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2 ---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98화
증가한 신체 능력으로 인해 감회가 새로웠다.
나중에 생존본능과 반격까지 활성화하면……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근력 9000을 유지할 수 있고, 반사신경과 동체 시력은 그 이상이 된다.
너무 말도 안 되는데?
지나치게 강해진 거 아닌가?
물론 투자한 포인트가 적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이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다이브.”
두근-
그러자 주변에 있던 일행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게서 한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미쳤어?”
전완수는 호들갑을 떨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얘기했다.
“괜찮아, 좀비화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
“좀비화도 된다고?”
“어.”
일행을 안심시킨 뒤,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읊조렸다.
“광폭화.”
츠으으-
전신의 혈류가 빨라지고, 뜨거워진 육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날씨가 추운 탓에, 더욱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박이 예사롭지 않았다.
살짝 버거운 느낌.
근육 다발은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당기고, 이마 위로 핏대가 솟았다.
현재 근력은…… 무려 27000.
여기서 반격이 활성화되면 54000이 된다.
반격까지 사용하면 무조건 광란 터지겠는데?
모든 스킬을 활성화 할 수 있다고 해서 전부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증가한 힘을 정신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
“좀비화 비활성화.”
후욱-
나지막이 읊조리자, 좀비화와 광폭화가 풀리며 다시금 심박이 돌아왔다.
이를 지켜보던 일행이 짧은 탄성을 뱉었다.
“진짜 되네?”
전완수는 신기하다는 듯이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난 두 주먹을 쥐었다 펴며 돌아온 근력을 확인했다.
훙- 훙- 훙.
그 순간,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평범한 바람이 아니라 날갯짓 소리처럼 들렸다.
일행도 느꼈는지, 다들 한 곳을 응시하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뒤이어 전완수와 설여원이 쇠뇌부터 견착하며 외쳤다.
“갑판 위에 있는 사람들 안으로 들여보내!”
끼룩-!
짧은 탄성처럼 들리는 울음소리.
감염된 기러기들이 요트로 접근하고 있었다.
퉁! 퉁퉁! 퉁! 퉁!
전완수와 설여원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볼트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최현과 함께 갑판 위의 사람들부터 챙겼다.
* * *
“희연아 들리니?”
치지직- 치직-
-네 말씀하세요.
“지금은 어때.”
-게이트는 사라졌고…… 지금은 잠잠해요.
이정우와 윤혜리는 생존자들에게 포만감 알약을 배분하고 있었다.
반면에 김희연은 바깥에서 허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열렸던 게이트는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모든 생존자들은 대피소로 들어왔고, 그들의 불안한 심리가 표정으로 엿보였다.
“한월 씨, 사람들 좀 챙겨주세요. 저도 희연이랑 같이 있을게요.”
“아, 네.”
한월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우리 아빠 슈퍼맨이야!”
그 순간, 아이들 사이에 있던 남아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거짓말하지 마! 우리 엄마가 그랬어. 너희 아빠 죽었다고.”
“아니거든? 나 어제도 아빠한테 편지 받았거든?”
“그거 한월 이모가 쓴 거야 바보야.”
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남아.
안상진의 아들이었다.
이름이…… 정수라고 했었나?
정수는 금세 울먹이는 표정을 짓더니, 한월의 곁으로 달려왔다.
“한월 이모, 우리 아빠 밖에서 좀비들 잡고 있죠? 그쵸?”
“…….”
“우리들 지키려고 밖에서 싸우느라 바빠서 못 오는 거죠?”
정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한월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데, 터지려는 울음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한월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 뒤에서 아이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아빠 없다고 놀리는 아이들.
이정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무전기를 들고 안상진을 불렀다.
“안상진 씨, 들리십니까?”
안상진이란 이름이 나오자, 주변에 있던 생존자들이 일제히 이정우를 쳐다봤다.
“이, 이정우 씨.”
그러자 한월은 놀란 눈으로 이정우를 쳐다봤다.
걱정스러운 표정.
이정우는 다른 설명은 하지 않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결국엔 알게 될 일입니다.”
치지직- 치직-
-어 정우야, 얘기해.
뒤이어 무전기로 들려오는 안상진의 목소리에 생존자들마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살아 있었어?”
“안 씨 예전에 좀비한테 물리지 않았나?”
“아닌가 보지. 저 목소리 안 씨 맞는데?”
“진짜로 밖에서 좀비들 처리하고 있는 거야?”
“왜 안 들어오고 밖에서 지내? 잠도 밖에서 자는 거야?”
그런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이정우는 무전기에 대고 얘기했다.
“정수가 아빠 목소리 듣고 싶다고 그래서요.”
-……어?
무전기 너머로 안상진의 당혹감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정우는 정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수야, 아빠랑 얘기할래?”
정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무전기를 쳐다보더니,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우가 무전기를 건네주자, 정수는 양손으로 무전기를 받아들고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아…… 아빠?”
-정수야.
“아빠아아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아이 안소혜도 이정우의 곁으로 달려왔다.
“아빠! 아빠! 아빠 어디야?”
소혜가 무전기를 빼앗으며 묻자, 무전기에서 잡읍이 잡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안상진도 눈물을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뒤이어 자식들과 대화하는 안상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은 잘 먹고 있는지, 괴롭히는 친구는 없는지, 어른들 말씀은 잘 듣고 있는지, 그런 사소한 질문일 뿐인데,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아려왔다.
이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월에게 얘기했다.
“저는 희연이랑 같이 있을게요. 무전기는 조금 있다 한월 씨가 받아주세요.”
“아, 네.”
이정우는 생존자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며 옆에 있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정수와 소혜를 따돌리는 아이들이었다.
“애들아.”
“네?”
“친구랑 친하게 지내야지, 그렇게 못된 말로 놀리면 안 돼. 알았어?”
“정수네 아빠 진짜로 살아 있어요?”
“정수네 아버지한테 감사해. 너희가 안전한 건 전부 정수네 아버지 덕이니까.”
“그럼…… 정수네 아빠는 진짜 슈퍼맨이에요?”
“세상엔 슈퍼맨이 많단다.”
슈퍼맨이 별거 있나?
인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사람들.
그 모두가 슈퍼맨이었다.
이정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피소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월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다소 무뚝뚝해 보이지만, 이정우는 누구보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었다.
* * *
수도 없이 많은 기러기를 처리했다.
족히 수천 마리 그 이상을 잡은 것 같다.
박재우와 황덕록은 요트를 조종하면서도 프린트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혹여나 볼트가 부족한 상황이 올까 봐, 계속해서 로그나이트로 만든 볼트를 찍어내고 있었다.
설여원과 전완수가 멀찍이서 접근하는 새들을 처리하고, 난 요트 반경 30m 내로 접근하는 새들을 노렸다.
요트에 달라붙은 기러기가 있으면 정진영과 최현이 처리했다.
싸움은 쉬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 무리를 처리하고 나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뒤이어 접근하는 두 번째 무리를 상대해야 했다.
태양이 중천에 떠오르고, 다시 서쪽 하늘 너머로 기울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윽고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밝은 달이 서서히 기울 때까지 우리의 경계태세는 계속되었다.
시침이 새벽 3시를 가리킬 무렵, 그제야 공습이 끝났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어으, 지긋지긋한 새대가리들.”
전완수는 전신에 묻은 혈흔을 물수건으로 닦으며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요트의 외관을 살피며 최현에게 물었다.
“다친 사람은?”
“다친 사람은 없는데, 요트 좌측면 유리가 다 깨졌어.”
“배에 구멍은 안 뚫렸지?”
“다행히 구멍은 없어. 생존자들이 있는 상부를 노리지, 하부를 노리는 놈은 없더라고.”
다친 사람이 없다면 됐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전기를 들었다.
“재우야, 앞으로 몇 시간이나 더 가야 돼?”
치지직- 치직-
-거의 다 왔어. 1시간에서 2시간 내에 한국 땅 보일 거야.
박재우의 말을 듣고 자욱하게 깔린 해무를 응시했다.
박재우와 황덕록의 항해를 돕기 위해 노르웨이 플레이어 시몬도 조종석에 있었다.
시몬의 직업은 가브리엘.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하기에, 박재우와 황덕록에게 적절한 상황보고를 할 수 있었다.
물론 통역을 도와야 하기에 김명석도 조종석에 있었다.
감염된 기러기들이 유리를 들이받을 때마다 김명석의 비명이 들렸다.
그런 와중에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본인의 자리를 지켰다.
뒤이어 선내로 들어갔던 정진영이 목멀미를 주무르며 갑판으로 나왔다.
“생존자들은 진정됐어.”
그러자 피곤한 안색으로 앉아 있던 설여원이 물었다.
“우리도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늘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봤더니 목 빠질 것 같아요.”
“너희는 좀 자둬. 보초는 내가 설게.”
정진영의 말에 결인들은 꾸벅 고개 숙이며 갑판 위에 침낭을 펼쳤다.
“들어가서 자. 날씨도 추운데 무슨 여기서 자겠다고 그래.”
정진영이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결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선내로 들어갔다.
반면에 난 들어가지 않고, 정진영의 곁으로 향했다.
“형도 들어가서 자요.”
“됐어, 많이 쉬었어.”
정진영은 내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어서 들어가라고 했다.
아무리 얘기해도 안 들을 것 같아서,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럼 30분 뒤에 교대해요.”
“알았어, 어서 들어가.”
정진영은 입김을 불며 갑판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한국에 도착해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기에, 체력 보충은 꼭 필요했다.
이에 선내로 들어가 전완수와 최현 사이에 누웠다.
“아으, 빨리 이불 덮어. 추워.”
전완수의 말에 싱겁게 웃으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차갑게 식어있던 몸이 서로의 온기로 조금씩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온종일 바삐 움직인 만큼, 결인들은 자리에 눕자마자 단잠을 취했다.
나도 스르르 감기는 눈꺼풀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숙면에 빠져들었다.
* * *
치지직- 치직-
-아아, 디스 이스 캡틴, 캡틴 스피킹.
선내로 울리는 박재우의 목소리에, 쪽잠을 자던 일행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쌍꺼풀진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어느새 노릇노릇한 아침 노을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해가 뜨고 있다고?
1시간이면 도착한다더니, 늦어진 건가?
그럼 정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향하자, 자욱하게 깔린 해무 너머로 육지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어났어?”
의자에 앉아 있던 정진영이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30분 뒤에 교대하기로 했잖아요. 왜 안 깨웠어요.”
“다들 코 골고 잘 자더라.”
“지금 몇 시예요? 지나치게 밝은데.”
“3시간 30분 정도 더 왔어. 오전 6시 40분.”
“네?”
“중간에 나침반에 문제가 좀 있었거든. 그래도 뭐, 재우랑 덕록이가 알아서 해결했어.”
3시간이나 걸렸으면 중간에 깨우지.
미안한 마음에 고개 숙이자, 정진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괜찮아. 덕분에 백령도도 보고 연평도도 봤으니까. 내가 또 언제 백령도랑 연평도를 보겠어?”
“형은 안 피곤해요?”
“느긋하게 바다도 보고 좋지 뭐. 그보다 저기, 저 앞이 강화도야. 재우 말로는 저쪽으로 이동하면 한강까지 바로 이어지나 봐.”
“요트 타고 여의도까지 갈 수 있는 거죠?”
“어, 신기한 건 뭔 줄 알아?”
정진영이 묻기에, 대답 대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진영은 좌측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쪽은 북한이야.”
북한이란 말에 반사적으로 움찔거리고 말았다.
이렇게 가깝다고?
강화도 주민들이 북쪽의 사격 훈련 때마다 불안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저쪽으로 직진하면 개성이 나오는 건가?
지금은 국가 간의 경계가 사라진 세상이지만, 굳이 북쪽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단순한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에 무전기를 들고 얘기했다.
“재우야, 덕록아. 들려?”
치지직- 치직-
-일어났나? 얘기해.
“한강에 다리가 많아서 요트로 진입할 수 없을지도 몰라. 가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무리하지 말고 얘기해.”
-오야.
목소리만 들어도 두 사람의 피로가 느껴졌다.
몇 시간이나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혹여나 방향을 잘못 잡았을까 봐 불안하고 예민해졌을 것이다.
박재우와 황덕록이 없었다면…… 과연 노르웨이 여정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주고 싶은 심정.
지금은 돈도 명예도 쓸모없는 세상이기에, 내가 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휴식.
하루빨리 에피소드를 끝내고, 일행을 안전지대로 보낼 것이다.
잠깐의 행복이 아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안식과 평화를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