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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36화
다들 강화제 알약을 10개씩 섭취하더니, 달라진 심박에 적응하기 위해 심호흡을 반복했다.
이정우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재형이 너는 좀비화 쓰지 마.”
“네?”
“3단계 변종이 50마리 이상 있거나, 4단계 변종이 있거나, 변종 에덤 3단계가 있는 거 아니면 좀비화 쓰지 마.”
“…….”
“좀비화는 최후의 보루라는 거 잊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어제 무리하다가 사고를 쳤기에, 무리해서 카운트를 올리는 행동은 금하기로 했다.
이정우의 의견에 순순히 따르자, 그는 결인들을 한 명 한 명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이랑 완수가 선두, 그 뒤에 재형이랑 현이, 제일 뒷줄에 나랑 진영이, 재우, 덕록이.”
이정우의 브리핑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카타나를 손에 쥐자, 이정우는 설여원과 전완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들어가자.”
* * *
“그게 계획이라는 거야?”
“다른 방법 있어?”
안상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옆에 있던 여자, 한월도 덩달아 미간을 찌푸렸다.
안상진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한월에게 물었다.
“만약 못 찾으면 어쩌려고.”
“해가 중천에 떴어. 그놈들도 이미 움직이고 있을걸?”
“못 찾으면, 이라고 했다.”
안상진이 도끼눈을 뜨며 묻자, 한월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못 찾으면 못 돌아가.”
“……?”
“이미 시위대는 말릴 수 없는 상황이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시위를 이끄는 대표도 없는데 어떻게 협상을 진행해? 밑도 끝도 없이 들고일어났다고. 그런 놈들을 어떻게 말려?”
한월은 세차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안상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한월은 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심지어 이틀 만에 규모는 1000명이나 더 늘었어.”
“플레이어 반대 시위만 4000명이라는 거냐?”
“그래. 4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14명의 플레이어로 저지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머지 6000명은 뭐하고. 그 사람들을 네 편으로…….”
“이틀 만에 1000명이 돌아섰다니까? 남은 사람들도 아직 돌아서지 않았을 뿐이지, 시간문제야.”
답이 없는 상황에 안상진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월은 피곤한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소리결을 데려가야 해. 소리결을 데려가면 다른 방법이 생길 거야.”
“방법은 무슨 방법. 시간 끄는 것밖에 더 돼?”
“혹시 모르지. 소리결이 방법을 알지도.”
“그 방법이 시위대의 편에 서는 건지도 모르지.”
안상진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한월은 귀를 파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한월도 알고 있다.
소리결이 시위대의 편에 선다면, 사실상 아크는 끝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부산 아크가 대공습을 버텨냈기에, 실낱같은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소리결이 인간의 편이라는 희망.
지금 같은 종말의 시대에 희망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면서도, 그 희망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한월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안상진은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래서, 소리결을 데려오겠다고 무턱대고 나왔다는 거냐? 시위대가 있는 곳에 내 자식들을 두고?”
“오늘 안에 돌아가면 문제없을 거야.”
“장난해? 고작 한다는 소리가…….”
“다른 플레이어들이 아크에 있으니, 네 자식들은 안전해.”
한월의 막무가내식 대책에, 안상진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자식들만 보고 사는 안상진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이런 불안정한 방안은 대책이라고 볼 수 없었다.
좀비의 본능도 힘겹게 억누르고 있는데, 이걸 위로라고 하는 건가?
안상진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지자, 한월은 그를 진정시키며 얘기했다.
“소리결 하남에 있다며. 찾을 수 있을 거야.”
“하남이 무슨 동네 구멍가게냐?”
“…….”
“그 넓은 곳에서 어떻게 찾으라고?”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평소엔 그렇게 태연하게 굴더니?”
“내 자식들이 아크에 있잖아!! 그 쓰레기 같은 시위대가 있는 곳에!!”
안상진은 참다못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안상진의 모습에, 한월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한월이 양손을 파르르 떨며 마른침을 삼키자, 안상진은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아직…… 강동구는 정리도 안 됐다고. 하남까지 갈 방법은 없다고!”
“서울 전역에 수하들 뿌려둔 거 아니었어? 그럼 서울은 안전하잖아.”
“하…….”
안상진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야, 왜 그래, 오늘따라 지나치게 감정적이야.”
한월이 안상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하자, 안상진은 힘없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서울 전역 같은 소리. 여의도 반경 4㎞ 방어하는 게 한계야.”
안상진의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대답에, 한월은 움찔거리고 말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나랑 같이 생존자 구출도 하고…….”
“그건 어디까지나 세 번째 에피소드 이전의 얘기지.”
“……뭐?”
“세 번째 에피소드 시작되고 변종들이 미쳐 날뛴다고. 나 혼자 계속 서울 전체를 관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안상진의 말에 한월은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변종 때문에 범위를 좁혔다는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뭐를.”
“내 수하들, 4성 변종 위치 파악하려고 붙여둔 게 아니라 시선 돌리려고 붙여둔 거라고. 아크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미끼 역할 하는 거라고!”
안상진의 말에 한월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시위대를 말릴 수 없기에, 아크를 떠날 생각까지 했다.
방랑자 생활을 하더라도 안상진이 있으면 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나 다름없었다.
한월은 두 눈을 껌벅이며 연신 헛숨을 내쉬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왜, 대체 왜 얘기 안 했어?”
“…….”
“너 설마…… 그동안 나를 못 믿은 거야? 네가 힘이 없어지면 뭐, 내가 애들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그러는 너는? 내 자식들 볼모로 잡아둔 거 아니야?”
“……뭐?”
“내 자식들이 살아 있는지, 아니면 예전에 찍어둔 사진으로 거짓말을 하는 건지 내가 어떻게 알아?”
“동영상 보여줬잖아!”
“어제 처음 보여줬잖아! 내가 영상으로 찍어오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모든 불화는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이들의 관계도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한월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망함.
다른 무슨 말로 지금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안상진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얘기했다.
“네가…… 내 기분을 알아?”
“…….”
“내 자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명확하지도 않은데, 잘 지내냐고 편지 쓰는 기분을 아냐고.”
서로를 향한 불신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거짓말이 쌓이고 쌓여, 두 사람 사이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월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암담한 상황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한월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관자놀이를 누르더니,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입을 열었다.
“좋아, 우리 둘 문제는 여기서 잠깐 덮어두자고.”
“…….”
“지금…… 서로 잘못한 게 너무 많아. 지금 이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지금은 우리끼리 싸워서 좋을 게 없다는 거지.”
한월은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안개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봤다.
해결할 방법은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답을 찾기 위해선 대화를 해야 한다.
그것도 서로를 불신하고,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안상진과 말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안상진도 감정을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얘기해.”
“자, 급한 일부터 생각해보자. 일단 여의도 반경 4㎞는 안전한 거야?”
“일단은.”
“아크의 외벽에 전류가 흐르는 건 너도 알지? 4성 변종은 그것도 뚫을 수 있는 거야?”
“뚫을 수 있어. 물론 아크 내부에서 2분도 살아남지 못하지만.”
“그럼 네 수하들로 4성 변종의 시선을 돌릴 필요는 없지 않아? 어차피 2분도 못 버티는데.”
“4성 변종에게 2분은 수백, 수천 명도 죽일 수 있는 시간이야.”
안상진의 말에 한월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럼…… 그냥 4성 변종을 들여보내는 건 어때? 그럼 시위대도 죽고 얼마나 좋아.”
“변종이 시위대랑 생존자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 멀쩡한 사람까지 죽일 게 뻔해.”
안상진의 말에 한월은 눈꼬리를 치켜뜨며 그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안상진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곁눈질로 한월을 쳐다봤다.
“뭘 봐.”
“뭐야, 만날 생존자 죽이니 마니 하더니, 너도 사람 살리고 싶었던 거야?”
안상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니야. 내 자식들 때문이지.”
안상진의 대답에 한월은 싱겁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뒤이어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이건 어때. 네 자식은 내가 지킬 테니, 4성 변종을 아크에 들여보내는 거야.”
“넌 4성 변종을 몰라. 4성을 만나면, 네 머리가 잘려나가도 죽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거다.”
안상진의 말에 한월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한월은 3성도 상대할 수 없으니까.
결국 이 방법은 답이 없기에, 급히 화제를 돌렸다.
“좋아, 그럼 그 문제는 패스. 잠실까지의 루트는 아직 안전한 거야?”
“내가 세 번째 에피소드 시작하고 롯데타워를 버리고 여의도 주변으로 온 이유가 뭐겠어.”
“그것도 4성 때문이야? 네 오기로 남아 있던 게 아니고?”
“그래.”
“허, 그동안 센 척 오지게 하고 있었네?”
한월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하자, 안상진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반박하려다 말고, 안상진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안상진의 표정에 귀찮은 심정이 묻어나자, 한월은 싱겁게 웃으며 그의 팔뚝을 밀쳤다.
“새끼, 삐치기는.”
“……새끼?”
“농담이야. 뭘 또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여.”
이런 상황에 농담이라니.
물론 격해진 분위기를 진정시키려는 한월의 노력은 알겠지만, 안상진으로선 못마땅했다.
한월은 손깍지를 끼며 턱을 괴었다.
뒤이어 마른세수와 함께 생각을 반복하더니,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얘기했다.
“강동구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소리결을 만날 방법은 없는 거야?”
“소리결이 뚫고 들어오길 빌어야지.”
“우리도 천천히 뚫고 들어가면 서로 금방 만날 수 있지 않겠어?”
“나도 그 생각은 했어. 그래서 송파구와 강동구 경계선에 남은 수하들을 배치해둔 상태고.”
“그럼 뭐가 문제야?”
“강동구에 4성 변종이 너무 많아.”
“지하철은.”
“델타 변종 소굴이야.”
“잠깐만, 지하철이 델타 변종 소굴이라는 걸 소리결도 알까?”
한월의 물음에 안상진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문질렀다.
“……알 턱이 없지.”
“그건 그렇고, 네 부하들은 어떻게 4성 변종을 유인하는 거야? 변종이 좀비를 따라갈 이유가 있나?”
“진화 조건이 식물이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감염된 식물의 진액을 수하들 상체에 바르면 꿀벌처럼 모여들어. 공격성도 사라지고.”
안상진의 말에 한월은 싱겁게 웃으며 물었다.
“왜 그런 거야?”
“그놈들 진화 조건이니까. 진화하려면 감염된 식물이 필요하고, 좀비는 영양분으로 쓰이지.”
“좀비의 체취에 식물의 진액까지 있으니, 거기를 부화장으로 인식하는 거야?”
“부화장으로 인식하기보다, 부화장이 근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변종에게 그 정도 판단능력이 있어?”
“지금 변종들은 이전의 변종과 달라. 훨씬 똑똑해졌어. 하루 정도 따라다녀도 부화장이 안 나타나면 수하를 잡아먹어.”
“그럴 때마다 계속 새로운 수하를 추가했고?”
안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나도 놀기만 하는 게 아니야.”
“잠깐만.”
그러다 문득, 한월은 오른손을 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상진이 의구심을 품자, 한월은 긴가민가하다는 듯이 물었다.
“4성 변종이 네 수하를 따라간다는 건…… 4성 변종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거야?”
한월의 물음에, 안상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얘기했잖아. 애초에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불리한 게임이었다고.”
“그럼 생존자는…….”
“생존자는 안중에도 없는 게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