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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79화
정진영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짓더니, 후다닥 안전벨트를 매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털털털털털털-
기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상 상황마저 좋지 않은 건가?
지나치게 급강하하는 것 같은데?
띵- 동.
안전벨트 착용등이 들어오고, 기내로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다들 안전벨트 착용해!
박재우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양손으로 앞좌석을 붙잡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창밖을 살폈다.
독 안개에 뒤덮인 지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높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독 안개를 뚫고 우뚝 솟은 고층 건물이 듬성듬성 보인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지면.
-여원아! 기장실로 와줘!
안내 방송으로 들리는 박재우의 목소리에, 설여원은 안전벨트를 풀고 기장실로 향했다.
흔들리는 기내에서 엉거주춤 거리며 힘겹게 이동하더니, 박재우에게 바깥 상황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박재우와 황덕록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착륙이 불가능한 모양이다.
설여원의 시계도 500m가 한계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열기 위해선 설여원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항공기가 독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쒸이이이이익-!
다시금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에 기장실을 바라보며 외쳤다.
“왜 다시 올라가? 착륙하는 거 아니야?!”
“여긴 못 내려!!”
왜 못 내린다는 거야?
이에 안전벨트를 풀고 힘겹게 균형을 잡으며 기장실로 향했다.
기장실 안에도 승무원이 앉을 수 있는 비상용 접이식 의자가 있었다.
설여원은 그곳에 앉아 활주로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이에 박재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헬싱키는 포기하는 거야?”
“여긴 못 내려. 활주로에 좀비들이 너무 많아.”
“좀비들? 그냥 밀고 들어가면 안 돼?”
“바퀴가 못 버틸 거야. 조금이라도 기울어지면 비행기 뽀각난다.”
비행기가 부서진다고?
그러자 옆에 있던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부서지는 정도가 아니야. 폭발 위험까지 있어.”
“그럼 어떡해. 연료는 충분해?”
“넉넉하진 않아.”
“다른 공항까지 갈 정도는 되는 거지?”
“…….”
황덕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연료가 부족한 건가?
그러자 옆에 있던 박재우가 대신 입을 열었다.
“헬싱키가 이런 상황이면 우리가 생각했던 다른 공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더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고.”
“방안이 없는 거야?”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의 인구 밀집도를 생각했을 때, 차라리 트롬쇠로 바로 가는 게 나을 수 있어.”
“그럼 그렇게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트롬쇠로 가는 순간 선택지가 줄어들어.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을 못 찾으면 그대로 바다에 추락이야.”
이번 선택에 따라 착륙이냐 추락이냐가 정해진다는 건가?
그러자 뒤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트롬쇠로 가.”
시간이 촉박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홀로그램으로 무언가를 빠르게 살피고 있었다.
파티 목록과 공격대 목록이었다.
설마, 노르웨이에 생존한 파티가 있는 건가?
“파티 목록에 아크에 도착한 파티명 뜨는 거 알지? 중국에 있던 파티 홍런이 톈진 아크에 도착했을 때처럼.”
물론 기억하고 있다.
이에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노르웨이에 생존한 플레이어가 있어?”
“급하게 랭킹에 있는 모든 파티 확인했어. 이거 봐봐, 아크에 도착한 노르웨이 국적의 파티가 있어. 랭킹 56위.”
“아크 위치는?”
“트롬쇠위아 섬. 이름부터 트롬쇠에 있는 섬 같지 않아?”
“…….”
“섬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아크가 있을 정도면 그 섬에 공항도 있을 거야.”
대한민국 아크의 위치를 서울, 부산 이렇게 알려주는 것처럼 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앞에 있던 박재우가 얘기했다.
“공항 근처에 아크가 있다면 시야 확보도 쉽겠지.”
뒤이어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 * *
그 뒤로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박재우는 뒤에 있는 설여원을 불렀다.
“여원아, 활주로 보이면 얘기해 줘.”
설여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종석 의자를 붙잡은 채 창밖을 살폈다.
정면을 유심히 살피더니, 아랫입술을 핥으며 얘기했다.
“아직 보이는 건 없어.”
“지금 지면이랑 가까운 건 맞아?”
“어, 400에서 500m 유지하면서 천천히 내려가.”
설여원의 설명에 따라, 박재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었다.
바퀴를 내리고,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했다.
“보인다.”
설여원의 말에 박재우와 황덕록은 더욱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올라가, 올라가!! 타이밍 안 맞아. 활주로 절반은 지나쳤어.”
설여원의 지시에 따라 박재우는 이 악물고 기수를 높였다.
옆에 있던 황덕록은 불안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이제 연료도 없어. 다음 기회가 마지막이야.”
“이번엔 무조건 착륙시킨다.”
시야 확보가 어렵기에, 안전하게 연착륙시키기 위해선 기체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서서히 착륙시켜야 한다.
박재우는 두 눈에 힘을 주며 주변 지형을 살폈다.
조금 전의 기억을 되새기며, 크게 한 바퀴를 돌아 다시금 활주로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주변 지형이라고 해봐야 평지와 산맥을 따라 흐르는 독 안개가 전부였다.
독 안개의 굴곡을 보고, 활주로의 시작점을 예측하고 있었다.
설여원은 목이 빠지도록 정면을 살피며 얘기했다.
“내려, 천천히.”
설여원 역시 눈도 깜박이지 않고 실시간으로 브리핑했다.
“300m, 200m, 100m, 앞바퀴 독 안개 표면에 닿았어.”
“다들 꽉 잡아.”
퉁! 쿵- 화아아아아악!!!
양쪽 날개의 플랩이 활짝 열리고, 활주로에 내려온 항공기는 급격하게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입술이 타들어 갔다.
신기에 가까운 실력으로, 박재우와 황덕록은 완벽하게 항공기를 착륙시켰다.
물론 거리계산을 잘못해서 한 번 고도를 높였다가 돌아오긴 했지만, 이 정도면 완벽에 가까웠다.
비행기가 똑바로 안착하고,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자 기내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펴자, 전신에 힘이 들어간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손바닥에 고인 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설여원을 쳐다보자, 설여원은 한 차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을 부축하자,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 모양이다.
박재우와 황덕록에게 고생 많았다고 하자, 두 사람은 물에 젖은 수건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누구보다 긴장했을 것이다.
박재우는 반쯤 풀린 눈으로 안내 방송을 시작했다.
“우리 비행기, 안전하게 트롬쇠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남은 하루 행복한 시간 되시고,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다시 농담할 기운이 생긴 모양이다.
박재우가 방송을 마치자, 황덕록은 박재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뒤이어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트롬쇠 공항 맞아?”
“맞아.”
설여원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하자, 전완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되물었다.
“관제탑이랑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거야?”
“착륙할 때 봤어. 트롬쇠 공항이라고 적혀 있는 거.”
그 짧은 찰나에 그것까지 봤다고?
하긴, 일행의 신체 능력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
이는 동체 시력도 일반인보다 수십 배 높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박재우와 황덕록이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뛰어난 감각 덕인지도 모르겠다.
뒤이어 박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항에 바짝 붙일까, 아니면 여기 세워둘까.”
“어차피 항공유 채워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
“바깥 상황은 우리가 확인할 테니, 재우랑 덕록이는 항공기 점검해 줘.”
“알았어.”
박재우는 기지개를 켜며 황덕록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항공기는 두 사람에게 맡기고, 설여원과 난 기내로 돌아왔다.
전완수와 최현, 정진영은 보호대의 내구도를 살피며 벌써부터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원아, 착륙할 때 아크로 보이는 장소 있었어?”
“안개가 걷힌 부분이 있긴 있었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제대로 보진 못했는데, 섬 남동쪽 방향이었어.”
“우리 위치는?”
“섬 북서쪽.”
“거리는 얼마나 될 것 같아?”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서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는데, 아마 5㎞에서 6㎞ 정도?”
설여원의 설명을 듣고 일행에게 얘기했다.
“일단 공항 상태부터 확인하고 이동하자.”
“활주로에 좀비가 없어, 이미 정리 끝난 거 아니야?”
전완수가 묻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혹시 모르잖아. 그리고 착륙할 때 감염된 새들도 없었어. 어떤 상황인지 파악부터 하고 시드볼트로 이동하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완수야.”
“응?”
“넌 나오지 말고 재우, 덕록이랑 같이 있어줘.”
“왜?”
“독 안개 제거기 있어야지.”
“아 맞다.”
전완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내심 외국까지 나왔으니, 주변을 거닐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음 편히 관광이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기에, 서둘러 입구로 향했다.
입구를 열자, 자욱한 안개와 함께 멀찍이서 들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착륙하며 발생한 소음으로 인해 좀비들의 청각이 자극받은 모양이다.
규모는 크지 않은 것 같아서, 한발 앞서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탓!
높이가 상당하지만, 결인들에겐 부담스럽지 않은 높이였다.
최현과 정진영, 설여원이 내린 걸 확인하고 입구에 있는 전완수에게 외쳤다.
“완수야! 재우랑 덕록이 데리고 격납고부터 찾아!”
“알았어! 급유하고 점검 끝나면 무전 칠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얘기하고!”
“오케이!”
서서히 비행기가 이동하는 걸 확인한 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낯선 땅, 낯선 환경이라는 걸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공기부터 달랐다.
“와 씨…… 더, 더럽게 추운데?”
최현은 전신을 오들오들 떨었다.
날씨도 흐리고, 어느새 노을도 사라졌다.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며 영하로 내려간 것 같다.
설여원은 인벤토리를 열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롱패딩과 방한 귀마개를 꺼냈다.
모두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얘기했다.
“하여튼, 다들 준비성이 이렇게 없어.”
“오오! 외쳐 갓여원!”
역시 설여원.
추위까지 예상하고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챙길 줄이야.
인벤토리에 라면만 넣어온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롱패딩과 장갑, 귀마개를 착용하니 확실히 따뜻해졌다.
다만 움직임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두두두두두-
뒤이어 이곳으로 접근하는 좀비들의 발소리를 듣고, 소리의 근원지를 응시하며 카타나를 손에 쥐었다.
설여원도 진원지를 응시하며 얘기했다.
“공항 뒤편에서 들리는 소리야. 따라와.”
설여원을 뒤따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감지.”
-8분 동안 50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저 멀리, 푸른색으로 보이는 좀비들이 한 줄로 접근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숫자는 많아 봐야 300마리.
좀비들과 우리의 높낮이가 다른 것으로 보아, 다리를 건너오는 것 같다.
하긴, 이곳은 트롬쇠위아 섬이라고 했다.
섬이라면 육지와 연결된 다리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좀비 사냥이 주된 목적이 아니니, 최대한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스발바르 제도로 이동해야 한다.
이에 하체를 접으며 읊조렸다.
“가속.”
쾅-!!!
좀비들이 시끄럽게 울지 못하도록, 쏜살같이 정리에 들어갔다.
* * *
예상대로 300마리 정도의 좀비가 공항으로 접근했다.
정리에 어려움은 없었다.
급가속을 사용한 게 민망할 정도로.
모든 좀비를 정리하고 주변 지형을 살피기 위해 공항 옥상으로 올라왔다.
정진영은 칼날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얘기했다.
“여긴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좀비들 피도 끈적한 것 같네.”
확실히 좀비들의 움직임도 둔했다.
좀비들이 추위를 타진 않겠지만, 인간의 육체를 지닌 이상 살점이 얼어붙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 이상한 점은…… 공항의 뒤편부터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다리까지 새하얀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어째서 활주로만 깨끗한 거지?
이에 옆에 있는 설여원에게 물었다.
“여원아, 근처에 특이한 건 없어?”
“좀비들 움직임은 없고, 사람들 발자국도 안 보여. 온통 눈밭이야.”
온통 눈밭이라면 공항의 북쪽 방면은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는 뜻이다.
설여원은 남쪽 방면을 살피며 얘기했다.
“뭔가 이상해, 활주로만 깨끗하잖아.”
설여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노르웨이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공항을 관리하고 있는…….
부우웅- 부웅-
그 순간, 귓가를 간질이는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자, 저녁 어스름을 뚫고 이곳으로 접근하는 두 대의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활주로를 가로질러 공항 입구에 정차하더니, 상향등을 등지고 차량에서 내리는 사람들.
플레이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