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8 ---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64화
알파4를 처리하고 안상진의 위치를 살폈다.
돌연변이에게 타격은 입히지 못하지만,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회피하며 시선을 유도하고 있었다.
뒤이어 두 팔의 재생이 끝나고, 다시금 악력이 돌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상진 씨! 붙잡아요!”
카타나를 뽑으며 소리치자, 안상진은 물소처럼 돌진하며 돌연변이의 오른발을 공략했다.
무릎과 발목을 붙잡고 바닥에 눕더니, 그대로 돌연변이의 다리를 비틀어버리며 무게중심을 깨뜨리는 모습을 보였다.
레슬링 기술인가?
아니면 주짓수?
어느 쪽 기술인지 몰라도, 운동 좀 하는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싸움에 익숙한 것 같더니, 평범한 일반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칼자루를 말아쥐며 돌연변이의 복부에 칼끝을 내지르자, 두꺼운 고무줄을 뚫고 들어가는 묘한 촉감이 느껴졌다.
까가가각!! 카각!!
돌연변이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껏 힘으로 깨부수며 살아남았는데, 돌연변이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카타나는 필수였다.
촤악-!!
그대로 칼날을 비틀어 놈의 성대까지 찢어버렸다.
목젖에 칼끝이 걸리는 느낌이 들기에, 레버를 당기듯이 칼자루를 말아쥔 두 손에 힘을 더했다.
촤악!!
머리와 육체를 분리시키자, 돌연변이는 전신을 파르르 떨며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쏟아지는 오장육부와 함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돌연변이를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100000점이 주어집니다.
뭐? 10만 점?
이게 그렇게 강한 놈이었어?
물론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10만 카운트에 해당할 줄은 몰랐다.
띠링-
뒤이어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부화장에 있던 좀비가 변이를 일으켰습니다.
-변종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야 하는 좀비가 역으로 영양분을 흡수했습니다.
-돌연변이는 수액의 영향으로 탄력 있는 피부와 특수한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받은 물리적 피해를 80% 확률로 가해자에게 반사합니다.
-먹잇감을 찾기 위해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반경 4㎞ 이내의 체취를 맡을 수 있습니다.
-변종과 좀비, 감염된 식물에게 먹잇감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습니다.
-돌연변이는 5% 확률로 나타납니다.
반경 4㎞?
감염된 식물의 감지 범위가 좀비보다 월등히 높은 것처럼, 식물을 영양분으로 진화한 돌연변이 역시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
그래서 반사 신경이 그렇게 높았구나.
간단하게 얘기하면…… 돌연변이는 피리 부는 소년 같은 건가?
멍하니 눈앞의 홀로그램을 살피고 있는데, 바닥에 앉아 있던 안상진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어디 다쳤어요?”
“아니, 스킬 지속 시간이 끝나서 그래.”
역병 군단이 끝나면 재사용 대기시간 동안 신체 능력이 50%나 감소한다고 한다.
지금의 안상진은 알파3도 버거운 수준으로 전락했다.
크어어어어어!!
브르릅- 브릅-
키리릭-
그러거나 말거나, 변종과 좀비들은 우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에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안상진 씨, 수하들 만드는 방법이 뭐예요?”
“신체 접촉이 있어야 돼. 손바닥만 갖다 대면 상하관계가 생겨.”
“지금 움직일 수 있죠?”
“움직이는 건 가능하지.”
“이번엔 제가 시간 끌어드릴 테니까, 수하들 복구해요.”
“지금? 안 돼. 너무 많아. 나중에 스킬 쿨타임 돌아오면 다시 하는 게 맞아. 5성 변종이나 돌연변이가 나타날 가능성도…….”
안상진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하지만 소용없는 걱정이다.
이미 빠져나가는 건 글렀으니까.
지금 목동교로 돌아가면 여기 있는 모든 좀비와 변종들이 따라올 것이다.
신기루로 가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적당히 많아야지.
이에 안상진을 부축해 일으키며 얘기했다.
“다른 방법 없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가 해야 돼요.”
“…….”
안상진은 말없이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최대한 정리한 뒤에, 숫자 좀 줄어들면 목동교로 돌아가죠.”
크어어어어어어!!!
좀비와 변종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좀비들은 안상진에게 맡기고, 난 변종의 위치를 주시하며 카타나를 말아쥐었다.
* * *
“박재형, 이 자식 또 무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전완수는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소리쳤다.
설여원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박재형과 약속했다.
당산역에서 내려오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목동교를 지키기로.
하지만 눈앞으로 떠오른 코인 메시지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그마치 1만 코인이 들어왔다.
1만 코인이 들어왔다는 건 박재형은 10만 카운트를 습득했다는 말이 된다.
5단계 변종이 15만 카운트에 해당하니, 엇비슷한 수준의 강한 적을 마주쳤다는 방증이었다.
전완수는 이마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다들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아직 좀비화 1시간도 안 지났어.”
설여원이 덤덤하게 얘기하자, 옆에 있던 정진영이 입을 열었다.
“좀비화 몇 분 남았는지 알아?”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1시간 20분은 남았을 거예요.”
“15분 전에 온다고 했지?”
“네.”
정진영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기다리자.”
“형!”
전완수가 반박하려 하자, 정진영은 목동 방면을 응시하며 얘기했다.
“앞으로 1시간만 기다리고, 돌아올 기미 없으면 그때 들어간다.”
“…….”
“혹시 모르니 다들 코인 메시지 확인해.”
“코인 메시지는 왜요.”
“코인 메시지 끊기면 무슨 일 생겼다는 거니까.”
치지직- 치직-
뒤이어 정진영의 무전기로 신호가 들어오고, 동시에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코인 메시지 확인했어?
“정우야, 남쪽 정리 끝났으면 목동교로 와줘.”
-목동교? 왜, 무슨 일이야.
“혹시 모르니 우리도 뭉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지금 간다.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목동교 방면을 응시했다.
물론 정진영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형이 돼서 아무런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서, 내심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곧 카타나에 묻은 혈흔을 닦고 있던 최현이 물었다.
“형, 지금 코인 얼마나 있어요?”
“코인은 왜.”
“초월자의 물약 4만 코인 아니에요?”
최현의 물음에 정진영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황급히 홀로그램을 열었다.
-보유 중인 코인: 141102.
2만 코인만 받으면 초월자의 물약을 4개나 살 수 있다.
“다들 코인 얼마나 있어.”
정진영이 묻자, 최현이 대답 대신 홀로그램을 열고 코인 교환을 눌렀다.
-파티원 최현이 2만 코인을 송금했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정진영은 고민 없이 수락을 누른 뒤, 곧장 초월자의 물약을 구매했다.
최현은 정진영이 건네주는 물약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미 한 번 먹었는데, 또 효과가 있을까요?”
“횟수 제한에 대한 얘기는 없었어.”
“그럼 계속 구매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거 아니에요?”
“비싸서 그렇지, 충분히 가능해.”
그러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 어차피 이거 추가 스탯을 기본 스탯으로 바꿔주는 물약이잖아요?”
“그렇지.”
“지금 강화제 알약 10개 먹은 상태니, 그것까지 전부 기본 스탯 되는 거 아니에요?”
전완수의 말에 최현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황급히 물약을 삼켰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띠링-!
-현재 추가 스탯에 강화제 알약의 효과가 섞여 있습니다.
-제한 시간이 존재하는 스탯은 전환되지 않습니다.
기대가 부풀기도 전에 단번에 끊어내는 메시지.
최현은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더니, 독한 양주를 마신 것처럼 상체를 부르르 떨었다.
“어때, 증가한 게 느껴져?”
전완수가 묻자, 최현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본인의 양손을 쳐다봤다.
뒤이어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힘이…… 넘쳐.”
“차이 많이 나?”
“당연하지. 공격대 레이첼 버프랑 파티원 레이첼 버프가 기본 스탯으로 변했는데.”
“그게 몇인데?”
“기본 스탯이 376.”
“뭐야, 별로 안 높네.”
전완수는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설여원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기본 스탯이 376이라고?”
“어.”
“그럼…… 거기서 레이첼 버프가 다시 적용되고, 376을 기준으로 강화제 알약 효과도 적용되는 거 아니야?”
“그렇지.”
“그럼 지금 근력 몇이야? 모든 버프 총동원했을 때 근력을 알아야지.”
설여원이 묻자, 최현은 본인의 홀로그램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다들 놀라지 마.”
“왜, 몇인데.”
“지금 신체 능력 2932야. 거의 3000이나 마찬가지라고.”
“뭐?”
설여원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자, 전완수와 정진영은 놀랄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초월자의 물약을 삼켰다.
설여원도 이에 질세라, 초월자의 물약을 벌컥벌컥 마셨다.
쓰디쓴 초월자의 물약의 맛에 다들 한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입맛을 다시더니, 홀로그램을 살피며 물었다.
“이제 우리 재형이가 좀비화랑 광폭화 썼을 때보다 강한 거 아니야?”
설여원이 묻자, 전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수치만 따지고 보면.”
“수치만? 다른 게 있어?”
“재형이는 스킬이 있잖아. 신체 능력 대폭 증가시키는 스킬이 몇 갠데.”
띠링-!
뒤이어 일행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파티 소리결의 플레이어 정진영, 설여원, 전완수, 최현이 초월자의 물약을 중첩 사용했습니다.
-위의 플레이어들은 최후 각성까지 1회 남았습니다.
-최후 각성을 위해 초월자의 물약을 각 5회 섭취하세요.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고 정진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최, 최후 각성? 그게 뭐야.”
반면에 전완수와 최현은 다른 부분에서 기겁하고 있었다.
“그보다 초월자의 물약 5회가 더 말도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초월자의 물약 5개면…… 한 사람당 20만 코인을 때려 박아야 한다는 거야?”
최현이 묻자, 정진영은 이마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지금 우리 상태면 못 모을 코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지.”
뒤이어 남쪽에서 올라오는 수비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정우는 정진영에게 현 상황을 전달받은 뒤, 망설임 없이 초월자의 물약부터 구매했다.
부족한 코인은 전완수와 설여원이 건네준 코인으로 채울 수 있었다.
수비팀이 초월자의 물약을 섭취하자, 그들의 앞에도 최후 각성을 하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설여원은 홀로그램에 적힌 문장을 유심히 살피며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혼자 골똘히 생각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손가락을 튕기며 얘기했다.
“확실하네요.”
“뭐가 확실해.”
“세 번째 에피소드 생명의 씨앗, 이게 끝이에요.”
“끝? 무슨 끝.”
“엔딩 에피소드라고요.”
설여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설여원은 눈앞의 홀로그램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최후 각성이라고 적혀 있잖아요. 최후라는 단어가 홀로그램에 뜬 적 있어요?”
다들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없는 것 같아. 명확히 끝이라고 규정지은 건 이번이 처음이야.”
“아까 아크에서 양평동으로 올 때, 공격대 구성 메시지 뜬 거 기억나죠?”
“1시간도 안 됐는데 당연히 기억하지.”
“그때 재형이 홀로그램 보셨어요?”
“재형이 홀로그램? 못 봤어.”
“저는 봤어요. 재형이 홀로그램에 1번 스킬 목록이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적혀 있었어요.”
설여원의 말에 이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어때서?”
“한계점에 도달하면 항상 새로운 목표치를 제공하고 돌파하라는 메시지가 있었잖아요.”
“그랬지.”
“이번엔 달라요.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메시지 다음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어요.”
“어떤 말.”
“축하드립니다.”
목동교 앞의 결인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인정사정없는 홀로그램이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는 건, 결코 우습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정말 끝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