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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305화 (305/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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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51화

거대 식물의 씨방으로 들어가 사정없이 난도질을 가했다.

바닥에 보이는 타원형의 밑씨까지 꿰뚫자, 그제야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거대 식물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4000점이 주어집니다.

두꺼운 가죽처럼 질긴 내부를 뚫고 나오자, 알파3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거대 식물이 시들자, 치유력도 사라진 모양이다.

츠으으으…….

하지만 산성 물질은 여전히 남아 있기에, 신발 밑창에서 역한 냄새와 함께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알파3들은 뒤늦게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키에에에에엑!!!

이에 카타나를 고쳐 쥐며 쏜살같이 놈들의 목을 도려냈다.

알파3을 처리하자마자 인벤토리를 열고 살수차 호스를 꺼냈다.

동시에 허공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10m 이상 뻗어 나간 물대포는 변곡점을 지나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전신에 물을 묻힌 뒤, 칼자루를 말아쥐며 감염된 식물로 가득한 한강공원을 질주했다.

빠르게 올라가는 카운트 홀로그램을 닫아버리고, 좀비화의 남은 시간에 집중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전부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쩍- 쯔득-

수분은 금세 말라버리고, 끈적한 액체가 발바닥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전완수!! 설여원!! 물대포 쏴!!”

이에 전완수와 설여원을 부르자, 두 사람은 인벤토리에서 호스를 꺼내 물대포를 발사하며 내 곁으로 달려왔다.

지면을 적시는 물줄기에 온몸을 맡기고, 계속해서 감염된 식물을 처리했다.

브르릅- 브르릅-

뒤이어 베타 변종의 음성이 귓가를 간질였다.

베타 변종은 없다고 그랬는데?

그러자 김희연이 쇠뇌를 견착하며 달려왔다.

“베타는 저한테 맡기고 식물 잡아요!”

퉁! 퉁! 퉁퉁! 퉁!

설여원과 전완수가 물대포를 발사하는 동안, 김희연은 베타 변종의 미간에 볼트를 꽂아 넣었다.

다행히 이곳으로 접근한 베타 변종은 대부분 2단계라서, 볼트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뒤이어 최현과 윤혜리, 박재우, 황덕록, 이정우, 정진영까지 합류했다.

모든 알파 변종을 처리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감염된 식물정리를 도왔다.

모두가 힘을 합치자, 정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경 2㎞에 분포된 모든 감염된 식물을 처리하자, 시기 좋게 눈앞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좀비화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귓가로 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경추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혈압으로 인해 목덜미 잡고 쓰러지는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 * *

“박재형!”

전완수는 쓰러진 박재형을 부축하며 그의 전신을 살폈다.

이정우는 박재형의 맥을 살피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괜찮아, 좀비화 풀리면서 잠깐 기절한 거야.”

그러자 윤혜리가 달려와 박재형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열이 있어요. 오늘은 좀 과하게 움직였나 봐요. 이렇게 방전된 로봇처럼 갑자기 기절한 적은 처음…… 어?”

그 순간, 윤혜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석고상처럼 굳은 모습을 보였다.

“왜 그래.”

이정우가 덩달아 놀란 눈으로 묻자, 윤혜리는 옆에 있는 김희연에게 물었다.

“희연아, 파티 압구정 근처에 있어?”

“없어. 오혜선 씨랑 한민욱 씨 데리고 한강에 들어갔을 거야.”

윤혜리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자, 이정우는 대답을 재촉했다.

“갑자기 왜, 무슨 일인데.”

“아 그게…… 의도치 않게 재형 오빠 머릿속을 들여다봤어요.”

무의식적으로 이마에 손을 얹는 바람에, 박재형의 기억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윤혜리는 아랫입술을 핥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 오기 전에 알파5를 잡은 것 같아요. 그런데 잡는 과정이 좀…….”

“잡는 과정이 왜.”

“대장 좀비랑 같이 싸웠어요.”

“……뭐?”

이정우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되묻자, 이번엔 최현이 다가오며 얘기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충분히 가능하다니?”

“제가 한월의 기억을 확인했잖아요. 한월이란 여자, 대장 좀비랑 유착관계에요.”

최현의 말에 이정우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 봐.”

“지금껏 다른 파티원에게 비밀로 한 것 같아요.”

“왜? 굳이 파티원까지 속일 필요가 있나?”

“좀비 얘기만 나오면 발작 버튼 누른 것처럼 반응하니, 얘기 못한 것 같습니다.”

“좀비를 증오하는 건 이해하지만, 말도 못 꺼내게 한다고?”

“말도 못 꺼내게 하기보다…… 한월 스스로 체념한 것 같아요.”

결인들은 최현과 윤혜리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였다.

최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파티 압구정의 플레이어는 4명 더 있었어요.”

“원래 9명이었다는 거야?”

“네, 그런데 그 4명이…… 대장 좀비 손에 죽었어요.”

최현의 말에 전완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허! 한월이란 여자, 본인 파티원을 잡아먹은 대장 좀비랑 손을 잡았다는 거야?”

“지금 네 반응이랑 똑같을 게 뻔하니, 한월도 말을 못 꺼낸 거야.”

“…….”

“대장 좀비도 처음부터 생존자 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 내가 확인한 바로는…… 대장 좀비는 인간을 향한 증오심이 커.”

“왜, 사이코패스한테 당하기라도 했나?”

“어, 아내가 죽은 것도, 본인이 좀비가 된 것도 전부 사람 때문이거든. 배신당했어.”

최현의 말에 전완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최현은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관계가 복잡해. 이걸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잠깐의 동맹 같은 거지 뭐.”

황덕록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최현은 손가락을 튕기며 얘기했다.

“맞아, 서로의 이익에 따라 맺어진 관계야.”

“대장 좀비는 무슨 이익이 있다고 한월이랑 손을 잡은 거야?”

“자식들 때문에.”

“자식?”

“대장 좀비는…… 본인이 좀비가 된 뒤로 자식들을 아파트에 숨겨두고 식량을 넣어주면서 지낸 것 같아.”

최현의 설명에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뒤이어 이마를 문지르며 얘기했다.

“그건…… 사육이랑 다를 게 없잖아. 아이들 정서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맞아, 대장 좀비는 거기서 모순을 찾은 것 같아. 인간을 향한 증오심에 치가 떨리지만, 결국 자식들을 위해선 인간이 필요했거든.”

결인들은 한숨을 내쉬며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진영은 일행의 눈치를 보더니, 콧잔등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 과정에 만나게 된 플레이어가 한월이라는 거야?”

“네, 사실 한월의 파티는 분열 직전이었어요. 죽은 4명이 분란을 조장하는 놈들이었죠.”

“한월은 대장 좀비를 이용해서 그 4명을 처리한 거고?”

“네, 대장 좀비는 그 덕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두 사람의 유착관계가 시작됐어요.”

“분란을 조장하는 놈들이 사라졌다면…… 압구정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도 당연히 좋은 거 아니야? 숨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사람 관계가 그렇게 쉽나요? 말은 안 들어도, 결국 같은 파티원이라는 건 변하지 않잖아요.”

“…….”

“저희도 초기에 생각해 봐요. 솔직히 재형이 없었으면 저희도 흩어졌을지도 모르죠.”

최현의 말에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박재형이 있기에 결인들은 똘똘 뭉칠 수 있었다.

박재형이 통솔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언성을 높이기 전에, 박재형이 행동으로 밀어붙이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지금의 결인들이 되었다.

그러자 이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그래?”

정진영이 묻자, 이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금호강 건너에서 재형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무슨 말.”

“목적지가 보이지 않을 때, 땅만 보고 걸어가면 된다고 그랬거든.”

“……그게 웃겨?”

“지금 생각해 보면 다 맞잖아. 목적지는 보이지 않고, 앞날은 어두웠어. 그런 상황에 엉거주춤 있었다면 우리끼리 싸웠을 거야.”

“…….”

“그때 재형이 혼자 묵묵히 나아간 거지. 우린 천천히 가라, 천천히 가라, 하면서 졸졸 따라간 거고.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야.”

이정우의 말에 다들 지난날을 회상했다.

생각해 보면 이정우의 말이 맞다.

다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 박재형 혼자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면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다 벽을 마주치면 당황할 법도 한데, 박재형은 어떻게든 그 벽을 부수고 나아갔다.

그 모습에 희망을 얻고,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다들 죄인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이번엔 박재우가 입을 열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요?”

“그냥, 재형이한테 미안해서.”

이정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하자, 박재우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재형이도 우리한테 고마워하는 이유 모르겠어요? 앞에서 아무리 끌어줘도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 없으면 못 가요.”

“…….”

“밀어주진 못할망정, 발목 잡고 늘어지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요. 우린 묵묵히 다 맞춰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잖아요.”

“…….”

“우리도 잘 따라간 거예요. 재형이도 그걸 아니까 우리한테 고맙다고 하는 거고.”

박재우의 말에 다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완수는 싱겁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속도 조절을 해준 건가?”

“그렇지, 재형이가 나서준 덕에 우리도 힘내고, 재형이가 흥분하면 우리가 잡아주고.”

“뭐야 그럼, 우리 조합 존나 괜찮은 거야?”

전완수가 쾌활하게 웃으며 얘기하자,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그러자 황덕록도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나도 그 생각했어. 여기 있는 사람들 진짜…… 다들 너무 좋은 사람이야. 짜증 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

황덕록은 본인이 말해 놓고 울컥하는지, 콧잔등을 찡그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겉모습과 달리 감수성이 풍부했다.

감염된 식물과 변종의 시체가 널브러진 산책로지만, 분위기는 훈훈했다.

이정우는 헛기침과 함께 마음을 가다듬더니, 다시금 본론을 얘기했다.

“얘기가 옆으로 빠졌네. 아무튼 한월이랑 대장 좀비가 유착관계라는 거지?”

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네, 다만…… 누굴 탓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아니,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고. 대장 좀비는 자식들 때문이라 쳐도, 한월은 그 4명의 파티원을 죽이고 얻은 게 뭐야?”

“안정이요.”

“안정?”

“네, 그 4명이 사라지면서 한월의 말에 힘이 실렸거든요. 그 뒤로 생존자들도 한월을 따르기 시작했고요.”

“어째서? 파티원들 데리고 나갔다가 혼자 살아 돌아온 꼴이잖아.”

“대장 좀비의 자식들을 데려왔잖아요.”

“아…….”

“아이들을 구출하는 과정에, 죽은 4명이 명예롭게 전사한 것처럼 포장했습니다. 죽은 4명의 몫까지 본인이 짊어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고요.”

“……가브리엘의 능력을 이용한 건가?”

“네,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는 건 영향력이 꽤 크죠.”

“에덤은 없었어?”

“죽은 4명 중에 에덤이 있었어요. 우리 에덤이랑 대조되는 사람이었지만.”

최현이 박재형을 쳐다보며 얘기하자, 이정우는 이마를 긁적이며 물었다.

“어떻게 다른데, 사람이라도 죽였어?”

“쓰레기예요. 본인 잘난 맛에 다른 플레이어들이랑 힘을 합칠 생각도 안 하고, 현실과 가상도 분간 못 하고요.”

“현실과 가상?”

“네, 라스트아크랑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어요. 죽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미친놈이네. 이 상황에 리스폰이라니.”

이정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하자, 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휘둘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죠.”

“죽은 플레이어들은 그 말에 휘둘린 건가?”

“네, 신명 나게 좀비 죽이면서 에덤 능력을 과시했고, 그러다 대장 좀비 만나서 다 같이 죽은 거예요.”

“그 죽은 에덤도 변종으로 변했을 텐데, 그 뒷일은 어떻게 한 거야?”

“뇌를 파먹혔는데 어떻게 변하겠어요.”

“아.”

좀비에게 물리면 변이가 시작되지만, 뇌를 파먹히면 그대로 끝이었다.

이정우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한월도 여러모로 답답했겠네.”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계속 내버려 뒀으면 아크도 무너지고 파티 압구정도 이 자리에 없을 겁니다. 다만…….”

최현이 말끝을 흐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최현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안정을 바라던 마음이…… 어느 순간 허영심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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