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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60화
으름장을 놓자, 1만의 군중이 있음에도 침묵이 맴돌았다.
400m를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돌파해서 그런가?
오기로 덤벼드는 사람은 없었다.
반박하는 사람이 없기에,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은 누구보다 인류를 위하는 사람입니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라고요.”
“…….”
“그 덕에 여러분도 안전하게 아크로 들어온 것 아닙니까?”
“옳소! 하남에 있던 분들, 압구정, 잠실, 마포에 있던 분들! 여기까지 어떻게 왔습니까!”
웬일로 동조해 주는 사람이 있다 했는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자 아버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민망한 마음에 콧잔등을 긁적였다.
어느새 생존자들도 생각이 많아진 듯,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존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풀어주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여러분, 부산에서 대공습을 버텨낼 때, 제가 어떻게 싸웠는지 아까 말씀드려서 아실 겁니다.”
“…….”
“플레이어라고 강한 게 아닙니다. 플레이어도 사람이고, 우리도 무서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
“누군가는 나서야 하기에,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른 나라는…… 상황이 어때요?”
생존자들 사이에서 나온 질문에, 대답 대신 파티 목록을 살폈다.
한때 순위권에 있던 파티 대부분이 사라졌다.
“많은 나라가 대공습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모두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런데 파티 소리결은 해냈다는 거죠?”
“예, 하지만 저희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부산에서 수천 명의 생존자가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싸운 것처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해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적은 이곳에 있는 아군이 아니라, 저 밖에 있는 좀비와 변종이라는 걸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모두가 힘을 합치면 해낼 수 있습니다.”
생존자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시 일어설 용기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한월도 이를 느꼈는지,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불안한 눈빛.
도움을 바라는 표정.
나도 대책이 바로바로 나오는 게 아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찰나의 고민 끝에,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이런 상태면…… 억지로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에 확성기를 들고 얘기했다.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 같이 전투를 준비합시다.”
“우, 우리가 뭘 어떻게 해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분들은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세요. 직접 걸어 나갈 용기조차 없다면 제가 밖으로 옮겨드리겠습니다.”
다소 강압적인 어투에, 생존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혼까지 밑바닥에 가라앉은 이들이기에, 억지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라도 많으면 다른 방법을 쓰겠지만, 내가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이들의 정서적인 부분까지 다독이며 에피소드를 진행할 여유는 없었다.
그러자 생존자들 사이에서 불안한 심리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 우리도 좀비랑 싸우는 거예요?”
“일대일로 싸우라는 게 아닙니다. 함정을 만들고, 놈들을 유인하고 가두는 역할을 해주시면 됩니다.”
“마, 만약 실수하면 어떡해요?”
“실수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여러분이 실수하면 플레이어들이 도울 겁니다. 그러니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을 봐요.”
덤덤하게 대답하자, 귀신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의사당대로 일대가 잠잠해졌다.
좀비와 육탄전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도와줄 테니 같이 움직이자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법과 질서가 있던 시대는 끝났다.
개개인의 알량한 사정까지 봐줄 여력은 없다.
서로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사람이 많기에,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60일이 아니에요.”
“그…… 외계 침공이 있다고 그랬는데, 그건 언제 시작되는 겁니까?”
“알 수 없습니다.”
“예?”
“저도 알 수 없으니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자 좌측 대각선 방향에 있던 남자가 내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거짓말! 우리를 좀비들 먹이로 주려고 지어낸 얘기야!”
“전부 진실입니다.”
“좀비도 모자라서 이젠 뭐? 외계인? 장난해?!”
“하루아침에 전 세계에 안개가 퍼지고 좀비나 나타난 건 말이 됩니까?”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자, 이번엔 생존자들이 남자를 노려보는 모습을 보였다.
생존자들의 표정만 봐도, 어느새 내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궁지에 몰린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배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턱 끝까지 물이 찼는데, 더는 물이 차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는 겁니까?”
“…….”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익사 당할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겁니까?”
남자는 아무런 반박도 못 하고, 혼자서 분을 삭이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 다섯이 모이면 하나는 또라이라는 말처럼, 거르고 거른 사람들이라도 문제의 씨앗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확성기를 들고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이후로 저희의 말을 믿지 않고 반발하시는 분들은 각자도생하시기 바랍니다.”
“…….”
“이렇게까지 얘기했음에도 반대하는 분들이 과반수라면, 저희를 믿어주는 분들과 함께 떠날 겁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월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예? 떠나요?”
“발목 잡는 사람이 많으면 우리도 넘어져요.”
“어디로 가려고요. 계획은 있어요?”
“어디로 가든 여기보다 속 편할 겁니다. 현재 노르웨이를 생각하고…….”
“합시다!”
그 순간, 생존자들 사이에서 의지를 불태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자, 그곳엔 장병철의 아버지가 있었다.
말없이 그를 쳐다보자, 장병철의 아버지는 생존자들을 살피며 외쳤다.
“도와준다잖아요! 다들 왜 그리 못나게 굽니까, 뭐가 문제야 대체!”
그러자 조금 전까지 내게 삿대질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봐 장 씨, 이게 그리 쉽게 생각할 일이…….”
“어렵게 생각하면 뭐? 답이 나와?”
“아니 이 사람아.”
“뭐 이 사람아! 도와준다는 사람한테 침 뱉고 욕하는 당신이 더 한심해!”
“뭐?”
아는 사이인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이더니, 뒤이어 육두문자가 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생존자들이 두 사람을 말렸다.
신기한 점은 반발하는 남자를 말리지, 장병철의 아버지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장병철의 아버지는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는데, 반발하는 남자는 입까지 붙잡힌 채 사람들에게 제압당했다.
계속 내버려 두면 사람 하나 잡을 것 같아서, 재빨리 확성기를 내려놓고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놓아주라고 하자, 생존자들은 그제야 제압하고 있던 남자를 풀어주었다.
그 짧은 찰나에 상의는 걸레짝이 되었고, 입술이 터졌다.
얻어맞았다기보다, 손톱에 긁힌 것처럼 생채기가 여럿 생겼다.
그는 옷매무새를 고치며 바닥에 피가래를 뱉었다.
이런 상황은 원치 않았는데…….
그래도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지금 하세요.”
남자를 쳐다보며 얘기하자, 그는 생존자들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반박 대신, 두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뒤이어 남자의 옆에서 울먹임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지 말아요. 잘못했어요. 다들 그러지 마요오…….”
남자의 옆에 있는 10대 중반의 여학생.
여학생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남자의 팔을 붙잡고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채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했다.
이 남자의 딸인가?
사람들이 아버지를 붙잡고 제압하자, 어떻게든 아버지를 감싸려고 한 모양이다.
그 과정에 안경알 한쪽이 깨졌는지, 완전히 금이 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학생은 코를 훌쩍이며 조심스레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연신 고개를 숙이며 얘기했다.
“죄송해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제발…… 그만해 주세요.”
상황 참…… 뭐 같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착잡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자, 눈이 반쯤 풀린 남자가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한 말, 지킬 수 있어?”
“……네?”
“당신이 뱉은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남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람들에게 제압당한 게 억울한 건가?
아니, 분기에 찬 느낌이 아니었다.
남자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울먹이는 딸을 품에 안으며 말을 이었다.
“내 가족……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지킬 수 있냐고.”
이 세상에 100%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남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진실을 얘기하라는 게 아니었다.
보다 확실한 믿음을 달라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가능합니다.”
“여기, 여기 아크로 오면서…… 내, 내…….”
남자는 안간힘을 다해 눈물을 삼키더니, 입술을 파르르 떨며 얘기했다.
“내…… 아내가 죽었어. 내 눈앞에서…… 내…… 내가 못 지켰어.”
남자의 상체가 들썩이자, 품에 안겨있던 딸이 눈물을 쏟으며 속삭였다.
“아니야…… 아빠 잘못 아니야.”
부녀의 모습을 보고 나 역시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이곳에 있는 모든 생존자에게 아픔이 있을 것이다.
아니, 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난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채찍질을 가한 게 아닐까?
송구스러운 마음에 시선을 내리깔자, 앞에 있던 남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슬쩍 고개를 들자, 그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내 얼굴을 뚫어지게 직시하고 있었다.
“대답해. 할 수 있다고. 부산처럼…… 여기도 성공할 수 있다고 대답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심장이 뜨겁게 달궈지는 기운에, 울컥하는 마음을 삼키며 심호흡부터 했다.
곧 남자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병철의 아버지는 내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재형 학생, 뭐부터 하면 돼? 말만 해.”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싼 생존자들을 쳐다봤다.
이전과 달리, 그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뱉은 말을 증명하고 싶었다.
“우선…… 모두들 외벽으로 모여주세요.”
“외벽? 외벽 보강이라도 하려고?”
“아니요.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좀비를 상대해야 하는지, 좀비를 향한 두려움부터 없애야 합니다.”
한발 앞서 아크의 외벽으로 걸어가자, 1만의 생존자가 그 뒤를 따랐다.
* * *
모든 생존자가 아크의 외벽에 오르고, 플레이어들은 바깥으로 나왔다.
각 파티의 플레이어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약간의 긴장감은 도움이 되기에, 긴장을 풀어주는 대신 앞으로 명심해야 하는 걸 얘기했다.
“다들 강화제 알약 10개 먹고, 한 마리에 다섯 명씩 붙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일대일로 싸우면 안 됩니다.”
“좀비들 근력은 저희랑 비슷합니다. 굳이 강화제 알약까지 먹어야 할까요?”
정명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기에,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이곳으로 오는 건 길거리 좀비가 아니라 안상진 씨의 수하들입니다. 기본 근력이 변종 2단계와 맞먹어요.”
“아…… 맞다.”
바로 어제 얘기했는데, 그새 깜빡한 모양이다.
혹시 모르니 결인들에게도 신신당부했다.
“혹시 모르니 각 파티에 3명씩 붙어줘. 내가 정면에서 상대하고, 옆으로 새는 좀비들 담당해 주면 돼.”
결인들은 태연하게 수긍했다.
뒤이어 한월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제가 가서 수하들 데려올게요.”
“직접 가서 데려와야 하나요?”
“네, 풀링하는 것처럼 보여야죠. 500m 앞에 수하들 배치하라고 했으니, 제가 가면 반응할 겁니다.”
하긴, 그래야 생존자들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한월은 헌팅 나이프를 손에 쥐며 국회대로 방면으로 나아갔다.
10차선 대로를 지나 아크의 안개 제거기가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플레이어들은 안상진의 존재를 알지만, 생존자들에게는 언제 얘기하는 게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시기상조라 생각되었다.
소리결의 도착과 동시에 인간의 편에서 싸우는 대장 좀비가 나타나면 의심을 살 수 있다.
안상진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 김포공항까지 길을 뚫은 뒤에 생각해야겠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싸우는 게 얼마 만이지?”
최현이 다가오며 묻기에,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처음 아니야?”
“맞나?”
최현은 칼자루에 손을 얹으며 싱겁게 웃었다.
가브리엘이 독 안개 제거기를 돌리면 공기 중의 독기만 사라질 뿐, 안개까지 제거하는 기능은 없었다.
반면에 아크의 독 안개 제거기는 안개 자체를 지워버렸다.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400m까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심적으로 굉장히 편했다.
두두두두두두…….
뒤이어 이곳으로 접근하는 발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시야가 트여서 그런지, 긴장조차 되지 않았다.
많아 봐야 20마리의 수하가 달려올 것이다.
그 정도는 누워서 떡…….
두두두두두두두두-!
그런데 좀…… 이상한데?
발소리가 심상치 않다.
20마리가 아무리 힘차게 달려도 저런 소리는…….
치지직- 치직-
그 순간, 무전기에서 다급함이 묻어나는 한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부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