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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68화
먼저 달려들지 않는 이유가 뭘까.
다른 수하들은 어디 있는 거지?
관찰하는 건가?
무수히 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배회한다.
크어어어어어!!
하지만 고민할 새도 없이, 접근한 좀비와 변종들로 인해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왼쪽 집중해!”
이정우의 외침에 시선을 돌리자, 김희연과 황덕록이 좌측에서 접근하는 알파4에게 달려들었다.
8m 크기의 알파4가 팔을 휘두르자, 황덕록은 방패를 치켜들며 힘으로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예전이었으면 알파4의 힘에 못 이겨 수십 미터를 나뒹굴었을 텐데, 지금은 전신에 힘을 주고 버텨내는 모습을 보였다.
김희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알파4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촤악-!
알파4의 어깨에 두 다리를 걸치고, 뒤통수에 난도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알파4는 김희연을 떨쳐내기 위해 상체를 흔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희연의 근력도 3000에 달하기에, 알파4가 아무리 세차게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던 알파4가 김희연을 붙잡으려고 하자, 그녀는 알파4의 등과 겨드랑이, 어깻죽지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내려오는 길에 칼집을 내어 근육 조직까지 파괴했다.
일행의 전투 능력은 이미 내가 알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등을 맡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전투 중에 딴청을 피울 여유까지 있었다.
이에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형, 여기서 시간 좀 끌어줘요.”
“왜, 어디 가려고.”
“저 목동 다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이정우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기에, 서둘러 말을 이었다.
“대장 좀비가 있습니다.”
“대장 좀비? 안상진 씨 말고?”
“네, 서쪽에서 넘어온 것 같은데, 수도권에 있던 녀석 같아요.”
“그런 놈이 왜 여기 있어?”
“저도 모르죠. 돌연변이를 따라왔을지도 모르고,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요.”
이정우는 잠깐이나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금세 결인들을 쳐다보며 외쳤다.
“다들 전진!”
이정우의 지시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얘기했다.
“네? 아니에요. 다 같이 들어갈 필요는 없…….”
“언제까지 혼자 감당하려고?”
“네?”
“네가 그랬잖아. 땅만 보고 걷다 보면 목적지가 나온다고.”
“그거랑 지금 상황이 무슨 상관이…….”
“짐도 돌아가면서 들어야지, 혼자 들고 가면 네가 먼저 지쳐.”
“…….”
“같이 들자고.”
이정우의 말을 듣고 주변을 살폈다.
하긴, 지금의 일행은 예전의 나약하던 결인들이 아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입꼬리를 올리며 외쳤다.
“자, 드가자!!”
일행은 목동교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좀비와 변종이 빈틈없이 들어찬 목동교지만, 결인들이 지나간 자리는 빠르게 시체 산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3단계 변종과 4단계 변종이 있고, 감염된 동식물까지 있는데 전혀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의 결인들은 다른 존재가 되었다.
이에 카타나를 말아쥐며 옆에 있는 안상진을 불렀다.
“안상진 씨.”
“얘기해.”
“여기서 좀비들 못 넘어오게 막아주세요.”
안상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좀비가 두려운 건가?
그럴 리가.
의외의 반응에 의구심을 품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미안하다.”
“네?”
“도움이 못 돼서.”
모든 스킬이 재사용 대기시간에 들어가는 바람에, 안상진과 수하들의 신체 능력이 대폭 하락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자기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진 모양이다.
이에 반박하듯이 얘기했다.
“무슨 소리예요. 안상진 씨 덕분에 이 모든 게 있는 겁니다.”
“…….”
“앞으로 미안하다고 하지 말아요. 안상진 씨는 감사받아야 할 사람이지, 눈치 봐야 할 사람이 아니에요.”
진심을 담아 얘기했을 뿐인데, 안상진은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안상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사람…….”
그는 말끝을 흐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사람이라는 단어 때문인가?
의도적으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안상진을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표현이 나왔을 뿐이다.
안상진은 한 차례 심호흡하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맡겨줘.”
타다닷- 타닷-
뒤이어 이곳으로 접근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목동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여의도 방면에서, 소수의 발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자, 파티 압구정과 호수공원, 망원시장의 플레이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월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네?”
“여긴 위험합니다, 빨리 돌아가요.”
한월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뒤이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진지하게 얘기했다.
“우리도 플레이어예요.”
플레이어든 뭐든, 이들은 3단계 변종도 상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공격대원들의 눈빛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던 표정과 달리, 지금은 굳건한 의지가 엿보였다.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다.
이에 한숨을 내쉬자, 이번엔 진선균이 입을 열었다.
“우리 목숨은 우리가 책임져야죠. 박재형 씨가 걱정할 부분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여러분이 그랬잖아요. 우린 준비가 안 됐다고. 그래서 준비하려고 나온 겁니다.”
“이게 어딜 봐서 준비라는 거예요.”
“실전만큼 좋은 연습은 없죠. 무기가 많으면 뭐합니까, 정작 쓸 줄을 모르는데.”
진선균은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미 결인들은 목동교로 진입했고, 이정우도 변종을 상대하기 바빴다.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진선균은 내 옆에 있는 안상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 사람이 한월 씨가 얘기한 분입니까?”
진선균은 내 말을 뚝 자르며 안상진을 쳐다봤다.
안상진이 플레이어들을 쳐다보자, 진선균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무섭지만, 용기를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안상진은 플레이어들을 유심히 살피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
“네?”
“저 사람들은 내가 돌볼 테니 걱정 말고 마음껏 싸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오히려 내가 위로받는 기분.
안상진을 알게 된 지 사흘도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와 비슷한 결을 지닌 사람이라서 그런가?
이에 더는 반대하지 않고, 한월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하나만 약속해요.”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목동교는 넘어오지 말아요. 누굴 보호하면서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한월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들을 걱정하는 것보다, 벌써 목동으로 들어간 결인들을 걱정해야 한다.
이에 안상진을 쳐다보며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믿고 부탁드립니다.”
우려 섞인 마음은 뒤로하고, 황급히 일행을 따라 이동했다.
* * *
변종을 뚫고 들어가자, 저 멀리 쇠뇌를 견착한 설여원과 전완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퉁-! 퉁! 퉁퉁!
두 사람은 허공을 향해 볼트를 발사하고 있었다.
쾅-!!! 펑-!!!
이곳으로 접근하던 감마 변종이 공중에서 격추되고, 그 밑에 있던 좀비들은 전신을 파르르 떨며 광기에 취했다.
이에 카타나를 말아쥐며 하체를 접었다.
“가속.”
쾅-!!!
지면을 박차며 노도와 같이 달려나가자, 좀비들은 순두부처럼 터져나갔다.
국회대로에 겹겹이 쌓인 좀비와 변종들을 가차 없이 휘저으며 모든 감각을 끌어올렸다.
감지가 끝난 지금, 대장 좀비의 인기척을 파악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살기.
독보적인 살기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까각- 까득- 까드득-
그 순간, 돌연변이의 음성이 귓가를 간질였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안구가 붉게 물든 2m 크기의 좀비가 있었다.
‘어?’
저게 뭐지?
돌연변이의 이마에 2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마카나 스프레이로 적은 게 아니라, 칼로 살점을 도려낸 것처럼 생긴 상흔.
설마…….
‘저것도 수하야?’
돌연변이의 신체 능력을 생각했을 때, 대장 좀비의 수하가 아니라면 저런 글자는 존재할 수 없다.
대장 좀비가 저런 상흔을 만들기 전에 돌연변이가 찢어발길 테니까.
어떻게 수하로 부리는 거지?
안상진보다 진화 단계가 높은 대장 좀비인가?
아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안상진의 말에 따르면 5단계 변종의 뇌를 다량 섭취해야 11단계가 된다고 했다.
부화장에서 4단계 변종이 탄생하는 확률은 대략 30%.
반면에 5단계는 희박한 확률로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5단계 변종의 발생 빈도는 높아 봐야 4%.
즉, 안상진과 동일한 10단계 대장 좀비라는 뜻이다.
그런 놈이 돌연변이를 조종할 수 있는 이유가 뭘까.
‘다른 경로가 있는 건가?’
그래, 우리가 모르는 실험을 진행한 것 같다.
의도적으로 탄생한 돌연변이.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자,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
이곳을 공격한 대장 좀비는 결코 인간의 편에서 싸우는 놈이 아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는데, 역시는 역시였다.
모습을 감춘 이유는 뭐지?
아직 상황 파악 중인가?
이는 두 가지로 이유로 추측되었다.
첫째, 돌연변이를 통해 우리가 정리되길 기다린다.
둘째, 시선 분산.
전황을 살피고 떠났으니, 첫 번째 가설은 아닐 것이다.
변종으로 우리를 정리할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을 테니까.
그럼 남은 건 하나.
뒤늦게 머릿속으로 반짝이는 빗금이 스쳐 지나갔다.
“아크.”
돌연변이의 이마에 적힌 2라는 글자.
그럼 1번도 있을 것이다.
이에 황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한월 씨 들리십니까!”
쒜엑-!
그와 동시에 달려드는 돌연변이.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돌연변이를 향해 카타나를 휘둘렀다.
훙-!
놈은 기이한 자세로 공격을 회피하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였다.
대장 좀비의 수하라고 해서 신체 능력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
너프도, 상향도 없는 돌연변이의 신체 능력.
차이점은 주도성을 지니느냐, 대장의 명령에 따르느냐 뿐이었다.
“다들 이쪽으로 와!”
후방을 향해 외치자, 결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 곁으로 달려왔다.
좀비와 변종을 가차 없이 찢어발기며 순식간에 내 곁으로 모이는 결인들.
일행은 낯선 좀비를 보고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뭐야.”
“돌연변이요.”
“돌연변이?”
이정우가 묻기에, 돌연변이의 능력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저게 10만 카운트 준 놈이지? 아까 중력장 소총으로 잡은.”
“맞아.”
“물리 공격 반사 외에 조심해야 하는 건?”
“반사신경도 좋고 학습능력도 뛰어나.”
설명을 마치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중력장 소총을 견착하며 얘기했다.
“신체 능력이 어떻든, 그냥 찍어누르면 그만이지.”
퉁-!
그러자 설여원과 김희연도 중력장 소총을 견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총구를 떠난 투명한 유리구슬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돌연변이에게 날아갔다.
돌연변이는 유리구슬의 포물선을 응시하더니, 황급히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빗나갔다.
돌연변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쏟아지는 중력장을 피해 결인들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할 법도 한데, 설여원과 전완수, 김희연은 순식간에 인벤토리를 열고 무기를 교체했다.
“한 발 남았다 새끼야.”
퉁-!
전완수는 50m 앞의 돌연변이를 향해 또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이번엔 돌연변이의 정수리에 적중했다.
놈이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지면에 박히자, 그 위로 설여원과 김희연의 중력장이 이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치지직- 치직-
-말씀하세요!
뒤이어 무전기를 통해 한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구절절 설명할 시간이 없기에, 앞뒤 설명 다 자르고 얘기했다.
“옆에 안상진 씨 계십니까?”
-같이 있습니다!
“금천구에 수하들 배치하라고 전해주세요!”
-금천구요? 안상진! 금천구에 수하들 배치해!
2번 돌연변이가 서쪽에서 진입했으니, 1번 돌연변이와 대장 좀비가 여의도로 진입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여의도 남쪽에 위치한 금천구에서 진입할 것이다.
서쪽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빈틈을 노리는 계획.
어떤 놈인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살려둬선 안 된다.
우환은 커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