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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11화 (31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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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57화

이정우의 말에 진선균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로비에 모인 플레이어들도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더니,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왜 아크에서 마녀를 찾는지 아십니까?”

“…….”

“자신이 없으니까. 전투 준비가 전혀 안 됐으니까.”

“전투준비? 지금껏 내가 이룩한 모든 게 허상이라는 겁니까? 하남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무수히 많은 생존자를 구출한 내가?”

“그건 칭찬받아 마땅하죠. 단, 지금껏 운이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정우가 침착하게 대답하자, 진선균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이정우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뒤이어 웃고 있는 표정과 달리, 냉정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젊은 친구, 계획이 운이야. 모든 운은 계획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누구나 계획은 있죠. 처맞기 전까지.”

이정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저희 소리결이 여러분 모두를 죽이고 이곳을 장악한다면 어떻게 하실 거죠?”

“…….”

“진선균 씨가 마녀다, 이렇게 지정하고 우리가 날뛴다면 말릴 수 있습니까?”

“당신 제정신이야?”

진선균이 마침내 가면을 벗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분기를 그대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텔 로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정우는 모두의 표정을 가볍게 훑으며 재차 물었다.

“남들보다 조금 힘이 있다고, 그 힘을 이용해서 여태 마녀사냥 하면서 지낸 것 아닙니까?”

“……뭐?”

“정말 자신 있고 힘이 있다면,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체계를 갖추고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나섰겠죠.”

“……허!”

“반박 못 하겠죠? 아까 그러셨죠? 소리결이 와서 이제야 얘기한다고. 우리가 안 왔으면 어쩌려고 했습니까? 파티 압구정도 시위대를 이용해서 쫓아낼 생각이었죠?”

“젊은 친구,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게 현실이야. 당신도 알잖아.”

이정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자, 진선균은 두 주먹을 파르르 떨며 함묵했다.

이를 파악한 이정우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주먹 쥐었네요? 왜요, 때리려고?”

“…….”

“감당할 자신은 있고?”

진선균의 표정에서 완전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붉어진 얼굴.

이정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진선균을 몰아붙였다.

“밖에 나가서 좀비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어요? 외벽 수비라는 명목으로 숨어 있었잖아요. 아닙니까?”

이정우가 뼈 때리는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내자, 다들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맞는 말이라서, 함부로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 눈치 보기 바쁜 플레이어들.

이정우는 그런 플레이어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 진선균 씨가 그랬죠? 시위대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아니요? 제가 보기엔 엄청 신경 쓰고 있는 거로 보입니다.”

“…….”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한월 씨가 주동자들 데리고 나가는 것도 못 본 체한 것 아닙니까?”

“아니 나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혹시라도 불똥 튈까 봐 못 본 척한 것 아닙니까? 문제 생기면 한월 씨가 전부 뒤집어쓰도록?”

“…….”

“나중에 오리발 내밀 준비하고 있었잖아요.”

진선균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이정우를 노려봤다.

분노와 부끄러움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속내를 들켜서 반박조차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정우는 진선균의 표정을 응시하더니, 더는 비꼬는 게 아니라 대놓고 나무라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아크의 벽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클리어할 생각은 못 하고, 여기서 아군의 꼬리나 자르면서 우월감에 취해 살았다고요.”

생존자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

남보다 특별하다는 건 사람으로 하여금 자만심과 나태를 초래한다.

같은 플레이어라도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남기 위해 싸워온 소리결과 삶의 밀도가 다른 것이다.

진선균이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자, 이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심지어 여러분은 각성도 빨리 했잖아요.”

“…….”

“최소한 근방의 좀비들을 처리하며 꾸준히 코인을 쌓고, 지금보다 훨씬 성장한 상태여야 합니다.”

로비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였다.

이정우의 말에 오점이 없어서, 다들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선균이 아무런 말도 못하자, 이번엔 최이경이 목을 가다듬으며 얘기했다.

“상황이 다릅니다.”

“뭐가 다릅니까.”

“여러분은 박재형 씨가 있으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최이경의 변명 아닌 변명에, 이정우는 반박 대신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최이경은 파티원들의 눈치를 보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서울은…… 지옥도나 다름없었어요. 초기에 무수히 많은 파티가 있었지만, 대부분 대장 좀비로 변하고, 변종으로 변했죠.”

“지금처럼 타인을 배제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은 못 합니까?”

“상대방이 언제 뒤통수칠지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마음을 열어줍니까?”

“닫아두기만 하면 진전이 있습니까?”

“…….”

“최소한 닫아두진 말았어야죠. 그건 뒤통수 맞을까 봐 다른 사람 뒤통수쳤다는 말로 들립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최소한 아크에 들어와서도 계속 닫아두니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이정우의 뒤에 있던 20대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건 최이경 씨 의견이 맞아요.”

낮에 한월을 맹신한 여자였다.

이름이 뭐더라.

한아람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한아람은 머뭇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서울은…… 각자도생이었어요.”

“……?”

“타인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요.”

“우리가 여러분 기억 다 확인했는데 그런 변명을 합니까?”

이정우가 반박하자, 한아람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두 주먹을 말아쥐는 모습을 보였다.

억울한 건가?

억울할 자격이 있을까?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들의 깜냥이 너무나 한탄스러운 수준이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정우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더니, 한숨과 함께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뒤이어 스트레스 잔뜩 쌓인 사람처럼 회의실의 플레이어들에게 얘기했다.

“서울에 파티가 많았다는 건 공격대 시스템을 이용해서 신체 능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

“다 같이 힘을 합쳤다면 레이첼의 버프도 중첩 적용됐겠죠.”

“…….”

“편한 대로 생각해요. 그렇게 자기합리화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해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한아람이 또다시 반박하려 하자, 이정우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들 변명이잖아!”

이정우가 분기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자, 귀신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호텔 로비는 침묵에 휩싸였다.

다들 죄인처럼 고개 숙인 모습을 보이자, 이정우는 세차게 혀를 차며 호텔 밖으로 나가버렸다.

정진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뒤이어 터덜터덜 이정우를 따라 나갔다.

호텔 로비로 정적이 내려앉자, 최현은 팔짱을 끼며 얘기했다.

“솔직히 한월 씨가 악역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지네.”

누구한테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로비 천장을 쳐다보며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꺼내 들었다.

“한월 씨가 그나마 사람이고, 다들 눈치 보기 바쁜 겁쟁이들뿐이야.”

이렇게 얘기하며 정진영을 따라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진선균을 흘깃 쳐다보며 얘기했다.

“파티원을 위해 모른 체했다고요? 제가 보기에도 그냥 무서웠던 거예요. 저 벽 너머로 나가는 게 무서웠던 거라고요.”

“…….”

“벌벌 떨어서 얻은 결론이 뭐예요? 알약 자판기 보면서 죽는 날만 기다린 거 아닙니까?”

“…….”

“누군가가 이 X같은 세상 클리어해 주길 바라면서 숨어지낸 거 아니냐고요.”

진선균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전완수는 한숨을 내쉬며 로비를 빠져나갔다.

박재우와 황덕록은 로비 소파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서로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마저 로비를 빠져나가자, 윤혜리와 김희연도 말없이 따라 나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설여원과 나뿐이었다.

나도 현 상황이 썩 달갑지 않은 건 마찬가지지만, 이러면 아무런 진전이 없다.

감정적으로 행동해선 안 되는데, 결인들 답지 않았다.

한월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열었다.

“모든 게 제 불찰입니다.”

“…….”

“제가 솔직하게 미리 얘기했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겁니다.”

한월의 말에 모든 플레이어가 한월의 눈치를 봤다.

이제 와서 한월을 탓하는 것도 한심한 짓이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이를 알기에, 다들 반박하지 않는 것이다.

한월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본인의 생각을 얘기했다.

“제 생각이 짧았어요. 이정우 씨 말씀대로 미리 공격대를 꾸리고, 더 빨리 성장하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한월은 말끝을 흐리더니,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사람도, 좀비도, 제가 처한 모든 상황이 무서웠어요. 자신도 없고 힘도 없으면서, 모두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옛말에 틀린 것 하나 없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설여원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더니, 플레이어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지금은 시위대가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

“저희는 밖에 있을 테니, 여러분끼리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소통부터 하세요.”

설여원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나가자는 말을 건넸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로비를 빠져나갔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바깥으로 향하자, 저 멀리 여의도공원 방면에서 양손을 흔드는 전완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완수의 곁으로 향하자, 그는 호텔 방면을 살피며 물었다.

“어떻게, 상황은 잘 돌아가고 있어?”

“상황?”

“갱생 가능성 있냐고.”

이게 무슨 소리지?

다들 잔뜩 성이 나서 씩씩거릴 줄 알았는데, 표정에 분기는 없고 의구심만 가득했다.

설마, 호텔을 빠져나온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멍하니 전완수를 쳐다보자, 이번엔 이정우가 다가오며 물었다.

“놀랐어?”

“당연히 놀랐죠. 형이 갑자기 감정적으로 행동해서 제가 더 당황했어요.”

“미리 얘기 못 해서 미안하다. 우리끼리 귓속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저희가 안 따라 나왔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내가 너희를 하루 이틀 보냐? 내가 그렇게 과장되게 행동했으니 당연히 따라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

즉, 일부러 무리수를 두었다는 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곤란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이정우는 싱겁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었다면, 저 사람들 우리도 이용하려고 했을 거야.”

“네?”

“한월 씨한테 한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강하게 나간 거예요?”

“어, 진선균이 했던 말이 계속 걸리더라고.”

진선균이 무슨 말을 했지?

말이 너무 많았다.

어벙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이정우는 싱겁게 웃으며 물었다.

“제일 처음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소리결이 와서 전부 얘기하는 거라고 했잖아. 그게 무슨 말 같아?”

“모르겠어요.”

솔직하게 대답하자, 이정우는 싱겁게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은근슬쩍 우리를 치켜세웠잖아. 고분고분 말 잘 들어주는 호구를 원하는 거야.”

호구?

비위 맞춰주면서 은근슬쩍 우리를 조종할 생각이었다는 건가?

동방예의지국의 정신을 지켜라, 이런 식으로?

씁쓸한 마음에 입맛을 다시자, 이정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중심축이 되는 건 좋지만, 이렇게 어영부영 되면 안 돼.”

“그럼요?”

“저기 있는 사람들 지금껏 혓바닥 놀리면서 살아남았으니, 직접 문제에 봉착하게 만들어야지.”

“그럼…… 어떻게 보면 한월도 피해자네요.”

“맞아, 휘둘리면 우리도 한월처럼 되는 거야.”

우리가 예상 밖의 행동을 취했으니, 지금쯤 로비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골머리를 쓰고 있을 것이다.

어렵다, 인간관계.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내 삶의 신조가 통하지 않는 게 인간관계였다.

내겐 너무 어려운 문제라서, 이정우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단축해야 하니, 아크 안정화는 수비팀에게 맡겨. 수색대는 수색대가 할 수 있는 걸 해줘.”

“뭐부터 하면 돼요?”

“김포공항까지 길을 뚫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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