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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32화 (33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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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78화

“밟아! 더 밟아! 빨리!”

기내에 있던 전완수가 소리치자, 기장실에서 박재우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게 자동차냐?! 밟긴 뭘 밟아!”

“속도 좀 높이라고!”

“이게 한계야! 스로틀 최대라고!”

“어떻게 좀 해봐 좀!!”

“하고 있잖아! 보채지 좀 마!”

전완수와 박재우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항공기를 쫓아오는 새를 주시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최현이 읊조렸다.

“와…… 씨발 존나 커.”

저게 뭔지 몰라도,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완수는 창문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며 얘기했다.

“온다, 온다! 왔어! 왔어!”

“진정해. 다시 벌어지고 있어. 점점 지치는 것 같아.”

“뭐야 저게? 익룡이냐? 살아 있는 화석이야?”

전완수가 호들갑을 떨든 말든, 구석에 있는 정진영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지금…… 기도하는 거야?

물론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는 하지만, 정진영의 기도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난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창밖을 응시했다.

제발 그만 따라와라.

고도가 점점 높아지자, 항공기를 쫓아오던 괴생명체는 결국 날갯짓을 멈추며 괴성을 내질렀다.

까아아아아악!!

명확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까악 하고 운 것 같다.

전완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바, 방금 까악하고 울지 않았어?”

“그런 것 같아. 입 모양도 그렇고.”

“까마귀냐? 저게 까마귀야?”

아무래도 감염된 까마귀가 아닐까 싶다.

설여원은 이곳을 쳐다보며 물었다.

“멈췄어? 이제 안 쫓아오는 거야?”

“어, 그런데 좀…… 불안하네.”

“뭐가?”

“까마귀가 이 정도 높이까지 올라왔어.”

이에 기장실로 걸어가 박재우에게 물었다.

“재우야, 지금 고도 몇 미터야?”

“방금 1만 5000ft였어.”

1만 5000ft면 대략 4500m.

이게 가능해?

아무리 감염된 까마귀라도 그렇지.

4500m 상공까지 날 수 있다고?

더 큰 새들은 더 높이 올라올 것이다.

“우리 몇 미터 상공으로 날아야 돼?”

“핀란드까지 가려면 최대한 연료 아껴야 돼. 3만 5000ft 유지하는 게 최선이야.”

3만 5000ft.

그 정도면 안전하지 않을까?

3만 5000ft면 지상에서 10㎞는 떨어진 거리니 말이다.

비행기가 뜬 이상 되돌릴 수 없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착륙이다.

다시 고도를 낮췄을 때, 부디 버드 스트라이크만 만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 * *

아크의 2번 게이트, 이정우는 현재 시각을 살피며 뒤에 있는 한월에게 물었다.

“한월 씨, 안상진 씨랑 연결된 무전기 있나요?”

“여기요.”

한월이 무전기를 건네주자, 이정우는 곧장 무전기를 들었다.

“안상진 씨 들리십니까?”

치지직- 치직-

-정우니?

“네, 지금 어디세요?”

-아직 김포공항이야. 출발할 때 영 불안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행히 잘 뜬 거 같다.

“불안해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몰라도, 갑자기 커다란 새가 비행기 쫓아가서.

안상진의 말에 주변에 있던 일행은 뒤통수라도 맞은 것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들도 망각하고 있었다.

새도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왠지, 한동안 새들이 안 보인다 싶었어요.”

뒤에 있던 윤혜리가 얘기하자, 김희연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날씨가 추워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이정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무전기를 들었다.

“지금은 문제없는 거죠?”

-어, 중간에 쫓아가는 걸 포기하는 것 같더라.

“일단…… 저희 만나서 얘기하죠. 제가 김포공항으로 갈게요.”

-이리로 온다고? 아크에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어제 부화장을 본 것 같은데, 같이 확인하러 가주셨으면 해서요.”

-부화장이 있다고? 어디에.

“신도림역 근처요.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E라고 적힌 간판에 감염된 식물 줄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이정우가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얘기하자, 오래 지나지 않아 안상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도림역 근처에 커다란 마트 있는 건 나도 본 것 같아. 같이 가서 확인하자.

“네, 제가 그럼 김포공항으로 갈게요.”

-아니야 거기 있어. 내가 가는 게 빨라. 4번 게이트 앞에서 기다려.

이정우는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뒤에 있는 윤혜리와 김희연을 쳐다봤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윤혜리와 김희연은 무기부터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이동하려고요?”

상황을 지켜보던 한월이 묻자,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안일하게 있는 것보다 뭐라도 해야죠.”

“그럼 저희도 같이 가요.”

“아니요, 여러분은 따로 해주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정우의 말에 진선균과 최이경이 다가왔다.

각 파티의 파티장이 모이자, 이정우는 여의도 전경을 살피며 얘기했다.

“여의도에 벙커가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위치 아십니까?”

“여의도 벙커요?”

최이경은 금시초문인 듯,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진선균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얘기했다.

“본 것 같습니다. IFC몰 밑에 SeMa벙커 말씀하시는 겁니까?”

진선균의 대답에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거기 생존자들 전부 들어갈 수 있나요?”

“전부 들어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200평 안 될 것 같은데…….”

“국회의사당 밑에는 벙커 없어요?”

이정우의 물음에 진선균은 대답 대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한월이 손가락을 튕기며 얘기했다.

“있긴 있어요. 벙커라고 부르긴 어렵지만, 복도처럼 생긴 지하 공간을 봤습니다.”

“넓어요?”

“거긴 넓어요. 일반인에게 비공개된 장소 같았는데, 다소 비좁더라도 전부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국회의사당 지하복도에 생존자들 전부 들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모든 출입구 보강해 주세요.”

이정우의 지시에 각 파티의 파티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이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일주일입니다.”

“네?”

“생존자들은 지상에 있는 것보다 지하에 숨는 게 이롭습니다.”

일전에 변종만 봐도 그랬다.

더는 아크의 외벽만 믿고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물며 외계의 침공이 시작되면 아크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그러니 완벽하진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진선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방어선 구축은 저희한테 맡기세요.”

“시간이 없으니 생존자들도 전부 나와서 도와야 합니다. 숙소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거리가 꽤 되는데, 아까 말씀하신 벙커도 손봐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정우는 상황을 정리하고 인벤토리에 넣어둔 창을 꺼내며 얘기했다.

“움직입시다.”

* * *

4번 게이트 앞의 무너진 서울교를 지나자, 이정우의 뒤에 있던 김희연이 입을 열었다.

“저 앞에 안상진 씨 보여요.”

김희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하자,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소리결을 기다리는 안상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상진은 이정우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곧 남쪽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부화장이 마트를 휘감고 있으면, 부화장 정리하고 마트 내부도 확인할까?”

“네, 챙길 수 있는 건 최대한 챙기고, 정리가 필요한 건 바로 정리하죠.”

“가는 길에 소방서 있는데, 거기서 살수차 구해서 가자.”

지금은 박재형과 설여원, 전완수가 없다.

감염된 식물을 상대하기 위한 필수 요소 중 하나가 살수차량이었다.

이에 이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안상진 씨는 그동안 감염된 식물 어떻게 상대했어요?”

“물량으로 밀어붙였지. 소화전 이용해서 상대하거나.”

“아…….”

“솔직히 너희한테 인벤토리 기능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내가 뭘 알겠어.”

“…….”

“너희가 살수차 들고 다니면서 싸우는 것 보고 많이 놀랐다.”

“저도 놀랐어요. 살수차를 인벤토리에 넣을 생각을 하는 것도.”

이정우는 하남에서 봤던 전완수의 엉뚱한 행동을 떠올렸다.

살수차를 버릴 수도 없고, 끌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전완수는 대뜸 인벤토리를 열고 살수차를 넣었다.

억지로 욱여넣더니, 코인만 사용하면 충분히 들고 다닐 수 있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 있기에,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세상이 발전하는 것 아닐까?

“참…… 소리결에는 신기한 녀석들이 많죠?”

이정우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묻자, 안상진은 덩달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내 눈엔 너도 신기해.”

“네?”

“대장 좀비를 보고 당황하긴커녕, 대화할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

“너희의 유연한 사고가 부럽네.”

안상진은 남쪽 방면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30대 중반만 돼도 머리가 굳어. 엉뚱한 아이디어는 바보 소리를 듣고, 정해진 틀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똑 부러진다는 소리를 듣지.”

“어떻게 보면…… 저희가 그만큼 미성숙하다는 것 아닐까요.”

“미성숙함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위에 있어야 그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거야.”

“…….”

안상진의 말에 이정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안상진의 말에 선뜻 대답하기보다, 이해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천성이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러자 안상진은 이정우의 등을 토닥이며 얘기했다.

“엉뚱하고, 저돌적이고, 각자의 개성이 강한 소리결을 하나로 합친 건 너야.”

“재형이가 잘해준 덕이죠.”

“네가 뒤에서 묵묵하게 따라주고 조율해 준 덕이지.”

“…….”

“네가 잘한 거야.”

“모두가 잘한 거죠.”

이정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안상진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볼수록 마음에 드네.”

“네?”

“이러니 내가 소리결을 좋아할 수밖에.”

안상진은 호쾌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이정우가 소리결의 파티장이라서 다행이라고.

박재형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한 발 뒤에서 바라볼 줄 아는 이정우가 파티장 자리에 더 적합할 뿐이었다.

* * *

출발할 때 잔뜩 긴장해서 그런지, 안전 고도에 올라온 뒤로 졸음이 쏟아졌다.

박재우와 황덕록에게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게 깊은 숙면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부족한 수면을 채우고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기내에서 들리는 박재우의 목소리에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기장이 알립니다. 현재 저희 비행기 높새바람을 타고 운항 중이며, 잠시 후 헬싱키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높새바람을 타고 운항한다는 말에 실소가 터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전완수와 최현, 정진영, 설여원도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창밖을 바라보자, 푸르른 바다는 보이지 않고 수면에 깔린 독 안개만 눈에 들어온다.

지표면은 몰라도, 바다까지 독 안개에 뒤덮여 있을 줄이야.

바다와 지면을 구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바다 위에 깔린 독 안개가 더욱 짙어 보였다.

정진영은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바라보더니,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여기 어디야?”

“헬싱키 거의 다 왔대요.”

“그럼…… 여기가 발트해야? 핀란드만인가?”

“전 몰라요.”

세계 지리까지 줄줄 외우고 다니지 않기에, 길 안내는 일행에게 맡겨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장실로 향하자, 박재우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얘기했다.

“앉아 있어. 곧 착륙할 거야.”

“부유감 정도는 내 힘으로 충분…….”

훙-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방금…… 비행기가 뚝 떨어지지 않았나?

10m, 20m 위에서 느끼는 부유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놀란 눈으로 박재우를 쳐다보자, 이번엔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가뜩이나 착륙이 제일 어려운데, 지금은 관제탑의 신호도 없어.”

“그럼 어떡해?”

“육안으로 보고 착륙해야 되는데, 독 안개 때문에 지면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도 어려워.”

고개를 들고 창밖을 살피자, 눈 씻고 찾아도 활주로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활주로뿐만 아니라 지면이 보이지 않았다.

이걸 착륙시킨다고?

“야, 이거 착륙할 수 있어?”

마른침을 삼키며 묻자, 박재우는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모르겠다.”

“……뭐?”

“그러니 빨리 가서 앉아. 안전벨트 붙잡고 살려달라고 기도해.”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도에 목숨을 맡기라고?

장난해?

아무리 신체 능력이 증가했다 한들, 이건 감당하기 버거운 공포였다.

알파5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함에서 오는 공포였다.

이에 후다닥 자리로 돌아와 안전벨트를 매자, 뒤에서 정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무슨 일이야? 표정이 왜 그래.”

“안전벨트 매요.”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천국 가서 화장실 가기 싶으면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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