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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94화
문제의 장소에 도달하자, 각종 변종이 이름 모를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알파와 베타는 외벽을 타고 오르고, 내부에서 델타와 좀비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공중에서 접근하는 감마는 볼트에 맞고 풍선처럼 터지고 있었다.
대부분 3단계에서 4단계 사이의 변종들.
아직 감지가 유지되고 있기에, 빠르게 시선을 돌려 돌연변이의 위치부터 찾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테두리를 돌며 빈틈을 노리는 돌연변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급가속은 유지되고 있지만 일격 효과는 사라진 상태.
연격, 난동, 증폭이 재사용 대기시간에 걸려서 신체 능력 증가 효과도 받을 수 없었다.
유지되고 있는 특수 스킬은 생존본능과 반격뿐.
액티브 스킬을 통한 폭발적인 향상은 기대할 수 없지만, 좀비화와 광폭화, 광란, 반격만 있어도 신체 능력은 1만에 달한다.
폭발적인 신체 능력 향상이 없어도, 돌연변이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쾅-!!!
지면을 박차며 쏜살같이 돌연변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칼집에 넣어둔 카타나를 뽑아 들었다.
훙-!
사선으로 긋자, 돌연변이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인지하고 다급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간발의 차로 카타나가 빗나가자, 놈은 카포에라 선수처럼 젖혀진 몸의 반동을 이용해서 발길질을 가했다.
평범한 움직임이 아니기에,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왼팔을 뻗어 관자놀이로 날아드는 발길질을 막아냈다.
묵직한 힘으로 인해 상체가 휘청거렸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돌연변이의 다음 행동을 예측했다.
놈은 재빨리 균형을 잡고 일어나더니, 황급히 거리를 벌리며 밤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그어어어어어어-!!
뭐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린데…….
마치 공명 좀비의 공명과 흡사한 울음소리였다.
뒤이어 중심가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발소리가 아니다.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2단계부터 5단계에 해당하는 각종 변종이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돌연변이는 나를 공격하지 않고, 지원군부터 불렀다.
“이 새끼…….”
돌연변이부터 잡아야 한다.
이놈을 살려두면 웨이브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카타나를 말아쥐고, 섬광처럼 놈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공명하던 돌연변이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기 위해 하체를 접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예상한 상황.
치켜들었던 카타나로 목을 노리는 대신, 놈의 발목을 향해 휘둘렀다.
촤악-!!!
무릎 밑으로 다리가 잘려나가자, 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뒤로 넘어지는 모습이 하나의 느린 영상처럼 두 눈에 들어온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재빨리 칼자루를 고쳐 쥐며 사선으로 베었다.
촤악-!
-돌연변이를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100,000점이 주어집니다.
깔끔하게 잘려나간 돌연변이의 머리.
키에에에에에엑-!!
동시에 천지를 울리는 변종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이에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무전기부터 손에 쥐었다.
“완수야! 거기 변종 몇 마리야?!”
치지직- 치직-
-바빠! 나중에 얘기해!
“4단계 이하는 너희가 처리할 수 있어?”
-이미 잡고 있어! 델타4만 조심하면 될 것 같다!
계단으로 이동한 변종들 사이에 델타4가 있는 건가?
델타4의 신체 능력이면 일행도 위험한데…….
그래도 6명이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면 접근하는 변종들을 저지할 수 없다.
알파5가 도착하면 건물째로 무너질 것이다.
“거기서 버텨! 뒤에 오는 놈들 잡고 올게!”
무전을 마치자마자 변종들이 바글거리는 중심가로 향했다.
* * *
“옥상 입구 막아!”
설여원이 소리치자, 황덕록과 정진영은 인벤토리에서 방패를 꺼내며 입구를 쳐다봤다.
쾅-!! 까드득- 쾅-!!
철문을 강하게 내려치는 파찰음과 함께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구멍 사이로 보이는 델타4의 안면.
거대한 주둥이에서 걸쭉한 타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흐흐히, 흐히!
구멍 너머로 결인들의 모습이 보이자, 델타4는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쩌드득- 쾅!!!
이윽고 철문이 무너지자, 델타4는 비좁은 입구로 상체를 욱여넣기 시작했다.
덩치로 인해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는 모습.
정진영과 황덕록은 기다렸다는 듯이 방패를 치켜들고 입구로 돌진했다.
파지지지직-!!
방패에 전류를 흘려보내자, 델타4는 괴성을 내지르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비좁은 문틈과 방패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살기 위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방패에 난도질을 가하는 델타4.
[방패 내구도: 92%, 83%, 71%.]
불편한 자세로 휘두르는 공격이지만, 방패의 내구도는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카타나로 쑤셔요!!”
황덕록이 먼저 방패의 빈틈으로 카타나를 찔러 넣자, 정진영도 방패와 방패 사이로 카타나를 쑤셔 넣었다.
델타4를 벽에 짓이긴 채 방패와 방패 사이의 빈틈으로 난도질을 가했다.
델타4의 핏물이 지면을 적시고, 내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진영과 황덕록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코인 메시지가 떠오를 때까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뚝- 뚜둑-!
성대까지 꿰뚫자, 델파4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전신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씹……! 더럽게 질기네!”
“자세가 불편하게 힘을 못 주겠어요!”
“그렇다고 방패를 놓을 순 없잖아!”
그러자 옥상 난간에 있던 박재우가 양손으로 칼자루를 말아쥐며 그들의 곁으로 달려왔다.
달려온 힘을 이용해 델타4의 안면에 카타나를 내질렀다.
콰득-!!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1800코인이 지급됩니다.
다른 4단계 변종은 1300코인을 지급하는데, 델타4는 1800코인을 지급했다.
타 변종과 격이 다른 존재지만, 지형지물을 이용한 결인들에겐 어렵지 않은 적이었다.
“박재우 빨리와!!”
설여원이 소리치자, 박재우는 황급히 옥상 난간으로 돌아왔다.
키에에엑-!!
브르릅- 브릅-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알파와 베타 변종으로 인해,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설여원과 전완수는 공중에서 접근하는 감마 변종을 요격하고 있기에, 다른 변종까지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박재우가 외벽을 기어오르는 변종들을 처리하자, 황덕록은 정진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형, 형 혼자 입구 막을 수 있어요?”
“맡겨둬.”
황덕록이 박재우의 곁으로 달려가는 찰나.
슈욱-!
베타3의 혓바닥이 박재우의 왼팔을 휘감았다.
박재우는 두 눈에 힘을 주며 오른손으로 혓바닥을 붙잡았다.
끌려가면 죽는다.
10층 높이에서 추락하게 될 테니까.
“재우야!”
황덕록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치는 찰나.
촤악-!!
혓바닥을 잘라버리는 유려한 호선.
최현이 박재우의 팔을 휘감은 베타의 혓바닥을 끊어냈다.
“난간 밖으로 신체 내밀지 마. 머리 내밀면 죽는다.”
“……고맙다.”
변종도 변종이지만, 점점 좀비들의 시체도 외벽에 쌓이고 있었다.
벌써 5층 높이까지 쌓인 시체들.
올라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니, 일행의 체력도 덩달아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전황을 살피더니, 옆에 있는 전완수에게 외쳤다.
“재형이 위치 보여?!”
“박재형 중심가로 갔잖아! 여기서 안 보여!”
설여원은 전완수의 대답을 듣고 중심가 방면을 살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는 500m가 한계라서, 중심가의 상황은 알 길이 없었다.
쾅-! 콰광-! 떵- 쾅!!
하지만 멀찍이서 울려 퍼지는 굉음이 중심가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설여원은 현재 시각을 살피며 전완수에게 물었다.
“이것들 정리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지금 속도면 30분은 걸릴 것 같은데?”
“단축해야 돼. 재형이도 오래 못 버텨.”
“벌써 좀비화 끝나가?”
“아니, 5단계가 많으면 재형이도 무리야.”
“왜.”
“광란까지 사용해도 마무리 일격이나 특수 스킬 없이는 재형이도 5단계 못 잡아.”
“광란을 사용해도 못 잡는다고?”
“변종 에덤한테 스킬 다 썼다면…… 재형이도 지금 고전하고 있을 거야.”
“그럼 뭐 믿고 중심가로 간 거야?”
전완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설여원은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광란 중첩 발동할 생각으로 갔을지도 몰라.”
“…….”
전완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접근하는 좀비와 변종들을 노려봤다.
뒤이어 결인들을 향해 외쳤다.
“속도 높여!! 빨리 정리하고 재형이 지원하러 간다!!”
* * *
끝도 없이 밀려드는 변종을 처리하며, 모든 보호대의 내구도가 0으로 떨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은 5단계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건틀릿과 보호대의 내구도가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카타나의 내구도는 14% 정도 남았지만, 카타나로 5단계를 잡는 건 효율이 떨어졌다.
70㎝ 길이의 칼날로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두개골을 뚫더라도, 5단계 변종들은 덩치가 압도적이다 보니 뇌까지 헤집을 수 없었다.
결국 건틀릿과 카타나를 인벤토리에 넣고, 맨주먹으로 적들을 마주했다.
대폭 증가한 표피와 골밀도를 믿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브르르릅-! 브르릅!
우측 대각선 방면에서 베타 변종의 음성이 들려온다.
슈악-!
뒤이어 베타5의 혓바닥이 드릴처럼 회전하며 날아들기 시작했다.
회전하며 날아든 9개의 혓바닥은 곧 그물처럼 펼쳐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 자식…… 전투 경험이 많은 놈인가?
저런 식으로 공격하면 빠져나갈 틈이 없다.
키에에에에엑-!!
맞은편에 있던 알파4가 대뜸 달려들기에, 재빨리 알파4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텁!!
9개의 혓바닥은 나 대신 알파4를 붙잡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산성 물질에 살점이 녹아 들어가는 알파4.
베타 변종은 동족이든 아니든, 혀에 붙잡힌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혓바닥이 재차 날아들기 전에 황급히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쯔덕!
발밑으로 느껴지는 끈적한 기운에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감염된 식물의 끈끈한 액체가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젠장……!”
힘으로 뜯어내자, 그제야 신발의 내구도가 눈에 들어왔다.
[신발 내구도: 3%]
더는 신발도 버틸 수 없는 수준이기에, 양손으로 신발을 잡고 인벤토리에 던지듯이 넣었다.
보호대도, 무기도 없는 상태.
맨손, 맨발로 5단계 변종들을 마주한 상황.
한동안 잊고 지내던 공포감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이에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마음 단단히 먹어.’
지금껏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게 한두 번이던가?
최악의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안간힘을 쓰며 넘고, 깨부수고, 돌파하며 살아남았다.
최악의 최악까지.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쏟아내며 버텨내야 한다.
두근-
심장에서 아찔한 진동이 느껴지고, 차갑게 식은 머리 위로 식은땀이 맺혔다.
특수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8분 정도 남았고, 믿었던 반격과 생존본능의 지속 시간은 1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에 심장의 고동에 모든 것을 맡겼다.
띠링-
-광란을 중첩 사용하시겠습니까?
지금 수락을 누르면 광란의 사용횟수는 8회가 된다.
8회라는 숫자가 압박감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여기만 정리하면 요트를 타고 한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대로 여의도까지 이동하면 그만이기에, 안정적으로 세 번째 에피소드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훅, 하고 숨을 뱉으며 눈앞의 홀로그램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수락을 눌렀다.
* * *
황폐한 대지.
붉은 모래가 휘몰아치는 이름 모를 행성으로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이시여, 마지막 병력이 집결했습니다.”
“선발대는.”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은 부하가 얘기하자, 삭막한 세상을 바라보던 인비디가 입을 열었다.
“네게 선발대를 맡겨도 되겠느냐.”
“……!”
부하는 놀란 눈으로 인비디아를 쳐다보더니, 곧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제1군 대장 그라나다 아우키엘. 인비디아 님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겠나이다.”
인비디아는 아우키엘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네가 해야 하는 일은 잘 알고 있겠지?”
“행성 대기질의 파악, 게이트의 안정화, 에스파디아 봉쇄까지 빠짐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네가 성공적으로 준비한다면, 그에 따른 보상은 내 직접 그분께 말씀드릴 것이야.”
“……! 여, 영광입니다!”
아우키엘이 격양된 표정을 짓자, 인비디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실망시키지 말아라.”
“최선을 다해 기반을 닦아내겠습니다!”
“가거라.”
인비디아의 명이 떨어지자, 아우키엘이 있던 곳으로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눈 깜박할 새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폐허로 변한 도시의 중심으로, 보랏빛 기류가 맴돌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퍼진 기류는 중심가에 밀집되더니, 굉음과 함께 허공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허공으로 뻗어 나간 보랏빛 기류는 10000ft 상공에서 응집되더니, 서서히 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직경 1㎞에 달하는 거대한 게이트로 변하고, 그곳으로 아우키엘이 이끄는 선발대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