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29화
옆구리와 가슴 보호대가 복구된 것을 확인하고,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다들 먼저 올라가요. 전 바깥 정리 좀 하고 올게요.”
“바깥? 무슨 소리야.”
“좀비화 남은 시간 아까워서요. 아직 40분이나 남았어요.”
“좀비화 풀리기 전에 정리하고 돌아올 수 있어?”
“안전하게 정리할게요.”
이정우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못 당해내겠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반박 대신 이해해 주는 모습.
이에 가볍게 목례하며 밖으로 나갔다.
* * *
이정우는 정진영과 무전을 주고받으며 영화관 매표소로 이동했다.
김희연은 선두에서 길을 찾더니, 마침내 매표소에 도착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건물 엄청 복잡하게 생겼네요.”
“잘 찾아왔어.”
정진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매표소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정진영과 전완수가 찾은 물건들을 탁자 위에 펼치자, 너도나도 수첩을 하나씩 쥐며 그 속의 내용을 살폈다.
반면에 설여원은 얼굴에 묻은 델타 변종의 혈액을 닦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재형이는 왜 안 와요?”
“재형이 밖에 나갔어.”
이정우의 대답에 설여원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네? 밖에 나가요?”
“좀비화 남은 시간 아깝다면서 좀비들 잡으러 나갔어.”
설여원은 황급히 홀로그램을 열고 그동안 차단해둔 코인 메시지를 풀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좀비를 처리했습니다.
-감염된 식물을 처리했습니다.
-좀비를 처리했습니다.
-좀비를 처리했습니다.
-감염된 식물을 처리했습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
초당 수십 개씩,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코인 메시지.
설여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박재형은 좀비화의 남은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아니, 알뜰함을 넘어서 본전을 뽑을 심산으로 보였다.
설여원은 정신없이 올라가는 코인 메시지를 차단한 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좀비화만 쓰면 다른 사람 되는 거 같아요.”
“쫓기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이정우는 싱겁게 웃으며 탁자 위에 놓인 일기장을 펼쳤다.
박재형을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참이나 일기장을 들여다보던 이정우는 정진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찾은 흔적은 이게 전부야?”
“어, 더 찾아도 없어.”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일기장을 덮었다.
설여원이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이정우는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여긴…… 7월을 못 넘긴 거 같아.”
“7월요?”
“우리 학교에 있을 때, 장마 기간에 장대비 쏟아진 거 기억나?”
“당연히 기억하죠.”
“그때 무너진 것 같아.”
이정우는 일기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주었다.
6월 초, 이곳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스타필드를 안전가옥으로 만들었다.
스타필드 남쪽은 드넓은 주차장이 있고, 북쪽은 공원이라서 수비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좀비카 제작을 위해 주변 일대 수색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 생존자 구출도 함께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장마가 시작되고, 다수의 공명 좀비가 나타나며 속절없이 무너진 것으로 보였다.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 그럼 그때 전멸한 거예요?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요?”
“없는 것 같아. 어디로 대피했다는 내용도 없고, 다수의 공명 좀비가 나타났다는 게 마지막 내용이야.”
그러자 옆에 있던 윤혜리가 입을 열었다.
“일지에 무장상태나 식량, 플레이어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좀비 웨이브를 막아낼 여력은 없는 것 같아요.”
설여원은 윤혜리가 들고 있는 일지를 살폈다.
윤혜리의 말대로였다.
생존자는 100명이 되지 않았고, 심지어 무장도 못 한 사람이 태반이었다.
플레이어도 4명이 전부였고, 그중 가브리엘도 한 명이었다.
“어? 여기 이거. 다들 이것도 봐봐.”
또 다른 일기장을 확인하고 있던 최현은 본인이 확인한 내용을 이정우에게 보여주었다.
이정우는 일기에 적힌 내용을 보고 탄식을 금치 못했다.
“최악이네.”
다들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짓자,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일기에 적힌 내용을 소리 내 읽었다.
“덕풍 3동에서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를 확인했다. 생존자 구출을 위해 소리의 근원지로 이동하자, 그곳엔 아파트 외벽을 기어 다니는 알파 변종이 있었다.”
알파 변종이란 말에 다들 미간을 구기며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한 알파 변종.
4명의 플레이어가 감당하기엔 버거웠을 것이다.
이정우는 계속해서 일기장을 넘겼다.
“아직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나지 않았는데 변종이 활동하고 있다. 내가 아는 라스트아크의 정보와 다르다. 들키지 않고 대피에 성공했지만…… 불안하다. 혹여나 우리의 체취를 따라오는 건 아닐까.”
일기에는 플레이어의 불안한 심리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이정우는 일기를 휙휙 넘기더니, 어느 한 부분을 보고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게 핵심이네.”
“뭐가요?”
“여기 보면…… 이렇게 적혀 있어. 난생처음 보는 변종이 좀비를 뜯어먹고 있다. 덩치도, 생김새도, 무엇하나 라스트아크의 정보와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네? 그래도 첫 번째 에피소드는 라스트아크를 기반으로 했잖아요.”
설여원이 되묻자,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안 끝났어. 여기 보면…… 눈이 6개가 달린 괴물이다. 눈 깜박할 새에 시야에서 사라졌는데, 이동 경로 파악이 불가능하다. 수색 범위를 좁혀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적혀있어.”
눈이 6개라는 말에, 결인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설여원도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설마…… 변종 에덤이에요?”
이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알파가 아니라면…… 변종 에덤이겠지. 심지어 눈도 6개라면 변종 에덤뿐이야.”
“아니, 그럼 여기 있던 사람들은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변종 에덤을 상대했다고요?”
“상대한 게 아니지. 일방적으로 당한 거야.”
결인들은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매표소에 등을 기대고 있던 전완수가 상체를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어으…… 솔직히 우리 노력을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이런 생각은 안 하려고 했는데, 지방에서 시작한 게 운이 X나 좋았던 거네.”
전완수의 말에 최현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우린 변종 에덤도 한참 뒤에 마주쳤고, 성장할 시간도 벌었고.”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밀집된 수도권.
이는 플레이어가 많다는 뜻도 되지만, 그만큼 대장 좀비와 변종으로 변이된 플레이어도 많다는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많다는 건, 에덤의 숫자도 타 지역에 비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에덤.
그 양날의 검에, 이곳에 있던 생존자들은 당한 것이다.
설여원이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다른 내용은 더 없어요?”
“이게 다야.”
이정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설여원은 일기를 낚아채며 빠르게 훑었다.
뒤이어 초조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일기에 적힌 장소는 덕풍 3동, 거기가 마지막이에요. 수색 범위를 좁혔다고 했으니 덕풍 3동 북쪽으로는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덕풍 3동이 어딘데?”
정진영이 묻자, 설여원은 손가락을 튕기며 지도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던 오혜선과 한민욱이 지도를 들고 오자, 설여원은 탁자 위에 지도를 펼치며 얘기했다.
“덕풍 3동. 여기에요.”
결인들은 탁자 앞에 모여 설여원이 가리키는 장소를 확인했다.
정진영은 지도를 유심히 살피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꽤 멀리까지 갔네. 여기서 1.8㎞는 떨어진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덕풍 3동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제 본가에요. 대략 1.5㎞ 거리고요.”
결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1.5㎞ 거리에 변종 에덤이 있다면…… 그 반경에 있는 생존자들은 진즉에 전멸했을 것이다.
변종 에덤이 좀비를 섭취한 것만 봐도, 섭취할 인간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사실상 설여원의 부모님은 이미 길거리의 좀비가 되었거나, 시신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이런 말을 어떻게 입에 담겠는가?
다들 설여원의 눈치를 보자, 이를 파악한 설여원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재형이 돌아오면 5호선 따라서 천호역으로 이동한 뒤에, 8호선으로 갈아타서 잠실까지 이동하죠.”
“무슨 소리야. 여원이 네 본가도 확인해야지.”
전완수가 미간을 구기며 얘기하자, 설여원은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늦었어. 괜히 미사역 밖으로 나갔다가 변종에게 둘러싸이면…….”
“아니 뭔 소리 하는 거야?”
“……진짜 몰라서 하는 소리야?”
“너 미쳤냐?”
“하……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야. 우리 엄마 아빠는 이미…….”
설여원은 말끝을 흐리며 북받치는 감정을 삼켰다.
입술을 달싹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끝내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는 모습에, 최현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설여원을 토닥였다.
윤혜리와 김희연도 설여원을 달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는…….”
그동안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눈물로 쏟아졌다.
설여원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자, 윤혜리와 김희연도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정우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정진영을 쳐다봤다.
정진영도 마땅한 대책이 없기에,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전완수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아이 씨…… 아직 눈으로 확인하지도 않았잖아! 왜 시작도 전에 포기하고 지랄이야?”
“야, 전완수.”
최현이 노려보자, 전완수는 언성을 높였다.
“X발 내 말리 틀려? 누가 누굴 배려하는데? 미사역 밖으로 나갔다가 우리가 전멸이라도 할까 봐 저러는 거 아니야? 그러니 잠실까지 직진하자는 거잖아!”
“…….”
“아 됐다고! 설여원 네 본가도 확인할 거니까 뚝! 그만 울어!”
최현은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미사역 밖으로 나갔다가 변종들한테 둘러싸이면…… 진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거야. 지금 상황만 봐도 철로에 델타 변종이 있는 건 기정사실인데, 위아래로 짓눌리면 어떻게 도망치려고?”
“버프 할 수 있는 건 싹 다 하고 싸우면 되잖아! 그리고 조정경기장으로 대피하는 계획은 뭔데? 빙빙 돌아가더라도 한강 따라서 잠실 들어가면 되잖아!”
“오혜선 씨랑 한민욱 씨 데리고 조정경기장까지 이동할 수 있어?”
최현의 물음에 전완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오혜선과 한민욱은 결인들의 눈치를 보며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자, 최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심지어 4단계 변종은 마주치지도 않았어. 미사역 밖에 4단계 변종이 많으면 어떻게 하려고? 저지할 수 있어?”
“그건…….”
“재형이 혼자는 무리라는 거 너도 알잖아. 4단계 변종 한 마리는 재형이가 어떻게 해도, 두 마리 이상이면 광란 써야 된다고.”
“…….”
“여원이는 그래서 본가를 포기하겠다는 거야.”
“아직 메인 퀘스트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안 떴잖아? 그럼 여의도 아크도 못 들어갈 텐데, 그냥 지나가자는 게 말이 돼?”
쾅-!!!!
그 순간, 먼발치서 들리는 폭음에 결인들은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었다.
박재우는 창가로 달려가 소리의 근원지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거 뭐냐?”
전완수는 황급히 박재우의 곁으로 달려가 창밖의 상황을 살폈다.
족히 1㎞는 떨어진 거리에서 안개의 표면이 세차게 일렁이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이라도 무너졌는지, 흙먼지가 치솟고 있었다.
뒤이어 결인들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띠링-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1300코인이 지급됩니다.
전완수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박재우가 입을 열었다.
“1300코인이면…… 4단계 변종 아니야?”
박재우의 말에 이정우는 손목시계를 살피며 물었다.
“재형이 좀비화 몇 분이나 남았어?”
“길어야 10분이에요.”
최현의 대답에 이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홀로그램을 열었다.
코인 메시지를 활성화하자, 이전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올라가는 코인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
이정우는 황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박재형 대답해. 박재형?”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전투 중이라도, 박재형은 대답할 정도의 여유는 만들 수 있을텐데…….
이정우는 창과 방패를 들며 얘기했다.
“여원이랑 혜리, 오혜선 씨랑 한민욱 씨는 여기 있어.”
“저도……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설여원이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정우는 두 눈을 부릅뜨며 얘기했다.
“여기 있으라고. 다른 생각 말고 머리 식혀.”