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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74화
이제 와서 따져봐야 뭐하겠는가.
앞으로의 방향이 더욱 중요하지.
이에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럼…… 앞으로 계획은 있어요?”
무덤덤하게 쳐다보자, 에스파디아는 하나의 방안을 들려주었다.
“내 힘을 육체에 담을 생각이야. 그래야 승산이 있다.”
“육체에 담아요?”
“무형의 존재인 내가 육체를 지니게 된다면 무서울 게 없지. 예전 천지를 창조할 때와 같은 힘을 지니게 된다.”
“누군가는 당신의 힘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설마 저한테 받으라는 건 아니죠?”
“지금은 너와 네 파티원들이 가장 적합한 것 같구나.”
잠깐, 에스파디아의 힘을 이어받으라는 건…… 신의 권능을 받으라는 거 아닌가?
이건 지금의 시스템을 전임한다는 말이잖아.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자, 심장에서 쿵, 하는 충격이 느껴졌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이 느껴졌다.
“저기…… 에스파디아.”
“얘기하거라.”
“저한테…… 아니, 소리결더러 신이 되라는 거예요?”
“싫으냐?”
“당신이 계속 했으면 좋겠는데요. 너무 부담스러운데.”
“내 모습을 직접 보고도 모르겠느냐.”
“…….”
“육체를 잃은 난 언노운을 상대할 수 없어.”
“번쩍하고 적을 처리한다거나…… 어떻게 안 됩니까?”
에스파디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였나?
하지만…… 그만큼 에스파디아의 요구는 내게도 터무니없었다.
한평생 인간으로 살아온 내게 신의 권능을 주겠다니.
곤란한 마음에 이마를 긁적이자, 뒤이어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란만 조심하거라.”
“광란도 당신이 만든 시스템인데, 무제한으로 변경 안 돼요?”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수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리고 광란은 수정해선 안 된다.”
“왜요?”
“지금 광란의 횟수 제한을 풀어버리면, 넌 폭주할 테니까.”
폭주라면…… 광란을 중첩 적용하면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쳐다보자,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시스템은 내 생명의 근원이자 마력의 근원이지. 내 생명의 포기하며 플레이어를 성장시키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그건 알겠는데 광란만 어떻게 풀어주면 안 되냐고요.”
“너희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에피소드를 클리어한 플레이어들은 진화하고 있어.”
“에피소드를 클리어해도 스탯 변화는 없었어요. 우리가 아이템을 구매해서 따로 강화하지 않는 이상…….”
“너희가 에피소드를 클리어하며 성장했기에, 내가 아이템 제한을 풀어준 거야.”
“…….”
“그리고 신체의 변화만이 전부가 아니야. 큰 힘을 견디기 위해선 강인한 육체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정신도 필요한 법.”
“정신이라면…….”
“마력을 담을 수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에스파디아의 말은…… 에피소드를 클리어할 때마다 강한 힘을 버틸 수 있는 정신개조가 이루어진다는 건가?
그런 건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덤덤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마력은 공기와도 같은 거야. 평범한 인간은 눈으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
“그럼 좀비랑 변종은 뭐예요? 대장 좀비도 플레이어로 분류되잖아요.”
“그들도 내 시스템의 일부야. 마력 덩어리지.”
“좀비를 죽이고 코인이나 카운트를 습득하는 게…… 우리가 마력을 얻는 거예요?”
“이제 이해가 되느냐?”
명확하게 이해되진 않았지만, 우리가 꾸준히 마력을 습득했다는 건 알겠다.
이를 통해 신체 능력도 향상되었고.
정신을 담당하는 게 에피소드고, 신체를 담당하는 게 코인과 카운트라 생각하면 편하려나?
그럼 좀비화라는 스킬은…… 습득한 마력에 비해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스킬이니, 이를 버티기 위해 내게만 정신력 스탯이 따로 존재했던 건가?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러자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희는 더 많은 마력을 담을 수 있도록 깊이와 넓이를 조금씩 키우고 있는 거야.”
“그럼 광란을 10회 이상 사용하면…… 제 몸이 버티지 못하는 이유가 뭐예요?”
“최소한 세 번째 에피소드는 클이어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네게 축적된 마력이 폭주할 게야.”
“원래 에피소드는 총 다섯 단계였잖아요. 그럼 당신의 힘을 버틸 수 있는 그릇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건데, 세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한다고 해서 제 몸이 버틸 수 있을까요?”
에스파디아가 만든 시스템의 맹점을 묻자,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동료들이 필요한 거야.”
“당신의 힘을 저 혼자 감당할 수 없으니, 나눠 받을 수 있도록요?”
“맞아, 네게 모든 권능을 주려고 했지만, 언노운의 침공이 예상보다 빨리 임박했거든.”
“그래서 항상 서두르라고 한 겁니까?”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이 차원을 더욱 꽁꽁 숨기지 못한 내 불찰이지. 미안하구나.”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나의 그릇에 모든 힘을 담을 수 없으니, 나눠서 담으라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그 뒤에는?
지구를 침공한 언노운을 처리한 뒤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에 미간을 긁적이며 물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는, 결인들에게 주어진 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러자 섬광의 테두리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에스파디아가 대답을 회피한다.
흐지부지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섬광을 똑바로 응시하며 재차 물었다.
“대답해 줘요. 어떻게 되는지.”
“네 동료가 얻게 될 힘은…… 일부 파편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권능이 아니야. 파편은 부스러기일 뿐, 결코 종속되지 않아.”
“파편이 사라지면 일행의 목숨에 지장이 있나요?”
“전쟁이 끝나면 용병이 설 곳은 없어.”
“똑바로 대답하셔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순순히 따라줄 생각 없으니까.”
“…….”
“제 일행이 죽는 겁니까?”
“파편과 함께 가루가 되어 사라지겠지. 신의 권능을 사용한 대가라 생각하거라.”
대가?
원하지도 않는 권능을 부여하고, 그 대가로 목숨을 지불하라고?
인상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가루가 되기 전에, 그 파편을 회수할 방법은 없습니까?”
“시스템에 속한 이상 그들이 벗어날 방법은 없어.”
“…….”
“선택지가 없다. 그들이 파편을 나눠가지지 않으면 네 육신이 버티지 못해.”
머릿속이 멍해졌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일행이 각성하지 않으면 내가 죽고, 각성하면 일행이 죽는다는 말이 아닌가?
시원하게 욕이라도 날리려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대체 저와 결인들의 차이가 뭡니까. 저는 왜 근원이고, 일행은 왜 파편이에요? 평등하게 배분은 안 되는 겁니까?”
“모두가 평등하다는 건 모두가 불안정하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
“네겐 이스터에그가 있다. 알고 있지?”
좀비화를 말하는 건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에스파디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스터에그는 내 힘의 근원이란다. 넌 마력의 근원을 지닌 거야.”
“그럼 처음부터 저는…… 당신의 힘을 이어받을 운명이었다는 겁니까?”
“내가 얘기했을 거야.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고. 단, 너의 길을 응원한다고.”
“…….”
자결 외에는 내가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건가?
죽는 게 싫으면 권능을 받아야 하는 상황.
어처구니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차라리 내 목숨 하나 바쳐서 일행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침공을 버틸 수 없다.
그럼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지겠지.
방법이 없을까?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 어디 없나?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
모두를 살리고 싶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이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시스템에 속한 이상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세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하고 준비하거라.”
“잠깐, 에스파디아 잠깐만요.”
“어서 가거라.”
“제 안에 당신의 근원이 있다고 했는데, 세 번째 에피소드만 클리어하면 제가 시스템도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겁니까? 설정 변경 가능한 거예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미 설정해둔 시스템은 쉽게 변경할 수 없어. 게다가 시스템의 큰 틀은 나조차 바꿀 수 없다. 큰 틀을 구축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소진했거든.”
“잠깐만요. 그럼 외계의 침공이 시작되더라도 네 번째, 다섯 번째 에피소드가 진행된다는 거죠?”
“맞아. 그러니 이제 그만…….”
에스파디아는 뭐가 그리 급한지, 계속해서 나를 보내려고 했다.
이에 섬광으로 뛰어들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노운의 공습이 끝났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예요? 제 일행이 죽는 순간은 알아야 마음의 준비를 하죠!”
“군대를 이끄는 대장이 있을 거야. 놈을 처리하면 공습은 끝난다.”
“그럼, 그럼 그 뒤에 공습은 없는 거죠? 평생 안전한 거죠?”
“……영원한 건 없어.”
영원한 건 없다고?
즉 영원한 평화는 없다는 뜻.
언노운의 공습을 막아내더라도,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온다는 뜻이었다.
이에 두 눈 부릅뜨며 외쳤다.
“내가 막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
“그리고 당신이 만든 시스템에 맹점이 있다는 것도 증명……!”
슈아악-!
말을 끝맺기도 전에, 눈부신 섬광이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온통 새하얀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일행도 살리고, 게임도 클리어하고, 언노운의 침공도 막아내고, 인류도 구원할 단 하나의 방안을.
* * *
“허억!”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상체를 일으키자,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눈앞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자, 옆에서 물수건을 짜고 있던 설여원이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괜찮아?”
“어? 어어. 괜찮아.”
“악몽이라도 꾼 거야?”
“글쎄 악몽이라고 해야 할지…….”
“식은땀을 너무 많이 흘리길래.”
“그보다 지금 몇 시야? 나 얼마나 기절했어?”
일어나자마자 시간부터 물었다.
설여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벽시계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저녁 9시. 7시간 정도 기절했어.”
7시간이면 예상보다 일찍 일어났다.
이에 거실을 살피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초조한 목소리로 묻자, 설여원은 눈꼬리를 치켜뜨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에스파디아 만났어?”
“어.”
“잠시만 기다려.”
설여원은 곧장 부엌으로 걸어가 무전기부터 손에 쥐었다.
뒤이어 일행과 무전을 주고받더니, 내게 오른손을 내밀며 얘기했다.
“가자. 63빌딩 전망대.”
설여원을 따라 63빌딩으로 이동하며 홀로그램을 열었다.
[플레이어 정보]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한계 돌파 7단계
*세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시 한계가 해금됩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1864420/100000
-남은 포인트: 30607
-스킬 목록1: 1번 목록에 해당하는 모든 스킬이 강화되었습니다.
-스킬 목록2: 마무리 일격 Lv.5, 철괴 Lv.1
-패시브 스킬: 재생, 광란(6/10)
-특수 스킬: 반격
180만 카운트.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30만이었는데.
이번 싸움에서 자그마치 150만 카운트를 얻었다는 말이 아닌가?
하긴, 5단계 변종과 돌연변이, 대장 좀비의 카운트만 합쳐도 75만은 거뜬히 된다.
각종 변종과 좀비, 어시스트로 받은 카운트까지 합치면 150만도 불가능한 수치가 아니었다.
180만 카운트를 포인트로 환전하자, 보유 중인 포인트만 21만이 되었다.
일단 스킬 강화부터.
마무리 일격과 철괴의 최고 레벨은 7.
총 9만 포인트를 소모하여 단번에 최고 레벨을 달성했다.
[마무리 일격 Lv.MAX]
-단일 대상에게 10회에 한하여 2배의 피해를 입힙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20분.
*‘최후통첩’ 효과가 생성됩니다.
*‘최후통첩’은 6회부터 3배의 공격력을 부여합니다.
최후통첩이 마지막 공격에만 발동되는 게 아니라, 6회부터 10회의 공격에 모두 적용된다고 한다.
당장의 신체 능력 향상은 없지만, 스킬만 잘 활용해도 광란 없이 5단계 변종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철괴 Lv.MAX]
-1분간 받는 피해가 30% 감소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20분.
*‘압축’ 효과가 생성됩니다.
*1분간 받은 피해의 일부를 축적하여 철괴의 지속시간이 끝나면 다음번 공격에 반영합니다.
(근력 기준 최소 2배, 최대 4배에 피해가 반영되며 반작용 효과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철괴였다.
철괴에 생성된 압축 효과는…… 말 그대로 사기였다.
1분 동안 죽지 않고 버티면 어떤 적이 찾아와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
남은 포인트로 새로운 스킬도 배워야 하니까.
새로운 스킬 구매에 필요한 포인트는 5만.
망설임 없이 스킬 구매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