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38화 (338/373)

--- 338 ---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84화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자, 서늘한 냉기가 두 볼을 스쳤다.

다른 사람들은 입구에서 대기하라고 한 뒤, 설여원과 최현, 그리고 정진영만 데리고 복도로 들어섰다.

설여원과 정진영은 손전등을 켜고 좌우를 살폈다.

“이거 봐, 벽이 전부 얼음이야.”

설여원은 벽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손가락에 묻은 물기를 살폈다.

최현은 하관을 덜덜 떨며 얘기했다.

“완전 냉동고나 다름없는데? 더럽게 추워.”

“이런 환경에서 씨앗을 보관하면 나중에 발화할 수 있나?”

정진영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에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그런 건 전문가가 신경 쓸 일이고. 우린 씨앗에 집중하죠.”

복도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넓은 공간.

커다란 지하터널에 가까웠다.

터널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자, 이번엔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부터 확인하려는 찰나, 정진영이 눈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다들 쉿.”

뒤이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지면에 손바닥을 갖다 대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손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더니, 우측을 살피며 읊조렸다.

“저쪽에 뭐 있다.”

감각이 나보다 뛰어난 것 같은데?

나도 느끼지 못한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하긴, 스킬을 쓰지 않는 한 일행의 신체 능력이 나보다 뛰어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알파에요?”

“알파는 아니야. 발소리가 있어.”

생존자가 있다더니, 전부 이곳에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쯤이면 사람의 모습이 아닌 좀비, 혹은 변종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우측을 바라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델타 발소리 같아.”

“숫자는.”

“불규칙한 발소리가 2개. 두 마리 같아.”

설여원의 브리핑을 듣고 스킬 감지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확인했다.

1분 뒤에 다시 사용할 수 있기에,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조금만 있다가 움직이자. 감지 1분 남았어.”

“델타 두 마리면 지금 들어가서 싸워도 되지 않을까?”

“델타는…….”

반박하려다 말고, 일행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의 일행이라면 델타3은 몰라도 2단계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그러자. 어차피 울음소리 들리면 위치 파악도 수월하니, 감지 없어도 가능하겠지.”

의견을 조율하고 발소리를 죽인 채 우측 터널로 이동했다.

흐흑…… 흑…… 흐흑…….

대략 50m 정도 들어갔을까?

좌측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단단한 철문이 내부 공간을 가리고 있었다.

최현은 카타나를 손에 쥐며 내게 물었다.

“아직 1분 안 지났어?”

“4, 3, 2, 1. 감지.”

감지를 사용하자, 벽 너머의 변종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에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문 앞에 똑바로 서 있는 델타.

감지를 사용하지 않고 대뜸 문을 열었다면 문고리를 잡은 사람은 신체의 어딘가가 뚫렸을 것이다.

다른 한 놈은 어디 있는 거지?

고개를 위로 들자, 천장에 붙어 있는 델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만 놈들의 인기척을 느낀 게 아니라, 델타 변종들도 우리의 인기척을 확인한 상태였다.

무턱대고 달려드는 알파와 달리 델타 변종은 기회를 엿보는 성향을 지녔다.

우리가 울음소리를 따라 이곳으로 올 것이라 판단하고, 미리 잠복하고 있었다.

이에 일행을 쳐다보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문 앞에 하나, 바로 위 천장에 붙어 있는 놈이 하나.”

“좀비는.”

“없어.”

“델타2만 두 마리야?”

“어.”

설여원은 카타나를 말아쥐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뒤이어 위아래로 손을 움직이며 물었다.

“머리가 어디쯤이야?”

아하?

하긴, 굳이 문을 열 필요 없이 카타나로 꿰뚫어버리면 그만이다.

이에 설여원을 옆으로 보내고 카타나를 손에 쥐었다.

문 너머로 보이는 자줏빛 델타의 얼굴을 조준하고,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카타나를 내질렀다.

카각-! 뚜둑!

단단한 철문을 뚫고 들어가는 짧은 파찰음과 함께, 이마를 꿰뚫는 촉감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곧 문 너머에 바짝 붙어 있던 델타2의 어깨가 축 늘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그러자 천장에 붙어 있는 또 다른 델타가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을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가 사망했으니, 상당히 광분한 모양이다.

놈은 문짝과 벽면에 난도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델타2의 손톱으로는 진도 6.5도 버티도록 지어진 벽과 문을 꿰뚫지 못했다.

“안에 무슨 일이야? 엄청 시끄럽네.”

최현이 묻기에, 델타의 위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남은 한 놈이 난동을 부리고 있어.”

“저것들도 전우애 같은 게 있는 거야?”

“그건 나도 모르겠다.”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난동을 부리는 델타2의 머리를 조준했다.

놈이 문짝을 긁기 위해 앞으로 다가온 순간.

카각-!

철문을 관통하는 파찰음과 함께, 일직선으로 카타나를 뻗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동시에 눈앞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야비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신체 능력을 믿고 방심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처리하는 게 옳다.

남은 델타까지 처리한 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러자 코끝을 자극하는 비린내가 터널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씹…… 이거 뭔 냄새야.”

최현도 미간을 찌푸리며 오른팔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반면에 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방 안의 모습을 살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 안에는 열댓 구의 시신이 있었고, 시신은 전부 썩어 문드러진 상태였다.

오랫동안 방치된 시신들.

터널과 달리 따듯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휴식 공간 같은 건가?

시드볼트는 하나의 거대한 벙커와 같다고 오혜선에게 들었다.

이는 비상 전력이 들어온다는 뜻이고, 지하에 갇혀 있던 생존자들은 살기 위해 이 방에 모였을 것이다.

정진영도 인상을 찌푸린 채 내부 상황을 살피더니, 구역질을 참으며 얘기했다.

“여기 있던 델타 변종들,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 것 같네.”

안개가 퍼진 초기, 이곳에 있던 생존자들은 탈출에 실패하고 이곳에 몸을 숨긴 모양이다.

대피한 생존자들 사이에 감염자가 있었고, 이곳에 숨어 있던 생존자들은 한순간에 파멸한 게 아닐까?

또한 좀비로 변이된 이들 중 두 마리의 공명 좀비가 있었고, 세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며 델타로 변이된 모양이다.

이곳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오는 이 하나 없는 좁은 방 안에서 반년 가까이 지낸 것이다.

설여원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시신은 나중에 다시 와서 정리하자. 지금은 씨앗부터 챙겨.”

“……그래.”

열었던 방문을 조심스레 닫고, 다시금 저장고 확인에 집중했다.

죽어서도 편히 눈 감지 못한 이들.

빛 한 점 없는 좁디좁은 방 안에서 식량이 되어 썩어간 이들이다.

추후 정리를 마치면, 저들의 시신을 밖에 묻어주는 게 인간의 도리라 생각되었다.

* * *

저장고로 이동하는 과정에 터널 구석에 놓인 시신 한 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체의 절반 이상을 무언가가 파먹은 것처럼 사방에 이빨 자국이 있었다.

기이한 점은 시신의 오른손에 권총이 들려 있었고, 관자놀이에 총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자결한 것이다.

최현은 시신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이 사람이야.”

“뭐가.”

“알파 변종 여기로 유인한 사람. 시몬 씨 동료.”

그럼 좀비로 변이되기 전에 스스로 자결한 건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시신은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창백하다 못해 고드름이 턱밑에 매달릴 정도로.

그러다 문득, 왼손에 쥐고 있는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종이를 분리하고, 종이에 적힌 글자를 확인했다.

노르웨이어로 적혀 있어서 도통 알 수 없었다.

물기 때문에 글자의 일부가 흐릿하게 변했지만, 급속도로 얼어붙는 바람에 내용은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종이가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손에 쥐고, 뒤에 있는 최현에게 얘기했다.

“현아, 이거 시몬 씨한테 전해줘.”

“지금?”

“들고 다니다가 깨질 수도 있잖아.”

이곳 온도는 종이를 구기는 게 아니라 깨뜨리는 수준이다.

최현을 입구로 돌려보내고, 남은 사람들끼리 계속해서 저장고 수색에 들어갔다.

키릭…… 키리릭…….

우측 저장고에 들어서는 찰나, 귓가를 간질이는 낡은 수레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보이는 진열대는 E 진열대.

한국과 마찬가지로 A부터 Z까지 진열대의 이름과 번호가 붙어 있었다.

소리는 A 진열대 부근에서 들려왔다.

아직 감지의 지속 시간이 남아 있기에, 숨죽인 채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A 진열대 앞에서 알파2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런데 좀…… 이상한데?

기운이 없다고 해야 좋을지,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카타나를 쥐고 성큼성큼 나아가자, 전신이 얼어붙은 알파2를 발견할 수 있었다.

뒷다리는 바닥과 하나가 되어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

굶주림과 추위 속에, 알파 변종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아니지, 5개월이 넘도록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았으니, 지금껏 살아 있는 게 놀랍다고 해야 좋을까?

설여원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꿈틀거리는 변종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이미 여긴…… 내버려 두면 자멸하는 상태였네.”

“…….”

뒤늦게 터널에 있던 시신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단순히 얼어 죽은 게 아니었다.

급속도로 얼어붙은 거지.

터널에 있던 남자는 알파를 죽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곳에서 날뛰지 못하도록 물을 끼얹은 것이다.

정확한 온도는 모르겠지만, 체감상 이곳의 온도는 영하 20도.

본인도 고통스러웠을 텐데, 그게 최선이라 생각한 것이다.

착잡한 마음에 터널 방면을 살폈다.

본인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을까.

동료 시몬을 구해야 하고, 씨앗도 지켜야 했을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최후의 방법은…… 본인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쓸쓸했을 것이다.

고독했을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기에, 그는 마지막까지 사명감을 다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자, 눈앞의 알파2가 치가 떨릴 정도로 증오스러웠다.

이에 카타나를 말아쥐고 그대로 알파2의 머리를 잘라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머리를 자르면 분수처럼 피가 솟구치기 마련인데, 이놈은 피도 별로 흐르지 않았다.

알파를 처리하고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정진영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최선이라 생각했겠지.”

정진영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콧잔등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어서 씨앗 챙겨서 나가자. 춥다.”

터널에 있는 남자가 목숨과 맞바꾸어 지킨 씨앗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저장고에 있는 모든 씨앗을 챙겼다.

* * *

씨앗을 챙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변종의 정리를 마치고 노르웨이 파티원들을 부르자, 그들은 씨앗이 있는 모든 위치를 알려주었다.

결인들은 시몬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씨앗을 담았다.

본래 씨앗 담당은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 윤혜리, 김희연이었다.

하지만 윤혜리와 김희연이 없기에, 그 빈자리는 박재우와 황덕록이 대신했다.

2시간 동안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챙긴 결과, 눈앞으로 이러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클리어 목표: 전 세계 씨앗의 60% 이상을 수집하여 아크로 이동해야 합니다.

-현재 확보된 씨앗: 72%.

-파티 소리결이 목표 수치를 달성했습니다.

-파티원과 함께 아크로 이동하세요.

대한민국 시드볼트보다 4배 이상 많은 씨앗 종자가 이곳에 있기에, 예상대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심지어 목표치를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전완수는 푸르죽죽해진 입술을 달달 떨며 얘기했다.

“이, 이제 나, 나가도 되는 거지?”

모두의 입술이 퍼렇게 질려 있었다.

눈썹에도 눈이 내린 것처럼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 서려 있었다.

나도 다를 바 없기에, 하관을 덜덜 떨며 얘기했다.

“고, 공항으로 이, 이동해서, 모닥불부터.”

“저, 저 방에 있…… 허윽, 있는 시, 시신들은?”

설여원은 양팔로 본인의 전신을 비비며 물었다.

시신도 정리해야 하는데, 지금은 도저히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러자 노르웨이 파티와 함께 있던 김명석이 입을 열었다.

“시신은 저희가 치울 테니 먼저 가서 쉬어요.”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시몬의 동료였어요. 오는 길은 여러분이 정리해줬지만, 가는 길은 시몬이 배웅해야죠.”

이에 시몬을 쳐다보자, 그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종이에 적혀 있던 내용을 확인한 것 같은데, 대체 뭐라고 적혀 있던 걸까?

“쪽지, 쪽지에 뭐라고 적혀 있던가요?”

김명석을 쳐다보며 묻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이곳을 다시 찾는 이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닌 인류와 지구를 위해 씨앗을 사용해 주기 바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