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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45화
코끝을 간질이는 풀 냄새 사이로 하수구의 썩은 내가 섞여 있었다.
좀비들의 시체 때문인지, 듬성듬성 보이는 고인 물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재형아, 저기.”
설여원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자, 생태공원 맞은편 하천으로 좀비들의 시체가 뭉쳐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냄새의 근원이 저것들 때문이었나?
부패가 진행 중이었고, 살아 있는 놈은 없었다.
다가가는 것도 싫지만, 확인할 건 확인해야 한다.
옷소매로 코를 가린 채 시체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뭐해?”
뒤에서 전완수가 묻기에, 좀비들의 시체를 살피며 대답했다.
“그냥 시체가 아니야. 영양분으로 쓰인 놈들이야.”
두 볼이 홀쭉하고, 사지가 시들시들했다.
좀비들의 외형을 살핀 뒤, 뒤에 있는 전완수에게 물었다.
“완수야, 여기서 하천 상류 보여?”
“안 보여. 수풀이 시야를 가려.”
시체들의 상태로 보아 근방에 부화장이 있다는 뜻인데…….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릿속으로 지형을 떠올렸다.
생태공원을 지나왔고, 현재 우리의 위치는 고덕수문교.
이곳의 하천은 고덕산까지 이어진다.
그렇다면 고덕산에서 흘러왔을 가능성이 높다.
예상대로 고덕산에 감염된 식물이 있고, 그곳에 부화장이 있는 모양이다.
현재 우리의 위치는 설여원이 알파5를 발견한 버스 차고지와 대략 2㎞ 떨어진 거리.
그 사이에 고덕산이 있다.
그렇다면 고덕산부터 그 뒤편의 도심까지 전부 부화장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강동구는 박살 났을 가능성이 크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해.”
옆에 있던 최현이 묻기에, 이마를 문지르며 얘기했다.
“이쪽은 최대한 빠르게 지나가는 게 안전할 것 같아.”
“강동구? 왜. 강동구에 무슨 일 있는 거야?”
“강동구는 산이랑 숲, 공원이 많아. 고덕산 뒤편으로 내가 아는 근린공원만 6개는 넘어.”
“감염된 식물의 소굴이라는 거야?”
“맞아. 부화장이 많다는 건 변종도 많다는 뜻이지.”
“그럼 어떻게. 돌아가?”
지금 수비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마땅한 대책이 생기는 건 아니다.
차라리 소수정예로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오는 게 이롭다.
생각을 정리하고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우리가 광나루한강공원까지 확인하자.”
“광나루한강공원? 여기서 멀어?”
“암사동 쪽에 있어.”
“암사동은 또 어디야.”
“…….”
동네 위치까지 하나하나 설명하는 건 무리였다.
내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최현도 아차 싶었는지 목덜미를 문지르며 얘기했다.
“아, 미안. 너무 꼬치꼬치 캐물었네. 지도가 없으니 불안해서.”
“미안할 거 없어. 나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서 당황했을 뿐이야.”
“그럼…… 일단 직진?”
“어, 고덕산 옆에 수질정수장이 있으니, 거기까지 확인하고 안전하면 무전기로 수비팀 부르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하체를 접으며 얘기했다.
“뛰자. 지금은 수색대만 있으니까.”
“오케이.”
쾅-!!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면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오혜선과 한민욱이 없으니 이동에 속도가 붙었다.
그들이 아무리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고 한들, 우리의 뛰는 속도는 따라올 수 없었다.
쏜살같이 안개 속을 나아가며 옆에 있는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직진하다가 한강다리 보이면 얘기해 줘.”
“다리 이름이 뭔데?”
“구리암사대교. 제일 먼저 보일 거야.”
그러자 설여원과 전완수는 황급히 걸음을 멈추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두 다리에 제동을 걸었다.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
“바로 앞에 구리암사대교. 20m 앞에.”
벌써 도착했다고?
우리가 있던 하천에서 구리암사대교까지 족히 1.7㎞는 된다.
1분도 안 됐는데, 1.7㎞를 돌파했다.
하긴, 현재 결인들의 신체 능력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면 1㎞는 우스운 거리였다.
2㎞ 거리에 있는 알파5를 신경 쓰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모든 건 한순간이다.
“오면서 이상한 거 없었어?”
“아무것도.”
“정수장 쪽도?”
“엄청 높은 언덕밖에 안 보였어. 팬스 같은 게 길게 쳐진 장소는 봤는데, 감염된 식물은 못 봤어.”
좋아, 정수장까지 안전하다면 일행을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정수센터에 감염된 식물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물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정수시설을 감염된 식물들이 감싸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미리 와서 확인하자고 한 것이다.
감염된 식물이 없다고 하니, 무전기를 들고 수비팀을 불렀다.
“정우 형 들리세요?”
치지직- 치직-
-얘기해.
“직진해서 구리암사대교까지 오세요.”
-구리암사대교가 어디야.
“거기서 2.2㎞ 정도 거리에요. 오는 길은 안전하니 오혜선 씨랑 한민욱 씨 데려오세요.”
-알았어. 너희는 계속 이동할 거야?
“네, 여기서 1.3㎞만 더 가면 광나루한강공원이에요. 거기까지 확인할게요.”
-금방 갈 테니 확인하고 있어. 변종이나 좀비들 보이면 정리하지 말고 기다려.
“알겠습니다.”
무전을 마치고 수색대를 쳐다보자, 설여원은 자전거도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먼저 가서 확인하면 되는 거지?”
“어, 이번엔 속도 줄여. 다 같이 전속력으로 달리면 들킬 것 같아.”
“왜?”
“바람 때문에 옆에 있는 억새들 난리 나잖아. 소리가 너무 커.”
우측으로 억새풀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면 억새들이 좌우로 세차게 흔들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근방에 좀비가 없어서 망정이지, 만약 100m 이내에 좀비가 있었다면 들켰을 것이다.
설여원과 전완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발소리를 죽인 채 광나루공원으로 향했다.
* * *
안상진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동구는 변종과 감염된 식물의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8m 크기의 알파 변종과 베타 변종, 그 외에 각종 3성 변종들이 도심을 점령한 상태였다.
변종들이 안상진을 발견하고 달려들자,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크어어어어어!!!
띠링-!
-스킬 ‘전투의 포효’를 사용합니다.
-500m 이내의 수하들은 좀비 플레이어의 포효에 따라 강화됩니다.
-좀비 플레이어와 수하들의 신체 능력이 10분간 1.5배 증가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30분.
그러자 안상진의 수하들도 덩달아 포효를 내지르며 알파4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안상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달아 스킬을 사용했다.
“폭식, 도취.”
띠링-!
-스킬 ‘폭식’을 사용합니다.
-수하들의 방어력이 20% 감소합니다.
-수하들의 이동 속도가 2배 증가합니다.
-‘폭식’이 지속되는 동안 적으로 인식한 생물체를 처리할 시, 방어력 감소 디퍼프가 사라집니다.
-‘폭식’은 30분간 지속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띠링-!
-스킬 ‘도취’를 사용합니다.
-좀비 플레이어가 자아도취에 빠집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모든 신체 능력이 1.3배 증가합니다.
-도취는 30분간 지속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카하아악!!! 하아악!!
수하들은 연신 괴성을 내뱉으며 변종들에게 달려들었다.
안상진은 강동구 정리를 위해 10만의 수하를 끌고 왔다.
연달아 3개의 스킬을 사용하자, 수하들 하나하나가 3성 변종과 엇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강동구에 있던 3성 변종들은 안상진의 압도적인 물량 앞에 힘없이 쓰러져 나갔다.
문제는 4성 변종.
알파4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안상진의 수하들은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또한 베타4가 혓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파도에 쓸려 나가는 모래알처럼 수하들이 나가떨어지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안상진은 4성 변종을 똑바로 응시하더니, 하체를 접으며 쏜살같이 튀어 올랐다.
쾅-!!!
빗금을 그으며 순식간에 8m 위로 뛰어오른 안상진은 알파4의 안면에 주먹을 내질렀다.
펑-!!!
일격에 알파4의 안면이 함몰되며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수하들이 알파4의 신체를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개미군단이 죽어가는 생쥐를 감싸는 것처럼, 순식간에 알파4를 휘감은 좀비들.
안상진의 수하들은 변종의 피부를 마구잡이로 할퀴고, 뜯어먹기 시작했다.
치지직- 치직-
-안상진, 네 수하들 도착했어. 나랑 200m 거리 유지 중이야.
뒤이어 안상진의 무전기에서 한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상진은 알파4가 죽어가는 걸 확인한 뒤, 심호흡과 함께 무전기를 들었다.
“수하들한테 명령해 둘 테니, 한강공원 따라서 하남으로 이동해. 네 파티원들은 도착했어?”
-당연히 도착했지. 화장실에서 몰래 무전 보내는 거야.
“네 파티에 가브리엘은 너뿐인 거지?”
-어.
“수하들 한강공원 따라서 하남까지 정리하라고 할 테니, 적당히 거리 유지하면서 따라가.”
-만약 변종이 달려들면 어떡해?
“변종들은 내가 시선 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키에에에엑!!
그 순간, 건물을 뚫고 나온 알파2가 안상진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는 슬쩍 고개를 들고 알파2를 쳐다보더니, 왼손을 불끈 쥐며 있는 힘껏 어퍼컷을 날렸다.
콰직!!
일격에 머리가 터져 나가는 알파2.
두개골을 터뜨릴 정도면, 안상진의 근력은 최소 4000이었다.
치지직- 치직-
뒤이어 한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런데 이거 맞아? 아직 하남 상황도 모르는데 네 수하들 믿고 들어갔다가 4성 변종이라도 만나면…….
“정찰병 보내서 강동구에 있는 변종들 전부 이쪽으로 시선 돌렸어. 한강공원 쪽에 좀비는 없을 거야.”
-아니 그러니까. 하남 도심은 모르잖아.
무전기로 한월의 불안한 심리가 느껴지자, 안상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줘야 돼? 하남 초입만 확인하고 돌아와. 그게 네 임무야.”
-……알았어. 만약 하남에 인기척 안 느껴지면 그냥 돌아온다?
“그렇게 해.”
브르르릅- 브르릅-
뒤이어 수하들을 공격하던 베타4의 시선이 안상진에게 꽂혔다.
살기를 느끼고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베타4의 혓바닥이 안상진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재빨리 사이드스텝을 밟으며 회피했다.
동시에 베타4의 혓바닥을 붙잡고, 수하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치이이- 치이익-!
혓바닥을 붙잡은 안상진의 양팔이 산성 물질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부가 녹아내린 만큼, 빠르게 재생되는 모습을 보였다.
박재형과 마찬가지로, 10성 대장 좀비 안상진에게도 재생 능력이 있었다.
개 떼처럼 달려든 수하들이 베타4의 단단한 껍질을 부서질 때까지 물어뜯고 깨부수는 모습을 보였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강동구에 있는 변종들을 안상진이 유인하고, 한월이 하남으로 진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다소 무리가 있는 계획이지만, 들불처럼 번지는 시위대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서둘러야 했다.
새로운 생존자와 플레이어들이 아크에 있는 플레이어 덕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리고 한월에게 구출된 파티가 소리결이라면, 아크에 있는 생존자들도 더는 색안경을 끼지 않을 것이다.
소리결은 부산 아크에서 살아 돌아온 산 증인이나 마찬가지니까.
다만 안상진에겐 최악의 조건이었다.
아무리 수하들이 강해지고 본인의 신체 능력이 증가했다 한들, 다수의 변종을 상대하는 건 버거웠다.
스킬을 남용하면 지속시간이 끝난 뒤에 리바운드 증상이 몰려온다.
심할 때는 정신을 잃고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쿵- 쿵-
그 순간, 멀찍이서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발소리보다는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에 가까웠다.
안상진은 손에 쥐고 있던 베타4의 혓바닥을 놓은 뒤, 우측으로 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곧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안개 밖으로 상체가 절반 이상 나온 거대한 괴물이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남은 스킬까지 사용해야 하나?’
안상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심에 잠겼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스킬이 3개나 더 있었다.
효과는 좋아도 부담이 커서,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5성 변종에게 위치를 들킨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
안상진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읊조렸다.
“탐욕, 오만, 역병 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