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모두를 감싸는 게 아니라, 초월자의 물약을 통해 각성 조건을 충족한 일행과 내 주변에 빛이 맴돌고 있었다.
다들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찰나, 눈앞으로 또 다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세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한 파티 ‘소리결’의 한계가 해금됩니다.
-에덤 화이트 및 초월자의 물약을 통해 각성한 이들에게 에스파디아의 파편이 부여됩니다.
띠링!
-파티 소리결에 이스터에그을 소지한 에덤 화이트가 존재합니다.
-이스터에그를 소지한 에덤 화이트는 이미 근원을 소지하고 있기에 파편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스터에그를 소지한 에덤 화이트는 에스파디아가 생성한 시스템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추후 동기화를 통해 에스파디아가 지닌 힘의 50%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파편 회수 시, 에스파디아의 힘이 100% 개방됩니다.
눈앞으로 떠오른 설명을 보고, 다들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일행을 감싸고 있던 빛이 손바닥 크기로 변하더니, 각성한 일행에게 흡수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내겐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기이한 기류가 맴돌기 시작했다.
뒤이어 블랙홀처럼 변하며 내게 흡수된 것인지, 내가 흡수된 것인지 모르게 스며들었다.
두근-
심장에서 아찔한 진동이 느껴지고, 체내에 무언가가 가득 차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띠링!
-세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한 파티 소리결에게 진실이 밝혀집니다.
이러한 문구와 함께 로비의 외벽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공간에 뚝 떨어진 기분.
뒤이어 어둠 속에서 재생되는 하나의 영상.
초기 우주.
빅뱅과 함께 나타난 거대한 빛.
뒤이어 반짝이던 빛이 세 개로 나뉘며 서서히 인간의 형체를 지니기 시작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저들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에스파디아와 그의 동료들이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영상은 에스파디아의 과거이자, 그의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