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08화 (308/373)

--- 308 ---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54화

묵묵히 안상진을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런데 좀비랑 편을 먹는 게 맞아? 나중에 배신하면 어떡해?”

“나도 좀…….”

파티 압구정의 플레이어들이 귀에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

두 사람은 속삭이고 있지만, 내겐 선명하게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물며 기본 신체 능력이 2200인 안상진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안상진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거기 두 분, 다 들려요.”

“네?”

“들린다고.”

최현이 본인의 귀를 가리키며 얘기하자, 그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안상진을 쳐다봤다.

맞은편에 있던 안상진은 옅은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플레이어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순식간에 찢어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눈치를 보고 있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이에 훅, 하고 숨을 뱉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안상진 씨,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여기서 해도 되겠습니까?”

“여기서 못할 이야기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혹시 에스파디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안상진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일행을 쳐다봤다.

다들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던 안상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보아하니 아는 눈치네요.”

“안상진 씨는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만난 적 있어요?”

“글쎄요. 제가 본 건 밝은 빛이라서 직접 만났다고 해도 될지…….”

“저도 그래요. 형체가 없었습니다. 에스파디아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안상진은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한테 그러더군요. 제 선택이 모두의 희망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희망?”

“그 뒤에 매일같이 똑같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무슨 꿈이요.”

“하늘에 구멍이 열리고, 그곳에서 괴수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말에 결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마른침을 삼키며 안상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안상진은 꿈에서 본 광경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괴수들의 크기, 힘, 민첩함은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어요.”

“꿈속에서 어떻게 됩니까?”

“보호대를 입은 플레이어들이 괴수와 싸우는 모습을 봤습니다. 좀비와 변종, 감염된 식물도 괴수와 싸우더군요.”

“우리가 이깁니까?”

“승패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보다 하늘에서 오는 존재가 뭔지 알고 계세요?”

“정확히는 몰라요. 다만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침공한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 안상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한테도 정확한 얘기는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본 장면만 봐도, 그가 말한 희망이 제가 아니라는 건 알겠더군요.”

“…….”

“그래서 찾고 있었습니다. 파티 소리결을.”

“꿈에서 본 플레이어가 소리결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싸울 수 있는 파티는 랭킹 1위뿐이라고 생각했죠. 부산 아크의 대공습, 여러분이 해낸 거죠?”

“……네.”

“현 상황에 대공습을 버틸 수 있는 파티는 없습니다. 솔직히 저도 놀랐어요.”

“많이 힘들긴 했습니다.”

싱겁게 웃으며 대답하자, 안상진은 덩달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이번에 알파5를 잡으면서 확신했습니다. 에스파디아가 말한 희망이 박재형 씨와 소리결이라는 걸.”

“…….”

“그래서 한월과 여러분을 찾아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안상진의 말에 한월을 쳐다봤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정우에게 된통 당했다더니, 완전히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아니, 풀이 죽은 정도가 아니라 동공이 반쯤 풀린 것처럼 보였다.

허망함일까, 아니면 죄책감일까.

뭐가 됐든, 다시금 안상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고민할 게 있나요? 서로 뜻이 같은데.”

“그땐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어때요. 뜻을 정하신 거예요?”

안상진을 쳐다보며 묻자, 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 세상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 아니, 좀비에요.”

본인 스스로 정정하다니.

사람이고 싶지만, 주어진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그게 좀…… 안쓰럽게 느껴졌다.

안상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지켜야 할 자식이 있습니다.”

“…….”

“아이들 키우기에는…… 너무 혹독한 세상이잖아요?”

그는 손깍지를 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죽어서도 자식을 지키는 아빠.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리고, 착잡한 현실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안상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소리결을 찾아서 힘을 합치려고 했습니다. 에스파디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상의하고 싶었죠.”

“그럼…… 한월 씨와 소통한 이유에 저희와 만나기 위함도 있는 거예요?”

“네, 아무래도 좀비인 제가 다가가면 무턱대고 공격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

“그러니 한월이 접근하는 게 경계심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죠.”

“한월 씨에게 신체 접촉을 조심하라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인가요?”

“네.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좀비와 내통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소리결이 아크의 플레이어들을 전부 죽일지도 모르니까요.”

안상진의 말에 옆에 있던 전완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좀비랑 내통한다고 사람을 그렇게 막 죽입니까?”

“서울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그랬습니다.”

“앗…….”

“좀비, 사람, 변종 할 것 없이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매일같이 누군가가 죽어야 했습니다.”

“……괜한 소리 했네요. 죄송합니다.”

전완수가 사과부터 하자, 안상진은 괜찮다는 대답과 함께 말을 이었다.

“사실 놀랐습니다. 소리결이 먼저 저와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제 귀를 의심했어요. 오히려 믿을 수 없어서 경계했죠.”

“이해합니다.”

“혹시 대장 좀비와 내통하는 사람을 이전에도 만났습니까?”

“아니요, 내통하는 사람보다는…… 인간을 위해 싸우는 대장 좀비를 만났습니다.”

예전 곽찬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떤 모습이든, 모든 건 사람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였다.

곽찬혁처럼 인간을 위하는 좀비가 있는 반면에, 사람의 모습을 하고도 좀비보다 못한 놈들이 있었다.

안상진은 눈꼬리를 치켜뜨더니, 궁금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함선을 타고 안전지대로 이동했어요.”

“대장 좀비가 함선에 탈 수 있다고요? 아니, 설마 치료제라도 있는 겁니까?”

지금껏 덤덤한 모습을 보이더니, 다소 격양된 모습을 보였다.

하긴, 인간으로 돌아가면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건 안상진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죄송하지만 안상진 씨는 불가능합니다.”

“예?”

“치료제는 성장하지 않은 대장 좀비에게만 효력이 있어요. 2단계 이상의 대장 좀비는 효력이 없습니다.”

“아…….”

그의 두 주먹이 파르르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억울함일까, 아니면 절망감일까.

아무런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대장 좀비든 플레이어든, 사람 죽이려는 놈은 죽이고, 살리려는 사람은 살려요. 그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설여원이 말꼬리를 살짝 비틀어 화제를 돌렸다.

결인들은 이를 눈치채고 긍정적인 대답과 함께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뭐가 됐든, 서로의 오해는 풀린 것 같고…… 의심도 사라졌다.

안상진이 함께한다면 클리어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에 모두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보아하니 다들 목표도 똑같은 것 같은데, 지체할 필요 없이 바로 움직일까요?”

“아직 계획도 없는데 무슨 목표를 얘기하는 건지…….”

30대로 보이는 남자, 정명석이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클리어해야죠.”

* * *

텐트를 회수하고 산책로로 돌아오자, 모닥불을 바라보며 웃음꽃을 피우는 박재우와 윤혜리, 황덕록과 김희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장군이는 오혜선과 한민욱의 품에 안겨 애교를 떨고 있었다.

전완수는 수비팀의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얘기했다.

“이래서 커플이 안 돼. 이런 와중에도 꽁냥거리고 있네.”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최현이 조소를 지으며 얘기하자, 전완수는 콧방귀 뀌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비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얘기는 잘 됐어요?”

윤혜리가 가장 먼저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봤다.

안상진을 쳐다보자, 그는 모닥불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비팀은 안상진의 얼굴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을 보였다.

안상진은 일행의 반응에 덩달아 주춤거렸다.

이런 상황이 낯설 것이다.

본인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우와.”

반면에 수비팀이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안상진의 영롱한 동공을 보고 호기심을 불태우는 표정이었다.

김희연은 안상진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두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한 거예요?”

“……예?”

안상진이 당황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희연은 안상진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10단계부터는 안구 색깔이 변하는 거예요? 무슨 의미예요? 더 성장하면 어떻게 돼요?”

“아, 그건…… 저도 잘…….”

“대장 좀비는 성장에 한계 없어요? 11단계 되는 기준은 뭐예요?”

“5성 변종 20마리 섭취…… 입니다.”

“지금 얼마나 드셨어요?”

“한 마리요.”

“갈 길이 멀었네요.”

“그, 그렇죠.”

10단계 대장 좀비 안상진이, 김희연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안상진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헛기침과 함께 물었다.

“여러분은…… 제가 불편하지 않아요?”

“불편할 게 뭐 있어요. 인간의 편에서 싸우는 분이라면서요.”

“…….”

“그럼 감사해야죠.”

김희연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하자, 안상진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감동한 건가?

그동안 얼마나 깊은 고독 속에 살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에 손뼉을 치며 얘기했다.

“자자, 자들 잘 들어. 지금부터 잠실로 이동할 거야. 그 뒤에 아크로 이동하자.”

“지금 바로요? 슬슬 노을 지고 있는데.”

“잠실은 이미 정리가 끝난 상황이래. 그리고 안상진 씨가 같이 갈 거야.”

안상진을 쳐다보며 얘기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정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였다.

난 현재 시각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남은 얘기는 가면서 하도록 하고, 모닥불이랑 텐트 정리하고 바로 움직이자.”

“네!”

* * *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며 안상진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지방에서 시작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안개가 퍼진 초기, 안상진도 함께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배신으로 인해 대장 좀비가 되었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대장 좀비가 되었고, 인육을 거부한 아내는 알파 변종으로 변이되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안상진은…… 변이가 진행 중인 아내를 눈물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함께 죽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자식들이 눈에 밟혀서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도 없었다.

아파트에 숨어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매일같이 식량과 쪽지를 남겼다고 한다.

일이 바빠서 식량만 두고 간다는 쪽지를 남기며 절망의 나날을 살았다고 한다.

영혼 없이 반복되는 일상.

그 지겨운 나날을 이어가던 어느 날, 현관 앞에 자식들의 쪽지가 있었다고 한다.

-아빠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삐뚤빼뚤한 글자였지만, 그 쪽지를 보고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고 한다.

안상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미 죽은 목숨이지만, 자식을 위해 마지막까지 죽음을 거부하겠다는 아버지의 의지였다.

안상진은 콧잔등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건 죽음의 신일 거라고.”

“죽음의 신이요?”

“제가 할 수 있는 기도가 하나밖에 없었거든요.”

“무슨…… 기도요?”

안상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오늘은 아니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