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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88화 (288/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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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34화

안상진의 말에 여자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게 말이 돼? 너도 전력으로 싸워야 이기는 게 4성 변종이라며.”

안상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안상진은 여자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아무래도…… 파티 소리결이 도착한 것 같다.”

“그건 불가능해. 부산 아크 떠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됐어.”

“분명해. 소리결이 아니면 누가 4성 변종을 잡겠어.”

안상진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여자는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위치는.”

“하남.”

“확실해?”

“알파4를 감시하던 수하들이 아직 하남에 남아 있어.”

“서울 전역에 수하들 퍼뜨려둔 상태라더니, 경기도까지 진출한 거야?”

여자의 물음에 안상진은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감시 붙여둔 수하들이 4성 따라서 하남까지 간 거야.”

안상진의 표정에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지 모르게 거짓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기에, 화제를 돌렸다.

“네가 거느릴 수 있는 변종이 3성까지라고 했지?”

“맞아. 종류별로 20마리씩. 변종 에덤은 조종할 수 없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4성 변종을 잡을 정도면…… 너 혼자 소리결 감당할 수 있겠어?”

여자의 물음에 안상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건 네가 감당할 문제 아닌가?”

“내, 내가?”

여자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말까지 더듬었다.

반면에 안상진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경계심부터 풀고, 얘기 잘해서 아크로 들여보내. 그 뒤에 우리와 뜻이 같은지 천천히 확인하면 돼.”

“…….”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소리결에 있는 데니한테 안 들키도록 조심하고. 괜히 경계심만 높아질 거야.”

여자는 몇 차례 심호흡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한 표정의 여자와 달리, 안상진은 동쪽을 바라보며 안광을 번뜩였다.

소리결을 향한 호기심을 지울 수 없었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길이니 반포IC나 서초IC, 송파IC로 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하남이라니.

조심스러운 성격을 지닌 것인지, 지형에 밝은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안상진은 여자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하남에서 여의도까지 길 뚫어둘 테니, 너도 준비해.”

“무슨 준비.”

“잠실타워에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나와.”

“알았어.”

그 뒤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안상진이 여자를 쳐다보자, 여자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지금 움직이라고?”

“지금 아니면 언제 움직이려고.”

“아까 내가 한 얘기는 어디로 들은 거야?”

“네가 한 얘기? 어떤 거.”

“하…… 딴생각한다고 느꼈지만, 하나도 안 들은 거야?”

여자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안상진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다시 얘기해 줘.”

“아크에 있는 시위대 말이야.”

시위대라는 말에 안상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주동자들은 이미 처리했잖아. 남은 세력이 있나?”

“사그라들 줄 알았는데, 불신만 커졌어. 주동자들이 사라지면 진정될 줄 알았는데, 지금 더 난리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질서가 붕괴돼.”

“그럼 전부 바깥으로 내보내.”

“언제.”

“지금.”

“지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소리결 도착하기 전에 처리해야지. 소리결이 시위대의 편에 서면 어쩌려고?”

“…….”

“불편한 싹은 미리 잘라두는 게 이로워.”

안상진의 의견에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3,000명이나 된다고. 그 사람들을 지금 당장 어떻게 데리고 나와?”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아크와 관련된 일은 네가 알아서 하기로 했잖아.”

“하…….”

“이번 주동자 처단도 내 일이 아니었어. 네가 하도 푸념하니까 도와준 거지.”

“도와주는 김에 더 도와주면 어디 덧나?”

“난 아크에 들어갈 수도 없는데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지? 네가 데리고 나와야 내가 삶든 굽든 하지.”

“아니 내 말은…….”

여자는 말끝을 흐리더니,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세차게 혀를 찼다.

“쯧, 됐다. 밖에서 좀비만 처리하는 네가 뭘 알겠어.”

“……뭐?”

“무정부 시대에 사람 관리가 쉬운 줄 알아? 어디로 튈지 모르고, 예의범절 밥 말아 먹은 놈들이 판을 친다고.”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소리결 네가 담당하라고.”

여자의 말에 안상진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너…… 미친 거냐? 대장 좀비인 내가 플레이어랑 대화하라고?”

“다른 방법 있어? 내 몸이 10개도 아니고, 차라리 네 힘을 이용해서 강압적으로 나가면 안 돼?”

“상황 설명도 되지 않은 상태로 내가 소리결을 만난다면, 한쪽은 붕괴될 거다.”

“어휴, 미치겠네 진짜.”

여자는 이마를 문지르며 고심을 반복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손가락을 튕기며 얘기했다.

“차라리 이렇게 하자.”

“어떻게.”

“지금 소리결을 만나서 아크로 데려오는 거야.”

“지금은 무리야. 하남 넘어가는 길에 4성 변종이 즐비해. 내일까지 정리하고…….”

“돌아가면 되잖아. 금암산이랑 이성산이 높은 산도 아닌데.”

“높이는 문제가 아니야, 범위가 문제지. 감염된 식물이 산을 뒤덮은 상태일 거다.”

“하 씨…….”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여자는 갑갑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바닥에 널브러진 돌멩이를 차며 화풀이했다.

안상진도 지금은 대책이 없기에, 여자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 들어가서 시위대에 집중해.”

“넌 어쩌려고.”

“최단 거리에 있는 4성 변종부터 처리하고, 방안을 생각해야지.”

“하…… 알았어.”

여자는 오른손을 휘휘 저으며 무전기를 들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무전을 주고받은 뒤, 아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홀로 노량진역에 남은 안상진은 소파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른세수와 함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더니,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사진첩에 있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확인하고, 최근에 받은 동영상을 재생했다.

-아빠! 한월 이모가 아빠 보여줄 영상 찍으라고 해서 나 휴대폰 받았다!

정적인 사진이 아니라, 아이들의 동적인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실로 두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맑은 아이들의 목소리와 달리, 영상을 바라보는 안상진의 표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여의도까지 고작 500m 거리.

500m 앞에 자녀들이 있는데, 이는 좁혀질 수 없는 거리였다.

노력한다고 해서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에, 차라리 눈을 감았다.

* * *

“정우 형, 이제 출발할까요?”

“좀비화는?”

“쿨타임 돌아왔어요.”

평소 같았으면 여명이 밝아올 때 움직였을 것이다.

그동안 피로가 많이 쌓였는지, 아니면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오늘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늦잠을 자고 말았다.

가장 먼저 일어난 오혜선과 한민욱이 아침을 준비해 준 덕에, 구수한 미역국 냄새에 이끌려 일어날 수 있었다.

시침이 오전 11시를 넘어선 뒤에야, 우린 이동 준비를 마쳤다.

이정우는 마지막으로 지도를 살피더니, 결인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스타필드로 올 때처럼 오혜선 씨랑 한민욱 씨를 감싸는 형태로 갈 거야.”

“네.”

“독 안개 제거기는 일단 여원이만 돌리고, 희연이는 나중에 수색대랑 수비대 나뉠 때 가동해 줘.”

“넵.”

일행의 대답을 듣고, 이정우는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가자.”

스타필드를 나서자마자 한강 공원으로 이동했다.

감염된 식물이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끝도 없이 펼쳐진 갈대밭이 눈에 들어왔다.

선두에 있던 전완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갈대밭을 응시했다.

“이거 느낌이 좀 그렇네.”

“왜.”

“외국 영화에서 보면 꼭 이런 갈대밭에서 뭐 튀어나오잖아.”

확실히 갈대의 높이가 사람 키만큼 자라난 상태라서,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카타나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전부 베어버리면 돼.”

“허, 그것참 친환경적인 방법이네.”

전완수는 싱겁게 웃으며 카타나를 손에 쥐었다.

설여원까지 카타나를 손에 쥐자, 이정우는 뒤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오혜선 씨랑 한민욱 씨 뒤처지지 않도록 잘 확인하면서 따라와.”

이정우의 말을 듣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감지.”

-3분 동안 50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움직임이 포착된 적은 감지의 지속 시간이 끝나도 10초간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감지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10분입니다.

*5성 이상의 대장 좀비, 혹은 변종은 자주색으로 표시됩니다.

전방 500m 내에 좀비나 변종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여원과 전완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인간 예초기처럼 갈대숲을 밀고 들어갔다.

이에 뒤처지지 않도록 빠르게 갈대숲을 밀어버리며 조정경기장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니, 자그마한 실개천이 나타났다.

수심이 깊지 않기에, 먼 길 돌아갈 필요 없이 실개천을 가로질렀다.

실개천 너머도 전부 갈대밭이었다.

드넓은 평지에 끝도 없이 펼쳐진 갈대밭.

뒤이어 200m 전방에서 푸른색으로 보이는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행에게 정지신호를 보내자, 설여원과 전완수는 예초를 멈추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전방 200m 앞에 좀비들. 대략 700마리.”

설여원은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피며 이마를 긁적였다.

“여기선 안 보여. 저쪽 산책로 너머에 둔덕이 있어.”

“둔덕? 높이는.”

“그렇게 안 높아. 인공적으로 만든 둔덕 같은데…… 대략 2m?”

“좀비들도 우리 위치는 모르는 것 같으니, 먼저 가서 정리하자.”

“200m 너머에는 더 없어?”

“그건 모르겠어. 조금 더 접근해 봐야 알 것 같아.”

설여원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완수는 뒤따라오는 일행과의 거리를 확인하더니, 카타나를 말아쥐며 얘기했다.

“빨리 올라가자. 여기 벌레 때문에 미치겠다.”

갈대밭을 지나며 무수히 많은 벌레가 날아들었다.

좁쌀만 한 벌레들은 짜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벌레들은 독 안개에 내성이 있는 건가?

혹여나 벌레도 문제가 있을까 봐 내심 불안했는데, 별 반응이 없었다.

하긴, 식물들도 거대 식물의 액체에 닿아야 변이가 시작된다.

그런 중추 역할을 하는 존재가 없으면 벌레들도 감염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에스파디아가 벌레까지 설정할 여력이 없었을지도?

명확한 이유는 몰라도, 우리에겐 희소식이었다.

단숨에 갈대밭을 정리하고 둔덕을 올랐다.

둔덕을 따라 기다란 산책로가 이어지고, 둔덕을 내려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그 밑으로 푸른색으로 보이는 수백 마리의 좀비가 정처 없이 거닐고 있었다.

크르르르…… 카학!

까각…… 하아악! 하악!

한 박자 늦게 우리의 체취를 맡았는지, 놈들은 기이하게 고개를 틀며 이곳을 돌아봤다.

“여원이가 좌측, 완수가 우측.”

“오케이.”

간략하게 담당 위치를 설정하고, 한발 앞서 둔덕을 내려갔다.

크어어어어!

예전에는 100마리의 좀비만 봐도 긴장하고 식은땀이 났는데,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

오히려 좋다.

좀비들 사이에 변종이 섞여 있으면 몰라도, 좀비들만 있다면 발에 치이는 돌멩이나 다름없었다.

움직이는 공짜 포인트.

쏜살같이 좀비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옆에 있어야 하는 설여원과 전완수가 보이지 않았다.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는 한 시계가 5m에서 10m밖에 되지 않기에, 두 사람을 찾기 위해 청각을 곤두세웠다.

뒤이어 전완수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야, 여원아. 그냥 구경해도 되지 않을까?

“그게 좋을 것 같아.”

어제의 사건 때문에 나를 향한 신뢰가 무너지진 않았을까, 내심 걱정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

내게 카운트를 몰아주고 있었다.

뒤이어 멀찍이 떨어진 둔덕에서 설여원과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재형 파이팅!”

“코인 들어온다 쭉! 쭉쭉! 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카운트 몰아주는 건 좋은데, 어째 좀비들 시선만 더 끄는 것 같다?

크어어어어어!!

두두두두두두두-

뒤이어 조정경기장 방면에서 좀비들의 포효와 함께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략 3,000마리는 넘을 것 같은 땅울림.

지금 보니 두 사람…… 좀비들만 있는 걸 확인하고 일부러 저러는 것 같다.

이렇게 복수하는 거야?

죽으라고 굿을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입가로 번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공짜 카운트도 좋고, 일행의 매콤한 장난에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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