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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89화
폭음과 함께 기체가 기울었다.
이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벽에 그대로 머리를 들이받았다.
경고등이 들어오고, 반복적으로 울리는 경고음에 머릿속이 멍해지기 시작했다.
황덕록은 엔진 상태를 확인하며 외쳤다.
“버드 스트라이크, 버드 스트라이크!! 1번 엔진 고장!!”
“나도 알아 인마!”
박재우는 황급히 기기를 조작하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외쳤다.
“빨리 가서 사람들 챙겨!!”
박재우의 외침에 잠시나마 흐려졌던 정신이 돌아왔다.
흔들리는 기체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기내로 돌아갔다.
이미 기내는 생존자들의 비명으로 아비규환에 빠진 상황.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 정진영은 황급히 복도를 뛰어다니며 아이들에게 산소마스크부터 씌우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황급히 그들을 돕고, 흐릿한 시야로 창밖을 살폈다.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철새들이 항공기를 감싸기 시작했다.
몇몇 철새들은 완전히 박살 내겠다는 듯이, 날카로운 부리로 사방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구멍이라도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이에 조종석을 향해 외쳤다.
“재우야!! 아무 데나 착륙 시켜!! 이러다 다 죽어!!!”
“씹…… 빠알!! 나도 알아!!”
박재우의 욕설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미 1번 엔진이 터지면서 균형을 잡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아니, 엔진보다 철새들이 더욱 문제였다.
날개에 앉은 철새들이 무게중심을 깨드리고, 항공기를 거칠게 흔들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뭐부터 해야 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지금은 밖에 나가서 싸울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을 안정시키는 것.
이에 안전띠를 착용하지 못한 사람들을 품에 안고 황급히 자리에 앉혔다.
직접 안전띠까지 착용시켜주고, 넋이 나간 사람들에겐 산소 마스크를 제공했다.
쿵- 쿠궁!! 쾅!!!
이번엔 우측 날개에서 폭음이 들리고, 기내는 더욱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쒜에에에에에에엑-!!
우측 날개에 있던 엔진도 폭발한 건가?
찢어지는 바람 소리가 점점 거칠게 귓가를 때리기 시작했다.
“전부 고개 숙여!! 양손으로 머리 가려!!”
사람들에게 외치자, 김명석이 오만상을 쓰며 외쳤다.
이 와중에 통역까지 해주는 김명석.
곧 노르웨이 생존자들은 상체를 숙이고, 아이들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난 빠르게 생존자들의 위치를 살폈다.
무의식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빈자리가 많기에, 최대한 사람들이 똘똘 뭉쳐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곳의 의자를 붙잡고, 앞으로 발생할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계속해서 시뮬레이션 돌렸다.
몇 명이나 살릴 수 있을까.
다섯 명? 여섯 명?
‘젠장…….’
이래서 사람들 데려오는 건 부담스럽다고 한 건데.
띠- 띠- 띠- 띠- 띠- 띠-
듣기 싫은 경고음이 이성을 갉아먹는다.
가뜩이나 복잡한 머릿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물들였다.
“박재형!!”
그 순간 귓가로 들리는 설여원의 목소리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설여원은 모든 구명조끼를 한데 모아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올리고 있었다.
저게 효과가 있을까?
모르겠다.
충격 완화를 하려는 모양인데, 고작 구명조끼로 얼마나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최소한이라도 충격을 덜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끝까지 해봐야지 어쩌겠는가.
나도 좌석 밑에 있는 구명조끼를 꺼내서 황급히 엮었다.
부웅-
기체가 급격하게 하강할 때마다 무중력 상태의 부유감을 느꼈다.
그 뒤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전신을 짓누르는 중력과 함께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정신없이 중력에 얻어맞으면서도, 사람들의 위치와 숫자를 살폈다.
멀리 떨어져 앉은 사람들을 중앙 좌석으로 옮기고, 설여원이 만든 구명조끼 풍선으로 사람들을 덮었다.
띵- 동.
-꽉 잡아!!!
안내방송으로 들려오는 박재우의 목소리.
훙-
동시에 수직으로 낙하하는 항공기.
“씹……!”
황급히 옆좌석을 붙잡고, 시선을 돌려 창밖을 살폈다.
어느새 독 안개의 표면이 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높낮이가 일정한 것으로 보아 바다에 추락하는 것으로 보였다.
후웅-!
뒤이어 밑으로 쏠렸던 기수가 다시금 위로 들리고, 날개의 플랩이 활짝 펼쳐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장면…… 마치 데자뷰처럼 몇 시간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시몬이 시도했던 해상 착륙이었다.
“다들 꽉 잡아!!!”
일행을 향해 외치는 찰나.
쾅-!! 팡-!! 팡!! 촤아아아아-
전신을 짓누르는 충격과 함께 잠시나마 시야가 흐려지는 걸 느꼈다.
아니, 시야가 아니라 필름이 끊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안전벨트가 중요하다고 하는 건가?
무언가가 관자놀이를 때린 것 같다.
고막을 찌르는 이명이 이어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내 이름을 외치는 결인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깊은 수심에 잠긴 것처럼 흐릿하게 들리는 음성.
“박재형!!!”
뒤이어 내 멱살을 붙잡고 흔드는 악력으로 인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일렁이는 초점을 맞췄다.
“정신 차려 새끼야!!”
도끼눈을 뜨고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소리치는 최현의 얼굴을 보고, 얼떨떨한 정신을 다잡으며 물었다.
“사람들, 사람들은…….”
그제야 좌석 중앙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두 눈에 들어왔다.
다들 괜찮은 건가?
하나하나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기장실에 있던 박재우와 황덕록은 언제 왔는지, 시몬까지 합세해서 사람들을 챙기고 있었다.
생존자들의 이마와 코, 입술 등에서 피가 흐르고, 팔다리 골절상을 입은 사람도 보였다.
몇몇은 숨을 쉬지 않는지, 노르웨이 플레이어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정진영은 치료가 시급한 사람부터 빠르게 치료하는 모습을 보였다.
멍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인중을 간질이는 기이한 촉감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닦았다.
내 코에서도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쩍- 쩌쩍! 쾅!
뒤이어 유리를 깨고 기다란 부리를 들이미는 감염된 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비명이 들려오고, 생존자들의 표정으로 죽음의 공포가 엿보였다.
가라앉는 항공기.
그렇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
진퇴양난의 상황.
침착하자, 이럴수록 침착해야 한다.
한두 번 겪어본 상황도 아니잖아?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행동으로 보일 때다.
정신을 다잡고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이, 재우, 덕록이는 천장 지켜.”
“천장? 무슨 소리야 지금!”
“지키라면 지켜.”
뒤이어 하체를 접으며 읊조렸다.
“다이브, 광폭화, 가속, 핀치, 감지.”
츠으으으으-!
전신에서 증기가 피어나고, 근육 조직이 팽팽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폭발적으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과 이마 위로 불끈 솟아오른 핏대.
건틀릿을 착용하고 두 주먹을 말아쥐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설여원과 박재우, 황덕록은 각자의 무기를 쥐고 천장을 쳐다봤다.
쾅-!!!!
그대로 천장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튀어나온 먹잇감을 보고 철새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에 도끼눈을 뜨고 철새들을 응시하자, 감염된 새들의 날갯짓이 일순간 멈추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기를 내뿜어 반경 500m 내의 적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두려움이 각인된 적은 이동속도 30%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그러자 두려움이 각인된 새들은 본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풍덩!! 펑!! 풍덩!!
수백 마리의 새들이 바다로 추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 있는 새들.
이에 망설임 없이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꽤에에에엑!!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뱉은 새들.
이에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주둥이를 찢어버렸다.
-감염된 동물(성체)를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3000점이 주어집니다.
3천 카운트면 3단계 변종과 동일한 신체 능력을 지녔다는 뜻.
평균 신체 능력 1000.
감히 별것도 아닌 놈들이 앞길을 가로막아?
“짜증 나게.”
3단 뛰기를 이용해서 새들에게 달려들었다.
높이를 가늠할 여유도 없이, 쉴 틈 없이 격추했다.
3단 뛰기의 마지막 도약 때는 감염된 새의 등을 밟으며 횟수를 초기화했다.
새들이 알아서 덤벼들기에, 굳이 발판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었다.
날개가 없음에도 공중전을 펼칠 수 있었다.
* * *
“미친 거 아닙니까?!”
구멍 난 천장을 바라보던 김명석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반면에 시몬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뭐라 뭐라 입을 열었다.
김명석은 시몬의 말을 경청하더니,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저도 물어보고 싶네요. 박재형 씨는…… 정말 사람이 맞아요?”
“사람이니까 저희랑 같이 다니죠.”
설여원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김명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나쁜 뜻은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럼 뭐가 문제죠?”
“저 모습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방금 안구. 눈이 새까맣게 변한 건 변종들 특징 아닙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박재형 씨가 특별한 변종이냐고 묻는 겁니다. 인간과 변종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특이한 개체가 아니냐는…….”
“아니에요.”
설여원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김명석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장광설을 늘어놓아봤자 얻을 게 없는, 불필요한 대화였다.
이를 김명석도 알기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외면했다.
뒤이어 비행기의 깨진 유리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진영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고, 구멍 난 천장으로 올라서며 얘기했다.
“다들 나와!”
“위험합니다! 아직 감염된 새들 남았다고요!”
최현이 반대하자, 정진영은 인벤토리를 열고 강화제 알약 10개를 단숨에 삼키며 외쳤다.
“여기보다 거기가 더 위험해! 다들 알약 먹고 악으로 깡으로 지켜!”
지금은 신중하게 행동할 여력이 없었다.
시간을 지체하면 항공기는 가라앉을 것이고, 생존자들은 그대로 수장당할 것이다.
박재우와 황덕록은 강화제 알약을 섭취하고 정진영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제 손 잡아요!”
뒤이어 생존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진영은 접근하는 새들을 처리하고, 박재우와 황덕록은 생존자들을 받았으며,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은 밑에서 생존자들을 밀어주었다.
생존자들은 항공기 지붕과 날개에 올라서며 덜덜 떠는 모습을 보였다.
꽤에에에엑-!!
뒤이어 감염된 새가 생존자들을 발견하고 수직 낙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발견한 정진영은 망설임 없이 생존자들의 곁으로 몸을 날렸다.
촤학-!!
그대로 감염된 새의 머리를 잘라내고, 칼날에 묻은 혈흔을 털어내며 생존자들을 쳐다봤다.
생존자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정진영을 쳐다봤다.
결인들에겐 감염된 새들이 별것도 아니지만, 생존자들에게는 아니다.
거대한 포탄처럼 날아드는 괴수를, 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일도양단 낸 격이었다.
뒤이어 지붕으로 올라온 설여원과 전완수는 쇠뇌를 견착하며 접근하는 새들을 격추했다.
“5레벨 볼트 쓰지 마! 아까워!”
황덕록이 외치자, 설여원은 알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3레벨만 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잔뜩 겁에 질린 생존자들과 달리, 결인들에겐 여유가 있었다.
박재우는 상황을 주시하더니, 기내에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을 보고 아직 내부에 있는 최현에게 외쳤다.
“현아! 너 수영할 줄 알아?”
“할 줄 알지, 왜?”
“가서 LIFE RAFT라고 적힌 거 전부 찾아! 그 안에 있는 거 싹 다 가져와!”
최현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이 차오른 기내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물이 허리춤까지 차오를 무렵, 최현은 2개의 노란색 상자 같은 걸 들고 돌아왔다.
“이거 맞아?”
“어어 맞아. 던져.”
최현이 건네주자, 박재우는 바삐 손을 움직이며 얘기했다.
“어서 가서 비상구 전부 개방해.”
“……어?”
“수영할 줄 안다며?”
“아니 미친놈아! 뭔 정신 나간 소리야?! 비상구 열면 물 콸콸 들어올 텐데 어떻게 나가라고?”
“네 근력이면 충분히 나올 수 있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 물 무서워한다고 새꺄!”
“구명보트 하나에 최대 수용인원이 48명이야. 슬라이드 전부 열리면 하나에 15명은 태울 수 있어. 144명 중에 절반만 구할 거야?”
“……썅!”
최현이 욕설을 읊조리며 이동하는 찰나, 등 뒤로 박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개 쪽은 열지 마! 거긴 비상착수용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