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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44화
이동 경로를 설정하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은 흘러 노을이 지기 시작하고, 밖에서 오혜선과 한민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밥 먹어요!”
오혜선이 국자를 흔들며 얘기하자, 이정우는 지도를 챙기며 얘기했다.
“다들 밥부터 먹고, 오늘은 푹 쉬어. 내일은 서울 진입할 거니까.”
“넵!”
결인들은 힘차게 대답하며 밖으로 나갔다.
다들 평소와 같은 모습인데, 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길잡이 역할이 부담스러웠다.
내가 잘못된 길로 인도하면…… 모두를 저승으로 안내할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더욱 어깨가 무거웠다.
5단계 변종도 나온 마당에, 모두를 안전하게 여의도로 보낼 수 있을까?
“재형아 빨리 와!”
설여원이 숟가락을 흔들며 부르기에,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간다, 가.”
근심은 묻어두고, 서둘러 일행의 곁으로 향했다.
* * *
한적하다고 해야 좋을지, 수심에 잠긴 시간이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몇 번이고 이동 경로를 머릿속으로 되뇌며 잠들었다.
시간은 무던히도 흘러, 이윽고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거의 쪽잠을 자고 일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며 텐트 밖으로 나오자,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설여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머리를 긁적이며 묻자, 설여원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마실래?”
“주면 좋지.”
설여원은 인벤토리에서 원두를 꺼내어 열심히 갈기 시작했다.
뒤이어 완성된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물었다.
“오늘은 서울 들어가서 재형이 네 본가부터 확인하는 거지?”
“아마도.”
“아마라니, 무조건이지.”
쓴웃음을 지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설여원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조정경기장을 바라봤다.
“한적하게 낚시나 하고 싶다.”
설여원의 말에 싱겁게 웃으며 물었다.
“낚시 좋아해?”
“그냥 취미. 어릴 때부터 아빠 따라서 낚시 다녔거든.”
“…….”
“하남에 있던 우리 부모님도 살아계시는데, 재형이 네 부모님도 건강하실 거야.”
내가 본가를 확인하러 간다는 생각에 심란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부모님의 안부도 걱정이고, 모두의 안전도 걱정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기에, 한숨을 내쉬며 근심을 떨쳐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아 참, 여원아. 집에서 단서는 찾았어?”
“이거.”
설여원은 찢어진 A4용지를 건네주었다.
용지에는 급하게 적은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대피소로 간다는 말과 함께 아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크라는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쳐다보자, 설여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우리 부모님, 플레이어를 만나서 아크로 이동한 것 같아.”
“다행이네.”
“초기에 이동한 것 같은데,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네.”
본가를 확인한 뒤로 설여원의 표정이 좋아진 것 같더니, 이 쪽지를 찾아서 마음이 놓인 모양이다.
설여원은 양손으로 커피잔을 쥐며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뒤이어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얘기했다.
“너희 부모님도 안전할 거야. 아크로 이동하는 길에 너희 부모님이 합류했을 가능성도 있잖아.”
설여원의 위로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들고 있던 A4용지를 설여원에게 돌려주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얘기했다.
“그래야지. 다들 건강해야지.”
“그럼…… 슬슬 다들 깨울까?”
설여원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묻기에, 남은 커피를 단숨에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월! 월!
언제 일어났는지, 장군이가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산책! 산책 가자!]
장군이의 말풍선을 보고,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정말 장군이 덕에 웃을 일이 많아졌다.
“알았어, 친구들 일어날 때까지 조금만 걷자.”
[와! 산책! 산책 좋아!]
설여원에게 일행의 기상을 맡기고, 장군이와 함께 조정경기장을 거닐었다.
* * *
남은 식량이 많지 않기에, 아침은 이정우와 정진영이 포만감 알약을 구매하여 한 알씩 배분했다.
부족한 사람들은 감자를 구워 먹었다.
황덕록과 박재우는 일어나자마자 중력장 소총의 업그레이드 상태부터 확인하고, 프린트를 회수했다.
모든 중력장 소총을 5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보호대나 카타나처럼, 중력장 소총도 5레벨이 최고 레벨이라고 한다.
“코인 얼마나 남았어?”
중력장 소총을 살피며 묻자, 박재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87코인 남았어. 깔끔하게 다 썼다.”
“고생 많았어.”
황덕록과 박재우는 밤새도록 자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업그레이드가 끝나면 일어나서 다시 가동하고, 필요한 로그나이트를 프린트에 넣고, 전력량을 확인한 뒤에 쪽잠 자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중력장 소총 Lv.5]
-중력장 소총의 사거리는 300m가 한계입니다.
-대상을 지정하면 반경 30m 이내에 중력장을 설치합니다.
-중력장 소총 1회 발사 시, 5분의 충전시간이 소요됩니다.
-내구도가 0이 되면 10분의 복구시간이 소요됩니다.
사거리와 중력장의 범위는 달라진 게 없지만, 충전시간이 10분에서 5분으로 줄었다.
또한 내구도가 0이 되어도 파괴되지 않고 10분의 복구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성능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지만, 카타나가 5레벨이 되면서 예리해진 것처럼 중력장 소총의 성능도 좋아졌을 것이다.
설명을 읽고, 일행을 쳐다보며 물었다.
“중력장 소총은 여원이랑 완수, 희연이가 쓰는 게 어때요?”
“각자 소총 2정씩?”
이정우가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거리가 300m나 되는데, 저희는 10m 앞도 분간하기 힘들잖아요.”
“하긴, 그러자.”
이정우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사람들도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과 전완수, 김희연은 중력장 소총을 2정씩 사용하게 되었다.
김희연은 인벤토리에 중력장 소총을 넣은 뒤,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오빠, 저도 천리안 최고 레벨 찍었어요.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알았어.”
어젯밤, 전완수는 천리안의 성능을 신명하게 자랑했다.
VR 게임을 하는 것 같다나 뭐라나.
이에 김희연도 2만 코인을 투자하여 최고 레벨을 찍은 뒤, 이곳에서 몇 차례 연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자, 수다는 나중에 떨고, 다들 이동할 준비하자.”
정진영이 박수를 치며 얘기하자, 그제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텐트와 각종 식기를 챙기고, 살수차에 한강물을 담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시침은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좀비화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서울로 들어갈 거야. 우리 예상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으니, 다들 긴장해.”
결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풀어졌던 마음을 다잡았다.
오혜선과 한민욱은 자전거에 오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표정을 가볍게 훑고, 카타나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가자.”
* * *
미사대로를 따라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가능하면 대로로 올라가지 않고 숲길로 이동하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숲길도 적당히 풀이 자라난 상태여야 안전하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풀이 자라난 탓에 발이 빠지기 일쑤였다.
결인들은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지만, 오혜선과 한민욱은 자전거로 이동하기에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미사대로로 올라, 미사한강공원이 나올 때까지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가 이동하는 경로는 아직 도시화 계획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종종 나타나는 좀비를 제외하면, 큰 위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쉬지 않고 북쪽으로 나아가자, 점점 인적이 드문 길이 나오며 대로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선두에 있던 설여원은 표지판을 살피며 좌측을 가리켰다.
“저쪽 샛길로.”
설여원의 지시에 따라 일행에게 좌측을 가리켰다.
대로의 중심부로 이동하자, 미사 IC로 올라가는 고속화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고속도로로 이동하는 건 어떨까 고민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더는 고속도로도 안전하지 않았다.
변종들의 크기가 지나치게 거대해졌고, 좀비들의 신체 능력이 향상되며 고속도로까지 올라올 힘이 생겼다.
최대한 발각되지 않고 이동하는 게 관건이기에, 미사 IC의 밑으로 보이는 좌측 샛길로 진입했다.
뒤이어 한강 공원에 있는 선동야구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설여원은 빠르게 좌우를 살피더니, 야구장 사이의 흙길로 진입했다.
거의 한강과 맞닿을 정도로 나아가자, 그제야 자전거 전용도로가 나타났다.
“여기서 좌측으로 가는 거지?”
이정우가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자전거 도로 따라서 계속 직진하면 여의도까지 갈 수 있어요.”
“재형이 네 본가는 어디라고 했지?”
“잠실이요.”
“그럼 이 길 따라서 직진하다가, 잠실에서 다 같이 도심으로 진입하면 되는 거야?”
이정우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다 같이 진입할 필요 없어요. 수비팀은 자전거도로에서 대기하고, 수색대만 슬쩍 들어갔다가 나오면 돼요.”
“슬쩍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될까?”
“집이 산책로 바로 앞에 있어요.”
“집이 어딘데.”
“잠실종합운동장 바로 옆이요. 산책로에서 보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진영이 떡 하니 입을 벌리며 물었다.
“뭐야, 재형이 완전 부자네?”
“……네?”
“거기 한강 뷰 아파트잖아.”
정진영이 신기하다는 듯이 묻자, 뒤에 있던 전완수는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많이 비싸요?”
“20에서 30억 할걸?”
전완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내 팔뚝을 때리며 말을 이었다.
“와, 만날 돈 없다고 노래 부르더니, 순 거짓말쟁이네.”
“지금 그게 중요하냐?”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정진영과 전완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란 모양이다.
이제 와서 돈이 무슨 소용인가.
복권 1등 용지보다 감자 하나가 더 소중한 시대였다.
이에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긴장 좀 해요.”
분위기 망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농담이나 할 때가 아니다.
5단계 변종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모든 감각을 예리하게 벼려야 한다.
찰나의 방심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단 말이다.
내 표정이 지나치게 진지하다고 여겼는지, 다들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정진영도 눈썹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미안, 내가 괜한 소리 했네.”
“……움직이죠.”
예전에 독일 차량의 앞 범퍼를 뜯어서 개조할 때도, 이것만 팔아도 얼마냐, 이런 말을 하던 정진영이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마음이 풀어져선 안 된다.
이럴수록 더욱 다잡아야 한다.
선두에 있는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좌측으로 나아갔다.
양옆으로 목젖까지 올라오는 기다란 풀들이 자라난 상태였다.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서, 자전거 도로에도 풀들이 무성했다.
한참을 나아가도 똑같은 풍경이었다.
위협이 느껴지지 않아서 더욱 불안했다.
좀비들이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이미 변종의 식량이 되었거나, 감염된 식물이 영양분으로 뽑아간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근방의 변종들은 진화 상태가 더욱 뛰어날 것이다,
뒤이어 선두에 있던 설여원이 속도를 줄이며 얘기했다.
“지금부터 서울 진입합니다.”
산책로에 설치된 표지판에 이러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살고 싶은 도시 하남]
[철새 도래지 하남]
[하남<-->서울특별시]
하남과 서울의 경계선을 지나 계속해서 나아갔다.
좌측에 위치한 비닐하우스들을 살피며 설여원에게 물었다.
“감염된 식물 없어?”
“신기할 정도로 없어.”
이렇게 깨끗하다고?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강동대교 밑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자, 곧 구불구불한 산책로와 함께 고덕천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선두에 있는 설여원과 전완수를 불렀다.
“다들 정지.”
설여원은 재빨리 두 다리에 제동을 걸며 뒤를 돌아봤다.
이정우는 좌우를 살피며 내게 물었다.
“왜, 뭐 있어?”
“저 앞이 고덕수변생태공원이에요. 생태공원 지나면 바로 옆에 고덕산 보일 겁니다. 올림픽대로도 보이고요.”
이정우는 브리핑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오혜선 씨랑 한민욱 씨는 여기서 숨돌려요. 수비팀은 여기 있고, 수색대만 가서 상황 파악하고 돌아와.”
“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 정진영과 함께 나아갔다.
김희연은 그에 따라 독 안개 제거기를 가동하며 주변 경계에 집중했다.
처음엔 내가 과하게 분위기를 잡았나 싶었지만, 덕분에 다들 상황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불편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긴장하지 않으면 눈 뜨고 코 베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