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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70화
박재형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변종들의 모습.
하울링의 효과로 인해 두려움에 잠식되었고, 조금 전의 압도적인 힘을 보고 변종들의 사고회로가 마비되었다.
박재형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본인의 우측 어깻죽지를 쳐다봤다.
쯔드득- 쯕- 촤악!
그러자 떨어져 나갔던 오른팔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박재형은 오른손 주먹을 쥐었다 펴며 악력을 확인하더니, 변종들을 쳐다보며 걸음을 옮겼다.
박재형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진다.
5단계 변종은 평균 16000의 신체 능력을 지녔지만, 박재형처럼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박재형을 휘감은 기류.
단순한 일격 효과가 아니었다.
특수 스킬 반격이 활성화되며 더욱 거센 기류가 박재형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그의 신체에 닿기만 해도 살점이 찢어질 것 같은 압박감이었다.
변종들은 이를 파악하고 슬슬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박재형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살아서 돌아가려고?”
키…… 키에에에엑!!!
브르릅- 브르릅-!!
알파와 베타는 위압감에 못 이겨 반쯤 미쳐 버렸는지,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훙-
그 순간, 국회대로 있던 박재형이 사라졌다.
콰앙-!!!!!
한 박자 늦게 굉음이 울려 퍼지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변종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 * *
‘사라졌다.’
머릿속으로 전황을 살피던 대장 좀비.
그는 목동 방면을 돌아보며 걸음을 멈췄다.
‘당했나?’
본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게 돌연변이였다.
명령에 따르는 돌연변이들이 반발심을 보일 때마다 본인도 움츠러드는데, 그런 돌연변이의 신호가 사라졌다.
대장 좀비는 안광을 번뜩이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이거 재밌네.”
“임창민, 왜 그래.”
그의 옆에 있던 또 다른 대장 좀비가 묻자, 임창민은 눈꼬리를 치켜뜨며 대답했다.
“목동의 신호가 사라졌다.”
“돌연변이가 당했다고?”
“간만에 피가 끓는구먼.”
임창민이 조소를 짓자, 옆에 있던 대장 좀비는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묶으며 얘기했다.
“긴장 좀 해야겠네.”
“긴장은 무슨.”
“돌연변이를 이겼으면 우리도 위험한 거야 멍청아.”
“정소현, 아직도 모르겠어?”
“뭐를.”
“다구리에 장사 없어.”
임창민이 히죽거리자, 정소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정소현의 표정에도 긴장감은 엿보이지 않았다.
정소현은 덩달아 조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하긴, 이 병력을 어떻게 이기겠어.”
600m 앞에서 좀비와 변종을 이끌고 진격하는 1번 돌연변이.
그 규모는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선발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장 좀비와 그의 수하도 진격하고 있었다.
25만의 수하를 거느린 10단계 대장 좀비 임창민과 12만의 수하를 거느린 9단계 대장 좀비 정소현.
그들의 머릿속에 패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임창민은 입꼬리를 올리며 읊조렸다.
“기다려라, 안상진. 그대로 갚아줄 테니.”
이들에게는 단순히 아크 공략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안상진을 향한 복수심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저 멀리 지하철 보라매역이 눈에 들어오자, 옆에 있던 정소현이 입을 열었다.
“이 자식 어디 숨은 거야? 아직도 나타나질 않네?”
“걱정하지 마. 아마 목동에서 있던 돌연변이를 처리한 게 안상진일 거다.”
“곧 도착한다는 거야?”
“금천구에 수하들을 배치했잖아.”
임창민이 입꼬리를 올리며 묻자, 정소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10성 대장 좀비의 수하가 그렇게 나약할 턱이 있나? 그 자식 돌연변이 잡으려고 스킬 다 쓴 거야.”
“이대로 밀고 들어가면…… 빈사 상태의 안상진을 처리할 수 있다는 거야?”
“하! 상황이 너무 쉽게 돌아가는데? 준비한 시간이 아까울 정도야. 이렇게 쉽게 죽이면 안 되는 놈인데 말이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는 들어야지.”
임창민과 정소현은 승리를 확신하고 히죽거렸다.
임창민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
“그 알량한 선량함 때문에 모든 걸 잃을 텐데, 그때도 깔보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고.”
정소현은 덩달아 입꼬리를 올리더니,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크어어어어어어!!
-전투의 포효가 적용됩니다.
-500m 이내의 수하들은 좀비 플레이어의 포효에 따라 강화됩니다.
-좀비 플레이어와 수하들의 신체 능력이 10분간 1.5배 증가합니다.
뒤이어 아크를 향해 이동하는 좀비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천지를 흔드는 좀비들의 포효가 서울을 뒤덮기 시작했다.
* * *
정신이 몽롱하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협소한 시야로 쉴 새 없이 선혈이 낭자하고 있었다.
‘아직……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어.’
신체 능력이 대폭 증가하자 이성의 끈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겼다.
광란이 발동되어도 이성이 유지된다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가느다란 실을 붙잡고, 끊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갑작스레 증가한 신체 능력과 스킬 급가속에 있는 일격 효과 때문에, 정신력이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은 무념무상인데, 내 몸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무의식적으로 좀비와 변종을 처리하는 것 같다.
마치 시스템상에 좀비와 변종을 죽이라고 입력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띠링-!
-스킬 ‘강화된 급가속’의 일격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화악-!
1분간 유지되는 급가속의 일격 효과가 사라지자, 흐려졌던 시야가 순식간에 맑아졌다.
“푸하!”
동시에 참아왔던 숨을 토하며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버텨낸 건가?
광란이 중첩되기 전에 버텨낸 거야?
정신이 맑아지고, 고막을 찌르는 이명이 들려왔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쉴 새 없이 울리는 경종.
물속에서 턱 끝까지 숨을 참았다가 수면 밖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서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천만다행이다.
광란이 중첩되기 전에 정신을 차려서.
가느다랗게 변한 이성의 끈을 다시금 칭칭 감고, 맑아진 시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곧 눈앞으로 펼쳐진 참담한 광경으로 보고,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걸…… 내가 했다고?
고작 1분 만에?
지옥도라는 말도 부족했다.
건물 외벽은 온통 붉게 칠해져 있었고, 흘러내리는 살점과 핏물이 두 눈에 들어온다.
지면에 고인 끈적한 핏물은 경인 지하차도로 흘러 들어가고, 공기 중에 퍼진 비릿한 피 냄새가 폐부를 적신다.
나 역시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상태.
잠깐, 내가 왜 여기 있지?
이성을 붙잡기 위해 다른 생각을 차단하고 광란에 집중하다 보니, 기억의 조각이 드문드문 잘려 있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1분 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 박자 늦게 상황 파악을 마칠 수 있었다.
황급히 무전기부터 손에 쥐었다.
핏물 때문에 손이 미끈거려서, 무전기도 제대로 잡기 어려웠다.
“다들 제 목소리 들려요?”
치지직- 치직-
일행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안 들려요? 다들 내 목소리 안 들려?”
아크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대답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은 건가?
이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카타나를 챙기고 목동교로 이동했다.
그러자 귓가를 간질이는 웅성거림을 인지할 수 있었다.
먼발치서 들리는 함성이, 이곳에선 웅성거리는 소치처럼 들렸다.
여의도다.
이에 두 주먹을 말아쥐며 하체를 접었다.
일격 효과가 사라진 현재 근력은 9200, 하지만 일격이 사라졌다고 급가속이 끝나는 건 아니다.
급가속이 유지되는 시간은 총 8분.
아직 7분이나 남았으니, 이동 속도는 여전할 것이다.
이에 고민할 필요 없이 지면을 박차며 여의도로 향했다.
쾅-!!!!
* * *
외벽을 공격하는 각종 변종의 모습을 보고, 생존자들은 절망을 경험했다.
지금껏 얼마나 복에 겨운 생활을 했는지, 이번 기회에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바깥은 지옥이다.
이에 플레이어를 향한 존경심이 알아서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전부 내려가!! 사람들 내려보내!!”
이정우가 소리치자, 외벽에 있던 생존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헐레벌떡 지면으로 내려갔다.
파티 압구정과 호수공원, 망원시장의 플레이어들이 생존자들의 대피를 도왔다.
지지직- 즈이익- 지직-
키에에에에엑-!!!
알파5가 외벽에 올라서자, 푸른 빛의 전류가 돔 형태를 이루며 여의도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알파5는 비명을 내지르며 전류를 뚫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였다.
“꺄아아악!!”
15m 크기의 알파5를 보고 생존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혼란에 휩싸였다.
생존자들의 입장에서 알파5의 모습은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
아비규환에 빠진 생존자들을 보고, 아크의 외벽에서 전황을 살피던 이정우는 황급히 알파5의 등으로 뛰어올랐다.
콱-!!
로그나이트로 만든 창을 내지르자, 단단한 강철을 때린 것처럼 창끝이 쓸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단단하다고?’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정우가 놀란 사이, 알파5는 고통을 호소하며 전신을 비틀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에엑-!!!
인간에게는 해롭지 않지만, 좀비와 변종은 아크 내부로 들어올 수 없다.
아니, 약한 놈은 들어올 수 없다.
알파5 정도 되는 괴물은 온몸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먹잇감을 향한 집념으로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알파5의 전신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놈의 피부조직이 괴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뛰어난 신체 능력 때문인지, 죽지도 않고 생존자들이 대피하는 방향을 응시했다.
알파5가 앞다리를 휘두르자, 바닥에 쓰러진 생존자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놀라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사지가 굳은 것으로 보였다.
이를 발견한 이정우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생존자부터 챙겨!!”
타닷!
이정우의 외침에 정진영이 반응했다.
알파5의 앞다리를 주시하며 황급히 생존자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쾅-!!!
알파5의 앞다리가 지면을 가격하는 찰나, 간발의 차로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정진영의 품에 안긴 생존자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정진영이 다시 한번 괜찮냐고 묻자, 생존자는 대답 대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요. 숙소까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요.”
키에에에에엑-!!
알파5가 비명을 내지르며 발악하자, 이를 지켜보던 설여원이 중력장 소총을 견착하며 외쳤다.
“정우 오빠 내려와요!!”
퉁-!
총구를 떠난 투명한 유리구슬.
이정우는 이를 발견하고 재빨리 아크 외벽으로 뛰었다.
통-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중력장 소총이 알파5의 머리에 닿는 찰나, 물방울처럼 터져 버렸다.
뒤이어 설여원의 눈앞으로 이러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중력장 소총은 아크 내부에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크를 감싸는 보호장막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에 설여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아크 내부에선 중력장 소총 못 써요!!”
“알파5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것 같으니 계속 움직이면서 시선 분산시켜!! 생존자들 따라가게 두면 안 돼!!”
이정우의 지시에 결인들은 알파5의 주변을 에워싸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과 전완수, 김희연이 쇠뇌를 견착하며 알파5를 향해 쉴 새 없이 발사하고, 다른 사람들은 알파5의 두꺼운 다리를 공략했다.
쉴 새 없이 칼질을 가해도 결인들의 근력으로는 알파5의 단단한 표피를 뚫을 수 없었다.
그나마 피부조직이 괴사하고 있어서, 몇 번이고 같은 지점을 노리면 생채기가 생겼다.
그러자 알파5는 상체를 일으키며 온몸으로 지면을 가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쿵-!!
묵직한 울림과 함께 사방으로 흙먼지가 일어나고, 일행은 반사적으로 이마에 챙을 만들며 눈살을 찌푸렸다.
훙-
그 찰나의 순간, 흙먼지를 뚫고 알파5의 다리가 사방을 휘젓기 시작했다.
결인들은 대열을 유지하지 못하고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빈틈이 발생하자, 알파5의 시선이 여의도역 방향으로 향했다.
생존자들이 대피하는 경로.
“막아!! 무슨 일이 있어도 못 가게 잡아!!”
최현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자, 결인들은 안간힘을 쓰며 알파5에게 달려들었다.
쿵-!! 쿵-!! 콰드득-!!
그 순간, 아크의 외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결인들이 불안한 눈초리로 뒤를 돌아보자, 외벽의 일부가 붉은 빛으로 변한 상태였다.
동시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경고, 경고, 경고, 경고, 경고.
-4번 게이트의 내구도가 20% 남았습니다.
-내구도가 0%로 떨어질 시 30분의 복구시간이 소요됩니다.
-복구가 완료되기 전에 게이트가 파괴될 시, 영구적 손상이 발생합니다.
아크의 외벽은 400m 거리마다 출입 게이트가 존재한다.
4번이라면 영등포역으로 이어지는 경인로 방향.
12차선에 달하는 서울교로 진입한 변종들이, 일제히 4번 게이트를 공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