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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30화 (33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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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76화

상황을 정리하고 로비를 나서자, 한월이 다가오며 얘기했다.

“안상진한테 무전 보내둘게요.”

“안상진 씨는 왜요?”

“같이 움직여요. 그래야 저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하긴, 보라색으로 보이는 좀비를 보고 경계할 수도 있으니, 처음부터 같이 움직이는 게 이로울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자, 한월은 무전기를 들고 안상진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인들과 공격대원들은 외벽까지 배웅하겠다며 따라나섰다.

63빌딩을 지나 여의도역에 도달하자, 의사당대로에 모여 있는 생존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커다란 캠프파이어가 곳곳에 보이고, 그곳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생존자들.

“소리결이다!!”

“어? 박재형!!”

“와아아아!”

내 모습을 발견한 생존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소리치며 일어났다.

그러자 뒤에 있던 수천 명의 사람이 우르르 일어서는 모습을 보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의견 마찰 때문에 힘들었는데,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박! 재! 형! 박! 재! 형!”

“소! 리! 결! 소! 리! 결!”

하나 된 목소리로 소리결과 내 이름을 외친다.

고막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군중의 목소리.

몇몇 사람들은 내 곁으로 달려와 반쯤 울먹이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당황스럽다고 해야 좋을까.

조금은 무서운 느낌.

반면에 전완수는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생존자들과 함께 소리결을 외치며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흔히 말하는 관종과 아닌 사람의 차이였다.

난…… 생존자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뒤이어 코끝을 간질이는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향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생존자들이 부대찌개와 라면을 먹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뒤를 돌아보자, 뒤따라오던 이정우가 얘기했다.

“마트란 마트는 전부 털었어.”

양평동 정리가 한창이던 시점, 윤혜리는 마트를 털자고 했다.

내가 기절한 사이에 마트를 정리하고, 거기서 얻은 재료로 부대찌개와 라면을 끓인 모양이다.

포만감 알약으로 삶을 연명하던 생존자들에게 부대찌개와 라면은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활력이 넘치는 생존자들을 보고, 나도 엷은 미소가 번졌다.

이제야 사람 사는 곳 같다.

의사당대로를 지나며 많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뒤이어 내 앞을 가로막는 두 명의 생존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침에 많은 사람에게 붙잡혔던 남자와, 안경알이 깨진 여학생이었다.

남자의 표정에서 무수히 많은 감정이 엿보였다.

표정만 봐도, 그 가슴 벅찬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학생은 나를 향해 꾸벅 고개 숙이며 환하게 웃었다.

이에 여학생의 앞으로 다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안경점 가서 안경부터 맞춰야겠네.”

“아, 네!”

“다친 곳은 괜찮아?”

“네 괜찮아요.”

지금껏 먼지 낀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것이다.

앞으로는…… 깨끗한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여학생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지금보다 맑은 눈으로 미래를 마주하면 좋겠다.

생존자들의 열의와 같은 환호와 응원을 받으며 여의2교로 이어지는 2번 게이트로 향했다.

2번 게이트 앞에 도착하자, 김포공항으로 이동할 일행은 각자의 장비를 살피며 내 옆으로 붙었다.

뒤를 돌아보자, 모든 공격대원과 수많은 생존자가 배웅을 나온 상태였다.

거참, 밥 먹고 있어도 되는데.

많은 사람의 관심에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고,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이에 모두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다녀오겠습니다.”

* * *

서부간선도로가 보일 때까지 계속해서 직진했다.

이미 좀비와 변종의 정리가 끝난 상태였고, 시체들도 전부 사라졌다.

내가 기절한 사이 모두가 분주히 움직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목동교 앞에 도달하자, 200m 전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감지.”

-8분 동안 50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감지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10분입니다.

목동교를 가득 채운 보랏빛 향연.

그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한 남자.

안상진이다.

“안상진 씨?”

그의 이름을 부르자, 오른손을 들고 좌우로 흔드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안상진은 내 곁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김포공항으로 간다고 들었어. 맞아?”

“네. 맞습니다.”

“김포공항은 안개 퍼진 초기에 정리가 끝난 곳이라, 좀비나 변종은 별로 없을 거야.”

“초기에요?”

“너도나도 한국을 탈출하려고 했거든. 전 세계에 안개가 퍼졌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럼 운항 가능한 비행기만 확인하면 되는 건가?

안상진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향하자, 보라색으로 보이는 수하들이 좌우로 이동하며 길을 열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살아남은 길거리의 좀비도 수하들이 처리했다.

이를 보고 안상진에게 물었다.

“한월 씨가 밖으로 나올 때마다 이런 식으로 한 거예요?”

“이게 최선이었어.”

파티 호수공원이 안전하게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안상진의 공이 컸다.

이런 경호를 받으며 사방을 돌아다녔으니, 두 번째 에피소드까지 한월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있는 게 당연했다.

“혹시…… 사람들한테 얘기했어?”

“네?”

“내 존재 말이야.”

안상진의 말에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깜박했다.

꿈에서 에스파디아를 만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지금껏 기다렸을 텐데…….

“죄송해요, 정신이 없어서 깜박했어요.”

“아니야, 차라리 잘됐어.”

“네?”

“다들…… 간만에 두 발 뻗고 잘 거야. 괜히 대장 좀비 얘기 꺼내서 찬물 끼얹을 필요는 없지.”

애써 환하게 웃는 안상진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이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미안한 마음에 고개 숙이자, 안상진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나도 돌연변이 만들어서 활동반경을 넓힐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돌연변이요?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낸 거예요?”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뒤에 있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내가 대장 좀비 기억 읽었잖아.”

“아.”

“생각보다 간단하더라고. 수하를 부화장에 밀어 넣으면 돼.”

“대장 좀비의 수하를 부화장에 밀어 넣어? 고의로?”

“어, 그중에 하나 얻어걸리는 식이야.”

5% 확률로 나타나는 돌연변이.

대장 좀비가 거느릴 수 있는 수하를 생각하면 그리 낮은 확률도 아니었다.

1000마리를 잃더라도 돌연변이 하나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게 더 이득이었다.

최현의 말을 듣고 탄성을 뱉자, 앞에 있던 안상진이 입을 열었다.

“물론 리스크는 있어.”

“어떤 리스크요?”

“대장 좀비의 수하는 영양분이 많아서 그런지, 5성 변종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대.”

5성 변종이라면 5단계 변종을 말한다.

좀비 플레이어는 진화 단계를 성으로 표시하는데, 왜 플레이어는 단계로 표시하는 걸까.

에스파디아는 좀비와 변종이 마력 덩어리라고 했다.

스스로는 성장도, 퇴화도 못 하는 존재.

반면에 플레이어는 꾸준한 성장이 가능하다.

그 차이점을 구분하기 위해 시스템의 영역을 두 갈래로 나누고, 표시하는 방식도 다르게 설정한 게 아닐까?

그리고 난…… 그 둘의 경계에 있는 존재라서, 다른 일행과 달리 그동안 성으로 표시된 게 아닐까 싶다.

“그럼 돌연변이 때문에 5단계 변종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거죠?”

“맞아. 자연적으로 5성이 나타날 확률은 낮아. 이번 아크를 공격한 5성 변종들은 돌연변이를 만드는 과정에 나온 놈들이 아닐까 싶어.”

“왠지, 5단계가 너무 많다 싶었어요.”

“돌연변이가 있으면 5단계도 끌고 다닐 수 있으니, 활용도가 높지.”

“맞네요.”

“그래서 말인데, 내가 돌연변이를 얻으려면 5성이 필히 생길 수밖에 없어. 돌연변이 완성될 때까지 같이 있어주면 좋겠는데.”

안상진의 요구에 곤란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옆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은 맞다.

하지만 언제 돌연변이를 얻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주어진 시간은 8일.

이에 에스파디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안상진에게 들려주었다.

안상진은 모든 이야기를 경청하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돌연변이는 포기해야겠네.”

“죄송해요. 못 도와드려서.”

“아니야, 당장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맞지.”

뒤이어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100m 앞에 김포공항.”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김포공항에 도달한 상태였다.

안상진은 김포공항 방면을 주시하더니,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얘기했다.

“변종의 움직임은 없어.”

“재우야, 비행기 운항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지?”

박재우를 쳐다보며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지. 타봐야 알아.”

하긴, 박재우가 면허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로즈의 능력을 이용해서 빠르게 터득하길 바라는 수밖에.

“갑시다.”

발소리를 죽인 채 활주로로 향했다.

* * *

2시간 동안 모든 항공기를 확인했다.

운항 가능한 항공기는 총 3대.

나머지는 엔진에 문제가 있거나, 하나씩 결함이 존재했다.

박재우가 그렇다고 하니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행 가능한 항공기를 확인한 뒤, 우린 건물 내부에 있는 좀비들을 정리했다.

공항에서 떠나지 못한 좀비들을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주었다.

좀비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정말 듬성듬성 보이는 수준.

“다들 정지.”

선두에 있던 안상진이 오른손을 들었다.

걸음을 멈추자,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여까지만 정리하자. 위는…… 위험할 것 같다.”

“델타3이에요.”

“어떻게 알아?”

안상진이 신기하다는 듯이 묻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발소리만 들어도 알죠. 게다가 정처 없이 움직이는 게 3단계 같은데, 미리 처리하죠.”

“델타는 다른 변종에 비해 위험해. 나보다 신체 능력도 낮은데 저번에 죽을 뻔했어.”

“위험하다는 거 알아요.”

안상진이 고개를 갸웃거리기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돌아올 때 편하려면 가는 길도 깔끔하게 정리해야죠.”

“그럼…… 일단 여기 있어. 수하들로 유인할 테니까.”

뒤를 돌아보자, 100마리의 수하가 미동도 없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상진의 말대로, 수하들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았다.

일전에 한강 공원 산책로에서 겪은 일은 내가 선제공격을 취해서 그런 거라고 한다.

보랏빛 안구를 지닌 뒤로 대장 좀비와 수하들의 상명하복 관계는 더욱 견고해졌고, 수하들의 방어본능만 자극하지 않으면 안전했다.

안상진이 수하들을 쳐다보자, 수하들은 목젖을 갈며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의사전달이 가능한 수준.

10단계 대장 좀비는 지금껏 우리가 알던 대장 좀비와 격이 다른 존재였다.

수하들이 델타를 데려올 때까지, 우린 엄폐물 뒤에 숨어 기습을 준비했다.

* * *

“괜찮을까요?”

여의도에 남은 결인들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연신 무전기를 살폈다.

윤헤리의 물음에 이정우는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닥불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아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박재형이 숨기는 게 있다는 걸 말이다.

‘현이 표정만 보면…… 가볍지 않은 문제 같은데.’

이정우의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자, 이를 발전한 정진영이 결인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 오늘처럼 좋은 날 그렇게 인상 쓰는 거 아니야.”

“아까 재형 오빠랑 현이 오빠 표정 봤잖아요.”

윤혜리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정진영은 너스레를 떨었다.

“뭐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래? 현이가 감정 북받쳐서 그랬다잖아.”

“오빠는 그걸 믿어요?”

“으하하! 믿지 그럼! 모르겠으면 믿는 거야. 재형이가 우리 뒤통수 칠 녀석은 아니잖아?”

정진영이 호쾌하게 웃으며 얘기하자, 윤혜리는 더욱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진영은 연기에 소질이 없었다.

이에 김희연이 얘기했다.

“혜리야, 지금은 오빠들 말대로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궁금한 건 못 참는데…….”

“다들 저렇게까지 하는데, 모르는 척해주자.”

김희연의 말에 정진영은 머쓱하게 웃으며 이정우의 곁으로 걸어갔다.

곧 이정우의 옆에 앉으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도 다른 애들이랑 같은 생각이야? 재형이가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이정우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묻자, 정진영은 반박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뒤이어 모닥불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럼 하나만 확실하게 하자.”

“어떤 거.”

“재형이가 걱정되는 거야, 아니면 의심스러운 거야?”

정진영의 물음에 이정우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내가…… 재형이를 의심하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확신이 없어서 반박하지 못했다.

정진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뭘 놀라고 그래. 이해해 인마. 매일 경계하고 의심하며 살아왔잖아.”

“…….”

“그래도 재형이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잖아?”

이정우가 씁쓸한 표정을 짓자, 정진영은 어깨동무하며 얘기했다.

“파티장이 믿어줘야 다른 사람들도 믿어주는 거야. 네가 흔들리면 다들 눈치 보기 시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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